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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13화 (11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13화

“어, 어, 어, 엄마! 아빠!”

주안이 세라타를 데리고 저택으로 달려온 것도 모자라 급하게 엄마와 아빠를 찾으며 저택 안을 돌아다녔다.

게다가 얼마나 급했던 것인지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는 어머니 아버지로 부르던 것도 잊은 채 엄마와 아빠를 찾아 나서기까지 하였다.

이런 주안의 모습이야 익숙한 집안사람들은 그러려니 했지만, 마르티네스 공작령에서 올라온 사람들은 그동안 보아온 주안의 어른스러운 행동과는 전혀 다른 그 모습에 조금 놀란 듯했다.

황성에서 있을 저녁 파티를 준비 중이던 이들도 주안의 이런 행동에 무슨 큰일이라도 난 듯 놀라며 주안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주안은 뒤에서 누가 따라오든, 누가 자신을 부르든 그런 것에 신경을 쓸 팀이 없었다.

‘대, 대, 대체 무슨 일이야?!’

제이미 링베르가 때문에 한순간에 제국의 공작가를 협박해 여식을 강제로 취하는 파렴치한 후계자가 되어버린 주안은 그 장소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오해를 풀고 말고의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내일, 아니, 당장 오늘부터 어떤 소문이 돌 것인지 벌써부터 걱정스러웠지만, 그 이전에 제이미 링베르가가 한 말이 더 문제였다.

‘내가 결혼? 혼담? 링베르가 공작가의 여자랑?’

주안은 그에 대해서 아빠에게도, 엄마에게도 아무 소리를 듣지 못했었다.

‘설마 링베르가 공작가가 갑자기 황도에 온 것도 이것 때문이었어?!’

그들이 갑자기 황도에 등장한 이유가 그것이라면, 이건 주안이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그러면 아주 작정하고 온 거잖아!’

보통 혼담이 오갈 땐 서로 가문끼리 의견을 주고받는 시간이 매우 길다.

그리고 가문 내에서도 많은 이야기가 오가며 최종적으로 이어줄 아이에게 밝히게 된다.

하지만 주안은 혼담 이야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런 링베르가 공작가가 그런 의견교환도 없이, 혹은 혼담 의사만 밝히고는 그대로 찾아온 것이라면 이 혼사를 반드시 이어주겠다는 것과 다름없었다.

게다가 그들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같은 작위를 가진, 제국에서는 둘밖에 없다는 서부의 지배자이자 방패라는 그 링베르가 공작가다.

‘아빠 입장에서도 거절은 쉽지 않을 건데…….’

혼사 이야기는 언젠가 나올 것임을 주안도 알고 있었다.

이전의 삶에서는 엄마의 반대도 있었고, 주안 본인도 엄마만을 바라보던 삶을 살았으니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지금의 주안은 가문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낼 생각이었다.

물론 거기에는 원치 않는 결혼도 있었다.

원하든 원치 않든, 부모님과 가문을 위한 길이라면 고려해 볼 만한 일이기에, 언젠가 그 일이 일어날 때 신중히 판단하여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럽다.

‘아직 나 미성년자인데!’

물론 귀족가의 혼담 이야기는 성년이든 아니든 크게 상관은 없다.

하지만 그동안 이런 일에 대해서 전혀 언급하지 않은 아빠였기에 주안은 자연스럽게 혼담은 성인이 된 후에 차근차근 진행될 것이라 생각하여 안심하고 있었다.

‘……이거 설마 엄마도 모르는 거 아니야?’

만약 엄마가 알았다면 집 안이 이토록 평온할 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주안은 엄마의 방 앞에 도착한 뒤 들어갈까 말까 잠시 망설이게 되었다.

혹시 엄마는 모르는 상황에서 제이미 링베르가를 통해 들은 혼담 이야기를 꺼낸다면…….

‘아빠, 오늘 쫓겨나실 수도…….’

가능성이 전혀 없지 않은 이야기인지라 주안도 식은땀을 흘리며 고민하였다.

사이가 급속도로 좋아진 부모님이었고, 그 좋아진 사이만큼이나 숨겨져 있던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공처가 기질이 나타났다.

그렇기에 아빠가 멋대로 일을 진행시켰다면 집에서 쫓겨나는 최초의 공작이 될 것이 분명했다.

“으음…….”

뒤에서는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궁금해하는 가문의 사람들이 웅성거렸고, 곁에서는 조마조마한 눈으로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세라타가 있다.

그리고 주안은 엄마의 방 앞에 서서 노크를 하고 들어갈까, 말까 고민을 하는 상황이었다.

‘에라, 모르겠다. 일단 아는지 모르는지만 좀 알아봐야지.’

주안이 마음을 굳힌 후 엄마의 방문에 노크하였다.

똑똑, 하는 노크 소리와 함께 금세 방문이 열리더니 엄마의 전속 하녀인 마리아가 주안을 맞이해 주었다.

“엄마 안에 계세요?”

“네, 도련님.”

그리고 마리아가 방문을 열어주자, 주안은 세라타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고, 초대받지 못한 채 궁금증만 가득 안은 다른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주안이 방 안으로 들어서자 방 안은 낯익은 향기가 주안의 코끝을 스치고 지나갔고 작은 목소리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응? 세냐랑 마냐, 아냐가 여기 있었어?”

방 안에는 침대에 기대어 앉아 있는 엄마만이 아니라, 세 요정 꼬맹이도 함께였다.

게다가 세 요정 꼬맹이는 뭐가 그리 재미난 것인지 안젤라의 곁에 앉아, 안젤라가 읽어주는 책의 이야기를 들으며 꺄르륵거리며 웃고 있다.

다정한 그 모습은 엄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그런 행복한 모습과는 달리 주안은 잔뜩 긴장한 채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어머, 주안아.”

그리고 주안이 온 것에 안젤라가 활짝 웃으며 두 팔을 벌려 맞이해 주었다.

그런 엄마의 행동에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면서도 주안은 본능이 이끄는 대로 엄마에게 다가가 안아주었다.

“외출은 잘하고 왔어?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고?”

“조금 복잡하긴 했지만 나쁘진 않았어요.”

“다음에는 엄마랑 같이 나가는 거야, 알겠지?”

축제 시즌이라 사람이 너무 붐비는 관계로 홑몸이 아닌 안젤라에겐 외출은 꽤나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이 축제 기간만 끝난다면 안젤라는 주안과 함께 느긋하게 보낼 수 있는 휴양지를 찾을 계획이었다.

더 이상 임신을 숨길 필요도 없었고, 주안도 있으니 오랜만에 황도 근처의 휴양지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 마음을 알기에 조심스레 엄마의 품에서 벗어난 주안이 고개를 끄덕여주며 말을 꺼냈다.

“그보다 엄마…….”

“응? 왜?”

갸웃하며 다시 책을 펼치던 안젤라가 주안을 보며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잠시 머뭇거리던 주안도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밖에서 봤는데 오늘 링베르가 공작가에서 사람들이 왔나 봐요.”

“어머, 정말? 그 사람들이 웬일이람.”

안젤라 역시 링베르가 공작가가 황도에 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는 듯했다.

그리고 엄마의 이런 반응에 주안은 확신이 들었다.

‘역시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링베르가 공작가와 주안의 아빠, 주레인 공작만이 알고 일을 진행시키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주안은 자신의 아버지, 주레인 공작이 단독으로 일을 벌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엄마가 무서워서라도, 혼담이 들어온다 해도, 절대 진지하게 생각하시지는 않으실 거니까.’

뭐, 주안 역시 엄마 때문에 결혼 생각은 꿈에도 못 꾸던 시절이 있었으니, 아빠의 마음을 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왜 그러니, 주안아?”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보다 세냐랑 마냐, 아냐랑은 많이 친해지셨나 봐요.”

“후훗. 이 아이들을 보니, 우리 주안이 어렸을 때 생각도 나서 말이야.”

그저 아미엘의 부탁으로 온 아이들인데, 잘 데리고 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세 요정 꼬맹이들은 유독 주안의 엄마, 안젤라와 다정하게 지내고 있었다.

주안이 자리를 비워도 이 세 요정 꼬맹이가 함께 있어 주니 주안도 안심할 수 있었고, 안젤라도 덜 외로웠으며, 세 요정 꼬맹이도 주안보다 안젤라를 더 따르는 듯했다.

지금도 안젤라가 손을 내밀자 그 손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마냐가 엣헴, 하고 당당하게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주안에게 자랑하듯 소리쳤다.

“헤헹~ 언니야랑 아냐랑 같이 아줌마한테 노래도 불러줬어.”

그건 고맙긴 하지만, 아줌마라는 말에 주안이 슬쩍 엄마를 살폈지만, 다행히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이라는 듯 살포시 미소를 지어주며 오히려 마냐의 볼을 손가락으로 간질거려 주었다.

게다가 세냐마저 팔짱을 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흐흥~ 이게 바로 요정의 축복이라는 거죠. 아무에게나 해주는 거 아니니까 감사하게 생각하세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좋은 거라면 감사하게 생각해 줄게.”

“앗?! 생각해 준다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데!”

“근데 그런 축복은 나도 해줄 수 있는데…….”

“으윽…….”

요정의 축복이 뭔지는 모르지만, 이쪽도 일단 신의 축복 비슷한 걸 해줄 수는 있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세냐가 움찔 놀란다.

아무래도 주안의 성흔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의 축복이 더 대단한가 보다.

‘나중에 엄마한테 진짜 해드릴까.’

그동안은 이 신성력에 대한 의문 때문에 혹시 잘못되지 않을까, 그런 걱정을 했지만, 세냐의 반응을 보니 기우인 듯했다.

일단 이 혼담 사실 자체를 모르는 엄마에게 이야기를 먼저 꺼낼 수는 없었다.

가정의 평화와 아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조용히, 그저 엄마의 곁에서 있어 주며 아빠가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릴 수밖에는 없었다.

* * *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집으로 돌아온 주레인 공작은 웬일로 자신을 반겨주는 아들의 모습에 잠시 갸웃했지만, 이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웬일로 아들이 나와서 자신을 반겨주니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고, 그런 아들에게 향하는 발걸음도 매우 가벼웠다.

하지만 주레인 공작이 미소를 짓는 것과는 달리 주안은 주변을 둘러보다 잔뜩 굳은 얼굴로 슬그머니 그런 아빠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아빠, 잠깐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어요?”

“시간? 그야 우리 아들을 위해서라면 없던 시간도 만들어줄 수 있지.”

“…….”

주안은 링베르가 공작가가 도착했음에도 여전히 자신에게 혼담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듯한 아빠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다 작게 말했다.

“……제 혼담 이야기, 아빠는 아시죠?”

“너, 그건 어떻게…….”

주안의 말에 움찔 놀란 주레인 공작이 따라오던 에밀리 경을 돌아보았다.

“공작님?”

“아, 아무것도 아니네.”

좀 가벼워 보이는 사람이긴 해도 에밀리 경의 입이 매우 무겁다는 것을 알기에 주레인 공작은 그의 입에서 혼담 이야기가 주안의 귀로 흘러 들어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디서 들었느냐?”

“여기서 말을 하긴 조금 곤란하잖아요. 안에 들어가서 이야기해요.”

주안의 말에 주레인 공작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주안이 어떻게 이 사실을 안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조만간 링베르가 공작가와 만나 이야기를 할 때 주안을 부를 생각을 하고 있었던 그였다.

이 혼담 이야기를 어차피 해야 하였지만, 조금 앞당겨졌을 뿐이니 말이다.

하지만 주안과 함께 안으로 들어가던 주레인 공작이 이내 새하얗게 질리며 우뚝 멈추어 섰다.

이런 주레인 공작의 모습에 에밀리 경이 살벌한 눈으로 주변을 경계하였다.

혹시 적의 습격인가, 하는 그런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주레인 공작은 조심스레 아들을 보며 물었다.

“……혹시, 네 엄마도 알고 있느냐?”

“알고 있으시면 여기 제가 아니라 엄마가 있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아빤 아마…… 집에 못 들어오셨을 수도 있고요.”

“후우…… 다행이구나.”

진심으로 다행이라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주안은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예전에는 그렇게 무섭고 깐깐해 보이던 아빠는 어디를 간 것인지, 나라의 재상이자 한 지역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공작가의 가주인데 참으로 안쓰러운 모습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다정하게 등이라도 토닥이며 아빠를 안심시켜 주고 싶었지만, 그것은 버릇없는 행동이기에 생각만 하며 다른 말을 꺼내었다.

“엄마는 자고 있어요. 그리고 집 안에 다른 분들도 모두 황성 파티에 참석하러 가셨고요.”

주안은 이 일 때문에 황성 파티에 빠졌지만, 오늘 하루를 빠진다 해서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니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이들이 없다는 사실보다 아내가 자고 있다는 것에 표정이 밝아지는 그런 아빠를 보니, 주안은 참 안쓰럽다는 시선을 거둘 수가 없었다.

‘우리 아빠, 왜 이렇게 되셨지.’

그래도 바깥에선 나름 대단하고 멋진 아빠라 생각했는데, 집에만 오면 이렇게 변해 버리는 아빠의 모습을 보니 자신도 혹시 결혼한다면 이렇게 붙잡혀 살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리고 이런 아빠를 안심시켜 주며 저택 안으로 들어가는 자신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에 쓴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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