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88화 (8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88화

“…….”

아미엘의 말에 모두가 침묵을 지키며, 아무 말도 꺼낼 수가 없었다.

단지 조용히 세냐가 따라준 차를 마시는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대체, 왜 인간을……. 아, 아니, 그 이전에 오크와 드워프, 엘프가…… 이 땅에서 살았다고요?”

“그러하다. 그들에겐 마지막 남은 안식처이자, 피난처였으니.”

“피난처?”

지금 이곳에서, 그녀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고령의, 그리고 가장 학식이 많을 마누엘 전대 대신관조차 의문을 가지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수많은 책의 내용을 그대로 저장시켜 놓은 마법 팔찌의 힘을 빌려도 찾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하나, 나는 지금 무척 당황스럽구나.”

“……그건 저희 역시 마찬가지예요.”

당황스럽다는 사람치고는 표정 변화 없이 세냐가 따라준 차를 홀짝이는 모습은 꽤 여유로워 보였다.

주안의 말에도 그녀는 조용히 차를 음미한 후 말했다.

“내가 보호해야 할 아이들은 어디 가고, 그 후예만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구나. 게다가 인간과 함께라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고…….”

“후우……. 일단 한 가지만 물어봐도 괜찮을까요?”

“물어보라.”

다른 이들을 대표할 자격은 주안에게 있는 것인지, 주안 스스로도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 부분은 꼭 물어보고 싶었다.

“분명 아미엘 님은 메데아 대족장님에게 오크라고 하셨어요. 메데아 대족장님은, 그리고 달란트 부족은…… 이종족, 오크라는 말씀이세요?”

이런 주안의 물음에 오히려 이상하다는 듯 그녀가 주안에게 말했다.

“참으로 이상한 말이구나. 당연하지 않으냐?”

그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메데아 대족장에게로 향했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은 그 말에 오히려 화가 난 듯했고, 그것을 참아내는 모습을 본 이들이 몸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조금 이상해요. 오크는, 아니, 다른 모든 이종족들은 이미 멸종한 기록만 남아 있지, 자취를 감춘 지 수천 년이 지난 뒤에요.”

“……수천 년?”

이번에는 오히려 아미엘이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본다.

“예, 제대로 된 기록이 남아 있진 않지만, 확실해요. 하지만 그 어디에도 대밀림의 원주민들을 이종족으로 표현하거나 한 부분은 없어요. 그렇죠? 마누엘 신관님.”

“확실히…….”

고개를 끄덕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아미엘에게 말했다.

“대밀림의 원주민들은 그 외모가 좀 특이하나, 같은 인간이라오. 혹 잘못 알고 계신 게 아닙니까?”

외모는 증손자뻘의 어린 여아이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아미엘이 보통의 인물이 아님을 파악한 듯 말을 높여주었다.

그 능력도 능력이지만, 외모와는 다른 분위기와 사람을 꿰뚫어 보는 눈은 연륜이 없다면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야말로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구나. 그 누구보다도 오크들을, 이종족도 아닌 몬스터라고 몰아세우며 열과 성을 다해 사냥하던 그대들이, 그들을 인간으로 대우한다는 것이 매우 당혹스럽구나.”

“허허…….”

아미엘과 주안, 자신들의 그 간극은 대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 조심스레 아미엘에게 물었다.

“혹시 당시에 어떤 연도를 어떤 방식으로 표시한 것인지 아시나요?”

“연도라……. 첸다르력이라 불렀다.”

“첸다르력?”

아미엘의 말에 주안과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서로를 바라본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그런 시간대의 표시 방법은 존재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저희에게 최초의 대륙력이라 불리는 것은 캄파니아력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500년 전이지요.”

의견은 분분하나 수많은 이름뿐인 왕국과 왕국조차 아닌 세력들이 수백 년의 시간 동안 아귀다툼을 하던 당시, 처음으로 대륙을 통일하고 안정세에 접어들게 만든 대제, 사이캄과 통일 제국 파니아를 합쳐 처음으로 대륙력이라는 것을 만들었던 게 바로 이 시기다.

하지만 통일 제국 파니아도 채 백여 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쪼개어졌다.

그 뒤 몇 개의 세력이 만들어졌지만, 전화가 지속되며 캄파니아력은 잊히게 된다.

아니, 한동안 사용되었지만, 혼란 속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이후 쪼개어진 대륙은 다시 전화에 휩싸였지만, 이전과 같이 서로의 모든 것을 앗아가는 몰살이라는 단어 대신에 외교라는 것이 나타나고, 대화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제야 지속된 혼란은 점차 줄어들기 시작하며, 서서히 대륙을 지탱하는 왕국이 생겨났다.

그중에서 가장 밝은 빛을 내며 대륙 중부를 장악한, 서방 대륙의 대제국이자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노폴이 탄생한 것이다.

“제노폴이 제국으로 생겨나면서 가장 먼저 한 것이 대륙력을 제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은 대륙력 887년이 되는 해이죠.”

중부와 동부, 남부까지 차지한 제노폴이었지만, 다른 왕국들을 다시 모으고 그들과 대화하며 통일된 연도를 제정하기까진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려야만 하였다.

하지만 아미엘은 갸우뚱하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기억 속에 없는 나라의 이름이다.”

“그럼 혹시 윤 제국은 아세요. 동방 대륙 통일에 가장 근접했던 대제국이었는데…….”

“모른다.”

서로의 접점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대화라 그런지, 답답함은 배가 되는 듯했다.

“끄응……. 대혼란기에 소실된 자료들이 남아 있었다면, 무언가 좀 알지 않았으려나…….”

“대혼란기?”

주안의 중얼거림에 아미엘이 갸웃하였다.

“아, 아까 말씀드렸던 사이캄 대제가 세운 통일 제국 파니아 이전의 역사를 대혼란기라고 부르거든요.”

“어이해서?”

그런 그녀의 말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답했다.

“세상이 반쯤 미쳐 있던 시기이니, 그럴 수밖에 없지요.”

작게 한숨을 내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을 이었다.

“많은 이가 죽어나갔고, 수많은 자료가 소실되었으며, 역사적인 모든 것이 불타고 부서지고 사라지던 시기였소. 대혼란기, 혹은 암흑기라고도 부르지요.”

“전쟁만이 아니라, 전염병에 대기근까지 겹치면서 당시 인구가 겨우 몇십 년 만에 절반 가까이 줄었다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사이캄의 통일 제국 파니아로 인해서 인류가 망해버리는 것은 피했다는 것이었다.

그도 대륙을 회복시키는 것에 모든 것을 쏟았고, 너무 무리한 것인지 결국 과로로 쓰러져 그대로 사망했다는, 이런 부분만이 역사적으로 제대로 남겨져 있었다.

“그래도 파니아 덕분에 대륙이 자리를 잡는 기틀은 마련했으니, 백 년도 못가서 망하긴 했지만, 대단한 나라였고, 대단한 왕이긴 했어요.”

“이 넓은 대륙을 차지했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인물이라는 의미였겠구나. 악귀 첸들러와 같은 인물이 또 있었을 줄이야.”

그녀의 입에서 악귀라는 말이 나온 것에 조금 놀랐지만, 대륙에서는 그래도 사이캄은 성왕이자 대제로 통하며 대단한 실력자라고도 불렀다.

“그럼 아미엘 님이 아시던 시대는 어떤 시대였어요?”

“네가 말한 그 대혼란기인지, 암흑기인지와 비슷하였지. 단지…….”

아미엘이 조용히, 찻잔을 매만지며 말했다.

“그에 해당되는 것은 이종족에 한해서였고 인간들에겐 그보다 빛나던 시대는 없었을 것이다.”

“……이종족이라는 게 진짜 실존하였던 건가요?”

“네 눈앞에도 있고 네 곁에도 존재하고 있지 않으냐.”

“하지만…….”

단편적인 역사로는 분명, 있다고는 하지만 의문이 너무 많은 것이 바로 그 이종족들이었다.

“인간들은 잔악하였다. 처음, 사냥법을 가르쳐 준 친우인 오크에게서 배운 그 사냥법을 통해 이종족을 사냥하였다.”

아미엘은 메데아 대족장을 보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여전히 인간들과 함께 있는 것이 못마땅해하는 눈치이다.

“그리고 스승과도 같았던 드워프에게서 배운 땅을 파고 물건을 찾아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이용해 살상용 무기를 만들어 등을 찔러 버렸지. 엘프에게선 땅과 나무와 작물을 가꾸는 법을 배우고는 모든 것을 빼앗고 쫓아내었다.”

“…….”

싸늘한 그녀의 말에 주안이 흠칫 놀랐지만, 그녀는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내가 살던 그 시대는, 인간에겐 더없이 찬란하던 문명을 꽃피우던 시기였으나, 이종족들의 것을 도둑질해서 일으킨 문명이었을 뿐이었다. 피로 일군, 그 문명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을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잘 모르겠구나.”

“이종족의 멸망이, 저희 인간들 탓이란 말인가요.”

“그러하다. 인간들에게 밀려, 모든 것을 빼앗기고 잃어버린 그들을 가엽게 여긴 지혜롭고 위대한 드래곤, 크세니아의 배려로 그의 땅에 남은 이종족들이 살 터전이 마련되었지.”

확실히 말해서, 아미엘의 말은 정말 현실과의 괴리감만 느끼게 했다.

천 년도 더 이전의 이야기도, 역사의 한 부분이었고, 대륙의 이야기였기에 머나먼 이야기일지언정 주안, 자신의 선조들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아미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마치 전설과도 같았다.

“애초에 실수였지. 몬스터를 이 땅에서 배척시킨다면, 연약하던 그들이 함께 모여 번성할 것이라는 그 안일한 생각이 새로운 몬스터를 만들어내었으니 말이다.”

“그 몬스터라는 게 설마…….”

“그래. 욕심 많고 이기적이며, 잔인한 생명체이지.”

아미엘이 싸늘한 조소를 지으며 말했다.

“바로 인간이라는 몬스터였다.”

그녀의 조소 섞인 미소와 말은 주안과 일행들을 가슴을 찔렀다.

주안이 잠시 심호흡을 하며 그녀에게 물었다.

“……몬스터를 아미엘 님이 몰아내셨다는 말처럼 들려요.”

“아니,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것은 신의 능력이니 말이다.”

그녀의 입에서 신이 언급되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놀라 물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오. 신께서 그런 일을 저지를 리 없소. 아니, 애초에…….”

“애초에 신은 만물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아끼신다. 그것이 설령 작은 벌레와 미물이라 할지라도.”

“……그렇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신에 대한 믿음은 그 신성력으로 이미 입증이 되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그 힘을 아미엘도 알기에 더럽고 증오스러운 인간일지라도 그에게만큼은 편히 대해주었다.

“사랑하기에, 소중하였기에 하신 일이다. 자연의 섭리를 따르면, 언젠가 이 세상의 모든 아이는 몬스터에게 먹힐 터이니……. 가장 연약하고 안쓰럽고, 눈이 가는 아이들을 살리기 위한 일이셨다.”

아미엘이 조용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보며 말했다.

“갑작스럽게 모든 것을 뒤틀어놓을 수 없기에 천천히, 그분을 대신하여 뜻에 따라줄, 이 세상 피조물들의 정점에 이른 이들에게 부탁하였으니 말이다.”

“정점……?”

이 세상의 정점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인간이다.

적어도, 서방 대륙에서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동방 대륙의 사람들에게 묻는다면 하나같이 똑같이 대답할 것이다.

바로, 용.

“드래곤……!”

이미 사라진 드래곤이지만, 아미엘이 지내던 시대에는 여전히 존재하던 전설적인 존재들이었기에, 그 말에 주안이 경악하며 소리쳤다.

“그땐 몰랐지. 몬스터들을 그들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보낸다면, 남은 연약한 이들이 함께 어우러져 평화롭게 살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을 터인데……. 몬스터보다 더 추악한 녀석들이 숨어 있었을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였다.”

자조 섞인 그 미소와 말에 아무도 반론을 할 수가 없었다.

그토록 신심이 깊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인간이 어떤 생명체인지 잘 알고 있었다.

인간만큼 잔인하고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은 생명체는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몬스터를 격리하고, 드래곤들은 하나둘 육체를 벗어나 신의 품으로 돌아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이 나타난 것도 그 시기였다.”

인간을 제지할 이가 남아 있지 않았다.

몬스터는 힘을 잃고 차근차근 타 차원으로 흘러들어 가며 세상에서 사라져 가는 단계였고, 드래곤 또한 육체를 버리고 영혼은 신의 품으로 향하던 시기였으니 말이다.

결국 위협이 사라진 인간은 폭주하기 시작하였고, 그 과정을 지켜본, 아미엘의 인간에 대한 경멸은 극에 달해 있었다.

아니, 이것은 인간을 친구로 생각하던 이종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 아미엘 님이 이곳의, 세계수의 관리자가 된 것도 다 이종족을 지키기 위했다, 이 말씀이세요?”

“그러하다. 나는 최후의 드래곤, 크세니아의 부탁으로 나의 땅과 연결된 길, 그리고 오갈 수 있는 문을 만들었다. 하나, 이곳의 주민이 아닌 내겐 마음대로 열 수 있는 권한과 열쇠가 없으니…….”

아미엘이 주안을 보며 조용히 말을 이었다.

“세 종족의 어머니이자 가장 지혜롭고 어진 이, 엘프의 수장 엘 하임에게 열쇠를 맡겼으니, 그 열쇠와 함께 엘프들에게 내려진 성흔이 이 아이에게로 전해져 있구나.”

“그래서 저에게 열쇠의 아이라고…….”

주안의 말에 아미엘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그녀의 반응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열쇠라는 것도, 이 성흔이라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에요.”

“신께선 섭리를 거스른 일에 대해 후회하시며 고뇌하셨지. 하여 크세니아를 통해 세 이종족에게 내려준 것이 바로 성흔이니라.”

신의 증표라는 것은 알지만, 그것은 무어라 설명할 방법이 없는 불가사의한 일이고, 신비로운 일이기에 그렇게 칭하는 줄 알았던 주안이었다.

하지만 아미엘의 입을 통해 나온 말은 예상 밖의 것이었다.

“이 땅을 지켜야 할 오크 달란트에겐 힘을. 이 땅을 일구어갈 드워프 칸데에겐 번영을. 그들을 뒤에서 지켜주며 돌봐줄 엘프 엘 하임에겐 자애를. 세 종족의 미래를 위하여 내려준, 마지막 간섭이셨다.”

그녀의 말이 사실이라면, 신이 더 이상 인간에게 거는 기대는 없었고, 신의 눈은 오직 이종족들에게만 향해 있다는 의미였다.

그것을 깨달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표정이 어두워졌고, 그동안 신을 믿고 의지하고 다가가고자 하였던 그 마음에 작은 상처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충격은 주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 잠시만요. 그럼 이 성흔이라는 게 이종족들의 것이라면 저는…….”

“너는 그 성흔을 지녔다. 크세니아가 엘 하임에게 내려준 열쇠를 지니고, 자애의 성흔을 지녔으니…… 너는 엘 하임 마를렌의 아이이니라.”

“엘 하임…… 마를렌?”

주안이 그 말을 작게 중얼거렸다.

무언가, 매우 익숙한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주안만이 아니라 워랜이나 아르베리아, 심지어 토미도 마찬가지였다.

마를렌이라는 이름은 분명 흔하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선 보편적인 여아의 이름이기도 하였지만, 단지 그런 익숙함이 아니었다.

이런 이들의 의문에 답해주기보단 아미엘이 말했다.

“엘 하임이 왜 갑자기 문을 닫고 나를, 우리 아이들을 이 세계에서 쫓아낸 것인지는 모른다. 성흔이 세계수에 새겨진 이유도 모른다. 세상이 얼마나 변한 것인지, 왜 이곳에 오크들만 남은 것인지 그 역시 모른다…….”

모르는 것투성이였고, 이야기를 해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은 몇 없었다.

그저 이들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의 간극은 상상 그 이상으로 크다는 것 정도뿐이다.

하지만 단 하나,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주안이 누구의 피를 이었다는 것이다.

“하나, 난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이 있다. 엘 하임의 아이여.”

그리고 차가운 녹색의 빛이 나는 눈으로 주안을 지켜보며, 그녀가 말을 이었다.

“마를렌……. 그 아이는 어이하여 나를 배신한 것인지……. 그 아이는 엘프들을 이끌고 어디로 사라진 것인지. 너는 그것을 나에게 알려주어야만 한다.”

“설마…….”

그제야 주안도 아미엘이 말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떠올린 듯했다.

마를렌.

그 이름은 제국의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이름이었고, 제국 동부에선 모르는 이가 없는 이름이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시조, 힉스 마르티네스.

그의 아내인 마를렌 마르티네스.

그녀의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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