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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24화 (12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24화

그란디아 남작은 황도 치안청의 책임자로서 올해 마흔셋이 되는 중년이었다.

그는 황도 법무관인 후마르 백작의 사위이기도 했으며, 중부에 알짜배기 영지를 가진 중앙귀족 출신이기도 하였다.

남작위를 가졌다고는 하나 집안의 위세도 나쁘지 않았고 중앙 귀족 중에서도 한 손에 꼽힌다는 후마르 백작이 장인어른으로서 든든하게 버티고 있기에 마음만 먹는다면 중앙 정계 진출도 얼마든지 가능한 이이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런 그란디아 남작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일어난 일로 인해서 매우 큰 고민에 빠져 버렸다.

안 그래도 조금씩 빠지는 머리카락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는데,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에게 치안청으로 끌려온 이들의 소식을 듣고는 신성력으로도 치료가 안 된다는 탈모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기분을 맛봐야만 하였다.

“저기, 청장님.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자신의 비서이자 치안청의 중요한 사무적인 부분을 모두 도맡아 하다시피 하는 쉐리의 물음에 그란디아 남작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장인어른 귀에 들어가면 큰일인데…….”

“이걸 숨길 수도 없습니다. 이미 치안청으로 그들을 데리고 오면서 사람들에게 보였기에, 소문은 금방 날 것입니다.”

“그래서 문제야. 대체 무슨 생각으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으로 가서 그 난동을 부린 거야. 아무리 황도에 오랜만에 올라왔다 해도, 그 정도 정보도 없었단 거야?”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의 단독 행동에 가깝겠지요.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저희에게 전해준 경위서를 보셨잖아요.”

“……진짜 제이미 공자가 자신의 누나를 찾으러 갔다가 그 사달을 냈다고?”

“예.”

“그것도 모자라 막아서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에게 상처를 입혔고?”

“그것도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가 직접 손을 썼고 증인들도 다수 있었으며, 미네아 링베르가 영애의 증언도 있었죠.”

단순히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주장하는 일이 아닌, 당사자인 링베르가 공작가의 영애까지 그 사실을 인정한 일이니, 따로 증거를 찾고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그란디아 남작의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

“이거, 잘못하면 양대 공작가의 다툼으로 번질 수가 있겠는데.”

중앙귀족들의 다툼이야 늘 있는 일이었지만, 동부와 서부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거대한 두 가문의 다툼은 제국 전체의 문제로 번질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문제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데리고 있는 게 바로 치안청이었고, 이런 치안청의 책임자는 바로 그란디아 남작 본인이었다.

이런 자신에게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링베르가 공작가뿐만이 아니라 황도의 사람들, 귀족, 황족 가릴 것 없이 시선이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려왔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그란디아 남작이 말했다.

“그렇다고 그냥 풀어주면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나설 것이고, 안 풀어주면 링베르가 공작가에서 나설 것인데…….”

“이대로 놔두면 후마르 백작님이 나타나시겠죠.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곧 황성에서도 사람을 보낼 것이고, 황제 폐하의 귀에 들어가면 결국…….”

“으으……. 말년에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퇴직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머리를 감싼 채 괴로워하는 그란디아 남작의 모습에 쉐리도 안쓰럽다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치안청으로 발령을 받은 게 이제 고작 3년 차였지만, 올해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하는 그란디아 남작은 정말 말년에 꼬여도 제대로 꼬여 버렸기 때문이었다.

황도 치안청의 청장은 10년 근무 후 후임에게 청장 자리를 맡기고 퇴직하는 게 오랜 전통이었고, 그란디아 남작은 올해로 딱 10년 차가 되는 해였다.

이런 고뇌에 빠진 그란디아 남작이 어느 정도 정신을 추스른 후 쉐리에게 물었다.

“중재할 방법이 없을까?”

“없습니다.”

“……너무 냉정한 답 아니야?”

“현실적인 답이지요.”

안경을 고쳐 쓰고 단번에 답해버리는 쉐리의 말에 그란디아 남작이 울적해졌다.

사실 그는 치안청에는 그다지 어울리는 인물도 아니었다.

강단이 있는 것도 아니고 중앙귀족이기는 하나, 영지가 지리적인 위치가 매우 좋아서 풍요로워 근방에선 나름 위세가 있다고 해도 권력을 크게 가진 것도 아니었다.

단지 장인인 후마르 백작이 중앙귀족이자 황도 법무관인 탓에 그 후광을 등에 업고 치안청의 청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사람들은 생각했다.

사실 그것도 맞지만, 후마르 백작의 추천이 있다고 해도 그 자리에 앉힐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청장의 자리는 전적으로 황제 폐하의 인가가 떨어질 때만 가능하다.

황성의 주요 자리, 특히 치안과 군권에 대해선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에 황제의 특별한 인가 없이는 그 누구도 그 자리에 올릴 수 없다.

그리고 그가 추천을 받고 자리에 앉을 수 있었던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어쩔 수 없지. 일단 법대로 하도록 하지.”

“정말, 그렇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링베르가 공작가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별수 있나. 어차피 이 자리도 곧 떠나는데……. 영지로 돌아가 조용히 살면 되는 거지. 어차피 우리 가문의 영지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서부와 멀어.”

그가 황도 치안청의 가장 높은 곳에 오른 이유는 그가 권력에 욕심도 없고 의외로 청렴한 인물이라는 점이 높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기저기 눈치를 보다 장인어른에게 혼나는 것보다 링베르가 공작가에 밉보이는 게 더 나아.”

무엇보다 그는 장인을 무척이나 무서워하는 탓에 비리를 저지를 용기도 없었다.

적어도 후마르 백작이 은퇴하지 않는 이상, 그는 영원히 비리와는 인연이 없을 인물이라는 것 때문에 이 자리에서 잡음 없이 오랜 시간을 지내온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솔직히 황도에선 링베르가 공작가보다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더 무섭거든.”

“그야 그렇지만…….”

황제의 사위이자 황녀의 남편.

그리고 동부의 지배자이며 제국에서 가장 강성한 가문의 현 가주.

그것도 모자라 제국 권력의 정점이나 마찬가지인 재상부의 책임자이며, 현 재상인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이 있는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황도에선 황제 다음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들이었다.

그리고 문득, 무언가 떠오른 듯 쉐리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그보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가 매우 많이 화가 난 듯합니다. 그리고 그걸 안젤라 공작부인께서 아신다면…….”

“…….”

임신한 몸으로 치안청으로 달려오는 안젤라 공작부인을 떠올리니, 그란디아 남작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경비를 강화해야 할까?”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주안 공자에게 부탁하는 게 더 빠르지 않을까요?”

쉐리의 말에 그란디아 남작이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제이미 링베르가를 보러 가는 게 아닌, 주안에게 먼저 달려가 쉐리의 조언대로 부탁할 생각이었다.

* * *

주레인 공작은 평소와는 달리 매우 이른 시간에 저택으로 돌아왔고 자신의 서재에서 주안과 마주하였지만, 먼저 말을 꺼내기에는 주안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어 꺼낼 수가 없었다.

한동안 부자는 조용히 차만 홀짝였지만, 어쩔 수 없다는 듯 주레인 공작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많이 화가 났느냐?”

“아니라고는 하지 못 하겠어요.”

아들의 분노가 자신에게 향한 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대로 주레인 공작은 화가 나 있는 주안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분명 아들은 1년 전만 하여도 엄마 품에 안겨 이런저런 걱정을 끼쳤지만, 점차 변해갔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나 늘 미소를 잃지 않는, 귀족답지 않은 친절함에 있었다.

그리고 주레인 공작은 이런 아들의 변화가 참 좋았지만, 가끔 너무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컸다.

그게 절대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귀족으로서 타인을 자신의 권력으로 찍어 누르지 않고 편하게 대하는 것은 큰 장점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친절함이 언제나 좋은 것으로 다가오는 게 아님을 알았다.

주안이 혹 이런 이들에게 상처를 받지 않을까 걱정스러웠으니 말이다.

그리고 오늘, 그러한 걱정이 현실이 되었기에 주안에게 어떤 위로의 말을 꺼내야 할지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 제이미라는 아이가 소문보다 더 심한 막무가내였나 보구나.”

“아시고 계셨어요?”

“깊이 알아보지는 못하였지만, 소문 정도는 들어보았단다.”

아무래도 링베르가 공작가는 친황실파에 가까운 이들이었고, 먼 서부와 그들의 땅에서 벗어나지 않은 이들이었기에 굳이 그들의 내부 사정까지 조사할 필요까지는 없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그리고 황가에 위협이 되는 것은 남부와 북부이지 서부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링베르가 공작이 매우 아낀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생각 이상으로 매우 많이 아끼던 아이였나 보구나.”

그런 막무가내인 성격의 근본적인 원인은 결국 그 누구도 자신의 가문에 대항할 수 없다는 자신감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그 힘이 링베르가 공작가의 가주라는 점을 아는 제이미였기에 그토록 당당했을 것임을 주레인 공작도 충분히 예상 가능했다.

하지만 그들이 서부에서 왕처럼 군림한다 해도 타지역에서까진 아니라는 점을 알았어야 하였다.

그것을 알려주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알고도 그랬던 것인지…….

어느 쪽이든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이미 황도에서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난동을 피운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의 일로 떠들썩해진 뒤였다.

그리고 그런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인 제이미 링베르가를 황도 치안청에 잡아 가둔 이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주안 마르티네스였기에 자연스럽게 두 거대 가문의 알력다툼으로 번지는 것이 아닌지 주목하고 있었다.

“앞으로 어찌할 생각이더냐. 네 엄마는 아직 모르는 듯하다만, 계속 숨길 수도 없고, 링베르가 공작이 어떻게 움직일지도 예상이 가지 않는구나.”

“그들로서도 당황스러울 거예요. 제이미가 이런 행동을 벌인 것을 예상하지는 못하겠죠.”

“그렇겠지. 아무리 제멋대로인 아이라도, 설마 남의 가문에, 그것도 혼담이 오가는 가문의 저택으로 찾아와 이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 할 것이니 말이다.”

상식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지켜야 할 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선을 넘으면 큰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제이미가 자신의 누나와 주안의 혼담에 대해서 매우 불만스럽고, 지나치게 누나인 미네아를 따른다 해도 제이미가 한 짓은 상식이 없는 행동과 마찬가지였다.

“아빠. 아니, 아버지.”

“으, 응?”

가족들만 있을 땐 친근하게 아빠라 부르던 주안이 갑자기 아버지라고 하니 주레인 공작도 적응이 안 되는 듯 표정 관리가 잘되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주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제 행동이 심했고 과하다 생각하시는 거예요?”

“…….”

엄마를 무척 닮은 파란 눈동자로 자신을 지켜보며 답을 바라는 아들의 모습에, 아버지로서. 그리고 가문의 가주로서 주레인 공작이 잠시 생각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였다.

하지만 이내 찻잔을 들고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주레인 공작이 주안에게 말했다.

“너의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단다. 그리고 네 행동이 가문을 지키기 위해 한 일이었고, 많은 이들이 너의 행동을 보고 납득하였다면 너는 너의 행동에 후회할 필요가 없단다.”

가주로서, 그리고 이후 가주가 될 주안에게 가문을 이끌어가는 방법을 이런 식으로 가르쳐 주어야 하는 것을 예상하지는 못하였지만, 그래도 주레인 공작은 나름 흐뭇하였다.

아들이 제이미 링베르가처럼 자신의 가문을 등에 업고 권력을 누리며 타인을 핍박하는 행동을 벌이는 게 아닌, 가문을 위해서 스스로 앞에 나서며 뒤에 선 이들을 지키려 한 행동은 단지 가문의 가주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매우 뿌듯한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이런 아버지의 말에 주안이 결심한 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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