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22화
“누구…….”
“넌 또 뭐야! 전부 저리 안 꺼져?!”
버럭 지르는 그 소리에 토미와 쥬도뿐만이 아니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이들 모두가 잔뜩 찌푸렸다.
목소리도 목소리이지만, 너무 무례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작은 꼬맹이, 제이미 링베르가를 아는 이들은 뭐라 하지도 못하였다.
그를 모르는 토미와 쥬도는 매우 불쾌했지만, 경비담당 책임자인 아르센 경은 그저 한숨을 내쉬며 최대한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제, 제이미 공자님. 이곳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입니다. 예의를 좀 갖추고 정식 절차를 밟은 뒤에 들어오셔야…….”
“정식절차 같은 소리 하네. 우리 누나 어디 있냐니까!”
“아니, 그러니까 미네아 영애께선 저희 공자님과 함께 있으시니, 조금만 진정을 하시고…….”
“그 놈팡이 자식이랑 단둘이?!”
제이미 링베르가의 눈매가 사납게 변하더니 아르센 경을 밀치고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쳤다.
“누나! 누우나아!”
“제이미 공자님!”
제이미의 그 행동에 아르센 경이 잔뜩 표정을 굳혔다.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듯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제이미를 붙잡으려 하였다.
하지만 그런 제이미보다 쥬도가 먼저 나서서 제이미의 앞을 가로막았다.
“거, 위세가 대단한 가문의 분 같으신데, 여긴 마르티네스 공작가입니다. 제대로 절차를 밟고 들어오시죠?”
“너야말로 누구야! 너도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쓰는 거냐!”
“예? 아니, 전…….”
“아니면 황가가 네 가문이냐?! 어디 가문의 놈인데 내 앞을 막는 거야!”
“……평민인데요.”
제멋대로인 것도 정도가 있지,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이나 황가를 너무나 쉽게 내뱉는 제이미의 모습에 평범한 가문의 이가 아니라는 것을 느낀 쥬도가 조금 주눅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이런 쥬도의 말에 제이미가 오히려 헛웃음을 내뱉으며 쥬도를 째듯 노려보았다.
“감히 평민 따위가? 네 녀석 따위가 여기 있다 해서 마르티네스의 뭐라도 되는 줄 알아?”
“아니,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죠. 그쪽 도련님이 어디의 누구신지는 모르겠지만, 여긴 마르티네스 공작가입니다. 적어도 이곳에서는 그쪽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고 저는…….”
뭐라 말을 하려던 쥬도는 살짝 고민이 되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제이미 링베르가도 초대받지 못한 외부인이지만, 쥬도 자신 역시 손님도 아니고 그렇다고 외부인도 아닌 무언가 참 애매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런 쥬도의 모습에 제이미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나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 제이미 링베르가다! 너 따위와는 달리 이곳에 들어올 이유도, 자격도 충분하다고! 우리 누나 데리고 오기나 해!”
제이미 링베르가라는 이름, 그리고 누나라는 그 말에 제이미가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쥬도도 알아차린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쥬도는 제이미의 앞길을 막아서며 말했다.
“자격이라는 건 스스로 만드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만들어주는 것입니다만…….”
“이, 이……!”
“무엇보다 이런 행동 자체가 지체 높으신 분이 하시기에는 좀 그렇지 않습니까?”
“평민 따위가 감히……!”
제이미는 자신도 모르게 평소 호신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단단한 목검을 빼 들고 그대로 쥬도의 얼굴을 후려쳤다.
그래도 귀족이라고, 나름 높은 신분의 아이라 상식 정도는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방심하던 쥬도는 제이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한 채 얼굴을 가격당했다.
이런 쥬도가 휘청거리자 토미가 놀라 소리치며 쥬도를 부축하였다.
“쥬, 쥬도 형!”
“아, 괘, 괜찮아.”
예전 같았으면 그대로 맞았겠지만, 다행히 피터의 훈련 덕분인지 반사적으로 피하였기에 볼만 조금 스친 정도였다.
하지만 체계적으로 훈련을 받은 건 제이미 역시 마찬가지인 듯, 스쳤다 뿐이지만 볼이 발갛게 변하더니 어느새 파란 멍이 맺히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행동이 결정적이었다는 듯 아르센 경의 눈빛이 변하고 그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을 눈치챈 병사들과 기사들은 제이미 일행에게서 조금씩 물러났다.
그냥 물러나는 게 아니었다. 그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었다뿐이지 마치 포위를 하는 형식이었고, 토미도 쥬도를 데리고 멀찍이 물러났다.
하지만 제이미는 주변의 상황이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은 듯 그저 씩씩거리면서도 방해꾼들이 사라진 것에 속이 후련한 듯했다.
주변에 더 이상 말리는 사람도 없어서 그런지 제이미와 그를 따르는 호위들이 당당하게 저택으로 향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택 입구에서 다수의 사람이 나왔다. 그들 중 누나인 미네아의 모습에 제이미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누나!”
하지만 제이미는 미네아의 표정이 매우 어둡다는 것과 곁에서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주안의 차가운 눈을, 그 분위기를 전혀 보지 못 하고 있었다.
토미도, 쥬도도, 곁에 있던 병사들과 기사들마저 주안의 모습에 흠칫 놀랐을 정도였다.
평소의 다정다감하고 늘 웃으며 아랫사람들을 대하던 주안이, 다른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 * *
미네아 그리고 세라타와 함께 저택 정문으로 달려 나온 주안은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택의 경비병들 각자의 무기를 들고 제이미를 위시한 일단의 무리들 주변을 포위하고 있었지만, 어떻게 된 것이 제이미 링베르가는 전혀 주눅이 들지 않은 채 오히려 당당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주안과 함께 나온 미네아 링베르가를 보고는 제이미의 표정이 밝아지며 소리쳤다.
“누나!”
하지만 그런 제이미의 모습보다 주변의 상황을 살펴보던 미네아의 표정이 상당히 어두워졌다.
제이미 주변으로 호위들을 잔뜩 있다는 것과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제이미의 모습 때문이었다.
“고, 공자님……. 제이미는 제가 잘 타일러서…….”
제이미에게 언제나 걱정스러운 존재였던 미네아였지만, 오늘은 그 반대 입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런 미네아도 곁에 있는, 다정해 보이던 주안의 표정이 지나치게 차갑다는 사실에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주안의 곁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주안은 제이미 링베르가를 차가운 눈으로 노려보다가 시선을 돌려 저택 경비병들과 함께 있는 토미와 쥬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 둘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저택 내부에 있던 호위 기사들이 주안을 뒤따랐다.
“우리 누나를 데리고 와서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르려고 한 거야, 주안 마르티네스!”
이런 주안의 모습에 잔뜩 뿔이 난 제이미 링베르가가 주안에게 소리치자, 주안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이미를 노려보았다.
아니, 그뿐만이 아니라 주안을 따르던 호위 기사들 모두가 같았다.
아직 상황파악이 되지 않는 듯 제이미가 잠시 움찔 놀랐지만, 이내 다시 주안을 노려보며 소리를 지르려 하였다.
“제이미!”
다행히 그런 제이미를 미네아가 달려가 막았지만, 두 사람을 흘겨보던 주안은 시선을 거둔 채 토미와 쥬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주안이 다가오자 토미와 쥬도가 황급히 고개를 숙여 주안에게 인사를 하였지만, 주안의 시선은 쥬도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한쪽 볼이 퉁퉁 부어 있었고, 멍 자국이 매우 심해 보였다.
이리엄 경과 함께 있다가 주안과 같이 온 도리안이 그런 쥬도에게 달려가 살펴보려 했지만, 그보다 주안이 먼저 쥬도에게 향하며 물었다.
“그 얼굴 상처는, 저 사람들이 그런 겁니까?”
“그게…….”
주안의 말에 제이미 링베르가를, 그가 들고 있는 멋들어진 목검에 쥬도의 시선이 향했다.
“왜 그런 겁니까?”
“허락도 없이 갑자기 안으로 들어오셔서, 제가 좀 건방지게 막아섰거든요.”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는 쥬도였지만, 그가 한 행동은 정당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정당한 행동에 대한 답례를 제이미 링베르가는 이런 식으로 저질렀다는 것이다.
“토미, 안에서 피터 경과 워랜 경을 불러와.”
“네, 도련님.”
주안의 말에 토미가 그대로 저택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 쥬도는 도리안에게 맡겨둔 뒤 주안은 어느새 곁으로 다가온 저택 경비담당 책임자인 아르센 경에게 명을 내렸다.
“아르센 경, 저들이 도주하지 못하도록 정문을 막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아르센 경이 신호를 보내자 대치하던 경비 중 일부가 빠지며 정문 쪽으로 돌아가 막아섰다.
그리고 아버지의 호위 총책임자인 에밀리 경의 부관이자, 비번 중이라 저택에 머무르고 있던 이리엄 경에게 말했다.
“이리엄 경, 다른 기사분과 함께 저들의 제압을 부탁드립니다.”
“예, 공자님.”
“한 사람도 남김없이, 모조리 붙잡으세요.”
주안의 말을 들은 제이미 링베르가가 놀란 눈으로 주안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우, 우릴 붙잡아?! 대체 왜?!”
하지만 주안은 그런 제이미를 착 가라앉은 눈으로 바라보았다.
싸늘한 그 모습에서 주안의 분노가 느껴진 탓인지, 제이미 링베르가는 움찔 놀라며 자신의 곁에 있는 누나의 품속으로 파고들었다.
“제이미 링베르가, 너는 내가 우습게 보이느냐? 아니면 우리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그토록 하찮아 보이나?”
“나, 난 그런 생각은…….”
“네 누나를 찾으러 왔으면 네 누나나 곱게 데리고 갈 것이지, 허락도 없이 저택 내로 들어와 내 사람을 다치게 하고 뻔뻔하게 소리치고 있나?”
주안이 가장 화난 것은, 제이미 링베르가가 저택을 제멋대로 찾아온 것 때문이 아니었다.
허락 없이 정문을 넘어 들어 온 것은 불쾌하지만, 적당히 꾸짖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무장한 다수를 이끌고 나타나서는 그것을 제지하는 경비들을 무시한 것도 모자라, 막아선 사람까지 다치게 만들었다.
무례함 이전에 상식이 없었고, 그 상식이 없는 것을 자신의 권력으로 찍어 누르던, 전형적인 생각 없는 귀족가의 아이였다.
하지만 아이라고 해서 봐줄 수 있는 상황 역시 아니었다.
“바깥에서의 무례함은 한 번 이해해 주었다. 나의 배려가 그토록 우습게 보였나 보구나.”
바깥에서의 무례함 정도는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자신의 집이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 이 보금자리에서 그러면 안 되었다.
이곳은 부모님을 따르는 이들의 거처이자 마음의 안식처였고, 주안에게 있어서 소중한 장소였다.
소중한 집을 침범하고 집안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 그것은 주안에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것이었다.
이전의 삶 속에서, 많은 이가 집을 지켜주었지만, 정작 그 집이자 보금자리의 주인이던 주안은 그들을 외면했고 홀로 도망쳤었다.
집과 가족, 그리고 가까운 이들을 버린 것.
그것은 주안이 가장 후회하는 일이었으며 바로잡고자 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지금 위협받고 있었다.
상황이 이상하게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제이미 링베르가가 당황하며 소리쳤다.
“나, 나, 나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라고! 나는 그저 내 누나를 찾으러…….”
“그래, 제이미 링베르가. 그게 너의 이름이자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라는 것, 그래서 뭐 어쩌라는 것이지?”
주안이 사납게 제이미를 노려보며 말했다.
“네 녀석이 링베르가의 자손이라면, 나 역시 마르티네스의 자손이자 후계자다. 그리고 이곳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이다!”
이 버릇없는 후계자가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하찮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였기에 주안이 거칠게 몰아붙이며 소리쳤다.
“똑똑히 들어라! 링베르가 따위가 함부로 대할 수 있는 사람들과 가문이 아니다! 아르센 경! 이리엄 경!”
주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르센 경비대장이 이끄는 이들이 저택 정문을 닫고 뒤를 막아서며 제이미 일행을 포위하였다.
그리고 이리엄 경이 검을 뽑아 들자, 주안의 곁에 있던 호위 기사들도 일제히 검을 뽑아 들고 제이미 링베르가 일행들에게 겨누었다.
“가문을 위협한 이들입니다. 무기를 꺼내는 자에겐 용서와 자비 따위를 베풀 필요 없습니다. 순순히 투항하는 자는 모조리 포박하세요. 링베르가의 이름은 무시하셔도 좋습니다.”
세상 어디에도 링베르가를 그렇게 평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이 장소에서는 다르다.
링베르가의 이름 따위 의미 없다는 것을 주안은 이 무례한 어린 후계자에게 새겨주려 하였다.
“이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저, 주안 마르티네스가 내리는 명령입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리엄 경과 아르센 경뿐만이 아니라 호위 기사들과 병사들마저 그들과 똑같이 소리치며 무기를 고쳐 잡았다.
그들 역시 마르티네스의 사람들이었다.
가문을 더럽히고 집을 침탈한 이에게 용서 따윈 필요가 없다는 것을 주안의 말이 아니더라도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