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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104화 (10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104화

주안은 일단 워프 게이트에 대한 것을 생각하였지만, 자신이 세냐와 함께 마를렌까지 가는 것은 너무나 오래 걸린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누구에게 부탁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조금 고민하였다.

하지만 그런 고민도 오래가지 않아 한 사람이 떠올렸다.

대밀림을 함께 갔고 세계수를 보았으며, 요정들을 알고 아미엘을 알면서도 마르티네스와 인연이 깊은 사람.

거기다 그 먼 거리를 빠르게 갈 수 있는, 말에 관해서는 제국에서 그 누구도 따라가지 못한다는 노밀 가문의 후계자인 워랜 노밀이었다.

‘일단 워랜 경에게 부탁해서 세냐만 데리고 빠르게 마를렌으로 간 후에 이곳과 연결되는 워프 게이트만 설치할 수 있다면…….’

물론 우선순위는 대밀림과의 연결 후 아미엘에게 허락을 구하는 것이겠지만, 허락이 떨어지는 순간 곧바로 워랜에게 부탁할 생각이었다.

워랜의 실력이라면 마를렌까지 보름 안으로 달려갈 수 있는 놀라운 마상술이 있었다.

그리고 이 저택에는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노밀 가문의 말들이 다수 있었기에, 그 말을 이용한다면 시간은 더욱더 단축할 수 있을 것이니 말이다.

‘이참에 나도 말 타는 법을 좀 배워볼까.’

언제까지 마차를 이용해 다닐 수도 없었고, 마차를 이용하지 못할 땐 결국 누군가에게 의지해야 하기에, 매번 그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랜에게 부탁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은 정말 못 하는 워랜인지라, 그에게 부탁하긴 조금 그랬다.

실제로 천재적인 자질을 가진 사람들은 의외로 남을 가르치는 것을 정말 못하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들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그들은 스스로 무언가를 너무나 쉽게 배웠고, 배운 대로 타인을 가르쳤지만, 같은 자질을 가진 천재가 아니기에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한다는 것이다.

워랜도 딱 그런 천재 과에 속했고, 그도 무언가를 가르칠 땐 토미에게 했던 것처럼 그냥 달려들어서 냅다 검을 휘두르고, 거기에서 모자란 부분을 알려주었으며,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냈던 이였다.

물론 토미도 워랜만큼 뛰어났기에 그 무식한 방법의 가르침을 다 알아들었지만 말이다.

“뭐, 피터 경이나 아르베리아 경에게 부탁하면 되겠지.”

노밀 가문만큼의 뛰어난 마상술을 가진 이들은 아니지만, 주안은 그런 마상술이 필요한 게 아니다.

주안이 말을 타고 전장에 나가서 검을 휘두르거나 엄청난 속도로 대륙을 돌파하거나 한다는 일이 없으니 말이다.

그저 말을 탈 때 힘들지 않게 잘 타는 법만 배우면 되었다.

일단 주안은 세냐가 자신의 방에 대밀림과 통하는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시간 동안 오랜만에 저택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발걸음을 옮겼다.

엄마를 보고 싶기는 했지만, 앞으로의 시간은 매우 많았고 어차피 오늘 밤은, 아빠에게 미안하지만, 엄마랑 밤새 같이 있을 생각이었다.

그리고 주안이 발걸음을 옮기는 장소는 바로 저택의 호위 기사들을 위한 연무장 쪽이었다.

* * *

몇 달 만에 온 저택의 연무장이었지만 낯인지라 몇 사람이 없었다. 다들 저택의 호위로 바쁜 듯했다.

하지만 이들 중에서는 조금 여유로운 사람들도 있었다.

바로 엄마의 호위기사인 피터와 주안 때문에 마를렌에서부터 끌려온 도리안. 더해서 토미도 오자마자 스승인 피터에게 달려온 듯했다.

저택을 나서지 않는 안젤라로 인해서 그녀의 근접 경호가 대부분 여기사로 대체된 상태라 피터도 저택 내에서는 크게 할 일이 없는 입장이기도 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들을 보며 주안이 달려가 소리쳤다.

“피터 아저씨! 도리안 경! 토미! 그리고…….”

주안이 달려가다 문득, 토미의 곁에 서 있는 남자의 모습에 발걸음을 멈추며 갸웃했다.

토미의 곁에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와 적당히 붙은 근육, 거기다 여기저기 생긴 상처로 꽤나 남자다운 모습의 인물이 서 있었지만, 주안은 그 낯선 모습에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누구더라…….”

이런 주안의 모습에 그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쳤다.

“쥬도입니다, 공자님! 설마 몇 달 못 봤다고 벌써 잊으신 겁니까?!”

“농담입니다. 설마 저에게 용감하게 대드셨던 쥬도 씨를 몰라볼까요?”

솔직히 뒷모습을 보고는 몰랐었지만, 그 사실을 말하면 쥬도가 상처받을 것 같아서 그저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농담에 쥬도가 움찔 놀랐다.

“으윽. 대, 대들었다는 건 좀…….”

겉모습은 남자답게 변했지만, 여전히 그 속마음은 여린 도련님 그대로인지라 주안도 작게 웃어주었다.

“그보다 진짜 많이 바뀌셨네요. 근육도 많이 생기셨고, 상처도 그렇고…….”

농담이 아니라 예전의 쥬도와 지금의 쥬도를 비교해 보면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전은 좀 버릇없는 도련님의 여린 이미지였다면 지금은 험한 일을 많이 한, 많이 버릇없는 도련님 같았다.

몸은 근육이 붙은 만큼 몸집도 전체적으로 좀 커진 듯했으며, 피터에게 많이 시달린 것 때문인지 피부도 예전 같지 않게 꽤나 거칠어져 있었다.

슬쩍 본 그의 손 역시 굳은살이 잔뜩 있는 것에 주안은 안쓰럽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피터 아저씨가 열심히 가르쳤나 보네요.”

“토미가 없으니 저한테만…….”

“크흠.”

쥬도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리고 중얼거리는 그 말을 들은 듯 피터가 작게 헛기침을 내뱉었다.

도리안은 여전히 쥬도를 돌보는 듯 안쓰러운 쥬도의 등을 도리안이 토닥여 주었다.

오랜만에 보는 그들의 모습에 주안이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피터 아저씨도, 도리안 경도 정말 오랜만이에요.”

“예, 건강하게 다녀오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공자님.”

두 사람의 말에 주안이 싱긋 웃어 주었다.

“그런데 두 분도 진짜 많이 놀라셨겠어요.”

“음? 무엇을 말입니까?”

“우리 엄마의 임신 말이에요.”

“크흠……!”

주안의 장난 가득한 그 말에 피터가 크게 헛기침을 하였다.

“피터 아저씨는 정말 모르셨어요?”

“도련님 걱정에, 몸이 아프다 하셔서…….”

“에이, 그래도 엄마 곁에 오래 있으셨는데……. 너무 무심한 거 아니세요?”

이 우직하고 고집스러운 아저씨라면, 엄마의 명령이나 아빠의 명령에 의문을 가지면서도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찾기보단 먼저 명령에 따랐을 게 뻔했다.

그게 피터를 좀 많이 답답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만, 주안은 그런 우직한 모습이 붙임성 없는 삼촌 같아서 참 좋았다.

재차 헛기침하며 주안의 눈을 피하는 피터의 모습에 진짜 집에 온 것을 실감한 듯 주안의 얼굴에서는 즐거운 미소가 사라지지 않았다.

역시 집이 최고라는 게 다 맞는 말인 듯했다.

“그보다 피터 아저씨, 혹시 시간 되세요?”

“시간 말입니까?”

주안이 찾아 왔을 땐 반갑게 인사를 하러 온 것임을 알았지만, 그게 아닌 듯했다.

주안의 말에 잠시 갸웃했지만 ,별다른 고민 없이 피터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이 녀석의 훈련 시간이긴 하나,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곁에 있던 쥬도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피터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보니, 얼른 데리고 가달라는 신호처럼 보인다.

오랜만에 본 것이기도 하니, 쥬도를 도울 겸 주안이 피터에게 말했다.

“잠시 저랑 이야기 좀 괜찮을까요? 실은 피터 아저씨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요.”

“부탁 말입니까? 흠…….”

집에 오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자신에게 한다는 말이 부탁이라는 것에 의아했지만, 이런 주안의 모습만큼이나 자신의 눈치를 살피는 토미의 행동이 이상하였다.

그리고 단번에 토미와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파악한 듯, 별다른 고민 없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알겠습니다.”

“토미 너도, 알지?”

“……네.”

토미도 주안이 피터를 만나려는 이유를 대충 짐작한 듯, 모두와 만난 것에 즐거웠지만 한편으로는 심경이 매우 복잡했다.

주안이 하려는 말은 곧, 자신의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 * *

연무장을 벗어난 주안은 복잡할 집 안이 아닌 정원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곳에 테이블과 의자가 설치된 쉴 수 있는 공간으로 가서 먼저 앉자, 피터와 토미 역시 착석하였다.

평소 같으면 차가 준비되었겠지만, 지금은 같이 나온 하녀도 없었고, 딱히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눌 생각도 없었기에 주안이 피터에게 말했다.

“실은 토미에게 검을 가르칠 새 스승님을 들이면 어떨까 해서 피터 아저씨의 허락을 구하려고 해요.”

“토미에게 새 스승을 두자는 말씀이십니까?”

“예.”

주안의 말에 피터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했지만, 크게 놀라지 않고 침착함을 유지했다.

오히려 그런 그의 모습에 복잡한 심경을 드러내는 것은 토미였다.

그리고 주안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파악한 듯 말했다.

“아스란 왕국에서 토미에게 잘 어울리는 스승을 찾으셨나 보군요.”

“피터 아저씨도 한 번 보셨을 거예요. 아스란 왕국으로 떠나기 전, 저택에 오셨던 유우나 공주님의 호위이셨던 풍신 경이에요.”

“아, 그 한쪽 팔이 없으시던…….”

비록 몇 달 전의 일이며 오가며 스쳐 지나갔을 인연일 뿐이었지만, 워낙 인상이 강한 동방의 무사인 풍신이기에 피터만이 아니라 그를 본 저택의 사람들이라면 기억하는 이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한 인상은 역시 동방의 무사였을 뿐이지 실력에 대해선 의문이 컸다.

“그자가 그렇게 뛰어난 검사였습니까?”

“……함께 하셨던 실버론 하셀 자작님과 호각이셨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실버론 하셀 자작이라고 하면 제국 내에서도 알아주는 실력자다.

황실 근위대에선 단장인 바스티아노 백작 다음가는 실력자였으며 랭크 7에 위치해 있다는 것은 다들 알고 있었다.

그런 실력자와 호각이었다는 것에 크게 놀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풍신이 단지 동방의 무사일 뿐만이 아니라, 외팔이였으며 한쪽 눈만 가진 이였기 때문이었다.

“대단한 분이군요.”

“예, 정말 대단한 분이십니다. 워랜 경도 한 방에 나가떨어지게 만든 것도 모자라, 지금은 워랜 경의 스승이기도 하세요. 워랜 경이 먼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 배움을 청할 정도였어요.”

“워랜 경까지……?”

그 자존심 강하고 자존심만큼이나 실력도 대단한 워랜이 한 방에 나가떨어진 것도 모자라 스스로 고개를 숙였다는 것은, 워랜이 그만큼 풍신의 실력을 대단하다 여기다 못해 반해 버린 것과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주안은 거기서 놀라긴 이르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더 놀라운 것은, 아직 모두에게 알리지 않았지만 워랜 경…… 풍신 경에게 배움을 청하고 제자가 된 지 채 몇 달도 되지 않아서 랭크 7에 올랐어요. 동방 검술의 정수인 검기를 사용하실 수 있게 되신 것이죠.”

“…….”

이쯤 되면 너무 놀라서 할 말이 없어지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주안이 아스란 왕국에서 어떤 일을 벌인 것인지 소문으로 접했지만, 그것은 주안을 중심으로 둔 사절단. 그리고 그 사절단에 포함된 신관들의 활약들뿐이었다.

하지만 따로 떨어뜨려 놓고 본 그 풍신 경이 벌인 일들은 기사로서 더욱 놀라게 만드는 말들뿐이었다.

“그래서 제게 토미를 그 풍신 경이라는 분에게 제자로 들여도 되는지, 물어보시는 것이군요.”

“토미의 스승은 피터 아저씨이니까요.”

그제야 주안이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인지 이해를 한 듯, 피터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제게 물어보실 필요도 없으셨습니다. 더 뛰어난 사람이 저 아이를 높이 이끌어줄 수 있다면, 당연히 그래야 하지 않겠습니까.”

“피터 아저씨…….”

“스승님…….”

서방의 기사들은 정말이지 배움에 대해서는 굉장히 넓은 시야를 가진 이들이었다.

그 꽉 막힌 검술과는 달리 타인에게 배움을 청하고, 배움을 내려주는 것에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다.

좀 더 많은 이들이 검을 배우고 훌륭한 인성을 가진 기사로 커서 가족과 가문, 그리고 나라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든든한 기둥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기사들은 하나같이 우직하고 답답할 정도로 정도를 걷고 더해서 검술뿐만이 아니라 동방과는 다른 정신적인 부분도 매우 강조하는 것이다.

바로 기사도라는 마음가짐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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