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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09화 (10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09화

“대체 무슨 일이지.”

황도의 대로를 따라가는 링베르가 공작가 일행을 보며 주안은 매우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 시기에 서부를 벗어나서 황도로 온 거지…….’

주안이 알던 링베르가 공작가는 제국이 멸망하던 그때도 황도로 움직이지 않았던, 아니, 못 했던 이들이었다.

물론 그땐 서부 국경을 몰아치던 3국 동맹으로 인해서 자리를 떠날 수 없었던 것을 이해하지만, 그 이전에도 그들은 서부를 벗어나 황도로 온 일이 거의 없었다.

황성에 링베르가 공작가의 저택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거의 빈 집이나 다름이 없었고 이용도 하지 않아 규모 역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에 비하면 꽤나 작은 수준이었다.

그만큼 황도 방문을 하지 않는 그들이 이런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황도로 입성한 것 자체가 주안으로선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또 역사가 바뀐 건가…….’

주안은 자신이 바뀌면서 역사도 조금씩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신성력과 성흔을 가지게 되었고, 남부 사절단에 참여하면서 유우나 공주와 에반드리안 맥도넬이 이어지는 것을 의도치 않게 방해해 놓았다.

게다가 앞으로 십여 년 뒤에나 터졌을 디안의 병마가 휩쓸고 지나가려 하던 아스란 왕국을 도왔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일 수 있는 대밀림에서 원주민들과 요정, 그들의 여왕인 아미엘을 만나며 이종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점차 역사가 이상한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번에는 베일에 싸여 있던 링베르가 공작가까지 등장해 버린 것이다.

‘대체 저 사람들은 왜 여기 온 거지.’

황가의 핏줄인 링베르가 공작가가 황도로, 황성을 방문하는 것을 주안만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게 아닐 것이다.

많은 귀족과 황성에서도 의문을 가질 게 뻔했다.

그들이 가장 최근 황성에 방문한 것도 주안이 알기로는 선황제 폐하, 주안의 외증조부가 돌아가셨던 때와 그 후 지금의 황제 폐하가 그 자리에 올랐을 때 정도였다.

그게 벌써 수십 년 전의 일이니 말이다.

“저 규모로 보면 링베르가 공작가의 가주님께서 오신 건데…….”

“가주님이요? 저희 공작님 같은 분 말씀이세요?”

“응,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님이 오신 듯해.”

세라타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여 주며 자신들 앞을 지나쳐 가는 말을 탄 기사들과 마차들을 보며 말했다.

작은 가문들까진 모르지만 적어도 각 지역의 지배자나 다름없는 거대 가문들에 대한 부분은 주안도 자세히 공부하였다.

적어도 겉으로 드러난 부분들은 빠짐없이 보고 외웠기에 현 가주가 누구인지, 후계자가 누구인지, 가족력이나 주요 인사들에 대해서는 마법 팔찌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기억하고 있었다.

“뭐, 별일 아니라면 좋겠지만.”

사절단의 축하 때문이라 생각하기엔 그들은 지나치게 서부에서 움직이지 않던 이들이었고, 이런 사절단의 축하연도 곧 끝날 때이니 말이다.

주안은 괜히 불안해졌지만, 적어도 나쁜 방향으로 역사가 바뀌지 않았으면 하였다.

그리고 그런 링베르가 공작가를 보다 북적이는 사람들 틈 속에서 세라타를 잃어버릴까 걱정이 되어 세라타의 손을 잡아준 뒤 조심스레 대신전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대신전으로 온 주안은 자신을 알아보는 신관들의 안내에 따라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그리고 안내된 곳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 썩 어울리지 않는 대신전의 도서관이 있는 장소였다.

대신전의 도서관은 규모가 상당히 컸으며 공부를 하는 이들도 다수 있었지만, 주안은 마누엘 대신관이 어디 있는지 단번에 알아보고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진짜, 알아보기 쉬우시다니까.”

주안의 말에 세라타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쿡쿡거리며 웃었고, 안내해 준 신관마저 미소를 지었다.

유독 비어 있는 자리에 혼자 오도카니 앉아 있는 노인의 모습은 너무나 눈에 띈다.

그 누구보다 큰 덩치와 거친 외모 때문인지 아니면 전대 대신관의 위용 때문인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근처로는 사람이 전혀 보이지 않았고, 그 역시 그것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주안은 안내해 준 신관에게 인사를 해준 후 세라타와 함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앉아 있는 장소로 걸어갔다.

신관이 아닌 사람이 허락 없이 대신전의 도서관에 들어오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었지만 이곳, 대신전에서 주안의 얼굴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아니, 최근 몇 달 사이에 교단에 들어온 이들을 제외하고는 다들 주안의 얼굴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잠깐 주안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일어서서 인사까지 해주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주안도 어색하게 웃으면서 인사해 주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있는 자리까지 이동하였다.

“마누엘 신관님.”

“응?”

한창 책에 빠져 있떤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주안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얼굴에 주안이 조금 놀라버렸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안경을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경 쓰셨었어요?”

“끄응……. 오랜만에 책을 읽으려니 눈이 침침해서 말이다. 페트롤 그 녀석에게 적당한 안경이 많기도 해서 하나 뺏어왔다만, 잘 어울리느냐?”

“하하…….”

분명 안 주려고 거부했을 페트롤 대신관을 떠올리니, 마냥 웃을 수도 없었다.

게다가 전대 대신관이 현직 대신관의 물건을 강탈했다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것도 정말 적응이 안 된다.

두 사람이 사이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모를 정도로 말이다.

“한데 무슨 일로 온 것이냐?”

“아, 다른 게 아니라 상담을 좀 받고 싶어서요.”

“상담?”

“예, 그게…….”

말을 꺼내려던 주안이 주변의 눈치를 살피는 모습에 마누엘 대신관이 책을 덮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기서 할 이야기는 아닌 듯하구나. 따라오거라.”

“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지만, 일단 이곳에서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책을 들고는 앞장서서 도서관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주안과 세라타는 그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따라 도서관 밖으로 나섰다.

* * *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과 세라타를 데리고 온 곳은 자신이 머무는 방이었고, 신전답게 차분한 분위기의 방이었다.

좋은 말로 차분했지, 나쁜 말로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방이다.

있는 것이라곤 침대와 책상, 의자, 책장 정도뿐이지 손님을 맞이하는 것도 작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 둘밖에 없었다.

신관들의 방은 처음인지라 삭막하다 할 정도의 방 풍경에 주안과 세라타가 놀라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왜 그러느냐. 실망했느냐?”

“실망보단, 조금 놀라서요. 페트롤 대신관님이라면 신관님들 방도 금가루가 뿌려진 벽지로 치장했을 것 같았거든요.”

“큭큭…….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사치를 부리는 게 그 녀석의 특기라서 말이다.”

“음……. 역시.”

그것도 재능이라면 대단한 재능이긴 했다.

그래도 주안은 이런 분위기의 방이 싫지는 않았다.

마누엘 대신관과 주안이 나무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앉자, 더 이상 앉을 의자가 없었기에 세라타는 다소곳이 침대에 걸터앉았다.

“그런데 쿠단이 안 보이네요? 어디 가셨어요?”

“아, 그 녀석? 요즘 축제다 뭐다 하면서 노점들도 많고 하니 아주 거기서 살더구나. 여기 있는 걸 따분해해서 돈 좀 쥐여주고 나가 놀게 했더니, 아주 신나 하더구나.”

“돈은 대체 어디서……. 설마?!”

씨익 웃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모습에 주안이 생각하는 그게 맞는 듯했다.

……페트롤 대신관에게 얼마를 뜯어낸 것인지, 좀 걱정스러웠다.

“한데, 쿠단 그 녀석은 왜?”

“토미가 보고 싶다고도 하고, 저희 피터 경도 쿠단이랑 검을 한번 겨루어보고 싶어 하셔서요.”

“호오, 그러냐. 뭐, 떠나기 전에 한 번 들르도록 하마.”

“응? 떠나시게요?”

“다른 대신전들도 둘러보고 아무래도 북부로 가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다.”

“아…….”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주안과 마찬가지로 요정의 여왕, 아미엘에게 부탁을 받은 입장이었다.

주안이 가문의 시조인 힉스 마르티네스의 아내였던 마를렌 마르티네스에 대한 조사를 부탁받았다면,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교단의 성흔에 대한 조사를 부탁받았었다.

아무래도 대신전에 남아 있는 자료들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 있으니, 최종적으로는 북부의 성도 다예프로 가서 직접 마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수가 있었다.

“꽤 먼 거리네요…….”

“아무래도 북부의 끝에 위치해 있으니, 멀 수밖에. 예전에는 수행의 목적으로도 갔지만, 다 늙어서 가려니 벌써부터 힘이 드는구나.”

“농담이 참 재미없으세요. 그 몸으로 힘드시다니…….”

웬만한 기사는 명함도 못 내밀 정도로 엄청난 몸을 가진 분이 이런 말을 하니, 정말 재미없는 농담으로만 들린다.

“마누엘 신관님은 교단의 성흔을 지니셨다는 분을 보셨죠?”

“대신관이 되면 의례적으로 다예프로 가서 교단의 대표이신 그분에게 인사를 드리는 게 예의이니 보았지.”

성자와 성녀는 명예직에 가깝지만, 신이 존재한다는 증표인 성흔을 지닌 이들로 각 대신전의 새로운 대신관들이 임명이 될 때마다 다예프로 가서 인사를 드리는 게 하나의 전통이었다.

“하지만 차양 너머의 실루엣만 보았을 뿐, 그분에게 존재하던 성흔도 흐릿하게 한 번밖에 보지 못하였구나.”

“흐음…….”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이상한 일이지. 성흔을 널리 알리고, 그 힘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이를 일깨운다면 교단에게도 좋고 이 세상에도 좋은 일일 터였을 것을…….”

주안은 마구 사용해서 문제이지만 다예프의 성흔을 지닌 성자와 성녀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 게 문제인 듯했다.

“참 어렵긴 하네요.”

“다예프로 가면서 각 대신전들을 둘러보고, 내 나름대로 성흔에 대해서 조사해 볼 터이니 너 역시 제대로 알아보거라. 마를렌까진 먼 거리이지 않으냐?”

“멀죠. 하지만 금방 갈 수 있을 것 같아요.”

“금방?”

주안의 말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갸웃했다.

그리고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상담, 의논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꺼냈다.

“워프 게이트를 마를렌에 하나 설치할까 해서요.”

“가능하다더냐?”

“세냐가 마를렌과 연결된 하나는 자신의 권한으로 된다고 했거든요.”

“그거참……. 그 대단한 이적을 그리도 간단히 할 수 있다니…….”

주안은 마법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마누엘 대신관은 세냐가 장난감을 만들 듯 해준다는 그것의 대단함을 너무나 잘 아는 인물이었다.

물론 세냐는 꽤나 고생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그것을 모르니 말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 워프 게이트를 여러 장소에 설치하는 것에 대해서 아미엘 님에게 부탁을 좀 드려 볼까 해요.”

“여러 곳이라…….”

“마누엘 신관님의 생각은 어떠세요? 이게 여러 장소에 설치되면 매우 편할 것 같은데.”

주안의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험한 발상이 될 수도 있단다. 좋지 않은 일에 쓰일 수도 있고.”

“역시 그렇지요……? 그래서 아미엘 님이 허락하신다면 먼저 동부의 믿을 만한 장소에 먼저 설치해 볼까 해요.”

“……동부의 마르티네스 공작령 말이더냐?”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안색이 조금 밝아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확실히 그곳이라면 네 가문의 영향력이 강하고, 벡브란 그 녀석도 아직 정정해서 쓸데없는 일에 휘말릴 일은 없겠구나.”

“상황을 봐서 조금씩 늘려보겠지만, 할아버지나 아버지,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의견도 들어봐야겠어요.”

“그래. 하나하나 차근차근, 그렇게 가거라. 급하게 가다가는 넘어져 엉엉 울 수도 있으니 말이다.”

“이제 넘어졌다고 안 울거든요.”

“……울어본 일이 있었더냐.”

“그야…….”

주안이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시선을 피하였다.

하지만 작게 혀를 차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행동에 볼이 발갛게 붉어졌고, 곁에 있던 세라타도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억지로 웃음을 참는 모습에 주안은 매우 부끄러워졌다.

“대체 이런 아이에게 그분께선 왜 성흔을…….”

“선조님이 대단하셔서 그런 게 아닐까요.”

“후우……. 네놈의 집안은 정말 여러 의미로 참 대단하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보며 주안이 히죽 웃어주었다.

그 말대로 자신의 가문은 참 대단하긴 했다.

주안이라는 그토록 멍청한 인물이 가주에 올랐던 그 시절, 그토록 오래 버틴 것도 모자라 끝까지 지지해 준 이들이 남아 있었을 정도로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은 정말 빛이 났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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