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12화
“마, 마르티네스……?”
당황하는 제이미 링베르가를 대신해 그의 호위 기사인 페로우가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의 말에 주변의 호위 기사들이나 주변 상인들과 시민들, 그리고 몇몇 귀족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하지만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이미 링베르가를 흘겨보았다.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라면, 확실히 올해 열 살이었지.’
제이미 링베르가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유일한 아들로, 이 아이를 얻기 위해서 링베르가 공작이 얼마나 고생했는지 주안도 소문으로 접해 알고 있었다.
게다가 그렇게 어렵게 얻은 귀한 후계자인 만큼, 집에서 얼마나 대단한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인지 지금 저 모습을 보니 대충 예상이 갔다.
열 살의 아이답게 아직 어린 티가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럼에도 제이미 링베르가는 어른처럼 행동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그래 봐야 애는 애다.
그런 애가 어른의 모습을 보이려 노력한다 해도 결국 흉내밖에 내지 못 한다.
나이만 먹는다고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가 아무리 어른스럽게 보이려 노력해도 아이의 미성숙함을 모두 숨길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주안으로 인해서 당황하면서 패닉에 빠진 모습만 봐도 이 아이가 아직 어리숙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지만, 저분은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손님이시며, 황도 대신전의 전대 대신관으로 계셨던 마누엘 신관님의 일행분이십니다.”
“대, 대체 그 말을 믿으라고 하는 소리냐. 어떻게 전대 대신관의 일행이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이 될 수 있고, 그런 원주민을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받아들인다는 것이냐.”
그런 제이미 링베르가의 말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제가 왜 그걸 그쪽에 설명하고, 납득시켜야 하는 것이죠?”
반말에 주안이 살짝 인상을 쓰자 제이미 링베르가가 움찔 놀란다.
링베르가 공작 가문의 특징인 화려한 푸른 머리카락이 흔들렸고, 연녹색 눈동자는 불안한 듯 주안에게서 떨어지지 않는다.
믿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게 사실이라면 링베르가 공작가에 큰 문제가 될 수 있기에 사실이 아니길 바라는 듯했다.
하지만 그 호위 기사들은 이미 주안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인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적어도 제이미 링베르가와는 달리 그들은 어른이었고, 세상을 많이 겪은 경험자들이었다.
주안의 외모와 행동, 태도, 그리고 분위기.
모든 것을 종합해 보면 절대 평민이 아니었고, 입고 있는 옷은 수수했지만, 일반 귀족들은 손도 못 대는 동방의 비단으로 만든 옷이다.
장신구들은 죄다 마법 물품이었으니, 주안은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보석 덩어리와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알아본 호위 기사 중, 페로우 경이 황급히 제이미 링베르가를 말렸다.
“고, 공자님. 이 이상의 무례는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주안 공자님은 공자님보다 나이도 있으시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로 있으신 분입니다. 그러니 언행에 주의를…….”
“그게 왜?! 나도 같은 후계자고, 같은 공작가라고!”
……진짜 완전 애잖아.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자 제이미의 호위들은 오히려 더 쩔쩔맨다.
“무엇보다 난 저자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걸 안 믿어!”
“공자님!”
제이미의 말에 페로우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화를 낼 수도, 그렇다고 이 어린 공자님에게 고개를 숙이게 만들어 사과할 수도, 둘러업고 도망칠 수도 없는 그의 심정이 어떤지, 조금은 알기에 주안은 매우 불쌍하다는 듯 페로우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토록 놀라는 이유는 간단했다.
제이미의 말은 귀족에게 큰 모욕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었고, 가문에 따라서는 죄를 물어도 이상하지 않는 언행이나 마찬가지였다.
“흐음? 제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이라는 것을 못 믿으신다는 것입니까?”
“다, 당연하지! 무슨 공작가의 후계자가 호위도 없이 이런 곳에 돌아다닌다는 거냐!”
“집 앞에 잠깐 놀러 나온 건데, 호위가 필요한가요?”
“집……?”
주안의 말이 딱히 틀린 것도 아니었다.
황도에 있는 저택이 주안의 집이었고 이곳은 주안의 집 앞이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황성은 옆집이자 외할아버지 집이다.
이 말까지 해주면 제이미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솔직히 궁금했지만, 괜히 화만 더 나게 할 수 있어서 참아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못 믿으시겠다면 저희 저택으로 직접 찾아오시지요. 그땐 사과의 말도 생각하셔서 오시는 게 좋을 겁니다.”
주안이 제이미를 흘겨보며 말한 후 세라타와 함께 쿠단 쪽으로 걸어갔다.
“머, 멈추지 못 하겠…… 우읍!”
“공자님, 제발…….”
더 이상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볼 수 없었던 페로우 경이 기어이 자신의 귀하디귀한 도련님을 끌어안고 입까지 막았다.
그 모습이 참 불쌍했지만, 주안은 그에게 도움을 줄 생각이 없었고, 쿠단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여기저기 멍이 든 쿠단의 몸에 주안이 신성력으로 치료하며 말했다.
“멍이 많이 들었네요, 쿠단. 설마 저 사람들이 한꺼번에 쿠단이랑 싸운 건 아니죠?”
“킁……! 괜찮다, 작은 손님. 일 대 일 대결이었다. 쿠단 안 졌다.”
“헤에, 그래도 그나마 양심은 있었나 보네요.”
고지식한 기사들에게 일 대 다수의 전투란 웬만해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용서가 안 되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를 처단할 때나 전쟁이 아닌 이상, 이런 일에는 혼자 나서게 마련이다.
쓰러진 사람들 주변에 검이 떨어져 있어서 걱정했는데, 검을 뽑지는 않은 듯했다.
아니, 검을 뽑았다면 그 역시 큰 문제로 다행히 저 무례한 제이미 링베르가가 아닌, 그래도 판단력이 있는 페로우라는 호위 기사가 그렇게 명령을 내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저 사람들이 진짜 쿠단이 들고 있던 돈 때문에 이런 일을 벌인 거예요?”
“모르겠다. 영감이 저 반짝이는 거 가져가서 주면 먹을 거 잔뜩 준다고 했다. 줬더니 진짜 먹을 거 많이 줬다. 쿠단, 고기 먹고 있는데 저 인간들이 와서 자꾸 귀찮게 했다.”
“아하…….”
뭐, 이야기야 뻔했다.
특이한 외모의 사람이 귀족들도 쉽게 들고 다니지 못할 엄청난 돈을, 금화로 들고 다니며 이런 노점에서 먹을거리를 즐기고 있으니 충분히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치안청의 소속도 아니고 그들 영지의 땅도 아닌 황도에서 이런 행동을 일삼는 것은 문제가 크다.
황도는 오롯이 황제 폐하의 치하에 있는 장소.
그들이 자신들의 영지에서 무엇을 하건 법을 어긴 것만 아니라면 왕처럼 군림하여도 상관없지만 이곳, 그리고 황실 직할령에서는 아니다.
범죄자의 수사와 조사도, 범죄자의 구속도, 범죄자의 처단도 그 지역의 주인이 해야 하는 법이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공자님이셨네.”
“뭐라고?!”
주안이 작게 혀를 차며 중얼거린 말을 들은 듯 제이미 링베르가가 페로우 경의 손에서 벗어나 주안에게 소리치며 다가왔다.
‘정말이지, 다른 의미로 예전의 나처럼 보이는 아이잖아.’
제멋대로인 점은 비슷했고, 주안은 엄마의 품에서 엄마의 권력을 가지고 놀았다면, 제이미 링베르가는 가문의 품에서 가문의 힘과 권력을 제멋대로 가지고 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영지에서도, 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서부라면 제이미 링베르가의 행동을 멈출 수 있는 사람은 링베르가 공작가의 가주인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밖에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제이미 링베르가의 모습을 보니 가주인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도 제이미를 혼내기보단 감싸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이래서 늦둥이는 문제야…….’
늦게 낳은 막내. 거기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자 소중한 후계자.
모든 것이 제이미를 안하무인의 후계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주안이 작게 혀를 차며 제이미를 무시하고, 다른 이들에게 부축을 받으며 자리에서 일어나고 있는 기사들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지금 날 무시하는 것이냐!”
“예, 무시합니다. 그러니 방해 말고 있으시죠.”
“너, 너……!”
이 기사들도 실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검을 들지 않고 맨주먹으로 싸우는 것이라면, 그것도 일 대 일의 대결이었다면 쉽게 이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토미 때야 쿠단이 봐줬다지만, 이런 우락부락한 이들에겐 배려 없는 쿠단이었던 것인지, 어디 부러진 곳은 없었지만 뼈에 금이 가거나 근육에 문제가 많이 생겨 보였다.
뒤에서 씩씩거리는 제이미를 무시하고는 주안이 쿠단에게 호되게 당한 기사들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가문의 인장을 가지고 놀러 다니는 것도 아니고, 제 얼굴에 나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라고 써놓고 다니는 것도 아니니 증명할 방법은 딱히 없지만…….”
그리고 왼손의 성흔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이용해 기사들을 치료해주며 말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가 신성력을 쓴다는 소문 정도는 들어보셨겠지요?”
“아…….”
이미 황도에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고 정보에 민감한 거대 가문들도 주안에 대한 이야기는 다들 들어보았을 것이다.
링베르가 공작가라면 주안이 사용하는 신성력과 성흔이 어떤 것인지도 파악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페로우 경은 주안의 신성력뿐만이 아니라 주안의 왼손바닥에 새겨진 성흔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에게, 저희 공자님을 대신해 무례한 행동에 대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페로우 경!”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윽…….”
페로우뿐만이 아니라 주안에게 치료를 받는 기사와 다른 기사들도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자 제이미 링베르가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그리고 많은 이가 보는 앞에서 이런 재빠른 사과를 하는 페로우라 불린 호위 기사의 행동에 주안이 의외라는 듯 그를 보았다.
‘눈치가 정말 빠른 기사네.’
링베르가 공작가의 기사들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에게 고개를 숙였다는 사실이 소문으로 퍼질 수 있었지만, 오히려 이러한 행동이 그들에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일이 더 크게 번지지 않을 수 있었고, 잘못에 대해서 많은 이 앞에서 사과하는 행동은 오히려 칭찬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링베르가 공작이 페로우라는 저 기사를 제멋대로인 제이미 곁에 붙여준 이유는 이 때문인 듯했다.
“뭐, 그 사과는 받아들이겠습니다. 그쪽도 정말 나쁜 마음으로 벌인 일이 아니니까요.”
“감사합니다, 공자님.”
주안도 이쯤 되니 사과를 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많은 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사과를 하는데, 그것을 받지 않는다면 오히려 옹졸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모든 것을 다 생각하고 앞장서서 말한 저 페로우라는 기사가 점점 더 대단해 보였다.
결국 사과를 받아준 마르티네스 공작가이기에 이 문제에 대해서 링베르가 공작가에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을 다 차단해 버렸으니 말이다.
“큭…….”
다만 제이미 링베르가는 이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어린아이의 분한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주안을 노려본다.
“네가 진짜 주안 마르티네스라면…….”
“적어도 가짜는 아니니 그 앞의 진짜라는 말은 좀 빼시지요, 제이미 링베르가 공자.”
“…….”
공자님이라고 부르기도 귀찮아진 주안이, 다친 링베르가 공작가의 기사 모두를 치료한 뒤 귀찮다는 듯 말하자 제이미 링베르가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버릇없는 아이의 투정처럼 보이기에, 화가 나거나 그런 부분은 전혀 없었다.
적어도 에반드리안 맥도넬보다 100배는 더 귀여우니 말이다.
“정말 그대가 주안 마르티네스가 맞다면 오히려 잘되었다.”
“뭘 말씀입니까?”
주안은 제이미가 또 무슨 말을 할지, 이제는 궁금할 지경이었다.
이쯤 되면 그냥 물러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다.
“너에게 결투를 신청한다!”
“……예?”
뜬금없는 그 말에 주안뿐만이 아니라 호위 기사들마저 놀람을 넘어 황당한 눈으로 제이미 링베르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제이미 링베르가는 뭐가 그리 분한지 주먹을 불끈 쥐며 주안에게 소리쳤다.
“우리 미네아 누나와 결혼하려면 먼저 나를 넘어야 할 것이다, 주안 마르티네스! 아니……, 권력으로 우리 누나를 취하려는 이 파렴치한 범죄자!”
그리고 주안에게 삿대질을 하며 버럭 소리쳤다.
‘혼담? 누구와? 내가? 미네아? ……그게 누군데.’
제이미 링베르가는 울분에 찬 외침을 내뱉었고, 정말 분했던 것인지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어린아이가 울면서 화를 내니,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 아프게 한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것보다 황당함과 혼란스러움 그리고 제이미 링베르가의 말 때문에 슬그머니 자신에게 시선이 집중되는 현 상황이 당황스러워 주안이 소리쳤다.
“아, 아, 아니, 저기 전 아무것도……!”
주안의 행동을 좋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이들의 눈빛이 순식간에 변했다.
싸늘한 그 시선과 수군거리는 말들.
그리고 제이미 링베르가를 바라보던 좋지 않은 시선은 안쓰럽다는 듯, 온정이 가득 담긴 따스한 시선으로 바뀌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말이 안 된다는 사실을 조금만 냉정히 생각하면 금세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대체 어느 미친 집안이 공작가를 협박해서 그 집안의 여식을 취한단 말인가.
그것은 설령 황제라 해도 불가능하다.
하지만 대중에게 그런 세세한 부분은 중요치 않은 듯했다.
울분에 가득 찬, 울고 있는 어린 소년의 외침은 사람들의 마음을 단번에 움직였고, 주안은 순식간에 남의 집 귀한 여식을 권력으로 찍어 눌러 강제로 취하려는 파렴치한 후계자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