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107화 (107/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07화

“우리 아들이 좀 유명해지긴 하였나 보군. 그 먼 링베르가 공작령에까지 이야기가 흘러들어 간 것을 보면 말이야.”

주레인 공작이 조용히 사무엘 그리마를 보며 말했다.

“사절단에 대한 소문이야 오면서 접하였지만, 블라드 공작 각하께선 그 이전부터 주안 공자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셨던 분이셨습니다.”

사절단의 성공은 곧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위신을 높이고 주안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는 것만이 아니라 평가마저 완벽하게 바꾸어놓은 계기가 되었다.

혼담 제의가 놀랍긴 했지만, 어차피 머지않아 유수의 가문들이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오가며 혼담을 넣을 게 뻔했다.

하지만 이전부터 관심을 가졌다는 블라드 링베르가 공작의 말을 주레인 공작은 믿지 않았다.

주안에 대한 이전의 평은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입장에서는 해선 안 될 말이긴 하였지만, 자신에게 딸이 있었다면 절대 자신의 아들 같은 아이와 결혼시키지 않았을 거라고 주레인 공작마저 그렇게 생각했을 정도였다.

‘무언가 목적이 있는 것인가.’

결국 답은 혼담 외의 다른 목적이 있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것이다.

주레인 공작이 진지한 표정으로 사무엘 그리마를 지켜보며 그 진의에 대해서 생각하자, 기사로서 오를 수 있는 거의 끝에 오른 사무엘 그리마도 살짝 긴장하였다.

괜히 제국의 재상이 아니었다.

링베르가 공작가 그 이상이라 평가받는 동부의 지배자,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현 가주가 바로 눈앞에 있는 주레인 마르티네스 공작이었다.

모르는 이들이야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여전히 벡브란 전대 공작의 손에 있다 생각한다.

하지만 유력 가문의 가주들이나 가신들은 벡브란 전대 공작보다 주레인 공작을 대하기가 더 어려웠고, 까다로웠으며 가장 경계해야 할 인물로 꼽는다.

벡브란 전대 공작은 동부에서의 영향력이 대단하다 해도 그곳을 벗어나지 않지만, 주레인 공작은 이미 동부를 넘어 중부, 황도의 황성에서 제국을 움직이는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말했듯이 가족들과의 상의가 필요한 부분이네. 그리고 자세한 이야기는 링베르가 공작을 만난 뒤 하기로 하지.”

“예, 공작 각하.”

사무엘 그리마가 주레인 공작의 말에 고개를 숙이며 답하였다.

그리고 그런 그를 보며 주레인 공작이 말했다.

“한데 우리 아들과 맺어주고 싶다는 링베르가 공작가의 여식인 미네아 영애에 대해서는 나이가 같다, 정도밖에 모르네만. 어떤 아이인가?”

주레인 공작이 아는 것은 링베르가 공작가에는 세 명의 딸과 한 명의 아들이 있다는 것 정도다.

미네아 링베르가는 위로 언니가 둘에 아래로 후계자인 남동생이 하나 있었다.

막내인 아들을 보기 전까지 딸만 셋이던 링베르가 공작가는 후계자 문제로 꽤나 고생했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처럼 자손이 귀한 경우는 어쩔 수 없이 딸에게도 가문을 물려준다는 선택지가 있었지만, 다른 가문들도 그에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링베르가 공작가는 다른 귀족 가문들과 마찬가지로 남자가 가문의 세습 대상이 되는 가문이기에 링베르가 공작가는 무슨 일이 있어도 후사를, 아들을 봐야만 하였다.

그리고 이런 링베르가 공작가의 노력 때문인지 결국 늦은 나이에 소중한 아들을 얻었다.

다행히 그 아들은 매우 건강했고, 문무 양면으로 뛰어난 재능을 보여, 링베르가 공작만이 아닌 많은 가신도 안심시킨 것으로 유명했다.

하지만 그 딸들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으며, 대충 나이와 함께 셋째인 미네아를 제외하곤 이미 결혼한 상태라는 것만 알려져 있었다.

그리고 그 첫째 영애는 바로 눈앞의 사무엘 그리마 경과 부부 사이였다.

가문을 이어받은 후계자도 아니고 당장 작위도 없던 그에게 딸을 맡긴 링베르가 공작이 사무엘 그리마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알 수 있는 일이기도 하였다.

주레인 공작의 말에 사무엘 그리마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제가 말로 설명드리는 것보단, 직접 보시고, 판단하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저 역시 링베르가 공작가의 사람으로서, 미네아 아가씨에 대해서 좋은 방향으로만 설명해 드릴 수밖에 없는지라…….”

“하긴, 그렇겠군.”

솔직한 사무엘 그리마의 답이 주레인 공작의 입장에서도 꽤나 마음에 드는 말이었다.

사무엘의 말대로 그가 미네아에 대해 칭찬 일색의 말을 하였다면 크게 실망하였을 것이고, 미네아 링베르가뿐만이 아니라 링베르가 공작가 자체에 대한 평가가 떨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링베르가 공작가 입장에서는 우리 주안에 대한 소문만 들은 것만으로도 혼담을 제의한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생각이지 않나? 지금이야 조금 달라졌다 하나, 우리 아이에 대한 예전의 소문은 썩 좋지 못 하다네.”

“물론 이전의 주안 공자님이라면 그렇겠지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의 주안 공자님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희 공작 각하께선 과거도 현재도 아닌, 앞으로의 주안 공자님에 대한 기대가 크십니다.”

“……이미 조사는 끝났나 보군.”

“하하…… 황도와 멀리 떨어진 저희인지라, 이곳의 소식이 곧 서부 국경에 대한 변화와 같아서 매우 민감합니다.”

서부 국경을 지키는 가문답게 황도의 변화에 매우 신경을 써야 하는 그들이다.

서부는 북부만큼 척박하지는 않지만, 식량 수급이 원활한 곳은 절대 아니었다.

그 때문에 황도의 지원이 필요하였고, 그 황도의 식량을 대는 곳이 바로 동부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인 것이다.

‘일단은 식량인가…….’

평가가 변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는 굉장히 매력적인 신랑감이다.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 하는 제국 제일의 곡창 지대를 가진 가문이었고, 서방과 동방을 잇는 수많은 항구를 통해서 얻는 세금은 천문학적이다.

풍부한 자원과 안정적인 수입원, 그리고 제국 제일의 가문이라는 이름.

어느 가문이라도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지만, 탐낼 수 없으며 침범할 수 없는 땅.

무력이나 모략이 통하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다.

결국 가문과 가문을 잇는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지원해 줄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편의는 봐줄 수 있겠지.’

예를 들어 세금 부담을 줄여 원가에 가까운 금액으로 식량을 링베르가 공작가와 서부 국경을 지키는 군에 납품시킬 수도 있다.

그뿐만이 아니라 필요한 병장기의 원자재인 철도 싼 가격에 납품할 수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부담은 정말 크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군.’

서부에서 나는 자원은 북부와 비슷한 광물들이지만, 좀 더 다양하며 값비싸고 희귀한 광물들이 난다.

또한 서부를 관통하는 핌 벨 강의 수로를 통해 오가는 물자들에 매겨지는 세금도 꽤나 되긴 하였다.

하지만 결국 부족한 식량은 서부 너머의 왕국들이나 황도에 기댈 수밖에 없으니, 자급자족이 안 된다는 것은 그들로서는 매우 치명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그들은 마르티네스와 맺어지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은 많겠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로서는 링베르가와 맺어지는 것을 통해 얻는 것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아니, 애초에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필요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을 다 가진 가문이 바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잘 알겠네. 사무엘 경은 다시 링베르가 공작가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갈 것인가?”

“아닙니다. 저는 황도의 저택으로 돌아가 안전을 점검하고, 저희 공작 각하를 맞이할 생각입니다.”

“그렇군, 혹 필요한 게 있다면 말을 하게. 도와줄 수 있는 것이라면 도와줄 터이니.”

“예, 각하. 그럼 차후 저희 공작 각하를 모시고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시간을 내어주어 정말 감사합니다.”

사무엘 그리마가 고개를 숙이며 주레인 공작에게 인사한 후 조용히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가 나간 직후 주레인 공작은 밖에 대기 중이던 에밀리 경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공작님.”

“에밀리 경. 그대가 해줄 일이 있네.”

“명만 내리십시오, 공작님.”

서글서글한 인상을 가진 그는 다른 우락부락한 기사들과는 조금 다르게, 오히려 워랜과 비슷한 체격과 알맞은 근육을 가진 기사였다.

하지만 이런 외형만 보고 달려들었다가는 큰코다칠 만한 실력을 가진 인물이기도 했다.

그 역시 사무엘 그리마와 같은 랭크 7의 인물로, 벡브란 전대 공작에겐 가장 가깝고 믿을 수 있는 인물이 가론 노밀 자작이라면, 주레인 공작에겐 에밀리 펜버가 있었다.

펜버 남작가의 후계자였던 그는 영지 경영에는 뜻이 맞지 않아 그 자리를 동생에게 넘겨주었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사단에 입단한 뒤 두각을 드러내며 주레인 공작에게 발탁된 인물이기도 하였다.

벡브란 전대 공작의 그늘에서 벗어나 주레인 공작이 오롯이 자신의 뜻대로 이룬 첫 번째가 바로 에밀리 펜버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든 것이었을 정도였다.

주레인 공작은 에밀리를 보며 조용히 말했다.

“링베르가 공작가가 황도로 오고 있다고 하네. 그들의 현재 위치와 황도의 입성 날짜, 그리고 링베르가 공작가의 내부 사정을 조사해 주게. 특히 링베르가 공작가의 영애, 미네아 링베르가에 대한 조사를 철저히 하게.”

“예, 공작님.”

다른 가문, 그것도 서부의 지배자인 링베르가 공작가의 뒷조사에 대한 명령에 대해 에밀리 펜버는 한 치의 의문을 가지지 않은 채 고개를 숙이며 명을 따랐다.

에밀리 펜버가 주레인 공작의 명을 받고 방을 나선 뒤, 주레인 공작은 여전히 그 자리에 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링베르가 공작의 수를 읽기 위한 것도 있었고, 그와의 만남에 대한 대비와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대처 부분이었다.

하지만 주레인 공작은 이내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미소를 지었다.

“혼담이라니…….”

이전이라면 전혀 생각도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아니, 오히려 주안을 다른 가문과 어떻게 맺어줄까, 무엇을 내어주어야 그들이 아들과의 결혼을 허락해 줄까, 그런 고민을 해야 했었다.

유망한 가문에는 한참 어린 나이에도 혼담이 오가고, 약혼을 먼저 하며,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가지고 가문의 어른들끼리 약조를 하여 결혼을 시키는 일도 비일비재하였다.

하지만 주안은 그 어디에도 해당이 되지 않았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정도라면 동부의 어느 가문이라도 먼저 나서서 맺어지길 바랐겠지만, 이전의 주안에 대한 평가는 아버지로서도 절대 좋은 소리를 하지 못할 그런 아이였으니 말이다.

링베르가 공작가의 목적이 무엇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하였지만, 분명 그들을 시작으로 혼담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들어올 것이 분명하였다.

“그보다 정말 큰일이군…….”

하지만 미소를 짓던 주레인 공작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쏟아질 혼담 이야기와 거기에 휩쓸려 고생할 아들에 대한 걱정이 아니었다.

“안젤라가 화낼 게 분명한데…….”

아무리 둘째가 생기고 성격이 좀 유순해졌다 해도, 주안에 대한 집착이 완전히 사라진 아내가 아니었다.

혼담 이야기가 나왔고, 그 대상이 링베르가 공작가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 무거운 몸을 이끌고 링베르가 공작가의 저택으로 쳐들어가서 우리 애는 못 준다고 소리칠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에밀리 경에게 절대 비밀로 조사를 하라 다시 명령해야겠어…….”

링베르가 공작가에 들키지 않게 조사하는 게 아니라, 아내에게 들키지 않게 조사해야만 하였다.

주레인 공작에겐 링베르가 공작가보다 아내가 더 무서웠으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