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08화
주안이 집으로 돌아온 뒤 며칠의 시간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보내었다.
사절단의 일을 성공적으로 마친 것에 대한 축하 파티가 도착일 그다음 날부터 이어졌고, 그보다 엄마의 임신 소식으로 인해서 황도가 더욱 떠들썩해졌다.
그에 맞춰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방문하는 귀족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늘어났을 정도였다.
사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주이자, 현 공작인 주레인 공작은 영지이자 근거지가 있는 동부의 귀족들보다 황도의 중앙 귀족들과의 연이 더 많았지만 좋은 관계까지는 아니었다.
그저 필요에 의해 맺어진 인연이었을 뿐이었고, 아내인 안젤라 역시 전 황녀였기에 좀 더 수월하게 돕고 돕는 관계 정도로 지낼 수는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특별한 일이 아닌 이상 황도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을 찾는 이는 매우 드물었다.
이러한 상황이 주안이 돌아온 후 많이 바뀌게 된 것이다.
황도에 적을 둔 귀족들이나 황도 인근의 귀족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으로 사람과 선물을 보내어 축하해 왔다.
그들의 목적은 순수한 축하보다는 주안에 대한 평가를 새롭게 내리기 위함이 컸다.
애초에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그 거대한 세력을 가지고도 중앙 귀족들이나 여타 다른 귀족들에게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던 이유도 다 주안과 안젤라로 인한 것이었다.
하지만 주안이 변한 만큼 안젤라 역시 변하였기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위상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게다가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재상의 업무로 저녁까진 황성에 머무는 아버지나 몸조리 중인 어머니를 대신해, 저택의 가장 높은 이가 되어버린 주안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절단의 축하 파티와 축제가 끝에 다다랐을 때쯤이 되어서야 주안은 겨우 조금 한숨을 돌리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피곤해…….”
“으…….”
주안이 침대에 드러눕자, 어디선가 날아온 세냐와 마냐, 아냐가 너나 할 것 없이 주안의 곁에 벌렁 드러누웠다.
자그마한 세 요정의 얼굴에도 주안과 마찬가지로 피곤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너희도 정말 고생하는구나.”
“누구 덕분에 말이죠. 그래도 뭐, 오빠도 고생 많았나 보네요.”
“하하…… 뭐, 고생이야 너희가 더 많았지.”
주안이나 세 요정 꼬맹이나 서로에게 득이 되는 일들에 가깝기에 이렇게 피곤해도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크게 불만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주안은 자신과 가문을 위해서, 세 요정 꼬맹이는 세계수와 아미엘을 위해서 하는 일이니 말이다.
“어쨌든 고생했어.”
“오빠야말로.”
서로 다른 일을 했지만, 힘든 일이었다는 것은 비슷하여서 그런지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주안이 손가락으로 세 꼬맹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세냐는 작게 불만을, 마냐는 마냥 좋다는 듯 꺄르륵거렸고 아냐는 매우 부끄러워했다.
성격들이 너무 확실해 보이는 반응에 주안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지?”
“거의 마무리는 됐어요. 어휴, 방해만 없었어도 훨씬 더 빨랐을 텐데.”
“우……! 마냐도 열심히 했는걸. 흥!”
투덜거리는 세냐의 말에 마냐가 발끈하며 볼을 잔뜩 부풀렸지만, 아냐는 시무룩해졌다.
그리고 이런 아냐의 반응과 주안의 눈길에 세냐가 흠칫 놀라며 입술을 삐죽였다.
“뭐, 뭐, 그래도 혼자 하는 것보단 덜 외로워서 괜찮았어. 그리고 아직 할 일도 더 있으니까, 마냐는 나랑 계속 마법진을 만들어주고 세냐는 보안 설정 철저히 해주고. 알겠지?”
“응!”
“네!”
세냐의 칭찬의 말과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지 재차 지정해 주자 두 동생이 금세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참 사이가 좋은 자매들 같단 생각에 묘한 부러움을 느낀 주안이었다.
주안은 동생이 태어나고 좀 크면 자신도 이 세 요정 자매들처럼 그런 관계를 가질 수 있을지, 살짝 고민이 되었다.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날 텐데…….’
이 정도면 형이나 오빠가 아니라 완전 삼촌 수준인지라 주안은 조금 고민이 되었다.
“그런데 무슨 고민 있으세요? 표정이, 이~ 런데.”
“……그게 무슨 표정인데.”
일부러 잔뜩 찌푸린 것도 모자라 두 손으로 볼을 꾸욱 눌러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억지로 만드는 세냐의 그 행동에 주안 역시 잔뜩 찌푸렸다.
게다가 마냐와 아냐도 그런 언니를 따라 하듯 볼을 죽죽 늘리거나 누르거나 하며 주안의 마음을 더욱 심란하게 만든다.
사이가 좋은 것도 너무 좋지만, 저런 것을 따라 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였다.
“피곤한 것 이전에 아까부터 엄청 고민 가득한 표정이셔서요.”
“으음…… 그런가.”
사실 세냐의 말대로 피곤한 것도 있지만 고민 역시 없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안의 주된 고민은 다름 아닌 세 요정이 열심히 만들고 있는 워프 게이트에 있었다.
“워프 게이트가 만들어지고, 아미엘 님의 허락하에 여러 곳에 설치가 된다면 그것을 어떻게 운영할지 생각 중이라서.”
이게 제대로 활성화가 된다면 어떤 방향으로 이용해야 악용되지 않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것인지,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전적으로 운영하는 것만이 아니라 제국 곳곳에 세워져야 한다면 또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생각할 일들이 꽤나 많았다.
단지 워프 게이트를 세우고 잘 써먹자! 이게 아닌 것이다.
구체적인 활용 방안이 필요했다.
그리고 주안은 이런 고민에 대해서 세냐에게 물었다.
“오래전에 이 워프 게이트를 사람들이 많이 활용했다며? 어떻게 썼던 거야?”
“아, 그거요? 간단해요.”
세냐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전쟁에 썼거든요. 이종족 사냥을 위해서 최대한 빠르고 신속하게 이동하기 위해서 말이죠.”
“…….”
“사람의 이동, 물자의 운송, 포로나 노예를 옮기고, 약탈한 물품들을 옮기고 말이죠.”
“그, 그래?”
작고 귀여운 세냐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말들이 나오자 주안이 움찔 놀랐다.
“그럼 어떤 형식으로 설치했던 거야? 보통은 타인의 땅에 설치하려면 그 땅의 주인에게 동의를 구해야 하고 그래서 정말 복잡했을 텐데.”
“일단 당시에는 대륙을 하나로 모았던 인간의 지도자가 있었어요. 그래서 딱히 워프 게이트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하는 것에 적당히 의견만 모으면 되었거든요.”
“아, 혹시 아미엘 님이 말씀하셨던, 악귀라 불린 첸들러라는 사람?”
“맞아요. 악마 같은 사람이라 그런지 완전 제멋대로였어요.”
세냐는 그 사람을 보았던 것인지, 영 좋지 않은 기억이라는 듯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다.
“뭐, 대륙을 하나로 모았다면야 충분히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시대도 아니고, 비록 제국 동부의 땅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영향 아래 있다고 해서 제멋대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절차를 거쳐 그 땅을 분할하여 관리하는 귀족들의 동의를 구해야 하며 백성들의 민심도 살펴야 한다.
워프 게이트 자체가 백성들의 민심과는 크게 관련 있는 것은 아니니, 그것은 뒤로 미룰 수 있다 해도 여타 귀족들은 아니기 때문이다.
“아미엘 님이 허락한다 해도, 참 복잡하구나.”
“인간 세상 자체가 엄청 복잡해 보이는데요, 뭐.”
“그렇긴 하지.”
사람을 꿰뚫어 보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을 꿰뚫어 보는 것인지……, 세냐는 정말 핵심을 찌르는 말들을 해줄 때가 종종 있었다.
그 외모는 완전 어린아이인데, 세상을 보는 시선과 생각은 그 어떤 어른 못지않았다.
‘뭐, 이건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부탁해서 어떻게든 하면 되겠지. 먼저 아미엘 님에게 허락을 받는 거니까.’
먼저 동부를 시작으로 차근차근 워프 게이트를 늘려가면서 이 워프 게이트의 효용성을 알리고, 그것을 깨달은 이들과 협업을 통해 진행하다 보면 제국은 순식간에 어디든 단 하루면 오갈 수 있는, 그런 나라로 변해 있을 것이니 말이다.
“끄응…… 그보다 점심이잖아. 밥이나 먹으러 가자.”
“오오! 마냐는 또 고기 먹고 싶어! 송아지 스테이크!”
“아냐는 요리장 아저씨가 해주는 샐러드가 정말 좋아요!”
기뻐하는 두 꼬맹이와는 달리 세냐는 입술을 삐죽이며 뚱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래도 세냐가 먹고 싶다는 송어 어쩌고 하는 요리를 그동안 준비를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인 듯했다.
그 때문에 주안이 애써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송어 어쩌고 하는 요리는 없지만, 그래도 비싼 물고기 요리로 준비해 달라고 했어. 붉은 와인도 함께.”
“음, 나쁘지 않네요. 오케이.”
세냐의 허락이 떨어지자 주안도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뭐든 잘 먹는데, 세냐는 정말 입이 짧고 편식이 꽤 심한 편이었다.
겨우 불만을 잠재운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세 요정 꼬맹이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날아와 주안의 어깨와 손바닥 위, 그리고 머리 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리고 주안 역시 그러려니 하며 세 꼬맹이 요정와 함께 방을 나섰다.
* * *
주안은 늦은 점심을 먹은 뒤 엄마와 잠깐 시간을 보내었고, 저녁의 황성에서 있을 슬슬 끝나가는 파티에 참석하기 전까지 개인적인 시간을 보내기 위해 저택을 나섰다.
딱히 호위도 필요 없었기에 아르베이라나 워랜, 토미도 데리고 가지 않았고, 그저 세라타만 데리고 밖으로 나섰다.
“도련님, 그런데 어디 가실 거예요?”
“응, 대신전에 잠깐 갔다가 마법 상점에 들러볼까 해서.”
대신전에 들리는 이유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 페트롤 대신관을 만나 다예프 대신전의 성녀나 성흔에 대해서 물어보기 위함이었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아미엘에게 부탁받은 입장이었고, 그는 주안과 달리 교단의 성흔에 대한 일을 맡았다.
그에 대해서 조금 물어보고, 워프 게이트의 설치가 거의 끝나간다는 것도 알려줄 생각이었다.
세라타 역시 주안이 대신전에 가는 것은 크게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듯했지만, 마법 상점이라는 말에는 갸웃했다.
“세냐가 이곳 마법 물건들을 좀 보고 싶다고 해서. 다양한 걸 많이 좀 사 오라고 나한테 명령하더라.”
“어, 어머나? 도련님이 심부름꾼이 되신 거예요?”
“뭐, 그렇지.”
공작가의 후계자가 심부름꾼 노릇을 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듣는다면 매우 이상하게 생각을 하겠지만, 세냐가 어떤 아이인지 알기에 주안은 크게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더욱이 어차피 가는 길이기도 하고 주안도 쓸 만한 걸 보고 살까 생각 중이었다.
엄마에게 부탁하면 또 허리를 꼿꼿하게 바로 세워주는 이상한 허리띠를 사주지 않을까, 솔직히 그게 가장 큰 걱정인지라 주안이 직접 나온 것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세냐는 비싼 것이 아니라,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것들 위주로 자잘한 것들을 원하는 듯했기에 황립 마탑에 의뢰할 필요도 없이 그저 마법 상점을 이용하면 되는 일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이 세상의 수준 낮은 마법을 한 단계 끌어 올려줄 위대한 요정님의 능력을 기대하라나, 뭐라나…….”
“세냐는 정말 어른스러워 보여요. 마냐나 아냐는 아직 아이 같은데…….”
“그렇지? 게다가 그 녀석, 술도 마실 줄 안다니까.”
“술까지…….”
그 외모만 보면 완전 아이였고, 입도 짧아 가리는 것도 많고 쉽게 삐치지만, 이상한 부분에서 참 어른스러운 세냐다.
좋아하는 것은 과일주와 와인으로, 정말 잘 마시고 쉽게 취하지도 않는다.
목욕 후 마시는 와인 한 잔은 천상의 맛이라나, 뭐라나.
“몇 살인지 물어보면 화를 내서 나이는 모르겠지만, 엄청 많을걸.”
“후훗…… 그런 거 물어보시면 여자한테 인기 없어지는 거예요.”
“……어차피 인기 없거든.”
“어머? 그럴 리가요.”
입술을 삐죽이는 주안의 모습에 세라타가 살포시 웃어 주었다.
주안은 모를 수 있겠다 싶었지만, 사실 주안을 좋아하는 여성은 꽤나 많았다.
집안의 아랫사람들에게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친절하여 다들 좋아했고, 그 외모도 빼어나서 지금도 걸어가는 주안을 흘겨보는 여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것을 전혀 모르는 듯한 주안을 보니, 세라타는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응? 그런데 누가 오나……. 길을 왜 비워놨지.”
대로를 따라 걷던 주안은 점차 사람이 많아졌지만, 길 중앙이 텅텅 비어 있는 것에 이상하게 여기며 갸웃했다.
보통 황도의 대로가 비워진다는 것은 중요한 누군가가 온다는 의미와 같았다.
지금도 황성에서 보낸 사람들이 직접 중앙대로의 빈 공간을 만들어내며 사람들을 조금씩 바깥으로 물려내었다.
이들 중 귀족도 있겠지만 항변할 수 없는 것이, 황도의 중앙 대로를 비울 정도의 이들이며, 황성의 사람들이 나서서 직접 맞이해 주는 것을 보면 거물도 보통 거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주안도 누가 오나 궁금하기에 멈추어 서서 세라타와 함께 구경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단의 무리가 여유롭게 쭉 뻗은 대로를 따라 다가오는 게 보였다.
거대한 전마를 타고 완전무장을 한 다수의 기사가 앞장섰고 그 뒤로 가문의 깃발을 든 이들과 함께 화려한 마차가 따라온다.
게다가 그 마차 주변으로도 다수의 기사가 호위하는 형태였으며 그 뒤로도 여러 대의 마차와 기사들과 병사들, 하인들로 보이는 이들이 주욱 이어져 있었다.
“엄청난데…….”
저 정도면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모자라지 않는 이들이라는 사실에 대체 어느 가문인지 궁금하여 주안은 가장 앞서 오는 기사들과 그들이 들고 있는 가문의 깃발을 바라보았다.
깃발에 새겨진 문장은 방패와 하나의 검이 교차된 형태였다.
그 문장에 주안이 갸웃하며 중얼거렸다.
“저건 제국의 문장이랑 비슷한데…….”
제국의 문장은 방패와 함께 그 뒤로 두 개의 검이 교차된 형태로, 왕국 시절에서부터 쭈욱 사용되어 온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와 비슷한 문장을 가진 것에 주안이 의아했지만, 이내 제국의 문장과 비슷한 형태의 문장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된 한 가문이 떠올랐다.
“링베르가 공작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함께 제국의 공작가이자, 서부 국경의 방패이며 지배자.
황가의 또 다른 핏줄인 링베르가 공작가가 황도로 입성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