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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98화 (9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98화

일행과 함께 왔지만 에반드리안 맥도넬은 주안과 독대를 원하였다.

주안 역시 그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에, 요구에 승낙하며 에반드리안 맥도넬과 단둘이 저녁의 시간을 가지는 자리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사태를 대비해 실버론 하셀 자작이나 아르베리아는 저녁을 거절하고, 두 사람이 독대를 나누는 식당의 입구를 지키는 쪽으로 선택하였다.

그런 두 사람에 대해 미안해지긴 하였지만, 주안도 이곳에 진짜 저녁밥을 먹으러 온 것은 아니었고, 두 사람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정찬이 차려지고, 긴 식당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안과 에반드리안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앉았다.

음식을 내어오고 테이블 가득 채울 때까지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였다.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있는 동부의 식문화는 코스 요리가 정해져서 순서대로 나오는 게 아닌, 한 번에 모든 요리가 준비되어 나오며 함께 둘러앉아 다양한 요리를 조금씩 덜어내어 먹는 형태였다.

그리고 밴들리 쿼빅이 이곳에 초대할 때 한 말처럼, 동부의 식문화 형태 그대로 준비되어 나오는 것에 확실히 어떤 형태로든 대화를 하기 위해 자리를 마련한 것임을 느꼈다.

“마음에 드시지 않습니까? 일부러 주안 공자를 위해 동부의 요리사들을 급하게 모셔서 준비한 것인데.”

“요리는 훌륭합니다만, 동부의 요리는 많은 이들이 함께 먹는 요리입니다. 둘이서 먹기에는 이건 과하지요.”

“마음에 드시는 것을 드시고, 남는 것은 버리면 되는 일. 문제가 있겠습니까?”

“아깝잖습니까. 밖에 있는 우리 사람들은 지금쯤 노숙을 하며 대충 만든 요리로 배를 채울 텐데, 저만 이렇게 과한 요리를 먹는 건 좀 아니지요.”

이런 주안의 말에 에반드리안이 비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생각보다 검소하시군요.”

하지만 주안 역시 지지 않겠다는 듯 느긋하게 받아 쳐주었다.

“검소한 게 아니라 배려입니다. 그리고 아껴야 잘 사니까요.”

“제국에서 황가 다음으로 부유한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언제부터 절약을 달고 사셨던 것인지…….”

“보이는 것만이 다가 아니죠. 돈이 많을수록 검소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게 해서 부자가 된 이들이 있으니까요. 아껴야 잘 산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지요.”

검소함과 소박함을 달고 있는 이들 중에서 그렇게 하였기에 많은 재산을 모으고 남부럽지 않은 부를 쌓은 사람들이 적지는 않았다.

하지만 날 때부터 남부럽지 않은 재산을 가진 에반드리안은 주안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갸웃하며 말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만큼은 아니지만, 저희 맥도넬도 모자라지 않는 가문입니다. 그런 걱정은 감사하나, 그다지 필요는 없군요.”

“이건 경험에서 우러나온 충고인데…….”

“충고……?”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안의 충고라는 말에 에반드리안의 표정이 차갑게 변했지만, 그를 자극하려고 한 말은 절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돈을 물처럼 쓰다가 망한 내 경험을 알려주고 싶어서 한 말이었는데.’

이미 한번 이런 미칠 듯한 과소비로 망해 버린 경험이 있었기에 해줄 수 있는 주안의 조언이기도 했다.

물론 에반드리안이 받아들이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흠……. 일단 각설하고, 본론으로 들어가도록 하지요. 젠다르 요새의 성문을 닫고 저희를 막은 이유가 뭡니까.”

“말했다시피 혹 있을지 모를 전염병 때문입니다, 주안 공자님.”

묘하게 비꼬듯 주안 공자님이라 하는 그의 말에 주안도 슬쩍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변명이 너무 유치하지 않습니까? 이미 다 해결하고 돌아온 저희입니다.”

“그거야 모를 일이지요. 아직 어려서 모르시겠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주안 공자.”

‘세상이 만만하지 않는다는 건, 당신보다 잘 압니다만.’

주안은 에반드리안 맥도넬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은근슬쩍 배려해 준다는 이유로 주안을 부르던 호칭인 주안 공자님이 아닌, 주안 공자로 변한 것에도 그가 주안을 조금 아래로 내려다보기 시작한 것을 느꼈다.

그렇기에 주안도 싱긋 웃으며 말했다.

“예, 세상은 정말 호락호락하지 않더군요. 절반이나 되돌아간 사절단 때문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꽤나 고생을 했지 뭡니까, 에반드리안 공자.”

“…….”

은근슬쩍 되돌아간 남부 귀족들을 문제 삼으면서도 에반드리안 맥도넬이 한 것을 주안도 그대로 돌려주었다.

그 때문인지 에반드리안 맥도넬이 처음으로 손을 뻗어 물컵을 집어 들고 물을 한 번에 쭈욱 들이켰다.

그가 테이블 위에 빈 컵을 내려놓았지만, 그 잔을 채워줄 하인조차 들이지 않았기에 그가 직접 잔을 다시 채울 수밖에 없었다.

생각 같아서는 주안이 직접 잔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너무 멀었고 또 괜한 자극을 이 이상 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주안도 물을 한 잔 마신 뒤 적당한 요리 한 점을 덜어 먹었다.

이런 주안의 모습에 에반드리안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넉살이 좋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위기의식이나 경계한다는 그런 게 없는 것일까.

에반드리안이 무슨 생각을 하든 주안은 요리들을 한 점씩 덜어 먹으며 맛을 보기 시작했다.

‘나쁘진 않네.’

원래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하는 동부 요리는 다양한 요리가 준비되긴 하지만 이처럼 많은 양은 아니었다.

손님용으로 마련된 자리에선 하인들의 도움이 필수지만, 여긴 하인들이 전혀 없기에 그저 손이 닿는 곳에 있는 요리만 먹었지만, 썩 나쁘진 않았다.

“그런데 에반드리안 공자는 안 드세요? 이거 꽤 맛있네요.”

“…….”

주안의 말에 에반드리안이 말없이 주안을 노려보다 그 역시 조금씩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서로 말 없는 식사 시간이 되었지만, 뭐라도 좀 들어가면 분위기가 바뀌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어느 정도 배를 채운 뒤 주안이 에반드리안에게 물었다.

“가능하면 오늘 저녁에는 요새의 문을 열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에반드리안 공자.”

자기 먹을 거 다 먹고 말을 거는 바람에 에반드리안이 잔뜩 찌푸리며 입안에 있는 것을 얼른 삼킨 뒤 냅킨으로 입가를 닦아낸 후 에반드리안이 답했다.

“말했다시피 전염병을 이유로 열어 드릴 수 없습니다.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주안 공자.”

“그럼 오늘 저녁 밤을 새워서라도 다른 요새로 가죠, 뭐. 보자, 여기서 반나절 거리에 있는 게 아마 센탐 요새였던가요.”

“그곳으로 가셔도 요새의 문을 열어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흐음? 그런가요? 그럼 열어주는 요새가 생길 때까지 남부 국경 순회나 하면 되겠군요.”

“그저 이곳에서 차분히 기다리십시오. 셰블로 대신관도 오셨겠다, 그분이 살펴보신 뒤 괜찮다 하시면 의견을 모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후훗, 그 의견을 모아 답을 찾는 데 일주일은 걸릴 것 같은데, 아닌가요?”

일주일이 아니라 보름은 붙잡아두고 싶었던 게 에반드리안이었지만, 그것은 그의 마음일 뿐.

길어봐야 열흘 안으로, 빠르면 주안의 말대로 일주일 안으로 열어줄 생각이었다.

지금 하는 일은 그저 남부는 마르티네스에 모자라지 않은, 맥도넬의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무력시위 같은 것일 뿐이었다.

질투가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질투심으로 이들을 자극하고 무력 분쟁을 이끌 생각은 그 역시 없었다.

에반드리안은 그 정도로 멍청한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주안도 그것을 어느 정도 알고는 있지만, 순순히 따라줄 생각이 없었기에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남부 국경 순회가 낫겠군요.”

“괜한 고생을 하시지 마시고 느긋하게 지내고 가신다, 생각하십시오. 편의 정도는 봐드리도록 하지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남부 국경 요새의 순회를 다닌다면, 3일 안으로 어디든 반드시 요새의 문을 열어줄 것입니다.”

그 말에 에반드리안은 주안에게 웃기지 말라고 소리쳐 말할 뻔했다.

남부 국경 요새들에 마르티네스의 입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새의 책임자 중 마르티네스와 연이 있는 이들은 모두 물갈이해 버렸다.

연이 있는 귀족들과 장군들이 있긴 하겠지만, 대부분이 아버지인 하스웰 맥도넬과도 연도 있었고, 맥도넬과 함께 하는 남부 귀족들인 이상, 자신의 연락 한 통이면 그들도 말없이 따라줄 것임은 뻔했다.

적어도 남부에서 마르티네스와의 힘 싸움에서는 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었다.

그쯤 되면 황도에서도 무언가 신호가 올 것이고, 아버지도 이 일을 접하게 될 때쯤 요새의 문을 열어 그들을 맞이하는 것.

지금은 이렇게 마르티네스에게 남부와 맥도넬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마냥 묶어두는 것 역시 자신에게도 가문에게도 좋지 않은 것을 알고 있다.

자신의 이름에 흠이 나지 않고, 가문에 피해가 가지 않는 선.

에반드리안은 그 선을 알기에 분노를 하면서도 냉철한 판단력으로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을 막아 세운 것이니 말이다.

“남부 국경 요새에서 문을 열어주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절대로.”

“아뇨, 반드시 열어줄 것입니다. 역적이 되기 싫다면 말이지요.”

“…….”

역적이라는 말에 에반드리안의 눈매가 좁혀지며 날카롭게 변했다.

그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언급하는 주안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말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고 있기에 억눌렀던 분노가 조금 일어나며 말에 힘이 실렸다.

“역적이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시는군요. 남부 요새들은 지금 정당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에반드리안 공자는 한 가지 착각을 하고 계시군요.”

“무엇을 말입니까.”

날카롭게 변한 에반드리안의 모습에도 주안은 놀라지 않고, 주눅 들지 않은 채 싱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어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습니다.”

“…….”

갑자기 그게 무슨 헛소리인지, 뜬금없는 주안의 말에 날카롭게 변했던 에반드리안의 기세가 순식간에 흩어졌다.

하지만 주안은 전혀 부끄럽지 않다는 듯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

“벌써 몇 달이나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요 며칠도 말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 정도인데, 과연 저희 어머니는 어떨까요?”

주안의 말에 갸웃하던 에반드리안의 안색이 조금 나빠졌다.

그 엄마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떠오른 듯했다.

그렇기에 주안이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에반드리안에게 말했다.

“아들이 집에도 못 오고, 타국에서 계속 맴도는 것도 모자라 이제 집에 오려니 막아 세우는 이들이 있다. 이 소식이 저희 어머니 귀에 들어가시면, 과연 어떻게 될지…… 이건 예상 못 하셨나 봅니다.”

서방 대륙, 아니, 동방 대륙을 포함해서 양 대륙 최악의 마마보이라는 소문은 괜한 소문이 아니다.

지금이야 서방 대륙에서 주안은 마마보이의 이미지가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런 주안을 마마보이로 만든 것은, 주안 혼자 한 일이 아니었다.

안젤라 마르티네스 공작부인.

젊은 시절 제국의 꽃이라 불리던 그녀는 시집을 간 뒤 억척스럽고 못 말리는 말괄량이 공작부인이 되어버렸다.

그것도 아들만 바라보고 아들만 생각하는 아들 바보 어머니로 말이다.

아들에게 잘못된 일이 생기면 그녀가 나선다.

아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그녀가 함께다.

아들과 함께하는 일에는 반드시 그녀가 곁을 지킨다.

평범한 가정의 어머니가 이렇게 하여도 문제인데, 경악스러운 것은 그녀가 전 황녀이자, 현 공작부인인 권력의 정점에 근접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교계에선 그녀가 남편인 주레인 공작보다 권력이 더 막강하다고도 생각한다.

“아무리 안젤라 공작부인이라 할지라도…….”

“저희 어머니라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젠다르 요새의 문이 안 열린다면 말씀드린 센탐 요새로 갈 것이고, 그곳에서도 문을 열어 주지 않는다면 집으로 연락할 생각입니다.”

집에 연락한다는 말에 에반드리안은 주안이 진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것인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마하니 지금 엄마한테 다 일러 버리겠다는, 그것을 협박 카드로 써먹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지, 그런 어이없는 생각마저 하게 만든다.

하지만 주안은 진짜 그 협박 카드를 쓰고 있었다.

“아마 제게 연락을 받는 그 날 곧바로 어머니는 황제 폐하를 찾아가시겠지요. 알현하는 데 며칠이나 시간이 필요하다지만, 저희 어머니에겐 그런 건 소용이 없습니다.”

“황제 폐하의 알현은 주레인 공작각하라 할지라도 몇 시간이나 걸립니다. 전 황녀이셨던 안젤라 공작부인이라 할지라도 황가의 법도가 있고 절차가 있는 법……. 이미 외인이 된 공작부인이 황제 폐하를 만나시려면 적어도 사흘은…….”

“과연 그럴까요? 저는 저희 외할아버지댁에 어머니 손을 잡고 놀러 갈 때 단 한 번도 기다려본 일이 없습니다만?”

“…….”

황제 폐하를, 외할아버지라고 부르고 황성을 외할아버지댁이라고 언급하는 주안의 말이 황당했지만, 진짜 외할아버지가 맞긴 하였다.

그렇다고 정말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하지만 주안은 그렇게 부르는 것에 어색해하지도 않았고, 황제 폐하인 외할아버지도 무척이나 좋아하는 말이었다.

게다가 주안은 단 한 번도 엄마와 함께 외할아버지를 만나러 갈 때 기다려본 일이 없었다.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외할아버지인 황제 폐하를 바로바로 만날 수 있다 생각했다.

한 번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선 짧으면 며칠, 길면 몇 달은 걸린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되지는 않았다.

이 며칠이라는 시간도 고위 귀족에게 해당되는 말이며, 급한 일이 아니라면 하위 귀족들은 얼굴조차 뵙기 어렵다.

일반적인 귀족들의 상식을 아는 에반드리안에게 일반적인 귀족들과 평범한 사람들의 상식 따윈 저 멀리 걷어차 버린 모자의 행동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이상할 것이다.

그것을 안다면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현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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