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93화 (9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93화

“음…….”

주안은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 마냐는 이렇게 머리를 틀어 올리면…… 공주님 완성.”

“오오! 공주님! 마냐도 공주님이야!”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우나 공주가 손으로 마냐의 머리카락을 매만져 주니 짜잔~ 하고 멋진 헤어 스타일이 완성되어 있었다.

‘저것도 재능이라면 대단한 재능인데…….’

만약 공주님만 아니었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미용사가 되지 않았을까, 주안은 그런 쓸데없는 생각마저 했을 정도다.

게다가 주안이 언짢아하는 부분은, 세 꼬맹이가 주안이 아닌 유우나 공주 곁에서 함께 웃고 떠들고 놀고 있다는 점이었다.

마냐만이 아니라, 세냐와 아냐의 머리카락까지 반짝반짝한 것도 주안의 언짢음을 크게 상승시키긴 하였지만 말이다.

“후우……. 그런데 유우나 공주님의 배웅은 필요가 없었습니다만.”

“무슨 소리세요. 집주인으로서, 손님에 대한 배웅은 당연한 거잖아요.”

아스란 왕국 왕도를 떠날 때, 정말 부담스러울 정도로 배웅을 받았다.

그것도 모자라, 유우나 공주가 국경까지 직접 안내 겸 마지막 배웅을 해주기 위해 따라나선다고 했을 땐 솔직히 말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역시나라고 할까, 아스란 왕국의 국왕이자 유우나 공주의 아버지조차 이런 유우나 공주를 말릴 수 없었고, 주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공자님은 집으로 돌아가시며 이제 뭘 하실 생각이세요?”

유우나 공주가 세 요정 꼬맹이들을 손에 올리고는 마차의 창을 열어 바깥 구경을 시켜주며 조심스레 주안에게 물었다.

그런 유우나 공주의 물음에 잠시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 말했다.

“일단, 공부를 좀 하고 싶군요.”

“어머? 공부는 지금도 충분히 많이 하시지 않았나요?”

마법 팔찌에 저장시키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을 유우나 공주는 주안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으로 착각한 듯했다.

게다가 지금은 마구잡이로 책을 읽는 수준이지, 그것은 공부라고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런 사정을 말하긴 솔직히 창피하기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좀 더 제대로 된 공부가 하고 싶어서요.”

“후훗, 제대로 된 공부라면, 후계자 수업 같은 거 말인가요? 그건 꽤 엄할 텐데……. 힘내세요. 공자님.”

“후계자 수업이라…….”

사실 주안은 후계자 수업을 받은 일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이전의 삶 속에서도 그랬고 현재의 삶 속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때나 지금이나 주안은 후계자 수업을 받을 만큼 똑똑하고 의지가 강한 아이도 아니었고, 엄마의 반대로 그러지도 못하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유우나 공주의 말에 그 부분을 조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주안도 느끼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제대로 배워볼까…….’

지금의 주안이라면 엄마를 설득시킬 자신도 있었고, 아빠인 주레인 공작은 크게 기뻐할 것이 확실했다.

무엇보다 이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된다면 주안에게도 몇 가지 이득이 되는 일이 있었다.

‘아미엘 님의 부탁을 들어주면서 제대로 배워봐야겠지. 이게 가능하면 마를렌으로 갈 수 있는 변명도 될 테니까.’

만약 주안이 정식으로 후계자 수업을 받고자 한다면, 그 장소는 황도가 아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근거지인 마를렌이 될 것이다.

공작이 되기 위한 수업을 황도가 아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영지에서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그 수업에 대해선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나설 것이니 말이다.

게다가 이 후계자 수업을 통해 그동안 못마땅해하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봉신 가문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 있었다.

주레인 공작과는 소원하던 그들은 주안을 중심으로 뭉칠 수 있는 계기도 될 것이다.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은 재상의 일 때문에 주안이 후계자 수업을 핑계로 마를렌에 내려간다 해도 황도에 남아야 할 것이니 말이다.

주레인 공작대에서 봉신 가문들과 결속력이 약해진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었다.

언제 올지 모르는 주레인 공작을 대신해, 마를렌의 공작성을 든든히 지키고 있는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여전히 집중된 권력은 그의 사후에도 과연 주레인 공작에게 옮겨갈지 확신이 서지 않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긴 했지.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쩔 수 없이 황도에서 마를렌으로 돌아온 아빠도 3대 백작가 중에서 소벡 백작가 말고는 제대로 휘어잡지 못하였으니까.’

그래도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으로 차근차근 그들을 다시 끌어들여 결속력을 다지려고 할 때, 주레인 공작 역시 갑작스러운 병으로 사망하는 바람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결속력은 한 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주안과 안젤라 공작부인.

이 두 사람은,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짊어지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이들이라는 사실을 3대 백작가뿐만이 아니라 수많은 가문이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의 집에서 벗어나 독립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니까.

‘이해하지……. 이해할 수밖에 없지.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이전 삶의 주안이나 엄마인 안젤라 공작부인이 어떤 인물인지는 주안이 가장 잘 안다.

그렇기에 등을 돌린 그들을 원망하지 않았던 것이다.

가문을 망가뜨린 이는 주안 자신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된 후계자 수업을 통해 봉신 가문들과의 유대를 공고히 다지는 한편, 3대 백작가의 충성도 할아버지에 이어 자신에게로 끌어모아야 했다.

그렇기에 주안이 작게 다짐하며 말을 꺼냈다.

“확실히 이젠 그럴 때가 되긴 하였죠. 저도, 어른이 되어야 하니 말입니다.”

어른, 그리고 노인이 되었던 주안이지만, 실제로 자신을 진짜 어른으로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어른이란 나이만 먹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그만한 연륜과 지식,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몸가짐이 되었을 때 진정한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 부분에선 주안은 빵점짜리 어른이었고, 몸만 큰 애나 다름이 없었다는 사실을 주안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그런 몸만 어른인, 그런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정신도 충분히 성장하고, 누구에게나 어른으로서의 대접받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니, 이번에는 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번에는 저도 변해야겠지요…….”

“공자님?”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리고 조용히 세 꼬맹이 요정와 마찬가지로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주안은 가출의 벌로 워랜의 짐 마차를 이용해야 하는 소니아의 불만스러운 눈과 마주쳤지만, 싱긋 웃으며 손만 흔들어 주었다.

세라타는 토미와 이야기를 나누며 갈 수 있어서 그런지 나름 즐거워 보였고, 워랜은 풍신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연신 하품만 해대고 있었다.

솔만이 여전히 시무룩한 채 마차를 몰고 있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에 들뜬 이는 아무도 없다는 게 참 신기하다.

주안도 지금은 집으로 가서, 아미엘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과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기 바쁘다 보니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얼른 집에 가고 싶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을 보니 자신도 조금은 성장한 게 아닐까 싶었다.

* * *

동부와 서부를 들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과 신관들을 데리고 북부의 슬렌더 백작가로 다시 되돌아가는 길은 얼마 전의 급하게 움직이던 것과는 달리 매우 여유로웠다.

병자들의 상태도 호전되었지만, 주안이 만들어놓은 신성력 가득한 건물의 효과는 정말 대단했다.

지금은 전염병뿐만이 아니라 다친 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들 정도였고, 그 때문인지 반란군 진영이든 귀족파의 진영이든 가리지 않고 백성들에게 칭송을 받으니 그들도 참 적응이 안 되는 듯했다.

아니, 반란군 진영이야 원래 백성들이 따르는 지역이었지만, 수탈을 일삼던 귀족들의 진영인 서부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니, 크샤나 후작은 꽤나 당황스러워하면서도 은근히 좋아하는 듯했다.

그래도 그 역시 사람이었기에, 괜히 욕먹는 것보다 칭찬받는 게 더 좋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동부와 서부를 들린 뒤 북부로 올라가 슬렌더 백작가의 근거지인 메리다에 도착했다.

많은 이가 기다리는 가운데 주안이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달려와 무릎을 꿇는 사람이 있었다.

“고옹자아니이이이이임!”

“응?”

갑작스러운 그 행동과 큰 목소리에 주안이 얼떨떨했지만, 이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고는 주안이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신 휴이 훼스턴! 공자님에게 죄를 고하옵니다!”

“그, 저기……. 괜찮으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휴이 경.”

“아닙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공자님에게 직접 부탁을 받고, 공작가 일행을 보살펴야 하였는데! 저는, 저는……! 그 명령을 완수하지 못하였습니다……!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

너무 심하게 오버스러운 휴이 훼스턴의 행동에 주안이 굉장히 곤란해했지만, 왠지 주안만 빼고는 그러려니 하는 눈치라 오히려 주안이 더욱 당황스러웠다.

“거, 시끄러운 사람이 아르베리아 경 하나뿐인 줄 알았더니, 한 사람이 더 늘었네.”

“내, 내가 뭐가 시끄럽다는 것인가, 워랜 경! 말을 좀 가려서 하라! 나는 저렇게 추하지 않다!”

워랜이 휴이를 흘겨보며 지나쳤지만, 한마디를 잊지 않고 해주었고, 아르베리아는 그런 워랜의 말에 불만 가득한 말을 하며 곁에서 함께 걸어간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엄청나게 상처받을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르베리아의 행동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왠지 모르겠지만 주안의 앞에 엎드려 사죄의 절을 하고 있는 휴이 훼스턴의 어깨가 들썩이는데, 설마 울고 있나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든다.

“저기, 진짜 괜찮으니까 그만 일어나세요, 휴이 경.”

“아닙니다, 공자님. 저는 벌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출한 그 녀석들도 같이!”

“…….”

고개를 든 휴이 훼스턴, 그의 눈에는 분노와 함께 그렁그렁 맺힌 눈물이 지금 그의 기분을 그대로 내비치고 있었다.

정말 부담스럽고, 살벌한 모습에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라며 한 걸음 물러났을 정도다.

“우와, 완전 물귀신이잖아. 그리고 저희 벌 받았거든요? 별꼴이야.”

“으극!”

하지만 소니아는 이런 휴이 훼스턴의 행동에 반성은 전혀 하지 않은 채, 오히려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리더니 그를 지나쳐 슬렌더 백작 가문의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런 소니아의 뒷모습을 주안은 한숨을, 휴이 훼스턴은 분노의 눈길을 주었다.

“죄, 죄, 죄송합니다, 휴이 경.”

소니아와는 달리 다행이 솔과 토미, 그리고 세라타는 그에게 달려와 고개를 숙이며 사과하였다.

그 때문인지 휴이 훼스턴의 분노는 오롯이 소니아에게만 향하게 되었지만, 황도로 같이 가야 하는데 왠지 그와 소니아가 계속 싸울 것 같아 주안은 두통이 치밀어 올랐다.

“그보다 남부 국경 쪽으로는 연락하셨나요.”

“예, 내일 출발하는 것으로 일정을 잡은 뒤 도착 날짜와 통과하는 대략적인 시간을 통보해 놓았습니다, 공자님. 그리고 이미 돌아갈 채비는 끝마친 상태로, 공자님이 원하신다면 지금 당장 출발하여도 문제가 없습니다.”

“이래서 제가 휴이 경에게 믿고 맡긴 거라니까요.”

“고, 고, 공자님…….”

주안이 휴이 훼스턴을 일으켜 세우며 칭찬을 하자, 세상을 다 가진 듯한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그의 모습에 주안이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참아내었다.

정말이지, 동부의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순진하고 순수한 구석이 많아서, 이용당하기 딱 좋아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만만하게 보고 달려들면 그대로 짓밟아 버리는 게 바로 동부였다.

그들이 웃음을 보이는 것은 마르티네스를 중심으로 뭉친 동맹이자 가족인 동부의 가문들에게 하는 것이지, 외부인에게 보이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번 일은 정말 휴이 경의 공이 컸어요. 황도로 돌아가서 아버지에게 잘 말씀드릴게요.”

“감사합니다, 공자님!”

주안의 그 말에 다시 삼인자의 꿈이 휴이 훼스턴의 머릿속에 자리를 잡자 그의 표정이 한없이 밝아졌다.

‘정말이지…….’

동부의 사람들을 다루는 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에겐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그들의 마르티네스에 대한 충성과 의지는 보통이 아니었고, 거의 종교 수준이 아닐까 싶었다.

그런데 이런 이들에게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달고 버림을 받은 자신은 대체 어떤 삶을 살았던 것인지, 그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정말 최악의 삶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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