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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05화 (10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05화

“동방의 무사라면 당연히 동방의 검일 것이니, 토미에게도 잘된 일이지 않습니까. 사실 어떻게든 제 선에서 변화를 주고, 안 된다면 인맥을 통해서 동방의 무사를 초빙할까 생각도 하였습니다.”

“피터 아저씨…….”

주안도 사실 처음에는 동방의 무사를 초빙할 생각을 진지하게 했었다.

하지만 피터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줄은 몰랐다.

“비록 우리의 검은 아니라도 몸과 정신은 서방의 것 그대로 아닙니까. 그거면 되었습니다.”

이런 피터이기에 출세가 보장된 황실 근위대의 자리도 내려놓고 마르티네스 공작가로 와서 그 오랜 세월 동안 한 사람만을 묵묵히 지켜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그는 자신만의 기사도를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마워요, 피터 아저씨. 그리고 동방의 검을 배운다 해서 서방의 것을 모두 버린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아저씨 말처럼 이곳의 정신과 기사도, 그리고 서방의 육체적인 부분은 앞으로도 피터 아저씨에게 부탁드리고 싶어요.”

“동방의 검과 병행한다는 말씀이시군요. 하지만 그러면 상당히 힘들 것입니다.”

“그래도 해야겠죠. 그게 아니라면…….”

주안의 슬쩍 토미를 보며 말을 하자, 주안이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안다는 듯 토미가 나서서 말했다.

“그렇게 할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해서 피터 스승님에게도, 도련님에게도 한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다른 분들처럼 도련님 곁에 서고 싶어요.”

1년도 채 되지 않았지만, 토미는 그 짧은 시간에 정말 많이 바뀌어 있었다.

주안만큼이나 토미와 함께 있던 시간이 많았고, 그 변화를 곁에서 가장 많이 지켜본 피터였기에, 아스란 왕국으로 가기 전과 돌아온 지금의 토미의 모습이 정말 많이 달라져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피터는 토미를 보며 웃어줄 수 있었다.

“그곳에 가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워 왔구나.”

“그리고 모자란 것도 깨달았어요. 이제는 그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싶어요.”

토미의 진심을 전해 들은 피터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어주었다.

재능이 남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토미는 그 재능을 활짝 펼칠 수 있는 더 뛰어난 재능이 있었다.

바로 노력이다.

천재들은 노력하지 않는다는 소리가 있지만, 그것은 다 헛소리일 뿐이다.

노력하지 않는 천재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노력하지 않고 가장 위에 설 수 있는 천재란 없다.

워랜은 그 천재성과 육체적으로 뛰어남을 지녔지만, 자신을 갈고닦지 않는 이상 더 위로 올라가긴 매우 어려울 것이라는 사실을 주변 모든 이들이 알기에 안타까워했었다.

그렇기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워랜을 억지로라도 가르치려 했고, 벡브란 전대 공작이 나서서 호통도 쳤을 정도였으니까.

토미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목표가 뚜렷하기에 노력을 할 수 있었던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 천재적인 워랜도 가지지 못 한, 그리고 일반인이 가장 쉽게 가질 수 있는 재능인 노력을 가진 아이였다.

천재성과 노력.

둘 모두를 가진 아이였기에 모두가 이 아이를 아껴주었고 사랑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니 말이다.

“하면 이 아이의 스승이 되실 분이 아스란 왕국의 분이시라면 토미는 다시 아스란 왕국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까?”

“일단 그렇게 되겠지요.”

동방의 검술은 보통의 재능으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깊이가 대단하여 한두 해로 끝나는 그런 것도 아니었다.

아무리 기초적인 것을 배우고 와서 스스로 개척해 나간다 해도, 그 기초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꽤나 오래 걸릴 것이 분명하다.

아스란 왕국으로 가서 풍신에게 검을 배운다면 몇 년은 걸릴 것임을 피터도 알고 있기에 안타까워하였다.

그것은 피터만이 아니라, 토미 역시 마찬가지인 듯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처음으로 자신을 거두어준…… 가족 그 이상의 사람들이다.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바깥에서 본다면 우러러볼 존재들이나, 그들의 품에 들어와 함께 생활해 보면 이들은 하늘 높이 존재하는 이들이 아닌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토미는 느끼고 있었다.

애초에 동부의 귀족들은 귀족답지 않은 이들이 많았고, 마르티네스 공작가는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다.

세상에 던져졌던 토미, 자신과 동생인 세라타를 거두어주고 살려준 이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을 위해, 주안의 곁에 서기 위해 강해져야 하기에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이곳을 떠난다는 것에 슬퍼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토미와 피터의 마음을 알기에 주안이 잠시 고민하였다.

“워프 게이트만 잘 만들어진다면…….”

거리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은, 세상을 완벽하게 바꾸게 될 것이다.

토미가 아스란 왕국으로 간다 해도 출근과 퇴근처럼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와 함께할 수도 있는 것이다.

‘아미엘 님을 어떻게든 설득시키고, 워프 게이트 설치를 더 많은 곳에 설치해야 해. 그것을 제대로 활용할 수만 있다면 정말…….’

“도련님?”

“아, 아니야. 일단 당장 떠나는 것은 아니야. 그리고 떠나지 않을 방도가 있으니까.”

“예? 떠나지 않을 방도요?”

세계수에서 아미엘과 대화하던 그 장소에 함께 있었음에도 토미는 워프 게이트에 대한 사실을 전혀 생각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검술은 천재적인데, 머리 쓰는 것은 아주 약간 주안 자신보다 모자라다는 것에 주안이 어깨를 으쓱해 주며 미소를 지었다.

“그런 게 있어. 제대로 되면 그때 말해줄게. 그때까진 피터 아저씨한테 열심히 배우고, 같이 있어 드려. 그동안 너 없어서 엄청 외로웠을 거니까.”

“크흠! 누가 외로웠다고……. 안 외로웠으니 그런 눈은 집어치워라.”

눈웃음을 지으며 토미가 피터를 바라보자, 괜히 머쓱한 듯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주안마저 싱글거리며 웃자 피터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정말이지 이 목석같은 아저씨는 단 것도 참 좋아하고, 부끄러움도 많이 타는 귀여운 아저씨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 *

오랜만에 안젤라의 방을 찾은 소니아는, 다소곳한 소녀처럼 침대에 누워 태교에 좋은 책을 읽고 있는 안젤라의 모습에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와와와?! 와와와와아?!”

“……갑자기 찾아와서 왜 그러니?”

이런 소니아의 이상한 행동이 한두 해가 아니었지만, 오늘은 좀 많이 심한 듯했다.

게다가 참 오랜만에 만났서 반갑긴 했지만, 안젤라는 그런 반가움보다 또 저택이 매우 시끄러워질 것만 같은 걱정이 먼저 앞섰다.

잠시 안젤라를 빤히 바라보던 소니아가 슬그머니 다가와 이불을 덮고 있지만, 가려지지 않은 볼록 나온 배를 보며 말했다.

“여, 여기에 마마보이 2세가…….”

안젤라는 생각 같아서는 소니아를 한 대 쥐어박고 싶었지만, 그런 폭력성은 태교에 좋지 못하기에 억지로 화를 참아내며 심호흡을 하였다.

그리고 이내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우리 귀여운 아들은 어디 가고 밉살스러운 애가 온 거야.”

“오랜만에 보시면서 그런 말은 너무하시잖아요, 안젤라 님.”

“하나도 안 너무하거든? 그보다 진짜 우리 주안이는 어디 간 거야? 소니아, 너는 몰라?”

“공작님 집무실에 가셨다가 지금은 피터 아저씨 만나러 간 걸로 알고 있어요.”

“어휴, 엄마한테 좀 오면 안 되나.”

책을 덮은 안젤라가 작게 한숨을 내쉬자, 소니아가 히죽 웃으며 침대로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말했다.

“주안 도련님이 이것저것 할 일이 정말 많으셔서 그런 거니까 조금만 이해해 주세요.”

“흥, 이해하기 싫거든.”

“우와, 이제 애가 둘이나 되시는 아주머니가 되셨으면서 그런 말투는 좀 그렇지 않아요?”

“그런 거 모르거든?”

“어휴, 어련하시려고요.”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안젤라는 이제 곧 마흔이 되고 둘째도 낳을 어머니였지만, 그 행동이나 외모는 말괄량이 아가씨나 다름이 없었다.

하지만 이런 안젤라이기에 모두가 편하게 따랐고, 특히 소니아는 이모, 아니, 너무나 친한 언니 같아서 정말 좋았다.

안젤라 역시 다른 이들에게도 편히 대하지만, 왠지 마음이 잘 맞고 허심탄회하게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며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사람은 주안과 소니아 정도밖에 없다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기에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피터에 의지하고, 함께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소니아를 아끼는 것이니 말이다

“그보다 안젤라 님. 부탁 한 가지만 들여도 될까요?”

“갑자기 웬 부탁? ……용돈 필요하니?”

“저, 저도 모아놓은 돈은 많아요. 그런 거 아니에요.”

“하지만 아스란 왕국에서 쓸데없는 선물들 잔뜩 사 왔다고 들었는데…… 아니야?”

“그건 맞지만…….”

여행지에 놀러 가면 꼭 이런 사람이 있었다.

참 쓸데없는데, 선물로 잔뜩 사 와서 선물 받는 사람마저 곤란하게 만드는 사람들 말이다.

소니아가 딱 그랬고, 아스란 왕국의 특산품인 과일들만이 아니라 이상한 액세서리나 조각상 등등 많은 것을 사 왔다.

그리고 그것을 선물받을 사람들은 잔뜩 긴장하고 있을 정도였다.

안젤라의 말에 볼을 잔뜩 부풀리며 투덜거리던 소니아가 조심스레 말했다.

“저, 배 한 번만 만져봐도 괜찮을까요?”

“응? 배?”

소니아가 우물쭈물거리며 내뱉은 그 말에 안젤라가 갸웃했다.

무척이나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볼을 발갛게 물들인 채 안젤라의 눈치를 살피는 소니아의 모습에 그 말뜻이 무엇인지 깨달은 듯 안젤라가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안젤라만이 아니라 바로 곁에서 안젤라의 수발을 드는 마리아 역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거리며 작게 웃었다.

두 사람의 행동에 소니아의 볼이 더더욱 빨개지며 기어이 목덜미까지 붉게 달아올랐다.

“우리 주안이한테 먼저 해주고 싶었는데, 뭐, 특별히 허락해 줄게. 감사하게 여기렴.”

“우…….”

방긋 웃으며 안젤라가 허락해 주자, 소니아도 이 말과 행동은 조금 부끄러운 듯 몸을 잔뜩 움츠렸다.

하지만 이내 조심스레 손을 내밀어 볼록 나온 안젤라의 배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왜? 신기하니?”

안젤라의 말에 소니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소니아는 이런 임신한 배를 만져보는 게 처음이었다.

집안에서는 막내였기에 그럴 일도 없었으니 말이다.

소니아의 이런 모습에 작게 미소를 짓던 안젤라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자신의 배를 만지고 있는 소니아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었다.

“아직 움직이거나 그런 것은 없지만, 집중해서 보면 아이의 심장이 뛰는 게 느껴질 때가 있어.”

“아…….”

움찔 놀란 소니아가 손을 빼려고 했지만, 안젤라가 여전히 소니아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배에 가져다 대었다.

“어때? 느껴지니?”

안젤라의 말에 소니아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따뜻한 안젤라의 배에서, 작지만 힘차게 뛰는 심장의 울림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

그 새로운 경험에 소니아의 표정이 점차 변해갔다.

“참 신기하지? 이렇게 작은 아이가, 쑥쑥 커서 우리 주안이가 되었으니 말이야.”

행복해하는 안젤라의 모습은 더없이 빛이 났고, 소니아는 이런 안젤라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았다.

그녀는 언제나 주안과 함께 있을 때, 이렇게 반짝이며 빛이 났고 행복해했으니 말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기 신발이라도 사올 걸 그랬어요.”

“어머, 그랬으면 안아줬을 텐데. 아쉽네.”

“대체 저 없는 사이에 공작님이랑 뭘 어떻게 하셨기에…….”

“너 있는 사이에 했거든? 아, 아니,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니.”

당황하는 안젤라의 모습이 귀여워 소니아가 키득거리며 웃었지만, 더 이상 놀릴 수는 없었다.

진심으로 기뻐하고 행복해하는 그녀를 보며, 소니아는 안젤라를 처음 봤을 때, 그리고 그녀가 울고 있던 그 모습을 보고 했던 다짐이 떠올렸다.

아이를 잃고 슬퍼하던 그 모습은 소니아에게 잊히지 않는, 그녀에게도 작은 상처였었다.

그렇기에 그 어린 나이에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정하고, 노력한 것이었지만 말이다.

이분의 곁에 있고 싶다.

함께하고 싶다.

보호해 주고 싶었다.

저 행복해하는 미소를 지켜주고 싶었다.

“안젤라 님.”

“응?”

소니아가 안젤라의 손을 조심스레 잡아주었다.

새삼스러운 소니아의 모습에 안젤라가 미소를 지어주었다.

“꼭 건강하셔야 해요. 주안 도련님을 낳으셨을 때처럼, 무사히……. 이번에는 저도 곁에 있어드릴게요.”

그리고 이번에는 꼭 지켜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는 안젤라의 곁에 설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다시 안젤라가 우는 모습을 소니아는 보고 싶지가 않았다.

소니아의 이런 모습에 안젤라가 생긋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소니아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소니아.”

이번에도 너무나 과분할 정도로 많은 사랑과 보호를 받지만, 이전과 같은 그런 불안감이 이제는 남아 있지 않았다.

주안이 돌아왔고 소니아도 곁을 지켜주며 조금은 믿음직스럽게 변한 남편도 있었다.

이 집에, 이제 다시 모두가 자리를 잡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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