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03화
주안은 아버지의 서재에서 나오자마자 엄마의 방으로 향하는 게 아닌,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생각 같아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저택의 사람들, 특히 피터 경과 만나 토미의 일에 대해서 상담하고 싶었지만, 그보다 중요한 일이 생겨 버렸기 때문이었다.
“앗? 도련님?”
오랜만에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 주안은 세라타가 먼저 들어와 주안의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세라타에게 물었다.
“세라타. 세냐랑 마냐, 아냐 못 봤어?”
“아, 세 요정 꼬마이요? 정원으로 놀러 갔어요.”
“정원?”
세 요정 꼬맹이는 함께 온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 알려지긴 하였지만, 그래도 최대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지 않기 위해서 밖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주안의 집이기도 하고 또 마차 밖으로 거의 나오지도 못하여서 그런지 이곳에 오자마자 바깥으로 놀러 나간 듯했다.
주안도 이해하기에 뭐라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조금 급하였기에 활짝 열린 문 너머의 테라스로 향했다.
주안이 왜 이러는지 몰라 갸웃하던 세라타도 조심스레 주안의 뒤를 따라왔다.
“으윽, 안 보여.”
봄이기도 하고 여전한 주안의 신성력을 엄청나게 받은 집은 여전히 반짝거렸고, 더해서 여전히 나무는 푸르렀고 꽃은 화려했으며, 새와 나비들이 유유히 날아다닌다.
이런 상황 속에서 작은 세 요정 꼬맹이들을 찾기란 꽤나 어려웠다.
“으으음……. 어디 있는 거람.”
“도련님, 혹시 세냐랑 마냐, 아냐를 찾으시는 거예요?”
“응, 급하게 물어볼 게 좀 있어서.”
주안의 말에 갸웃하긴 했지만, 급해 보이는 그 모습에 세라타가 총총히 방으로 걸어가 자신의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 다시 주안이 있는 테라스로 걸어왔다.
“그게 뭐야, 세라타?”
세라타의 손바닥 위에는 알록달록한 포장지에 싸여 있는 사탕과 쿠키 같은 간식들이 놓여 있었고, 그것을 왜 가져온 것인지 모르겠다는 듯 주안이 물었다.
그러자 세라타가 방긋 웃으며 말했다.
“간식 드세요~”
“웬 간식…….”
세라타의 작은 외침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이내 어디선가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작은 요정들이 있었다.
“초코 잔뜩 쿠키!”
“와아~! 사탕이다!”
“…….”
서로 경쟁하듯 날아오는 세냐와 마냐. 그리고 뒤에서 느릿느릿 날아오는 아냐의 모습에 주안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안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세라타의 손바닥으로 돌진한 세냐와 마냐는 각각 쿠키와 사탕을 집어 들었고, 포장을 벗긴 뒤 자기 얼굴만 한 사탕과 쿠키를 맛있게 먹어댄다.
대신 조금 늦게 온 아냐에게 주안이 직접 쿠키를 집어 들어 먹기 좋게 잘라내어 아냐에게 전해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주안이 준 쿠키 조각을 받아든 아냐가 예의 바르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를 하더니 두 언니와 마찬가지로 간식을 오물거렸다.
“……과자, 좋아했구나.”
“어머, 모르셨어요?”
“으응…….”
어쩐지 세 요정 꼬맹이가 토미와 세라타랑 자주 어울린다 싶었더니, 이게 이유였나 싶었다.
“아, 그보다 세냐.”
“왜요.”
심드렁한 세냐의 모습에 쿠키를 빼앗을까 싶었지만, 그러면 오히려 불리해지는 것은 자신이라는 것을 알기에 주안이 새침한 세냐의 얼굴을 보다 심호흡 후 말했다.
“혹시 그 워프 게이트라는 것 말이야, 여기에 만들어주는 거야?”
“여기가 오빠 방이라면서요? 여기가 편하지 않아요?”
“어디든 가능하다는 의미지?”
“뭐, 상식을 벗어난 장소만 아니라면요.”
세냐의 말에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두 곳에 설치 가능할까?”
“두 곳?”
주안의 말에 세냐가 사탕을 먹다 움직임을 멈추고 주안을 올려다보았다.
그런 세냐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주안이 말했다.
“실은…….”
그리고 말을 꺼내려다 주안이 곁에 세라타가 있다는 것에 아차, 해버렸다.
너무 급한 바람에 세라타를 전혀 생각지 못하고 말을 꺼냈기 때문이었다.
사실 대밀림의 일에 대해선 많은 사람에게 알려주어선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안은 소니아와 세라타에게도 말을 하지 않았을 정도였다.
“곤란한 말씀이라면 제가 자리를 비울게요, 도련님.”
생긋 미소를 짓는 세라타의 모습에 주안이 잠시 고민을 하였지만, 어차피 워프 게이트가 설치된다면 많은 이가 이용하게 될 것이다.
부모님뿐만이 아니라, 마를렌에 계시는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과 가론 자작, 더 나아가 중요한 일이 생길 때 더 많은 이가 이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아미엘의 말을 따르면 이것을 여닫을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주안의 의사에 있었으니, 아무나 이용은 못 한다.
하지만 이 사라진 마법, 워프에 대해서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특히 마법사들이 알게 된다면 큰 소란이 일어날 게 뻔했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놀랐을 정도였으니, 그 파장은 분명 클 것이다.
“아냐, 세라타. 일단 비밀이지만 어차피 나중에 다 알게 될 거니까. 대신 당분간은 조심해 주면 돼.”
“네, 도련님.”
주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라타의 그 모습이 귀여워, 주안은 그런 세라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세라타를 보며 생각했었는데 진짜 동생이 생긴다고 하니 기분이 참 묘했다.
“워프 게이트 설치하는 장소가 이곳이랑 대밀림의 세계수만이 아니라, 다른 한 곳도 이곳과 연결되었으면 해서 말이야. 가능할까?”
“딱히 상관은 없는데……. 어디랑 연결하고 싶어서 그래요?”
“응, 우리 할아버지 집.”
“할아버지 집?”
세냐가 갸웃하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해주었다.
“아미엘 님의 부탁이 뭔지 알지? 그거 때문에 할아버지 집으로 가야 하는데, 생각해 보니 이 워프 게이트라는 것만 있다면 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즉, 이 방에서 편하게 모든 걸 다 해결하고 싶은 방구석 폐인이 되고 싶다?”
“그런 게 아니라…….”
히죽 웃는 밉살스러운 세냐의 모습에 볼을 꼬집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비슷하였기에, 뭐라 말을 하면 지는 것을 알기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안이 말했다.
“그게 가능하다면 좀 더 많은 걸 할 수가 있어서 그래. 아미엘 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도 그렇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더 많이 생길 거야.”
“흐응~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만큼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긴 하네요.”
외모는 완전 아이인데, 하는 말은 너무나 어른스럽고, 많은 것을 아는 세냐의 말에 주안도 적잖이 놀랐다.
왜 마냐와 아냐가 세냐를 언니로 따라다니고 존경하는 것인지 대충 알 듯했다.
이런 것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그것도 매우 대단한 마법을 쓰는 것을 주안도 보았고, 스스로도 아미엘 다음 가는 실력자라고 했으니 정말 보통이 아니지 싶었다.
“혹시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주었으면 해. 아미엘 님의 허락이 필요하다면 내가 가서 부탁해 볼게.”
“하나 정도는, 오빠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아미엘 님의 허락까지 필요하진 않아요.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것 자체도 힘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어요.”
“문제?”
세냐의 말에 주안이 흠칫 놀라긴 했지만, 세냐는 매우 귀찮다는 투로 입술을 삐죽이며 말했다.
“워프 게이트를 설치할 장소로 가야 한다, 이 말이죠.”
“아…….”
주안도 세 요정 꼬맹이가 이곳에 온 이유가 대밀림의 세계수와 연결되는 워프 게이트의 설치 때문인 것을 떠올리고는 세냐의 말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럼 그것 말고는 여러 장소에 여러 개의 워프 게이트를 만드는 것 자체는 괜찮은 거지?”
“그렇긴 해요. 하지만 제가 부탁받은 것은 순수하게 이곳과 아미엘 님이 계시는 곳까지의 연결이고, 제 독단적인 권한을 더한다면 한 곳 정도이지 그 이상은 아니라는 말이죠.”
“아미엘 님의 허락만 있다면…….”
불가능하다는 말보다는 확실히 희망적인 세냐의 말이었다.
갑자기 떠오른 일이긴 했지만, 단순히 마를렌과 집을 오가는 것 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이것을 사용한다면, 정말 대단한 일이 되지 싶었다.
“워프 게이트는 세냐 너도 작동시킬 수 있지?”
“그야 제가 만드는 건데, 제가 못 쓰면 말이 안 되잖아요. 여기서 만들 건, 일단 오빠를 두 번째 인식자로 만들어 자애의 성흔과 연결시켜서 문을 열 수 있게끔 하는 방법으로, 일단 보안을 좀 더 철저하게 한다면 여러 번 꼬아서 애초에 작동시키지 못하게 만드는 것과 작동을 시켜도 발을 들이는 순간 공간의 틈 속에서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함정을 만들어서…….”
“으…….”
듣는 주안이나, 곁에 있는 세라타나, 간식을 먹던 마냐와 아냐까지 세냐의 말에 머리가 아픈 듯했다.
하지만 설명을 좋아하고 자랑하는 것에 우월감을 느끼는 것에 행복을 찾는 세냐로선 대단히 즐거운 일이기에, 다른 사람들이 그러거나 말거나 자기 할 말만을 해주었다.
“그, 그래, 일단 알겠는데……. 혹시 세냐 너나 나 말고, 다른 사람도 이걸 작동시킬 수 있는 거야?”
“복잡한 수식을 다 빼고 보안상의 문제도 모두 제외한다면야 마법사라면 누구든지? 그냥 마나만 쏙 집어넣으면 되니까요.”
“호오…….”
그건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보안만 잘된다면 누구든 사용할 수 있게끔 만들 수 있다는 뜻.
예를 들어 한쪽에서만 이 워프 게이트를 작동시킬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상대방의 허락을 구하고 그 상대방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이상 오갈 수 없다는, 마치 집과도 같은 그런 최소한의 보안 시스템과 함께 다른 여러 가지 보안 사항을 구성하여서 악의적으로 사용될 수 없게 만들기만 한다면…….
“이 워프 게이트라는 것, 세상을 바꿀 수도 있겠는데…….”
“여긴 진짜 워프 게이트가 하나도 없어요?”
세냐의 물음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적어도 주안이 그동안 보아온 책의 내용에는 워프 게이트에 대한 내용은 없었다.
무작위로 많은 책을 읽었지만, 마법과 관련된 전문적인 서적은 구하기도 힘들고, 언어도 마법을 기초부터 배워야 알 수 있는 언어들도 다수 섞여 있어 읽는 것 자체가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주안이 읽은 역사서에도 워프 게이트에 관한 내용은 없었기에 주안은 그에 대한 지식이 전무했다.
“이 세상이 진짜 이상해지긴 했네요. 마법의 깊이는 모르겠지만, 다양성은 정말 인간들이 최고였는데……. 여기 있는 마법들도 딱히 쓸 만한 게 몇 보이지도 않고…….”
“그래? 그래도 나름 황립 마탑에서 신경을 써줬는데.”
사시사철 날씨에 상관없이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주는 것은 주안이 성흔으로 집을 이렇게 바꾸어놓기 전에도 있던 것이었다.
게다가 보안에 관해서도 철저하게 해놓았기에, 담을 넘는 순간 저택을 지키는 경비와 호위 기사들만이 아니라 황립 마탑과 황성으로도 신호가 가며 순식간에 실력자들이 달려온다.
저택 건물 자체도 쉽게 부서지고 부식되지 않는 강화 마법으로 처리되었다.
마법등은 아침저녁으로 알아서 켜졌다 꺼졌다 하며, 몇몇 중요한 방은 잠금 마법이 걸려 있어 주레인 공작 외에는 출입조차 불가능하다.
하지만 세냐의 마법 솜씨를 이미 보았기에, 그 자그마한 호기심 가득한 눈에는 저택의 마법에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딱 봐도 귀한 집 같은데, 그런 귀한 집의 마법이 이 정도 수준이면…… 인간의 마법 수준은 엄청나게 떨어졌다는 의미인데…….”
“뭐, 어쩔 수 없지. 대암흑기의 혼란 때 역사적 자료만이 아니라 여러 기술도 많이 실전되었으니까.”
단지 역사의 단절만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찬란한 문명을 유지시켜 주었던 기술들도 다수 사장되었고 그 기술 중에서는 검술뿐만이 아니라 마법도 많았다.
오래전, 서방 대륙도 동방 대륙처럼 많지는 않아도 다양한 검술과 창술, 무술 등등이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실전되고, 지금은 오직 배우기 접하기 쉬운 무술 하나로 통일된 것이니 말이다.
“생활 양식은 크게 변하지 않았어도, 어쩜 이렇게 알맹이만 쏙 빠진 껍데기만 남은 세상 같은지…….”
“어쨌든 여러 장소에 여러 워프 게이트를 만들 수는 있다는 것이지? 조건을 설정할 수도 있고 말이야.”
“일단은 그래요. 하지만…….”
“알아, 아미엘 님의 허락. 그건 내가 받아볼게.”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하다 해도 아미엘은 유일하게 주안에 대해서만큼은 매우 호의적이다.
자애의 성흔을 가졌다는 것도 그렇고, 주안의 선조가 엘프인 엘 하임 마를렌이라는 것을 그녀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안 역시 지금은 그 말을 다 믿지는 못하더라도, 그녀의 말에 따라 마를렌에 대해 조사하며 알아볼 생각이긴 하였다.
“좋아. 일단 대밀림의 세계수까지의 연결을 먼저 하자. 재료는 필요한 게 있어? 필요한 거라면 내가 뭐든지 준비해 줄게.”
“맛있는 간식이랑 충분한 휴식 정도?”
주안의 물음에 세냐가 히죽 웃으며 그렇게 말하자, 너무나 간단한 조건에 주안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정도라면 얼마든지.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마냐는 고기 먹고 싶어!”
“아, 아냐는 꿀 과자도 먹고 싶어요…….”
“흐흥~ 나는 에튜드에 절인 송어 요리와 함께 곁들여 먹는 메아드의 치즈랑 엠바스 산 붉은 와인을 먹고 싶네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최선을 다해서 준비해 볼게.”
세상을 바꿀 기적을 행할 세 꼬맹이를 움직이는 게 간식밖에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얼마나 어이없어할까.
하지만 이런 세 꼬맹이의 순수한 모습을 보면 마냥 미소가 지어지는 주안과 세라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