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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30화 (13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30화

“주안 공자.”

“네?”

치안청을 나와 워랜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나란히 걷던 워랜이 넌지시 주안에게 물었다.

“주안 공자의 혼담에 링베르가 공작가가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는 거, 진짜야?”

“예, 맞아요.”

담담한 주안의 말에 워랜은 오히려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본다.

“그런데 그걸 주안 공자는 어떻게 안 거야?”

“생각해보면 간단한 거예요. 서로 같은 공작가에, 수많은 가신을 거느리고 있는 것도 모자라 한 지역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가문들이에요.”

“그야 그렇지…….”

따지고 보면 워랜도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가신 중 하나인 노밀 가문의 후계자인 입장이기도 해다.

“보통은 가신들의 가문과 이어지는 게 더욱 큰 도움이 되지, 이렇게 멀리 떨어진, 그것도 황가에서 좋게 생각하지 않을 혼담을 넣을 정도면 이 혼담을 통해 무언가 크게 바라고 있다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거 설마, 주안 공자는 혼담이 들어 왔을 때부터 예상한 거였어?”

“설마요. 아버지랑 이야기를 나누다 떠올린 것뿐이에요. 그리고 저보다 아버지가 더 일찍 아셨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워랜은 주안을 조금 다르게 볼 수밖에 없었다.

함께 황도로 와서 아스란 왕국까지 갔다 오면서 주안이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고 피부로 느꼈지만, 정말 많은 부분에서 크게 성장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을 많이 읽더니, 정말 많이 달라졌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고 하잖아요. 제멋대로 읽은 거지만, 그래도 그게 피와 살이 되던걸요.”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주안의 모습에 워랜은 오히려 뚱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농담이긴 하였지만, 형이라는 말을 듣는 날이 머지않다고 생각하던 게 오히려 더 멀리 달아난 그런 기분이다.

그리고 이런 워랜을 보며 주안이 말했다.

“워랜 경도 쉴 때 책이라도 좀 읽어 보세요. 풍신 경이 그러셨는데, 마음의 수행을 하는 것엔 꼭 명상만이 아니라, 책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시던데요.”

“난 태생적으로 책이나 글자에는 안 어울려. 그냥 이렇게 살래.”

“어휴, 토미 그 녀석도 그렇고, 어쩜 이렇게 검을 쓴다는 사람들은 책이랑 안 어울리나 모르겠네요.”

“책 읽을 시간에 검 한 번 더 휘두르자는 게 우리 검사들의 생각이고 잠자는 게 내 일생이니까.”

“……그거 자랑 아니잖아요.”

싱긋 웃으며 당당하게 말을 하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말이 나와서 그런데, 저랑 집보다 서점에 먼저 가요.”

“응? 웬 서점?”

“아미엘 님이 책을 부탁하셨거든요. 누구에게 시키는 것보다, 그냥 제가 보고 적당한 것들을 모두 사드리고 싶어서요. 그리고…….”

주안이 재차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토미 그 자식, 아스란 왕국으로 가기 전에 글자는 좀 떼고 보내고 싶어서요.”

“푸핫……! 그 녀석, 아직도 글을 모르는 거야?”

“그렇다니까요. 세라타는 금세 배웠는데, 그 녀석은 왜 그러는 건지…….”

“검은 귀신같이 보고 베끼고 따라 하는 녀석이, 그런 건 왜 그렇게 못 하나 모르겠네.”

“진짜 워랜 경 말대로 검을 쓰는 사람들의 재능은 모두 다 거기로 몰린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 토미나 세라타를 위해서 글자 정도는 읽고 쓸 수 있도록 주안이 많이 도와주었고, 세라타는 정말 금세 글자를 배워 모두에게 칭찬을 받은 반면, 토미는 정말 머리 쓰는 일은 완전 꽝이었다.

워랜의 말대로 그 천재적이고 경이로운 검술의 재능과는 달리 머리 쓰는 일에선 완전히 상반된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설마 검성 시절에도 까막눈이었거나,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

무시무시한 검성 시절의 토미를 떠올리면 오한이 들었지만, 그런 토미가 책을 읽지 못해 쩔쩔매는 것을 상상하니…….

‘……더 무섭잖아?!’

핏빛을 닮은 빨간 눈으로 책을 펼쳐 끙끙거리는 중년의 토미를 떠올리니 소름이 끼쳤다.

“갑자기 몸을 왜 떨어? 감기 걸렸어?”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어쨌든 서점에 들렀다 가요. 토미, 글자 떼는 것에 도움 되는 책도 좀 사고, 가능하면 동방의 책들도 사서 풍신 경에게 선물로 보내드리고 싶네요.”

“뭐, 그러자. 그건 내가 사도록 할게.”

“하하, 그렇게 하세요.”

그래도 스승인지라, 풍신의 선물은 자신이 사고 싶다는 워랜을 보니 워랜이 얼마나 풍신을 잘 따르는 것인지 느낄 수 있었다.

아스란 왕국에서는 서로 티격태격하며 풍신은 워랜에게 호통을 치고 워랜은 그런 풍신의 잔소리에 힘들어하는 모습만 봐왔는데, 역시 사람들 말처럼 미운 정이라는 것이 참 대단하긴 대단한 듯했다.

* * *

저택으로 돌아온 사무엘 그리마는 그대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머무는 서재로 발걸음을 옮겼고, 이미 만남을 요청하였기에 금세 그와 만날 수가 있었다.

그리고 치안청에서 주안과 만나 하였던 이야기를 그대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에게 전하자, 그의 반응은 의외로 침착하였다.

“거래? 우리 가문과 거래하고 싶다고?”

“예,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는 저희와의 거래를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배상은 따로 하고, 거래하자…… 이것이겠지?”

“……그렇습니다.”

사무엘의 말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조용히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그리고 금세 서재 안에 하얀 담배 연기가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당돌한 아이로군.”

“당돌한 만큼 생각이 매우 깊은 아이였습니다.”

“제이미와 비교한다면?”

“…….”

“말을 안 해도 알겠군.”

침묵을 지키는 사무엘의 모습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담배를 깊이 한 모금 빨아들인 후 한숨처럼 하얀 연기를 토해내었다.

그의 얼굴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섞여 있었지만, 대체로 안타까움이 가장 컸다.

“그리고 한 가지, 중요한 일이 더 있습니다.”

“좋은 쪽인가, 좋지 않은 쪽인가.”

“제국의 입장에서는 매우 긍정적인 쪽이지만, 저희 가문의 입장이나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척을 지고 있는 이들에게는 매우 부정적인 일이 될 것입니다.”

“일단 우리는 중립적이라 보면 되겠고, 남부가 부정적이라는 뜻인데……. 무엇인가.”

사실 지금은 중립이라고 하기도 뭣 하지만, 이야기에 따라 대립도, 우호적이게도 될 수 있기에 그렇게 표현을 한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이런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던 사무엘 그리마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워랜 노밀 경이 랭크 7에 올라 있었습니다.”

“…….”

워랜 노밀이 누구인지, 잠시 생각하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었지만 이내 그가 누구인지 떠올린 듯했다.

하지만 한참을 아무 말 없이 불이 붙은 담배를 든 채 있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거의 끝까지 줄어든 담배를 재떨이에 집어 던진 후 사무엘 그리마에게 물었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그 워랜 노밀이란 말인가? 노밀 가문의 후계자로, 동부의 게으름뱅이라 불리던 그 워랜 노밀?”

“그렇습니다, 각하.”

“내가 알기로는 워랜 노밀의 나이가 올해 스물일곱이라 들었다.”

“맞습니다.”

“허, 허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허탈한 듯, 웃음을 흘렸고 사무엘은 그저 묵묵히 그를 지켜볼 뿐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넋이 나간 듯 웃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웃음을 뚝 그치고 사무엘 그리마에게 말했다.

“사무엘.”

“예, 각하.”

“그대는 언제 랭크 7에 올랐던가?”

“서른넷입니다.”

“그대 역시 매우 빠르게 들어섰지?”

“그렇습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 이후, 그는 좀 더 효율적으로 검술을 다루는 방식이 널리 퍼뜨렸다.

그 검술의 수혜를 입은 이들이 바로 지금의 랭크 7에 오른 이들인 사무엘 그리마, 에밀리 펜버, 실버론 하셀 등이었다.

이들은 모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정립한 검술 체계에 따라 훈련을 하여 30대의 젊은 나이로 랭크 7에 오른 이들이었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서방 대륙 제일 검이라고 불리던 것도 단지 가장 강해서만이 아니라 제국, 아니, 대륙의 검술을 한 단계 끌어올린 공이 매우 컸기 때문이다.

서방 대륙은 단순한 만큼, 많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어 다수의 강자를 끊임없이 키우는 것으로 동방 대륙과의 격차가 커지지 않게 만들었고, 새로 정립된 훈련법은 제국을 넘어 대륙으로 서서히 퍼져나갔다.

물론 깊이 있는 부분은 제국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였지만, 그렇다 해도 대륙 검술을 한 단계 발전시킨 공은 매우 컸다.

이러한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의 훈련법을 통해 재능이 넘치던 이들도 30대 후반, 혹은 40대를 넘어 오르던 랭크 7도 이제는 30대 초중반으로 당겨졌으니,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과 같은 천재가 또 나타난다면 언젠가 그와 같은 20대에 랭크 7에 오르는 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들을 사람들은 품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현세대에는 아니라고 검을 든 이들은 모두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을 한 것은 한때 검을 들었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나 현재의 랭크 7에 올라있는 사무엘 그리마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깝군, 아까워. 정말 아까워…….”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후회는 자신의 딸인 미네아가 주안과 맺어지지 못한 것에 대한 것과 워랜 노밀과 맺어줄 딸이 더 이상은 없다는 것, 그리고 그런 인재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있다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아직 워랜 노밀이 랭크 7에 올랐다는 이야기가 황도에는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군…….”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보다 젊은 나이로 랭크 7에 오른 이가 나타났다면 황도뿐만이 아니라 제국, 대륙이 떠들썩해야 할 일이었다.

하지만 묘하게 조용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자네가 잘못 봤을 리는 없을 터인데…….”

도통 그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주안뿐만이 아니라 워랜 노밀, 더 나아가 마르티네스 공작가 그 전부가 말이다.

블라드 링베르가, 자신에게 워랜 노밀이 있었다면 그를 전면에 내세워 정치적으로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후우……. 어쨌든 지금은 주안 마르티네스, 그 아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를 파악하는 게 우선이겠군.”

설마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현 공작가의 가주인 주레인 공작도 아닌 그의 아들, 그것도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아이와 이런 수 싸움을 벌이게 될지 몰랐던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새로운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주안 공자는 저희와 척을 질 생각은 없는 듯하였습니다. 하지만 제이미 공자님의 확실한 처벌과 사과는 받아야겠단 입장은 여전하십니다. 일단 각하께서 제이미 공자님에 대한 공작성에 대한 근신 명령에 대해선 납득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감옥 생활을 하여야 할 터이니, 그 이상을 바란다면 오히려 내가 화를 냈을 것이네.”

“배상에 대한 부분은 각하와 의견을 나누고 싶다는 입장입니다만, 사과의 부분이 문제입니다.”

“……제이미가 거절하던가?”

“예…….”

제이미의 성격을 그 누구보다 잘 알기에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은 인상을 쓸 수밖에 없었다.

“제이미 녀석을 설득시키는 것은 내가 하지.”

“예…….”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에 사무엘 그리마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것은 설득이 아닌 호통이 될 것임을 알기에 표정이 썩 밝지는 못했다.

“그나마 대화의 장이 마련되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럽군.”

“하지만 무언가를 주어야 한다는 점이 조금 그렇습니다.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고, 저희는 성의를 표시해야만 하는데…….”

“그래, 우리가 무엇을 주어야 할지 고민할 땐 그놈들도 무엇을 받을지 모르고 있다는 의미이지…….”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불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씹어대며 미소를 지었다.

“주도권이 마르티네스에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무엘.”

“각하……?”

“그렇게 받고 싶다면, 주도록 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고 말고는 그놈들이 결정할 터. 받지 않으면 후회할 것이고, 받는다면 더 큰 것을 토해낼 각오를 해야 할 것을 넘겨주도록 하지.”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사납게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질겅거리며 씹어댔다.

그리고 사무엘 그리마는 이런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모습에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사람의 강함은 육체적인 것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님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이가 바로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었고, 그는 무언가를 얻을 때 자신의 살을 내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뼈를 취하는 그런 인물이었다.

희생 없이 무언가를 얻을 수 없다는, 가훈에 맞게 행동할 때의 그는 참으로 무서운 존재가 아닐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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