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101화
반쯤 기절한 채 소리친 주안 때문에 작은 소란이 일었지만, 안젤라 공작부인의 임신 소식은 꽤나 소란스럽게 퍼지게 되었다.
정말로 꽁꽁 숨겼던 것인지 안젤라 공작부인의 아버지인 현 황제 폐하마저 주안과 마찬가지로 오늘 알아 버린 듯 했다.
그 소식을 접한 황제 폐하가 기절하는 바람에 중앙 광장은 순식간에 혼란에 빠졌고, 실려 가는 황제 폐하와 그 이유에 대한 소문은 누가 일부러 퍼뜨리려 하지 않아도 황도를 강타하였다.
머지않아 황도를 넘어 제국에 퍼질 것임이 확실했다.
주안 역시 어버버 하는 사이에 소란스러운 이 장소를 피하려는 듯 주레인 공작의 명에 따라 오랜만에 만난 집안의 호위 기사들에게 거의 강제로 저택으로 향하게 되었다.
이 때문에 사절단에 참여한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도 모두 저택으로 가게 되었다.
이를 말리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현 황제 폐하가 기절해서 실려 가는 그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으니 말이다.
붕 떠버린 것은 사절단에 포함된 남부 귀족들이었지만, 그들을 신경 쓰는 이들은 그래도 프로다운 황성의 시종과 시녀들밖에 없었다.
모든 시선은 기절한 황제 폐하와 마르티네스 공작가, 안젤라 공작부인과 주안에게 향해 있을 뿐이었다.
* * *
집에 도착 후 주안은 오랜만에 자신의 방으로 옮겨져 강제로 눕게 되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주안이 벌떡 일어나 자신을 걱정스럽게 다독여 주는 엄마와 방 안을 서성이던 아빠에게 물었다.
“대, 대체 언제 엄마가 임신하셨던…… 거예요.”
놀라서 크게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주안도 엄마의 배를 보고는 황급히 목소리를 낮추었다.
이런 주안의 말에 주레인 공작가 작게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크흠, 그게……. 네가 사절단으로 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되었구나. 지금 5개월쯤 되었다고 들었단다.”
5개월이면 사절단으로 가기 전에 이미 임신 상태였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그렇지만 주안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아니, 그러면 왜 저한테까지 비밀로 하신 건데요.”
초기 임신 상태야 모를 수도 있었다.
알고 나서도 자신에게만 비밀로 한 게 아니라 황제 폐하마저도 몰랐을 정도로 숨긴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주안 자신에게도 비밀로 한 것은 큰 충격이었다.
주안이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이 중요한 일을 숨긴 엄마와, 그것에 동조한 아빠.
적어도, 외할아버지인 황제 폐하나 자신에겐 알려야 하지 않았던 것일까.
이런 주안의 화난 모습에 안젤라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말할 수가 없었어, 주안아. 너에게도, 네 할아버지에게도…….”
“아니, 대체 왜요.”
“또…….”
안젤라가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그것은 울음을 참기 위해서 짓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잡아주었다.
그 때문인지 조금은 용기가 나고, 기운이 난 듯 안젤라가 주안에게 말했다.
“또……, 이 아이가 잘못된다면, 너도, 네 외할아버지도…… 모두가 많이 힘들어할 거잖니.”
“엄마…….”
왜 그런 것인지 주안도 이해했기에 엄마에게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주안은 자신의 위로 형인지 누나인지, 알 수는 없지만, 태아 상태였던 형제가 있었다.
엄마의 유산은 주안 자신에 대한 집착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알기에 엄마의 과한 행동에도 말릴 수가 없었고, 이전 삶 속에서는 그렇기 때문에 마마보이가 되어버린 것이니까.
이런 엄마를 이해하기에 주안은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말했다.
“그런 걱정하지 마세요. 잘못되는 것을 먼저 걱정하시면 안 되잖아요,”
“주안아…….”
“이건 축복이나 마찬가지인 일이고, 기뻐해야 할 일이잖아요.”
주안이 싱긋 웃자 안젤라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그리고 이런 엄마에게 주안이 물었다.
“그보다 대체 이걸 어떻게 숨기고 계셨던 거예요? 몇 명이나 아시는 거고요.”
“우음……. 아는 사람은, 네 아빠랑 하녀장이랑 마리아, 그리고 대신관님 정도뿐이야.”
“……설마 집안사람들에게도 계속 숨겼던 거예요?”
“응, 오늘 아침에 알렸지.”
엄마의 밝은 표정은 좋았지만, 주안은 한숨이 다 나왔다.
엄마의 배를 보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놀랐을까.
설마 피터 경에게도 숨겼던 것인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이 사실을 알고 경악했을 피터 경의 얼굴을 보지 못 했다는 게 매우 아쉬웠다.
게다가 진짜 계속 숨기고 싶었던 것인지 중앙 광장에서도 하녀들 틈에 숨어 있었고, 드레스도 매우 펑퍼짐한 것을 입고 있었던 탓에 주안도 가까이 가서 엄마를 봤을 때, 조금 살이 찐 건가 하는 그런 생각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엄마와 함께했던 주안마저 그런 착각을 했을 정도인데, 평소 잘 보지 못 하는 이들은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외할아버지가 깨어나셔서 부르시기 전에 찾아가야 할 것 같아요.”
“헤헷. 엄마, 많이 혼날까?”
“아뇨, 절대 못 혼내실걸요.”
“응? 그래?”
“하아……. 어떻게 혼내요. 괘씸하긴 해도, 엄마 뱃속에 외손자인지 외손녀인지, 어쨌든 아이가 있는데…….”
분명 외할아버지인 황제 폐하는 깨어나자마자 노발대발하며 엄마를 찾을 게 뻔했지만, 엄마를 혼내거나 할 수는 없다는 것을 주안은 잘 알고 있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기절한 것이 걱정되긴 했지만, 외가의 핏줄은 기절이라는 것이 일상인지라 사실 주안은 외할아버지의 건강보다 체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그런데, 그, 혹시……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주안의 말에 안젤라가 풋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 행동에 주안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지만, 정말 많이 궁금했다.
대신관님도 아신다면 성별을 알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젤라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은 몰라. 그래도 엄마는 주안이 닮은 딸이었으면 좋겠는데.”
“절 닮으면 안 되죠. 엄마 닮아야죠.”
“흥~ 이다. 우리 주안이가 엄마 닮았으니, 주안이 닮은 딸이면 주안이 만큼 사랑해 줄 수 있는걸.”
엄마의 아이 같은 말투와 그 투정에 주안은 그제야 집에 돌아온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그런 엄마의 모습에 주안이 조용히 엄마를 껴안아주며 말했다.
“다녀왔어요, 엄마.”
“……잘 다녀왔어. 우리 아들.”
주안의 행동에 안젤라가 살풋 미소를 지으며 주안을 꼬옥 안아주었다.
따뜻한 이 느낌은, 정말 너무나 오랜만이라 안젤라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나올 것만 같았다.
임신 사실 때문에 안젤라는 매우 걱정스러웠다.
만약 주안이 싫어하면 어떻게 될까, 보고 싶지 않다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리고 이 아이가 잘못되면 어떻게 될까.
수많은 걱정 탓에 밤에 제대로 잠을 자지 못 했을 정도였고, 주레인 공작의 걱정도 나날이 커져갔다.
하지만 돌아온 아들은 이런 엄마를 부드럽게 다독여 주며 오히려 자신을 걱정하여 주니, 그제야 임신에 대한 사실이 처음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런 두 사람을 보며 멀찍이 떨어져 있던 주레인 공작이 작게 속삭였다.
“……아빠도 있다만.”
왠지 조금 동떨어진 채 씁쓸한 미소를 짓는 주레인 공작이었지만, 저기에 끼어들어 방해하면 꽤나 좋아진 부부 사이가 틀어질 것만 같아 다가갈 수가 없었다.
핑크빛 분위기 속에, 쓸쓸함을 느끼는 이 시대의 가장이란 어쩔 수가 없었다.
* * *
황도에는 정말 순식간에 소문이 퍼져 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간다는 동방의 속담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제국 곳곳으로 퍼져 나갈 것만 같았다.
사절단에 대한 소리보다, 황제 폐하가 기절했다는 것보다, 안젤라 공작부인의 임신 소식이 더 큰 일이라는 듯 입과 입을 통해 전해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쯤 되자 주레인 공작도 더 이상 숨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느꼈다.
안젤라는 몸조리를 위해 그녀의 방으로 마리아와 하녀장에게 부탁해 보내었고, 대신 주안만 데리고 집무실로 와서 장거리 통신용 마법 장치를 이용해 마를렌으로 통신 연결을 하였다.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이 일에 대해 알려드리기 위해서였지만…….
-너 이놈의 자식아아아아아아아아!
“커윽, 아, 아버지…….”
주안은 이럴 줄 알고 미리 귀를 막고 있어서 할아버지의 분노에 찬 목소리에 별 피해가 없었지만, 방심하고 있던 주레인 공작은 그대로 직격당해 버린 탓에 괴로움에 몸부림을 친다.
주레인 공작 역시 이미 다 밝혀졌고 안젤라도 이제 알리려고 하는 것에 마를렌에 계시는 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연락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하지만 솔직히 이제 와서 연락하는 것은 정말 무서웠다.
그래도 다행이 주안에 대한 소식도 알려야 하기에 곁에 주안을 두고 대화를 한다면 분노의 3할 정도는 줄어들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듯 큰 호통에 저택이 쩌렁쩌렁 울렸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밖에서 대기 중이던 호위 기사들이 적의 습격으로 착각하고 들어왔을 정도였다.
그런 호위 기사들은 장거리 통신용 마법 장치 너머로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채 곰방대를 두 동강으로 내버리고는 씩씩거리며 이쪽을 노려보는 벡브란 전대 공작의 모습에 움찔 놀랐고, 주안의 괜찮다는 말에 겨우 발걸음을 돌려 다시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할아버지, 조금만 참으세요. 아빠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숨길 것이 따로 있지, 며느리의 임신을 숨겨?! 네 녀석이 제정신이냐!
“죄, 죄송합니다, 아버지. 하지만 안젤라가 부탁해서 어쩔 수 없이…….”
-네 녀석 나이가 몇인데 아내한테 붙잡혀 살아?! 그러고도 네 녀석이 이 가문의 가주더냐!
‘할아버지도 할머니한테 붙잡혀 살았다고 들었는데…….’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대대로 내려오는 것은 아이가 하나 이상 태어나기가 어렵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공처가 집안이라는 것도 있었다.
벡브란 전대 공작도 아내를 너무 사랑한 탓에 그녀가 주레인 공작을 낳다 사망한 뒤로는 처를 들이지 않은 채 살았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건 시조 힉스 마르티네스에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유구한 전통으로, 당대의 공작들은 그 사실을 부정하지만, 공처가의 피는 어디 안 간다.
할아버지의 호통에 아빠가 잔뜩 주눅이 든 채 혼나는 모습은 꽤나 안쓰러웠고, 그것을 계속 보기는 주안도 힘들었기에 조용히 나서서 말했다.
“어쩔 수 없었어요, 할아버지.”
-뭐가 어쩔 수 없었단 말이더냐.
“엄마가 또 할아버지와 다른 분들을 걱정 끼쳐 드리고, 슬프게 만들고 싶지 않으셔서 그랬던 거예요. 저도 오늘 알았지만, 실망스럽긴 해도 엄마를 이해해요.”
-끄응…….
안젤라의 걱정이 어떤 것인지 알기에 벡브란 전대 공작도 이 사실을 숨긴 안젤라에게 뭐라 말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아들 사랑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안젤라가, 주안에게도 비밀로 한 것은 꽤나 놀라운 일이었고, 그렇기에 더 이상 화를 내기보단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황제 폐하께선 어떠시냐. 이 일에 대해 들으셨을 터인데.
“기절하셔서 아직 못 깨어나셨어요.”
-……그래, 깨어나시기 전에 달려가서 사과드리고 제대로 말씀드리거라.
기절까지 한 황제 폐하의 건강을 묻지 않는 것은 이제 그러려니 하기에 주안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벡브란 전대 공작이 곁에 두었던 새 곰방대를 집어 들고는 불을 붙인 뒤 한 모금 빨아들이더니 하얀 연기를 토해내며 말했다.
-그래, 그런데 주안이 너는 대체 아스란에 가서 무슨 짓을 저질렀던 것이냐. 여기까지 네 이야기로 떠들썩하구나.
“그냥, 할 일을 좀 했을 뿐인데…….
-대체 할 일을 뭘 어떻게 하였기에 너에게 어린 성자라며 신관 놈들이 찾아와서 나에게 인사까지 하는 것이냐. 거기다, 아스란 왕국의 상인 놈들까지 선물을 내게 보내더구나.
“아하하…….”
아스란 왕국에서 보내는 선물은 협박 편지거나 독이 뭍은 단검 정도뿐이던 그에게 진짜 정성껏 준비한 선물이 왔을 땐 헛것을 본 것으로 착각하고 슬슬 갈 때가 되었다는 생각마저 하였던 그였다.
하지만 그 선물을 보낸 이가 직접 찾아와 무릎을 꿇고 감사의 인사를 할 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크게 놀랐을 정도였다.
주안이 아들을 살렸다고도 하고, 가족을 구해주었다고도 하고, 마을을, 도시를, 지역을…….
대체 무슨 일인지 직접 사실을 알아보기까지 한 벡브란 전대 공작이었고, 주안이 한 일에 대해 알아냈을 땐 크게 놀라기까지 하였다.
아스란 왕국과의 어이없는 전쟁 발발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벡브란 전대 공작은 눈을 날카롭게 뜨며 주안에게 차갑게 말했다.
-하지만 할애비로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전대 가주로서, 너를 대견스럽다고는 생각하여도 잘했다고 칭찬을 할 수 없구나.
“할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