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27화
“주안아~!”
“제, 제발 뛰어다니지 마세요!”
서재에서 나와 엄마의 방으로 향하던 주안이었지만, 엄마인 안젤라 역시 주안을 찾아오던 것인지 멀찍이 떨어진 복도에서 주안을 발견하고는 뒤뚱거리며 달려오는 그 모습에 주안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아니, 소리친 것뿐만이 아니라 주안 역시 그런 엄마에게 달려갔고, 달려가면서 보니 주안과 마찬가지로 놀란 모습으로 엄마의 뒤에서 달려오는 마리아와 세라타 그리고 소니아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고, 사랑스러운 아들이 자신에 달려오는 것에 행복한 미소를 짓던 안젤라가 그대로 주안을 꼬옥 껴안고는 볼까지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우웅~! 우리 주안이! 오늘 온종일 대체 어디서 뭐 하고 있었던 거야? 엄마 엄청 외로웠단 말이야.”
“그게…….”
“그런데 네 작은 친구들은 어디 갔니? 그 아이들도 안 보이던데.”
“그 아이들은 잠깐 집에 갔어요.”
“어머? 정말? 아쉽네……. 오늘은 동화책을 읽어줄까 했는데.”
시무룩해진 엄마의 모습을 보니 주안은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한 분노가 많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 동화책은 오늘 소니아 누나한테 해주세요.”
“저한테요?!”
“어머, 그럴까? 오랜만에 같이 잘래?”
“예?! 아, 아니, 그게…….”
당황하는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만이 아니라 안젤라와 세라타, 게다가 마리아마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쉽게 볼 수 없는 광경이었고, 이 때문인지 소니아의 볼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사실 주안이 소니아에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아스란 왕국에 다녀온 뒤로 두 사람이 매우 친근해져 있는 것을 알기에 웃으면서 소니아에게 부탁할 수가 있는 것이기도 하였다.
오늘은 링베르가 공작가에 대해서 알아볼 것도 많고 생각할 것도 많기에 아무래도 엄마와 함께 자기에는 조금 무리였다.
이런 주안의 사정을 아는 소니아였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대신 저녁은 같이 먹을 거지?”
“그럼요, 아빠도 일찍 오셨으니 오랜만에 모두 다 같이 저녁 먹어요.”
“응!”
차마 엄마에게 오늘 저택에 있었던 일들을 알려줄 수는 없었다.
집안사람들 역시 따로 말하지 않아도 비밀이라는 것 정도는 다들 안다는 듯 안젤라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물론 이후 이 사실을 늦게나마 알게 된다면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그 부분은 주안이 전적으로 막아 줄 것임을 알기에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된 것이지만 말이다.
“가요, 엄마. 오늘 제가 아주 특별한 곳에 갔다 와서, 몸에 엄청 좋다는 과일도 잔뜩 가져왔거든요.”
“몸에 좋은 과일? 엄마 몰래 어디 갔다 온 거니?”
“그게…….”
그 장소가 대밀림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엄청나게 큰 나무였고, 이름은 세계수였어요! ……라는 장황한 설명을 엄마에게 절대 해줄 수가 없었다.
안 그래도 아스란 왕국, 그것도 전염병 치료에 앞장서서 나선 것 때문에 심기가 불편한데, 그 이상을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다.
주안이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무언가 매우 의심스럽다는 듯 안젤라가 주안을 지그시 바라본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엄마의 앞에서는 참으로 작아지는 주안이었기에, 식은땀 나는 상황 속에서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애써 미소를 지으며 손사래를 쳤다.
“나, 나중에 다 말씀드릴게요. 소개시켜 드릴 분도 있고, 분명 엄마도 좋아하실 거예요.”
“흐응~. 그 소개시켜 준다는 사람이 아스란 왕국의 공주라면 엄마는 거절할래.”
“……유우나 공주님이 왜요.”
“우리 주안이랑 같이 마차에 아주 오~ 랫 동안 있었다며? 그것도 단둘이서만 말이야.”
“…….”
주안이 스윽 고개를 돌려 소니아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소니아는 그저 주안의 눈길을 피한 채 모른 척하고 있다.
대신 세라타가 움찔 놀라며 주안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아주 당황한다.
소니아 뿐만이 아니라 세라타도 뭔가 말한 듯했다.
“엄마는 그 공주님 싫거든? 행여 우리 주안이 코를 꿰어 이 집에 들어올 생각이었다면, 엄마는 절대, 절대, 절대 반대고 허락 못 해!”
“그런 생각 저도 없어요. 유우나 공주님과는 그냥, 사업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 것뿐이에요.”
“정말이지?”
“그럼요. 그리고 단둘이 있던 시간도 별로 없었어요. 마차는 대부분 세라타랑 소니아 누나도 같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듯한 마디를 덧붙여 말했다.
“뭐, 두 사람이 가출하는 일 때문에 유우나 공주님과 둘만 있는 일이 벌어진 것이지만.”
“응? 가출?”
“앗?! 가출은 비밀이었잖아요!”
“……제 일은 멋대로 말씀하셨으면서.”
“그거야…….”
주안의 불만 어린 말에 소니아가 당황하였다.
그리고 이런 소니아의 모습에 안젤라가 조심스레 물었다.
“소니아, 너 가출했었니?”
“그, 그, 그게…….”
재미있는 것을 발견한 듯, 안젤라가 히죽 웃으며 소니아의 옷깃을 꼬옥 붙잡았다.
어디 도망치지 못하게 하려는 듯했다.
이런 안젤라의 행동에 소니아의 볼이 발개지며 적잖이 당황하였고, 세라타에게 도움을 요청하듯 눈길을 보냈지만 세라타는 이미 두 걸음이나 물러난 상태였다.
“자, 먼저 저녁이나 먹으러 가요. 이야기는 천천히 방에서 소니아 누나랑 같이하시고요. 밤은 길잖아요.”
“응, 그렇지.”
“이, 이건 좀 놓아주세요, 안젤라 님.”
“싫어.”
마치 어린아이들의 다툼을 보는 듯, 안젤라와 소니아의 모습에 주안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세라타, 밥 먹으러 가자. 오늘은 다들 불러서 같이 밥 먹자.”
“에? 네, 네.”
소니아의 원망 어린 눈빛을 받았지만, 깔끔하게 무시하며 주안이 먼저 세라타와 함께 앞서 나갔다.
이러나저러나, 저 말괄량이 소니아도 자신보다 더 엄청난 안젤라 앞에서는 어쩌지 못하나보다.
이런 소니아를 지나쳐 가며, 주안은 오늘 정말 다 같이 함께 저녁을 먹고 싶었다.
워랜이나 솔, 피터나 도리안과 오늘 고생한 쥬도까지 다 불러서 떠들썩한 저녁을 가지고 싶었다.
적어도 오늘, 제이미 링베르가에 대한 일을 잊고 앞으로 있을 일들에 대해서도 전혀 걱정도 불안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듯, 그렇게 말이다.
* * *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링베르가 공작가의 일로 황도는 매우 떠들썩했지만, 바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치안청에 붙잡혀 있는 제이미로서는 알 방도가 없었다.
치안청의 병사들이나 기사들은 제이미의 말에 일절 귀를 기울이지 않았고, 이런 취급에 소리친다 해도 아무도 제이미를 사적으로 만나주지 않았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제이미가 아직 어리다는 것과 그래도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이유로 같이 잡혀 온 호위들과는 달리 그는 좀 더 좋은 방에 배정되었다는 것 정도뿐이다.
그래도 결국 바깥으로 나서지 못하게 연금된 상태라는 것과 하루가 지나고, 이틀, 사흘이 지났는데도 누구도 자신을 만나러 오지 않는 것이 제이미를 미쳐 버리게 만들고 있었다.
“누나!”
하지만 나흘째 되는 날, 무시무시한 아버지도 아닌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누나인 미네아가 면회를 왔다.
그러자 그동안 있었던 분노도, 절망도 모두 사라진 제이미가 눈을 반짝이며 열린 문 너머의 미네아에게 달려가 그 품에 안겼다.
“왜! 왜 이제 온 거야!”
“미안, 미안해……. 아버지가,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하셔서…….”
“응! 그럴 줄 알았어! 역시 누나가 일부러 안 올 리가 없잖아!”
소리치고 화를 내며 문을 박살 내듯 차던 제이미 링베르가가 자신의 누나 앞에서 이토록 순한 양이 되어버린 모습을 처음 본 치안청 병사들과 기사들이 놀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의 제이미에겐 오직 누나만 보이는 듯, 뒤에 누가 있든, 미네아와 함께 집안사람 누가 온 것인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제이미가 이런 미네아를 이끌고 테이블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누추하지만 여기 앉아, 누나. 황도라고 해서 다 좋을 줄 알았는데, 여긴 진짜 최악이야.”
“으응…….”
애써 미소를 지으며 제이미가 권한 의자에 앉자 치안청 병사가 문을 조용히 닫아주었다.
따로 접견실을 이용할 필요 없이 이 방 자체가 귀족을 위한 곳이라 있을 것은 다 갖추고 있었고, 오히려 이들에겐 이곳이 더 편했기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뭐래? 나 금방 나갈 수 있게 해준다고 하지? 그렇지?”
“당장은 못 나가십니다, 공자님.”
“응?”
미네아에게만 집중해 있던 제이미는 곁에서 들려온 웬 남자의 목소리에 갸웃하며 고개를 들어 곁에 눈길을 주었다.
“사무엘 경?”
“……이제 알아보시는 것입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누나인 미네아에 대한 이 집착이 정말 상상 그 이상이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니, 사무엘로서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런 사무엘을 보며 제이미가 더욱 삐딱한 모습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사무엘 경이 여기 왜 있는 거예요? 지금은 저랑 누나의 소중한 시간이라고요. 눈치도 없으세요?”
“눈치는 공자님이 더욱 없으신 것 같습니다.”
“뭐라고요?”
“……정신 좀 차리시지요. 저는 이곳에 공자님의 어리광을 받아주러 온 것이 아닙니다.”
“으…….”
아무리 천방지축 망나니 같은 제이미라고 해도 링베르가의 검이자 서부 제일 검이라는 사무엘 그리마에게 대들 수는 없었다.
게다가 사무엘은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 외에는 고개를 숙여 따르는 인물도 아니었고, 그렇기에 제이미 역시 사무엘이 매우 껄끄러운 존재나 다름없었다.
지금도 사무엘과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친 채 고개를 돌려 버리며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자, 이런 제이미가 안쓰러운 듯 미네아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제이미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제이미. 사무엘 경에게 좀 더 공손하게 대해야지. 너한테는 매형이잖니.”
“매형은 무슨…….”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려도 제이미는 사무엘에게 더 이상의 말을 내지는 못 하였다.
“그보다 사무엘 경까지 오신 걸 보면 아버지가 무슨 말을 전해주신 건가 보네요.”
“예, 전해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가요? 석방되는 날짜, 뭐 그런 걸 알려주시러 온 거예요?”
“후우…….”
사무엘은 느긋한 제이미를 보자, 정말 한 소리를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리 나이 먹으면 제멋대로 하는 행동도 못 한다고 방치해 두고 있지만, 이건 정말 너무 심할 정도였다.
그래도 인내심을 가지며, 미네아의 모습을 봐서라도 참아낸 사무엘이 말했다.
“공작님의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사무엘의 말에 제이미가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미네아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 그 안으로 내보내 줄 것이니 참거라.”
“……그게, 끝이에요?”
“끝입니다.”
“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체 왜요!”
사무적인 태도의 사무엘의 모습에 참다 못한 제이미가 자신의 성질을 드러내며 소리쳤다.
미네아가 그런 제이미를 진정시키듯 다독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사무엘 경의 표정은 차가웠고, 그저 일 때문에 이곳에 온 사람답게 제이미를 대하였다.
“중앙 귀족들을 회유하고 있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버티고 있어서 그것도 여의치 않습니다. 게다가 여론도 저희 편이 아니라, 당장 제이미 공자님을 빼낼 방도가 없습니다.”
“우리가 왜 그딴 눈치를 보는 건데요! 그냥 빼내면 되는 거지!”
“말씀드렸다시피, 여론과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손을 쓰고 있어서 당장은 힘들다는 것입니다. 황도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영향력이 크다는 사실을 아시지 않습니까?”
“크으……!”
그것을 현재는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지만, 제이미 링베르가는 그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 때문에 작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소리쳤다.
“주안 마르티네스……! 겨우 이딴 일로……!”
“제이미…….”
“차라리 잘됐어, 누나. 그딴 자식한테 시집 안 가도 되는 거잖아. 그렇지?”
‘지금 그게 잘된 것이라 생각합니까?’라는 말을 제이미의 면전에서 해주고 싶은 사무엘이었지만, 얼굴을 잔뜩 찌푸리며 억지로 말을 참아내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맺어지기 위해 그 먼 서부에서 황도까지 온 것이고, 가문의 사정이 그만큼 나쁘다는 것을 후계자로서 진정 모르는 것인지…….
사무엘은 근신을 명 받고 저택에 있는 페로우 경이 참으로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고 발을 구르며 분노를 나타내는 제이미를 어떻게든 말리는 미네아를 흘겨보다, 할 말을 다 했으니 이만 자리를 뜰 생각을 하던 사무엘 경의 귓가로 방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손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손님?”
제이미에게 찾아올 손님이란 링베르가 공작가의 사람뿐이고,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명령 없이는 그 누구도 제이미를 만나지 못하도록 조치한 상태였다.
“대체 누가 찾아왔다는 것이오?”
그런 상황에서 손님이라는 말에 사무엘 경이 갸웃하며 되물었다.
그리고 이런 사무엘 경의 말에 바깥 경비를 서던 이가 담담히 답해주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께서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님에게 만남을 요청하셨습니다.”
그의 말에 분노를 드러내던 제이미도, 그런 제이미를 말리던 미네아도, 그리고 유일하게 이성을 유지하고 있던 사무엘도 놀란 눈으로 방문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곧 문이 서서히 열리더니, 열린 방문 너머에서 주안이 조용히 안으로 걸어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