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10화 (11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10화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는 떠나기 전 다시 만나기로 약속한 후 대신전을 나온 주안은 세냐의 부탁대로 마법 상점으로 가서 적당한 마법 물품들, 절반에 가까운 것들을 한 번에 사는 기행을 벌였다.

세냐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마법이 담긴 자주 사용하는 것들이었고, 황립 마탑이 아닌 이런 일반 마법 상점이면, 대부분의 물건이 세냐가 부탁하던 것과 일치한다.

대신 중복되는 것들을 빼고 주안 역시 몇 가지를 사다 보니 절반 가까이 사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이런 주안의 행동에 놀란 상점 주인이지만, 마르티네스라는 이름 한마디에 이해하고 고개 숙여 배웅까지 해주었다.

일단 물건은 잘 포장이 되어 공작가 저택으로 올 것이니 안심하고 마법 상점을 나온 주안은 세라타와 함께 축제로 인해 더 활발해진 구역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 도련님. 저택으로 돌아가시지 않으셔도 괜찮으세요?”

“괜찮아, 괜찮아. 황도로 돌아오고 제대로 바깥 외출도 못 했잖아. 잠깐 구경하다 가면 되지.”

“그래도…….”

호위도 없이 주안이 이곳저곳 다니는 것에 세라타는 매우 불안했다.

축제로 인해서 황도의 시민들뿐만이 아니라 외부의 인원들도 다수 들어온 황도는 사람들로 붐볐고, 그런 만큼 좋지 않은 이들도 섞여 있을 수가 있었다.

아니, 분명 많이 있을 것이라고 세라타는 확신하고 있었다.

하층민의 삶을 세라타는 바로 1년 전까지 살았고, 몸이 아프기 전의 기억은 아직도 또렷하다.

“괜찮다니까. 이럴 때가 아니면 내가 언제 노점 같은 곳을 둘러보고 그러겠어?”

하지만 주안은 너무나 자신만만하였다.

주안이 주로 가는 곳이란 서민들은 발도 붙이지 못하는 별천지의 그런 장소였다.

세라타 역시 주안과 함께 다니다 보니 그런 곳에 방문할 수밖에 없었고, 처음 갔을 때는 반짝반짝 빛나는 바닥을 신발을 벗어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 장소들이었다.

화려하고 빛나고, 만지면 안 될 것만 같은 장소와 노점은 전혀 다르다.

세라타는 주안의 호기심을 이해했다. 그래서 주변에 주안을 지켜주는 누군가가 있었다면야 고개를 끄덕였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그래도 안…….”

“볼 것도 엄청 많다던데, 음유시인들도 오고 서커스도 있고, 공연도 많고…….”

“하, 하지만…….”

“수십 개의 노점과 그 노점들에서 파는 다양한 요리들! 각 지역의 별미들도 있고 간식들도 잔뜩 있는데!”

주안이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치며 세라타에게 싱긋 웃으며 말했다.

“세라타 너도 먹고 싶지 않아?”

먹을 것이라는 말에 세라타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닌 척해도 한창 먹성이 좋을 나이였고, 주안도 노점의 음식들이 매우 먹고 싶었다.

평소에도 다양한 노점 음식들이 있지만 축제 때가 되면 외부의 사람들도 다수 들어와 그들의 입맛에 맞춘 다양한 지역의 음식들이 펼쳐지게 된다.

동부든 북부든, 남부든 서부든 가리지 않고 말이다.

게다가 주안은 이런 노점 요리를 먹어본 일이 없었기에 그 맛에 대해서 더욱 궁금했다.

과거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고, 거리로 쫓겨났을 때는 돈이 없어서 못 먹었으니까.

지금이 아니라면 이런 노점에서의 음식을 먹을 기회가 언제 생길지 알 수가 없었기에 주안도 조금 무리해서 세라타를 설득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가자, 세라타. 오늘은 토미 대신에 내가 오빠로서 한턱낼게.”

“우…….”

주안이 싱긋 웃으며 세라타의 손을 잡아주자, 작게 반항하려던 세라타도 볼을 발그레 물들이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 * *

황성에서의 파티를 즐기던 주안에게 황도 일반 백성들이 즐기는 축제는 마치 다른 세상의 일과도 같아 보였다.

그들은 가식적인 웃음을 흘리지도 않았고, 자신보다 낮은 이를 깔보지도 않았다.

때론 시끄럽게 떠들기도 하고 가게 바깥에서 음주 가무를 즐기기도 하였지만, 그 모든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생생한 모습 같았다.

‘이런 것도 참 좋아.’

그들을 지나쳐 가며, 그들의 모습을 눈에 새기며, 그들의 표정들을 관찰하는 게 무엇보다 즐거웠다.

다양한 표정의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삶이 어떤지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지금의 삶이 행복한지, 고달픈지, 힘든지, 괴로운지 말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다들 이 축제 그 자체를 즐기는 듯 표정들은 매우 밝았다.

물건은 파는 이들은 가지고 온 물건을 빠르게 판매하여서 좋았고, 평소에는 보지 못하는 물건들을 사는 사람들도 지금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기에 그것을 구할 수 있어서 좋았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부모님을 따라 나와서 주안과 세라타처럼 보고 즐기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지나치며 살펴보다, 슬쩍 고개를 돌려 세라타에게 시선을 주었다.

주안의 손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설탕 과자를 맛있게 먹고 있는 세라타의 모습에 미소를 짓던 주안이 손수건을 꺼내 세라타의 입가를 닦아주었다.

“천천히 먹어. 누가 뺏어 먹는 것도 아니잖아. 그렇게 맛있어?”

“그, 그게…….”

단지 설탕을 녹인 뒤 적당한 과일의 즙을 섞어 과일 맛을 첨가한 뒤 모양을 내어 굳혔을 뿐인 설탕 과자이지만, 평민의 아이들과 여성들이 매우 좋아하는 과자 중 한 손에 꼽는 것이기도 했다.

북부나 서부 변경 지역으로 가면 사탕수수는 꽤 비싸겠지만 다행히 남부와 중부 일대에선 매우 흔하게 구할 수 있는 게 설탕이었다.

게다가 설탕을 대체할 단맛의 끝이라는 동방에서 수입되어 오는 네루라는 작물은, 가격이 더럽게 비싸긴 했지만, 주 소비층은 귀족들인지라 설탕보다 이 작물을 더 선호하였다.

무엇보다 설탕은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민감한 사항 때문에 귀족의 여성들은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귀족들이 소비하지 않으니, 알아서 쑥쑥 크는 사탕수수는 귀족들에게는 외면받는 작물이긴 하였지만, 다행히 일반 서민들에겐 단맛을 느낄 수 있게 만드는 거의 유일한 작물이기에 매우 사랑을 받았다.

“자, 저쪽으로 가자. 저기서 고기 요리도 잔뜩 하나 본데.”

“고, 고기…….”

마냐가 왔으면 딱 지금의 세라타처럼 한 손에 간식을 들고 눈을 반짝이며 고기를 외치고 있지 않았을까.

괜히 그런 생각이 들어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자 세라타의 얼굴이 더더욱 빨개졌다.

“자, 그러면 세라타도 좋아하고 마냐도 좋아하고, 이왕이면 토미랑 다들 먹을 수 있게 저기 있는 노점의 모든 고기 요리를 다 사볼까?”

“저, 저 그렇게 안 먹어요, 도련님!”

세라타가 자신도 모르게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주안은 그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세라타의 손을 잡고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 간식이 아닌 다양한 요리들을 하는 노점 쪽으로 향했다.

공연도 보고 음유시인들의 이야기도 듣다 보니 어느새 저녁이 가까워져 꽤나 출출한 때였다.

하지만 그런 가벼운 발걸음도 얼마 가지 않아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응?”

쾅- 하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고 무언가가 하늘에서 자신과 세라타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는 것이 보였다.

“……노점?”

하늘을 날아오는 노점의 모습에 갸웃했지만, 이내 주안과 세라타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 버렸다.

“으악?!”

“꺄악?!”

다행히 주안보다 건강해지고 운동신경도 좋아진 세라타가 주안을 밀치며 날아오는 노점을 피했다.

그리고 두 사람과 마찬가지로 주변이 있단 사람들도 허둥거리며 자리를 피하자, 그 자리로 노점이 떨어져 큰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박살이 나버렸다.

“대, 대체 뭐야?”

아무리 축제라고 해도 노점이 날아다니는 그딴 행사 따위가 있을 리가 없었다.

세라타가 밀치는 바람에 바닥에 넘어져 버리긴 했지만, 자신의 몸을 꼬옥 끌어안고는 놀란 눈을 하고 있는 세라타의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었다.

그리고 이내 세라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하늘에서 날아와 부서진 노점을 지켜보다 날아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싸움인가…….”

축제나 사람들이 많은 장소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다툼이자 싸움이다.

연례행사 같은 것으로 이럴 때마다 치안은 더욱 강화되지만 그렇다고 모두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님을 주안도 잘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노점을 날려대며 싸우는 무식한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다.

‘기사들이 이딴 짓을 할 리도 없고…… 대체 누구야.’

노점을 집어 던질 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기사들밖에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런 기사들이 이런 장소에서 싸움을 하는 것도 상상이 안 된다.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이유가 무엇이 되었든, 말릴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옮기자 세라타가 황급히 그런 주안의 옷깃을 잡으며 말렸다.

“가, 가지 마세요. 도련님.”

“괜찮아. 뭣 하면 내 이름을 대면 되니까.”

“하지만…….”

동부에서만큼은 아니지만, 황도에서도 주안의 가문인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이름은 꽤나 무거웠다.

현 재상의 가문이자 황제의 사위가 가주로 있는 가문이다.

말 그대로 이름을 대면 웬만한 가문들은 입도 벙긋 못 하게 만들 수 있는 사기에 가까운 이름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세라타도 불안해했지만, 조용히 주안의 뒤를 따라갔다.

웅성거리며 구경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런 사람들을 지나쳐 싸움의 현장 인근까지 간 주안은 엉망이 된 노점들과 사람들이 쓰러져 끙끙거리는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진짜 기사들이 싸웠잖아.”

복장은 간편하게 하고 나왔지만, 갑옷으로도 숨기지 못 하는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자들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검도 나뒹굴고 있다.

딱 봐도 기사들임을 주안은 대번에 파악했다.

‘하지만 왜 기사들이 이런 곳에서 싸움을 벌이는 거야.’

보통 귀족들은 서민들이 있는 장소로 가는 것을 조금 꺼린다.

자신들은 특별하다 여기고 우월하다 생각하는 이들이 다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이 장소는 말 그대로 일반 백성들이 다수 있는 장소였고 그들이 즐기는 것이 밀집된 곳이다.

어지간한 낮은 급의 귀족, 이름만 귀족인 이들이 아닌 이상은 찾지도 않을 장소였다.

“응?”

하지만 그 우락부락한 사람들 속에서 마찬가지로 우락부락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달리 멀쩡히 서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주안은 매우 낯이 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쿠단?!”

“오, 작은 손님.”

주안의 외침을 들은 쿠단이 고개를 돌려 주안을 발견하고는 반갑게 웃어주며 손까지 흔들어주었다.

그 행동에 주안도 어이없어했지만, 쿠단을 노려보는 이들…… 특히 자그마하고 버릇없는 꼬맹이 녀석이 쿠단을 향해 소리쳤다.

“지금 나를 무시하는 것이냐, 원주민!”

‘원주민?’

그 외침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쿠단이 원주민이기는 하였다.

하지만 그게 왜, 라는 의문이 주안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저 버릇없는 아이가 왜 쿠단에게 화를 내는 것인지, 그리고 그들 일행이 쿠단을 핍박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의 행색은 딱 봐도 몰래 저택을 빠져나온 귀족가의 사람으로 보였다.

가끔 이런 귀족들이 있다.

아니, 생각보다 흔했다.

특히 아직 어린 귀족가의 자제들은 호기심에 못 이겨 몰래 가문의 저택에서 빠져나와 영주민들의 틈 속으로 들어가 그들의 삶을 살펴보기도 하고, 이런 축제가 있을 때는 주안처럼 이것을 즐기기 위해서 돌아다니기도 한다.

귀족인 것을 들키지 않기 위해, 혹은 부모님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변장을 하지만, 그래 봐야 잘 먹고 잘 큰 귀족의 티를 모두 숨길 수는 없었다.

‘딱 봐도 꽤 있는 집안의 버릇없는 아들 같은데…….’

마치 쥬도 같다고 할까.

쥬도는 대놓고 그런 티를 냈지만, 저쪽은 억지로 숨겼다 해도 행색이나 하는 행동은 귀족 그 자체였다.

매우 어리숙해서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