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11화
“모두 물러나라! 이자는 매우 위험한 자이다!”
귀족으로 보이는 어린 소년은 주안을 흘겨보다 발끈하였지만, 그대로 귀족다운 품위를 지키려는 듯 노력하는 모습이 매우 귀여웠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외모도, 나이도 잊은 듯 귀족으로서의 훌륭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듯 쿠단에게 소리쳤다.
“말하라, 원주민! 네 녀석이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며 그 엄청난 돈은 대체 무엇이냐!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있느냐 이 말이다!”
“말했다. 나, 영감 따라 왔다. 영감 따라간다! 돈? 이거, 영감이 준 거다!”
쿠단이 귀족 소년의 말에 들고 있던 주머니를 바닥에 던졌다.
아무리 봐도 저건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페트롤 대신관에게 갈취한 돈주머니 같았다.
하지만 그 돈주머니가, 보통 바닥에 떨어진다면 짤그랑 소리가 나야 할 터이지만 어째서인지 쿵 하는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슬쩍 열린 주머니 사이로 일반 백성들이 사용하는 동화나 은화가 아닌 금화와 함께 보석들도 보였다.
그것을 보고는 주안이 경악하였다.
‘……페트롤 대신관 님. 대체 뭘 얼마나 주신 거예요?! 아니, 마누엘 신관님이 억지로 빼앗은 거예요?!’
뭐가 되었던 현 대신관과 전대 대신관 모두 상식을 벗어난 인물이라는 사실만 재차 깨닫게 된다.
돈을 조금만 쥐여주면 될 것을, 저 정도면 그냥 저택 하나를 사도 될 금액이었다.
그 때문에 주안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오해할 만하군.’
원주민을 보기도 힘든데, 그 원주민이 저런 돈을 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누구라도 좋지 않은 일을 저지른 이로 보일 것이다.
아니, 이것은 원주민이 아니라도 상관없었다.
그저 저 돈을 어음도 아닌, 금화로 들고 다니는 것부터 문제였다.
쿠단과 말이 통하지 않자 귀족 소년이 더더욱 발끈하며 소리쳤다.
“대체 아까부터 영감, 영감 하는데 그 영감이 누구란 말이냐!”
“영감은 영감이다! 우리 손님이다!”
“크윽…….”
쿠단에겐 마누엘 전대 대신관님은 그저 영감님일 뿐이며,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에게 통용되는 언어와 그 방식의 차이까지는 모르는 듯, 도통 대화가 성립되지 않는 것에 귀족 소년이 발끈했다.
안 그래도 쿠단을 제압하려던 기사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진 것에 창피함과 분노를 느끼던 귀족 소년이 바로 곁에 있는 중년의 남성에게 소리쳤다.
“페로우 경! 기사도 따위 그만 집어치우세요! 상대는 범죄자, 더 이상 봐줄 필요는 없습니다!”
“하지만 공자님…….”
“이것은 명령이에요. 당장 저 범죄자를 포박해서 저택으로 끌고 갑니다. 내가 직접 심문하여 죄상을 밝힐 것이니 페로우 경도 같이 나서세요.”
‘완전 제멋대로잖아.’
황도에도 치안청이 있고 치안청의 할 일을 일개 귀족이 대신한다는 것은 월권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게 아무리 마르티네스 공작가라도 해선 안 되는 일이었고, 법과 질서를 어기는 일이기에 큰 문제로 번질 수 있었다.
게다가 황도 치안청의 최고 책임자는 그란디아 남작으로 그는 황도 법무관인 후마르 백작의 사위였다.
‘이거 일이 커지는데.’
그란디아 남작이 나서도 문제지만, 일이 번져서 후마르 백작에게까지 올라가면 저 귀족 소년과 소속된 가문은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피도 눈물도 없는 법무관이 바로 후마르 하빌 백작이다.
그는 주안의 외할아버지인 황제 폐하에게도 신임을 받는 인물로 자신보다 권력이 강하든 작위가 높든 돈이 많든, 그게 설령 타 왕국과 동방 제국의 귀족이라 해도 법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제대로 보여주는 인물이었다.
물론 그 법이라는 게 나름 귀족에게도 유리한 법들도 다수 있었지만, 고지식하게 그 법전에 기록된 것을 따르는 인물인지라 대화 자체가 안 통하였으며,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냉혈한으로도 유명했다.
그 때문에 황도에서 황제만큼 상대하기 싫으며 무서운 인물로는 첫 번째로 꼽혔으며, 그는 젊었을 시절에 황자들의 교육을 담당했던 선생이기도 했다.
그런 후마르 백작에게 이 일이 올라가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일단 일을 이쯤에서 끝내야겠지. 저쪽만이 아니라 이쪽도 문제가 될 수 있겠어.’
소란은 저 귀족 소년 일행들만 일으킨 것은 아니다.
결국 쿠단도 손을 썼고 쿠단을 손님으로 생각하고 초대했던 것은 주안이며, 주안이 소속된 가문은 마르티네스 공작가다.
일이 번진다면 마르티네스 공작가에도 어느 정도 피해가 갈 수 있는 일이었다.
할 수 없기에 일이 더 커지기 전에 끝맺을 생각으로 주안이 나서며 말했다.
“저기, 그만하시면 안 되겠습니까. 이분은 원주민이기는 하나 제 손님입니다. 그리고 이분이 말씀하시는 영감님은…….”
“무릎을 꿇어라, 원주민! 그리고 너 역시 마찬가지다!”
“……예?”
그 귀족 소년이 갑자기 주안에게 삿대질을 하며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나서는 것이냐! 그리고 손님? 원주민이 네 손님이라고?! 그러면 너 역시 범죄자다!”
“…….”
정말 버릇이 없어도 너무 없는 아이였다.
게다가 원주민을 손님으로 맞이한다고 해서 범죄자로 모는 것 자체도 문제였다.
‘……나도 예전에는 저랬을까.’
상황은 좀 달랐겠지만, 안하무인 한 점은 매우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지금의 주안은 이런 일에 발끈할 나이도 지났고, 충분히 대화로 해결할 수 있기에 그 행동에 휘말리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그러는 사이 세라타도 조심스레 주안의 곁으로 다가와 귀족 소년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말씀을 삼가세요. 이분께서는 마르…….”
“너도 꿇어라! 감히 아녀자가 어디 남자들의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냐!”
“…….”
상상 이상으로 교육을 잘못 받은 아이라는 것을 저 말로 단번에 알아버렸다.
‘때가 어느 때인데 여자 남자를 이렇게 나누는 거야.’
한 이백 년 정도 전이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지금의 시대는 그래도 여성들이 기사도 하고 마법사도 하며 교육자도 되는 시대다.
귀족가에선 가문을 잇는 것에 여전히 여성은 논외로 치지만, 그 외의 사회에선 우수한 여성들의 지위는 매우 높아져 있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가문 자체의 문제 때문에 여성도 가주가 될 수 있었지만, 먼 동방의 어느 왕국은 여성도 심심찮게 왕이 되고 가주의 자리에도 오를 정도였다.
그만큼 여성의 권위는 꽤나 올라 있었고, 최고위직까진 아직은 아니나 무시하지 못할 위치에 오른 제국의 여성 귀족들도 다수 있기에, 제국의 귀족이든 백성이든 여성을 대놓고 무시하는 이들은 없었다.
그렇게 대하다간 집에서 어머니나 아내한테 속옷 차림으로 쫓겨날 수 있었다.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속은 완전 수백 년 전의 꽉 막힌 노인과도 같은 아이의 언행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이보세요. 그쪽이 어느 귀족가의 자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당히 좀 하세요. 지금 당신이 하는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시는 겁니까? 그쪽 호위 기사분. 진짜 몰라요?”
“그건…….”
그래도 저 어린 녀석과는 달리 지금의 이 일이 얼마나 위험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인지 호위 기사들은 알고 있는 듯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자신들의 도련님을 말리지 못 하는 것에 주안은 매우 안타까웠다.
아무리 귀족의 아이라도 그 호위를 하는 이들이 저 버릇없는 도련님의 눈치를 봐야 할 정도라면, 꽤나 위세가 대단한 가문의 인물이거나 혹은 그 가주가 매우 아끼고 있는 아이라는 의미였다.
“이정 도 소란이면 치안청의 사람들이 곧 몰려올 겁니다. 이쯤에서 물러나세요. 망가진 노점과 그쪽 기사분들의 치료는 제가 다 해드겠습니다.”
저 어린 귀족과는 달리 그래도 주안이 하는 말의 의미와 뜻을 이해한 페로우라는 호위 기사는 황급히 그의 도련님에게 말했다.
“저자의 말이 맞습니다. 치안청의 이들이 오면 일이 크게 번질 수 있습니다. 잘못하면 가주님에게…….”
“겨우 치안청 따위를 무서워한다는 것이냐. 페로우 경, 진정 그런 것이야?”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이곳은 저희 영지와는 전혀 다른 황도입니다. 황제 폐하가 계신 황도란 말입니다.”
“흥! 나는 저 범죄를 저지른 원주민을 구속하려는 것일 뿐이다. 우리의 일은 정당하며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것이야.”
“고, 공자님!”
대체 지금의 저 모습 어디에 법을 수호하고 백성을 보호한다는 것일까.
적어도 노점을 박살 내고 그것을 날려 버리며 사람들의 압박하는 그 모습 어디에도 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백성을 보호하는 모습은 없었다.
“당장 저자를 포박하게, 페로우 경. 어서.”
“공자님…….”
기사도에 어긋나는 그 행동이 호위 기사들에게 얼마나 큰 모욕감을 주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주안은 그의 호위 기사들이 매우 안쓰러웠다.
그렇기에 주안이 조용히 나서서 버릇없는 도련님에게 한 소리를 해주었다.
“대체 어디의 도련님인지 모르겠지만,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시는군요. 당신의 이런 행동 하나하나가 가문의 명성에 큰 먹칠을 하고 곤란하게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흥. 어쭙잖은 소리는 집어치워라. 이딴 일로 곤란해할 나의 가문이 아니다.”
오히려 주안의 말에 귀족가의 도련님이 팔짱을 낀 채 소리쳤다.
“잘 들어라. 나는 위대한 마벨라 웨버 제노폴의 피를 이은 자, 쉐라 제노폴이자 쉐라 링베르가의 자손! 블라드 링베르가의 아들이며 링베르가 공작가의 후계자, 제이미 링베르가이니라!”
어디선가 들어본, 참으로 거창한 그 소개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말할 땐 몰랐는데, 이렇게 들으니 낯 뜨거워지는 소개이긴 하였다.
하지만 그 소개를 하는 본인은 너무나 당당하였고 자랑스러운 듯 눈을 반짝이며 미소까지 짓고 있으니, 이전에 주안도 저런 모습으로 소개를 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땐 뭐, 주안도 화가 났고 모두에게 알려주고 싶어 한 말이긴 하였지만…….
‘그런데 제이미 링베르가?’
……링베르가의 후계자가 저렇게 버릇없는 아이였을 줄은 몰랐기에 주안은 참으로 안타깝다는 듯 그런 제이미를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 예. 그러십니까.”
“뭐, 뭐냐! 당장 무릎을 꿇지 못할까! 나는 링베르가의 후계자란 말이다! 황가의 고귀한 피가 흐르는, 천한 너와는 다른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였느냐!”
이 고귀한 피를 타고났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귀족 소년은 함부로 백성들의 무릎을 꿇린다면 그 역시 죄가 된다는 사실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안의 미지근한 반응에 오히려 당황한 듯했다.
“후우…….”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제이미 링베르가에게 말했다.
“제이미 링베르가라고 하였습니까.”
“그렇다. 그러니 당장 무릎을…….”
“제 무릎을 꿇릴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만?”
“뭐라?”
“저는 제 외할아버지에게도 무릎을 꿇어본 일이 없습니다.”
뭐, 실제로 외할아버지를 만나면 달려와 주안을 안아주고 좀 더 어렸을 땐 무릎 위에 올려주었을 정도였다.
“저도 제 소개를 해드리지요. 링베르가의 어린 후계자분.”
그리고 이런 버릇없는 어린 후계자에게 주안이 말했다.
“저 역시 위대한 마벨라 웨버 제노폴의 피를 이은 자. 드바이스 웨버 제노폴 황제 폐하의 외손자이자,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과 안젤라 마르티네스 공작부인의 아들이며,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
자랑스럽긴 하지만 제이미 링베르가처럼 우월한 존재라는 듯 말하는 게 아닌, 그저 담담하게, 그리고 똑똑히 새겨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주안 마르티네스입니다.”
“…….”
잠시 주안의 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듯 제이미 링베르가와 그 호위 기사들이 멍하니 주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내 그들의 표정이 창백해졌지만, 그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채 주변의 사람들에게 말했다.
“아, 여러분들은 제게 무릎을 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무뢰한이 아니거든요.”
눈앞의 제이미 링베르가와 그 호위 기사들에게만이 아닌, 주변의 사람들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