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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1화 (13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1화

워랜과 함께 서점에 들러 적당한 책들을 주문한 후 저택으로 돌아온 주안은 저택에서 워랜과 헤어진 뒤 자신의 방으로 가서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이 돌아오길 기다리려 하였다.

“응?”

방으로 돌아와 적당한 책을 집어 들었을 때 테라스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에 갸웃하며 테라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테라스 쪽으로 나온 주안은 잠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아래쪽 정원의 한 나무에서 작지만 매우 익숙한 세 꼬맹이를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또 뭘 하려는 건지…….”

여전히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젠 좀 익숙해진 세 요정 꼬맹이.

세냐와 마냐, 그리고 아냐.

그 세 요정 꼬맹이들이 주안의 방에서도 아주 잘 보이는 익숙한 나무 근처를 날아다니며, 알 수 없는 요정의 언어로 속삭임인지 아니면 노랫소리인지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테라스 난간에 기댄 채 그런 세 요정 꼬맹이들이 무엇을 하는지 잠시 지켜보았다.

잠시 세 요정은 그렇게 나무 주변을 날아다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던 행동을 멈추더니 조용히 나무에 작은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이내 손에 맺혔던 희미한 빛이 어느새 나무 전체에 퍼져나가기 시작하였다.

“으, 응?”

저게 대체 뭐 하는 것인지, 몰랐던 주안이었지만 큰 나무에 눈에 띄는 변화가 찾아온 것에 놀란 듯 눈이 커졌다.

그저 푸르른 잎이 무성하던 정원 나무의 나뭇가지에서 색색의 작은 열매들이 맺히더니 이내 크고 먹음직스럽게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게 뭐야.”

순식간에 커진 열매는 왠지 모르게 매우 낯익은 것들이었고, 알맞고 먹음직스럽게 익은 열매들이 매우 만족스럽다는 듯 세 요정 꼬맹이가 각자 하나씩 열매를 딴 후 나뭇가지 위에 앉았다.

그리고 그것을 간식이라는 듯 먹으려는 세 요정 꼬맹이들의 모습에 주안이 황급히 소리쳐 불렀다.

“세, 세냐! 마냐! 아냐!”

거리도 가깝고 해서 주안의 목소리에 금세 세냐, 마냐, 아냐가 반응을 하며 고개를 들어 주안을 올려다보았다.

주안이 손을 흔들자 갸웃하던 세 요정 꼬맹이들도 이내 자신의 몸집만 한 큰 과일을 품에 꼬옥 끌어안고는 주안의 테라스 쪽으로 날아왔다.

“오빠 안녕!”

“아, 안녕하세요.”

“왜 부르신 건데요.”

삐딱한 세냐와는 달리 앞의 두 꼬맹이는 예의바르게 주안에게 인사도 해주었다.

그리고 이 역시 익숙하였기에 세냐의 삐딱한 시선은 그러려니 하며 물었다.

“방금 한 거, 그거 대체 뭐야?”

“음? 뭐가요?”

“아니, 그러니까……. 나무에 이렇게 손을 대니까, 열매가 저렇게 순식간에 맺혔잖아? 그거 대체 어떻게 한 거야?”

“아아, 그거요? 별거 아니에요.”

별것 아니라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대단해 보였는데 말이다.

아니, 진짜로 세 요정 꼬맹이 입장에서는 별것 아니었다는 듯 마냐와 아냐는 가지고 온 과일을 오물거리며 간식 시간을 가질 뿐이다.

“별것 아닌 것은 전혀 아닌 듯한데?”

“흐흥~ 하찮은 인간이 보기엔 참 대단해 보였나 보네요.”

“……하찮아서 정말 미안하네.”

세냐가 키득거리며 웃기에, 세냐가 품에 안고 있던 과일을 빼앗아 입에 쏙 집어넣었다.

“아?!”

“……이거 왠지 세계수의 과일이랑 비슷한데?”

“으으……!”

오물거리며 맛을 음미해 보니, 이전에 아미엘에게서 선물을 받은 과일과 맛이 매우 비슷했다.

“이상하네. 전에도 과일이 맺힌 일은 있었는데, 이런 맛은 아니었는데.”

“그거야 우리가 키운 거랑 알아서 맺히는 거랑은 조금 다르니까요.”

“응? 그래?”

입술을 삐죽이던 세냐였지만, 다행히 아냐가 자신의 과일을 내밀어 주자 그것을 한입 먹는 것으로 화가 조금은 풀린 듯했다.

하지만 세냐가 말한 그 차이점을 몰라 주안은 그저 갸웃할 뿐이다.

사실 정원의 나무들은 과일이 맺히지 않는 조경수들이었지만, 일전에 주안이 술을 마시고 일으킨 사건 이후로 이상한 과일들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지금은 그 과일들을 모두 딴 상태라 다시 열매가 맺히려면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였지만, 이 세 요정 꼬맹이는 그런 시간을 모두 무시한 채 열매가 맺히게 하니, 정말 신기할 따름이었다.

“우와, 진짜 아무것도 모르세요?”

“뭐가?”

“아니, 이걸 할 수 있게 한 건 다 오빠 덕분인데요?”

“……나? 내가 뭘 했어?”

갸웃하는 주안의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한 모습에 세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작디작은 요정 꼬마가 짓기에는 참 다채로운 표정들이었고, 그런 표정을 짓게 한 게 자신이라는 사실에 주안은 왠지 으쓱해진다.

“오빠의 힘. 그 신성력, 성흔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요. 우린 조금 돕는 것뿐이지, 생명을 잉태할 힘을 내린 건 오빠의 능력이에요.”

“진짜? 나한테 그런 힘도 있었어?”

“오빠라기보단 가지고 계신 자애의 성흔의 능력이죠. 오빤 아무 쓸모도 없거든요?”

“……참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구나. 열매 빼앗아 먹어서 미안해. 사과할게.”

“흥!”

나중에 세냐가 좋아할 만한 달콤한 과자라도 좀 가져와서 화를 풀어주어야겠다고 주안은 생각하며 세냐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나한테 진짜 그런 힘도 있었구나.”

“……진짜 모르셨어요?”

“응.”

“…….”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오히려 세냐가 당황한다.

“진짜 엘 하임 엘프의 후손이 맞는지…….”

“그건 나도 좀 의심스럽긴 해.”

“에효…….”

싱글거리며 웃는 주안의 모습에 세냐가 작게 한숨을 포옥 하고 내쉬었다.

“사실 이 성흔이라는 것도, 세상에 남겨진 자료도 별로 없거든. 지금은 그저 성녀, 성자의 증표이고 신성력을 좀 더 잘 쓴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게 없어.”

저 먼 북방의 무라디란의 성도, 다예프의 신관들이나 그곳에 남겨진 자료들이라면 모를까, 교세가 약한 중남부에 있는 자료들은 한정적이다.

이런 주안의 말에 조금은 이해한 듯, 세냐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자애의 성흔은 간단히 말해서 세상 그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주고, 새로운 생명을 맺을 수 있게끔 잠재력을 끌어올려 주는 아주아주 대단한 힘을 가지고 있거든요?”

“헤에…… 그래?”

“……반응이 왜 그렇게 뜨뜻미지근한데요? 그거 신의 힘이라고요.”

“그렇구나…….”

“…….”

무미건조한 주안의 반응에 세냐가 뚱해져 버린 것인지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세냐의 모습이 귀여워 손가락으로 빵빵해진 볼을 손가락으로 콕 하고 찔러 바람을 빼주며 주안이 말했다.

“그렇게 말을 해도 사실 실감은 안 나거든. 신의 힘인지, 대단한 힘인지……. 그냥 나한테는 사람을 깨끗하게 만들어주고 치료해주는 힘일 뿐이야.”

“그게 신의 힘이거든요?”

“응, 그렇지. 근데 난 신은 안 믿어.”

“우와, 무슨 이런 불신자한테 자애의 성흔이 간 거야?!”

“선조가 대단해서?”

“으…… 완전 불공평해!”

주안의 미소에 세냐가 불만의 소리를 내뱉었다.

“그래서 이 자애의 성흔이랑 아무것도 없던 나무에 열매가 맺히는 거랑 크게 상관이 있다, 이거지?”

“크게 상관이 있는 게 아니라 그게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거예요. 자애의 성흔의 힘으로 나무에 열매를 맺을 수 있었던 가능성을 키워 거기에 생명력을 부여해 주고 저희는 그것을 이용해 좀 더 빠르게 결실을 맺게 해주는 거예요.”

주안에겐 영 복잡한 이야기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설명을 좋아하는 세냐라 그런지 즐거운 듯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기서 제대로 관리를 해줘야 하는 게 바로 엘 하임의 엘프들의 역할이지만, 그 부분은 어쩔 수가 없죠.”

생명력을 부여하는 역할을 자애의 성흔이 한다면, 그것을 빠르게 자라게 만드는 것은 요정들이 하며, 그렇게 자란 열매는 엘 하임의 엘프들이 관리하여 좀 더 제대로 키우는 것.

이전의 세계수에서 분담되어 오던 역할이었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것보다 곰곰이 생각하던 무언가 떠오른 듯 놀라 소리쳤다.

“이거 설마, 그래서 우리 엄마가 임신하신 거야?!”

“정답. 그래도 씨앗이 없으면 불가능하겠지만, 여기 아저씨는 아직 말짱하셔서 가능하셨겠죠.”

“으으으음…….”

애 입에서 그런 소리를 들으니 조금 부끄럽다.

아니, 나이는 훨씬 많겠지만 그래도 그 외모는 완전 애라서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능력 같기는 했다.

주안의 가문인 마르티네스 공작가문은 자손이 너무나 귀한 집안인지라, 둘째를 가지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비록 첫째 아이가 유산이라 해도 둘째인 주안을 낳는 것도 모자라 이번에는 셋째 아이까지 가지게 되었으니, 가문의 역사에 관한 책에 주안의 엄마는 정말 크게 실릴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셋째 아이를 가지게 된 계기가 주안의 신성력에 의한 것이라고 하니 무언가 좀 묘했다.

“……이거, 잘하면 불임 치료도 가능하겠는데?”

“충분히 가능해요. 그래도 대머리 치료는 안 되니까 그거까진 하지 마세요.”

“신의 힘으로도 머리털은 못 자라게 하는 거야?”

“임신은 씨앗이라도 있으니 가능하지만, 대머리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나게 해야 하는 거잖아요. 아무리 신의 능력을 가졌어도, 진짜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해요.”

“…….”

불임 치료도 가능한 능력인데, 대머리 치료는 불가능하다니.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했다.

세상에는 아이를 가지기 위해서 노력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일반 백성들과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처럼 심각하게 아이를 바라는 귀족 가문은 널리고 널렸다.

당장 링베르가 공작가만 보아도 후계자 때문에 쉰이 된 나이로 아들을 보았을 정도로, 후계자 문제로 골치를 썩이는 가문이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들에게 좀 더 쉽게 아이를 볼 수 있게끔 한다면…….

“……이거, 알려지면 진짜 큰일이겠는데.”

“왜요?”

“이 힘을 바라는 사람이 엄청나게 많아질 거야.”

지금이야 그저 좀 특이한 신성력일 뿐이지만, 이 특이한 신성력에 불임 치료도 가능하다는 타이틀이 붙는다면 인기인이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게다가 이런 불임만이 아니라, 이것을 잘 활용한다면 작물을 키우는 것에 이보다 더 좋은 능력은 없어 보였다.

물론 이것은 세냐와 같은 요정들의 능력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이런 세속적인 부분을 모르는 세냐야 눈만 깜빡이며 갸웃했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건 비밀로 해야겠어. 그보다, 며칠 내로 다시 아미엘 님을 만나러 갈 건데, 너희도 갈래?”

“정말요?”

“응! 마냐는 또 아미엘 님이랑 같이 자고 싶어!”

“세냐도 아미엘 님이 팔베개 해주시는 거 너무 좋았어요!”

아무래도 가서 또 자고 싶은 듯했다.

“그런데 갑자기 왜 또 가시려고요?”

“아미엘 님이 구해달라던 책도 오늘 다 샀거든. 그거 전해 드리러 가야 해서.”

“아…….”

주안의 말에 세냐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과일이랑 그 이상한 물도 좀 얻고 싶거든. 엄마랑 아빠가 굉장히 좋아하셨어.”

“우물에서 숭늉 찾듯 하시네요. 그거 엄청 귀한 건데.”

“그래? 뭐, 몸에는 굉장히 좋아 보이긴 하던데. 이번에는 할아버지 댁에도 드리고 싶어서 좀 많이 얻었으면 했는데…….”

투덜거리는 세냐와는 달리 주안은 살짝 고민되긴 했지만, 그리 크진 않았다.

“음……. 그러면 나도 선물을 좀 해드릴까. 아미엘 님이 좋아하시는 거 알아?”

“술이요.”

“……진짜?”

“예전에는 엘 하임 엘프들이나 오크들, 그리고 드워프들도 제각각 술을 만들어 마셨거든요. 그중에서 가장 좋은 술은 항상 아미엘 님에게 선물로 줬을 정도예요.”

“호오…… 술이라.”

엘플들은 주로 과일로 만든 단맛이 강한 술을, 드워프들은 곡물을 이용한 맥주를, 그리고 오크들은 과일이든 곡물이든, 뱀이든, 곤충이든 가리지 않고 독한 술로 만들어 마셨다.

그리고 그러한 술 중 가장 잘 만들어진 것을 아미엘에게 진상하였고, 아미엘은 그런 술들을 가지리 않고 즐겼다.

이 소리를 들으니 주안은 아미엘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 것 같아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술이라면 우리도 빠지지 않거든.”

“그건 확실히…… 인간의 술은 다양한 맛이 정말 좋았어요.”

입맛을 다시는 세냐의 모습에 잔소리를 해줄 뻔했지만, 역시 그 외모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입맛이다.

“좋아. 좋은 술을 선물해 주자. 세냐 네가 봐줄래?”

“오케이. 아미엘 님의 입맛은 제가 잘 알거든요. 마셔보면 이거다, 싶은 게 있을 거예요.”

“……맛은 보지 말라고.”

벌써부터 마시고 싶은 듯 즐거워하는 세냐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지만, 뭐, 이렇게 좋아하니 뭐라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그저 이런 언니야의 모습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마냐와 아냐는 큰 눈을 깜빡일 뿐이었다.

솔직히 주안도 술을 무슨 맛으로 먹는지, 아직도 이해가 안 되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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