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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29화 (12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29화

“당장 꺼…… 우읍!”

기어이 제이미 링베르가가 테이블을 쾅 하고 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지만, 이번에는 미네아가 아닌 사무엘 그리마가 거친 손으로 제이미의 입을 틀어막고는 주안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주안 공자님이 말이 심하고, 도가 지나쳤다 생각이 드는 군요.”

낮게 가라앉은 사무엘 그리마의 그 말은 너무나 차가웠고, 심장을 옭아매는 듯한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그리고 순간 주안은 숨이 턱 막히는 것을 느꼈지만, 그런 주안의 곁에 있던 워랜이 조용히 주안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안심시켜 주더니 압박해 오던 사무엘 그리마의 기운을 순식간에 끊어내었다.

“역시…….”

이런 워랜의 간단한 행동에 사무엘은 적잖이 놀란 듯, 워랜을 보며 말했다.

“……대체 언제 랭크 7에 오른 것인가, 워랜 경.”

“랭크 7?!”

주안의 말에 화가 났던 제이미도 사무엘 그리마의 그 말에 놀라 소리쳤고, 미네아 역시 워랜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단지 워랜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분위기 좀 풀고 하시죠. 기사 중의 기사라 불리는 사무엘 그리마 경이 검은커녕 펜도 제대로 못 잡아 본 저희 공자님을 괴롭히면 되겠습니까?”

“페, 펜보다 무거운 책은 자주 잡아봤거든요?!”

“아, 예. 그러세요?”

“으…….”

확실히 펜은 거의 못 잡았지만, 그래도 무거운 책은 자주 읽었던 주안이기에 매우 억울했다.

게다가 이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할 필요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분위기를 좀 풀어보려 한 워랜의 말이지만,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훗…….”

“…….”

제이미마저 주안을 보며 피식, 비웃음을 흘리니…… 정말 화가 나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정말 대단하군……. 자네, 올해 대체 나이가 몇인가? 20대 중반이라는 게 사실인가? 혹 거짓말하고 있는 건…….”

“아, 20대 맞습니다. 그보다 저희 검을 쓰는 사람들은 조금 빠져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이 두 도련님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 저희는 지켜보는 쪽이 되었으면 합니다만.”

“……그래도 링베르가 공작 가문에 대한 무례한 언사는 삼가주길 바랄 뿐이라네.”

“딱히 모욕하려고 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현실적인 부분을 말씀드리는 것이지요.”

“공자님은 현실적인 말이라고 타 가문을 망하니 마니, 하시는 것입니까.”

“예, 그 부분은 제 실수였고 무례함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걱정스럽다는 점은 진심이니 너무 안 좋게 생각지 말아주세요, 사무엘 경. 그리고…….”

주안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곳에 있는 모두에게 전하듯 말하였다.

“사실 저도 한때 가문을 말아먹을 마마보이라고 떠들썩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주안이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하니, 뭐라 할 말이 없어진다.

“그래서 진심으로 걱정되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아이의 어린 치기라고 넘어갈 수 있지만, 이런 행동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주변에는 적들밖에 남지 않는 것이니까요.”

“그 적 중 하나가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되었다는, 그런 말씀은 아니시겠지요?”

“아직은 아닙니다.”

“아직은 아니다, 라…….”

하지만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사무엘 그리마도 입을 꾸욱 다문 채 주안을 바라보았다.

주안의 말은 마치 협박과도 같이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주안 공자님……. 제가 한 말씀 드려도 괜찮을까요?”

“하십시오, 미네아 영애.”

미네아가 저자세로 나오자, 제이미가 발끈하려 하였지만, 그저 이런 제이미의 손을 잡아주는 것만으로도 금세 잠잠하게 만드는 미네아의 능력이 참 대단했다.

아니, 그냥 제이미의 심각한 시스터 콤플렉스가 어떤 수준인지 알 것만 같았다.

미네아는 차분한 눈으로 주안에게 말했다.

“여전히 제 동생에 대해 화가 풀리지 않으신 것을 알아요. 이런 제이미의 행동을 막지 못한 저와 저희 가문의 실수라는 점은 이번 일로 뼈저리게 느끼고 있어요.”

“느끼고 계셨다니 다행입니다.”

“제 부친께서도 이번 일로 제이미에게 내려졌던 많은 권한을 거둘 생각이세요.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면, 3년 동안 공작성 바깥 출입은 못 하게 하실 생각이세요.”

“뭐?!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누나!”

제이미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화들짝 놀라 누나인 미네아를 보다가 황급히 고개를 돌려 사무엘 경에게 사실이냐는 듯 바라본다.

그리고 주안 역시 마찬가지로 사무엘에게 시선을 주자, 그는 표정 변화 없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사무엘 경!”

“이것은 공자님을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더 이상의 추태는 공작 각하께서도 이제 그냥 넘어가지 않으실 것입니다.”

“으극……!”

사무엘까지 그렇게 말을 하니, 자신의 아버지가 마음을 단단히 먹은 듯하여 제이미가 크게 실망해 버렸다.

“그러니 이쯤 해서 저희 공자님을 용서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문제가 커져만 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저희 가문뿐만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명성에도 흠집이 날 것입니다.”

“흐응~ 작은 일로 꽁해져서 사과도 받아주지 않는 좀생이 가문, 이라고 소문이라도 날까 걱정해 주시는 것입니까?”

“아니라고는 말씀을 드리지 못하겠습니다.”

지극히 사무적인 말이지만 사무엘 그리마의 말이 딱히 틀리진 않았다.

지금이야 여론이 주안의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차 링베르가 공작 가문의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버티는 속이 좁은 가문으로 소문이 날 수도 있었다.

여론이 항상 편이 되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주안도 잘 알며, 그런 여론은 사춘기의 소녀와도 같았기에 언제 어느 때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예상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저희 공작 각하께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충분한 배상도 생각하고 계십니다.”

사무엘의 말을 들으며 주안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이런 주안을 지켜보며, 다들 조용히 입을 열길 기다리는 듯했다.

‘배상이라…….’

그 부분은 충분히 예상했던 부분이고 받아낼 생각을 하고 있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안은 링베르가 공작가의 조치가 마음에 들었다.

한창 활동적일 나이에 공작성 바깥출입이 안 된다는 것은 정말 큰 벌이다.

게다가 그것을 통해 제이미가 더 이상 사고를 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으니, 링베르가 공작가의 입장에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방법과도 같았다.

그게 지켜질 것인지는 솔직히 장담할 수는 없지만, 자존심 높은 링베르가 공작가라면 거짓으로 속이지는 않을 것이었다.

조용한 방 안, 주안이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는 소리만이 울렸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뒤 주안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물어보겠습니다.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 당신은 평민이라 칭하며 폭력을 가한 분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할 수 있겠습니까?”

“나보고 지금 평민 따위한테 고개를 숙이란 말이야?!”

“왜 못 한다는 겁니까?”

“난 고귀한 피를 타고난 제국 제일의 귀족 중의 귀족이야! 내가 왜 천한 그딴 자식한테 고개를 숙여야 하냐고!”

“……시대가 어느 때인데 피를 가지고 귀한 것과 천한 것을 나누는 것입니까.”

신분제도는 계속해서 유지가 되겠지만, 그렇다 해서 이런 시대착오적인 생각을 하는 귀족은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것이다.

그것도 아직 어린아이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주안은 매우 놀라울 정도였다.

‘이런 애가 커서 링베르가 공작가를 잇는다니……. 사라진 노예제도를 부활시킬까 겁날 정도네.’

물론 이전 삶 속에서의 링베르가 공작가를 이어받은 제이미 링베르가가 나름 가문과 제국 서부를 잘 이끌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이번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일지 주안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이미 역사는 주안으로 인해서 변해 버렸고, 가문을 망하게 만들었던 주안은 그때와는 달리 가문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입장이었다.

가지 않아도 될 사절단에 참여하고, 갑작스러운 전염병을 해결하며 돌아왔고, 만나지 않아도 되었을 링베르가 공작가와 얽혀 일이 이 지경까지 왔으니,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 이제는 아무도 모를 정도였다.

이런 상황에서 주안은 제이미 링베르가가 자신처럼 되지 말았으면 하였다.

거대 가문의 후계자가 잘못된 길로 빠져든다면 그것은 그 가문의 비극만으로 끝나지 않는 것을 주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뼈저리게 느끼고도 있었다.

“평민을, 백성들을 무시하지 않는 게 좋을 것입니다. 가문의 힘이 오롯이 그 가문의 가주와 그들을 따르는 이들에게서만 나오는 게 아닙니다.”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 중심이 되는 동부는, 그 심장이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면 손과 발, 머리는 가신들의 가문이 된다.

하지만 그들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되는 것은 피와 살이 되는 백성들에게서 있었다.

그들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시체나 다름없는 것이다.

“가장 아래에서 단단하게 가문을 떠받치고 있는 백성들이 없다면, 아무리 주춧돌이 단단하고 기둥이 반듯하다 해도 집은 금세 무너지는 법이니 말입니다.”

주안은 이미 그것을 겪었다.

가장 아래에서부터 가문을 받쳐주던 백성들의 민심이 먼저 떠나간 후 주춧돌이 되던, 가문의 기둥이 되던 가신들도 흔들렸고, 결국에는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는 집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니 말이다.

“백성들의 무서움을 모르는 이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

“지금 날 가르치려고…….”

하지만 제이미는 미네아와 사무엘이 자신과는 달리 주안의 말에 공감하는 모습에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주안이 마치 꼬장꼬장한 늙은 선생님 같아서 더욱 불쾌해졌다.

나이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비웃어주고 동부의 수치라고 불리던 주안 마르티네스라는 존재가 너무나 커 보였다.

아무리 어린 나이라도 한 가문의, 그것도 제국에서는 단둘밖에 없는 공작 가문의 후계자인 제이미의 입장에선 주안을 인정하고 싶지가 않았다.

“사무엘 경.”

“네, 주안 공자님.”

“제이미 공자가 정식으로 사과하고 싶다, 그렇게 마음을 먹는다면 연락을 주십시오. 그러면 치안청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해드리지요.”

“알겠습니다.”

사무엘 그리마가 제이미 링베르가를 설득할 필요도 없었다.

이 사실을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되었다.

그리고 제이미 링베르가는 무조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자신이 다치게 만든 사람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것이다.

그것을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이 만들 것임을 알기에 사무엘 그리마도 다행스럽게 생각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혼담은 없던 것으로 합니다.”

“……이미 생각지 않고 계십니다.”

이미 링베르가 공작가는 혼담을 통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을 끌어들이는 것을 배제한 상태였다.

때문에 어떤 것을 내어주는 것으로 마르티네스를 만족시키고, 제이미를 빼내는 것만이 아닌 다른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내부적으로도 계속해서 의견이 오가는 실정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주안은 사무엘 그리마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혼담이 아닌 다른 것으로 거래를 하지요. 저희 마르티네스 역시 같은 황가를 모시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어려움을 모른 척 넘어가지는 않을 것입니다.”

“예……?”

“저와의 혼담도 모두 링베르가 공작가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풀어가기 위해서라는 것, 저 역시 알고 있습니다.”

“…….”

“그래서 제안하는 거래입니다. 그냥 주는 것이 아니니, 서로 의견을 나누고 주고받을 것을 결정해 보지요. 물론 이것은 배상과는 무관한 거래입니다. 받을 건 먼저 받을 생각이거든요.”

배상은 배상이고 거래는 거래다.

그것을 주안은 혼동하지 않았고, 사무엘 그리마 역시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사무엘은 주안의 말뜻을 이해하는 한편, 마르티네스 공작가 역시 링베르가 공작가가 왜 이런 일을 추진하고 있는 것인지 어느 정도 파악이 끝나 있는 것을 느꼈다.

어차피 숨길 수 있는 일들도 아니었고, 혼담이 오간 시점에서 이미 의심하고 있었을 것임을 모르지는 않았다.

어떻게 보면 오히려 이게 더 다행스러운 일일 수도 있었다.

비록 예상치 못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 마르티네스와 틀어져서 그런 거래를 시도조차 못 하는 것보단 나았다.

애초에 혼담만 잘 이루어졌어도 이런 거래 따윈 필요치도 않았겠지만, 사무엘은 그것이 너무나 아쉬웠다.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님에겐 잘 전해주세요, 사무엘 경. 저 역시 제 부친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주안 공자님.”

그래도 해결할 방법이 생겼다는 것은 다행스러웠기에 사무엘의 표정도 조금은 밝아졌다.

단지 제이미가 이를 갈며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지만, 제이미에겐 이 일을 막을 명분도, 힘도 없으니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었다.

그저, 사무엘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바로 미네아는 표정이 매우 어두워졌다는 것이었다.

그런 미네아의 심정을, 아내를 통해서 알게 된 사무엘은 그녀가 무척이나 안쓰러웠다.

집을 떠날 좋은 기회가 이렇게 사라졌으니,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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