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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85화 (8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85화

‘이건……?’

주안은 작은 문의 앞에 서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공간뿐.

아니, 단 하나 이 단조로운 문밖에 없었다.

‘나는 분명…….’

주안이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자신의 손바닥에 새겨져 있던 성흔과 똑같이 생긴 그 흔적에 신성력을 불어 넣었고, 신성력의 빛을 머금은 그 흔적은 주안의 손바닥에 새겨진 성흔과 완벽한 한 쌍을 이루었었다.

그리고 그 성흔에서 빛이 터져 나오자, 잠깐 눈을 감았다 싶었는데…….

-앗?! 열쇠 아저씨!

‘열쇠 아저씨?!’

귓가에 맴도는 목소리 때문에 어디서 말을 하는지 몰랐지만, 아저씨라는 말에 주안이 발끈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장소였고, 갸웃하던 주안의 귓가에 재차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에헤헷. 여긴데~ 여긴데~!

-흐응~ 생긴 건 엘프 애들이랑 닮았으면서, 눈치는 왜 이렇게 없는 거람. 귀가 작아서 그런가.

-어, 언니야……. 저 오빠야 화난 거 같아요.

‘이, 이것들이……!’

마지막으로 들려온 아이의 목소리만 제외하고, 앞서 들린 두 꼬맹이의 말에 발끈한 주안이 인상을 구기며 다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해 씩씩거리던 주안이, 자신의 옷깃을 꾸욱꾸욱 잡아당기는 느낌에 고개를 돌려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너희, 뭐야……?’

버럭 소리라도 지를 것만 같았던 주안이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있는 세 꼬맹이의 모습을 보고는 오히려 당황하였다.

목소리를 들으면 아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 아이의 모습은 너무나 작았다.

그냥 작은 수준이 아니라, 손바닥만 한 크기의 아이들이었다는 점이다.

짧은 단발의 눈매가 꽤 날카로워 보이는 꼬맹이와, 장난 가득 미소를 짓는 긴 검은 머리카락의 여자아이, 그리고 순진무구한 눈망울을 한 채 두 꼬맹이의 뒤에 숨어 고개만 살짝 내민 채 주안을 훔쳐보는 아이까지.

작은 크기와 함께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허공에 떠 있는 그 모습에 주안이 꽤나 놀란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이런 주안의 모습에 마치 이겼다는 듯 득의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단발머리 꼬맹이가 나서서 말했다.

-후훗,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위대한 아미엘 님의 아이들이자, 요정족의 아이돌!

-세, 세상을 행복으로 물들일 세 자매…….

뒤이어 검은 머리의 활발해 보이는 아이와 부끄럼쟁이 아이가 말하며 허공에 떠오르더니, 주안의 얼굴 근처를 날아다니다 말했다.

-세냐!

-마냐!

-아, 아냐.

단발머리의 세냐, 검은 머리의 마냐, 부끄럼쟁이 아냐.

각기 날개를 파닥이며 이리저리 날아다니다 함께 멋진 포즈를 취하며 외쳤다.

-우리는 요정 삼총사!

주안이 자신도 모르게 멋진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세 요정 꼬맹이들의 머리 위로 신성력의 빛 가루를 뿌려주었다.

반짝반짝 순백의 빛이 아이들을 포근히 감싼 그 모습의 꽤나 신비로웠다.

처음 하는 행동인데, 잘되었다는 게 솔직히 기쁘긴 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린 주안이 고개를 갸웃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웬 요정……?’

-어머, 요정도 몰라? 아저씨 진짜 바보구나.

세냐의 말에 주안이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쿠후후 비웃는 저 밉살 가득한 모습에 화를 낼 뻔했다.

이런 주안에게 천진난만한 미소를 짓던 마냐가 말했다.

-요정은 요정이고, 요정이니까 요정이라고 한 건데 요정이라고 물으면 요정이 어떻게 요정이라고 납득시킨다는 거야?

이쪽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단지 자신의 이 말에 대단히 자랑스러운 듯 마냐가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어른스럽게 엣헴, 하고 헛기침까지 한다.

-저, 저희는 있죠, 요정인데요……. 그게, 이, 이렇게 날개도 있고 또, 꽃도 무럭무럭 키울 수도 있고, 또…….

무언가 설명을 열심히 하는 아냐는 매우 귀여웠지만, 사실 도움은 크게 되지 않았다.

대신 주안이 손을 들어 자신의 발언권에 대해서 알려준 다음 말했다.

‘아니, 요정이 뭔지는 책에서 봐서 아는데……. 그건, 동화책에서나 나오던 건데…….’

그것도 엘프의 친구로 등장한 요정은 어린이 동화책의 단골 소재였다.

이종족이라는 게 의견은 분분하지만, 확실히 존재했다는 증거들은 남아 있었다.

그래서 오크와 드워프, 엘프들은 인간 외의 종족으로서 한때 번성했다고, 역사의 한 페이지 정도는 장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정은, 그리고 요정족이라는 것은 그런 역사책에도 실려 있지 않은 종족이었다.

-우와, 너무해! 우리가 엘프들이랑 얼마나 친했는데! 잠깐 헤어졌다고 이러기야?!

‘엘프?!’

세냐의 말에 주안이 놀라 소리쳤지만, 이 세 아이의 말처럼 주안의 말도 귓가를 웅웅 울렸다.

세냐의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새침한 표정으로 주안의 얼굴 근처를 날아다니며 뾰로통해 있는 탓에 뭐라 묻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이내 주안은 자신의 옷깃을 잡아당기는 느낌에 주안이 고개를 내려 보았다.

그곳에는 마냐가 주안의 옷깃을 붙잡고 주안을 올려다보며 큰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열쇠 아저씨, 열쇠 아저씨.

‘오빠거든?!’

-그럼, 열쇠 오빠.

‘…….’

마냐가 해맑게 웃으며 주안이 정정한 말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진하게 금세 고쳐서 말하는 바람에 주안도 뭐라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문 열어주세요.

‘웬 문?’

밑도 끝도 없는 그 말에 주안이 갸웃했지만, 마냐가 힘차게 주안의 옷깃을 붙잡고 작은 날개를 파닥이며 날아갔다.

그런 마냐 대신 아냐가 조심스레 주안의 어깨에 다소곳이 앉아 말했다.

-저기, 저희 집 문이에요. 친구들 많아요.

‘저 문?’

-에헤헷, 네.

조금은 긴장이 풀린 듯, 아냐가 배시시 웃으며 주안을 바라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주안이 머리라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아냐의 곁에 내려와 앉은 세냐가 아냐를 품에 꼬옥 안아주고 주안을 경계하자 그럴 수가 없었다.

-문이나 빨리 열어줘요. 어쩜 이렇게 못됐담. 멋대로 문을 닫고 잠그질 않나…….

‘아니, 내가 닫고 잠근 것도 아닌데……. 그보다 잠겨 있다면서 너흰 어떻게 나온 거야?’

-흐흥~ 열쇠 아저씨 때문에 문이 조금 열려서 그 틈으로 쏘옥~!

-쏘옥~!

세냐의 말에 다른 두 꼬맹이 요정들도 따라 말했다.

아저씨라는 말을 정정해 주고 싶다.

세냐의 말이 억울했지만, 끙끙거리며 열심히 주안의 옷깃을 잡고 당기고 있는 마냐의 행동에 어쩔 수 없이 이끄는 대로 한 걸음 나아가 조심스레 작은 문에 손을 뻗었다.

왼손의 성흔이 주안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밝게 빛나더니, 왼손을 가져다 대자 환한 그 빛은 문을 감쌌다.

그리고 이내 덜컹거리며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어?’

-와아아~!

그리고 문이 채 다 열리기도 전에 문의 틈에서 작은 요정들이 쏟아져 나오더니 그대로 주안을 덮쳤다.

‘으억?!’

-꺄하하~!

-냐웅!

-와아~!

꺄르륵 웃는 소리와 장난기 가득한 소리, 그리고 주안의 얼굴과 몸에 달라붙는 자그마한 요정들의 과격한 그 행동에 벌렁 넘어진 주안.

주안은 자신의 몸에 올라타 장난을 치고, 미끄럼틀을 타거나 옷 속에 숨어드는 아이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얼굴에 달라붙은 아이들 때문에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그런 아찔한 상황 속에서 주안의 정신을 일깨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열쇠의 아이여.

그 목소리에 주안이 힘겹게 고개를 돌려 옆을 보자, 열린 문 너머에서 한 소녀가 조용히 걸어 나오며 주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투명한 녹색 빛 눈동자는 매우 신비로웠지만, 다른 요정 아이들과는 달리 이 아이는 열 살 정도의 평범한 어린아이와 비슷한 체구를 가졌다.

하지만 그렇다고 같은 사람으로 보이냐면, 그것은 아니었다.

여느 요정들보다 크고 화려한 여러 장의 날개는 이 아이 역시 요정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누구…….’

-감사의 인사 이전에, 묻고 싶은 게 많구나.

‘예?’

-하나 네게 허락된 시간은 여기까지이니라. 깨어나면 나의 집으로 찾아오라.

‘대체 어디로…….’

하지만 소녀는 그 말에 답을 해주기보단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주안을 지나쳤다.

그러자 주안을 덮쳤던 요정들이 일제히 날아올라 그 소녀의 뒤를 따라갔다.

공간이 갈라지고, 큰 문이 열리자 그 너머의 풍경이 주안의 눈에 똑똑히 들어왔다.

‘세계수……?’

하지만 이내 주안의 시야가 부옇게 변하더니 흐려지기 시작하였다.

* * *

“……여긴?”

왠지 이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던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부스스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난 주안은 머리가 조금 아픈 것인지 손으로 이마를 감싼 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이내 주변을 둘러보다 깜짝 놀랐다.

“여, 여긴 어디야?!”

어떤 동물의 털로 된 이불인 것인지 매우 부드럽고 냄새도 좋았지만, 처음 보는 장소라 주안이 놀란 눈으로 이불을 걷어차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침대가 아니라 굴러떨어질 일은 없었지만, 그런 부분을 생각할 틈이 없었다.

“……어?”

하지만 이내 조금 정신을 차린 뒤 시야 속에 들어온 이 장소가, 낯설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조금 진정을 할 수가 있었다.

분명 같은 곳은 아니지만, 지금껏 보아온 대밀림 원주민들의 집 내부 구조와 흡사했다.

좀 더 크고 화려하다는 것만 뺀다면 말이다.

“나, 분명 세계수 꼭대기에 있었는데…… 아니, 그보다 거긴, 그 아이들은……?”

기억이 엉킨 실타래처럼 정리가 되지 않고 마구 뒤섞여버린 탓에, 정리하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으로 인해 상념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도련님!”

“토미……?”

토미의 어둡던 표정이 금세 밝아지더니 이내 주안에게 달려와 꽉 껴안는, 답지 않은 애정 행각을 보이자 주안이 적잖이 당황하며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왜, 왜 그래?!”

“안 깨어나셔서 얼마나 걱정했다고요!”

“어, 그건 미안…….”

왜 기절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토미를 걱정시킨 것인지 처음으로 주안에게 화를 내는 그 모습에 사과하지 않으면 안 될 듯했다.

어쩔 수 없이 토미의 등을 토닥여주다, 자신에게 매달려 껴안고 있는 토미를 밀어내어 떨어뜨린 뒤에 주안이 말했다.

“그보다 나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거야?”

“거의 반나절 정도에요.”

“반나절이나…….”

그럼 벌써 저녁이 되었다는 소리였다.

자신이 왜 기절했던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정신이 좀 맑아지니 한 가지 확실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요정…….’

그게 꿈인지 아닌지 판단은 되지 않지만,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세냐, 마냐, 아냐.

세 요정들과의 대화와 문을 열어주니 쏟아져 나와 자신을 괴롭히던 다른 요정들과…….

알 수 없는 요정 소녀까지.

‘생각해 보면, 그때 기절한 거 같기는 한데…….’

주안이 무언가 곰곰이 생각하는 모습에 토미가 갸웃하다 무언가 떠오른 듯 말했다.

“그보다 몸은 괜찮으세요? 마누엘 신관님이랑 커즈 신관님이 살펴보시고 몸에 이상은 없으시다 하셨지만…….”

“아, 그랬어? 일단, 아픈 곳은 전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

“휴우……. 다행이세요.”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토미의 그 모습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토미의 머리에 손을 뻗어 마구 헝클어주며 말했다.

“그보다 다들 어디 계신 거야? 어쩜 사람이 이렇게 되었는데 간호해 주는 사람이 너밖에 없냐?”

그래도 나름 중요한 사람인데, 자신을 걱정해 주고 지켜주고 있던 게 토미 하나라는 것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툴툴거렸다.

그 모습에 토미가 작게 웃음을 터뜨리다 아차, 하면서 말했다.

“아, 다, 다들 밖에 계세요. 그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상한 일?”

“네, 도련님이 갔다 오신 그 세계수라는 나무 있잖아요. 거기에 이상한 일이 좀 생겨서, 다들 그것 때문에 호수 근처에 계세요.”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하던 주안이었지만, 어쨌든 다들 밖에 있다는 말에 토미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함께 밖으로 나섰다.

* * *

“응?”

집 밖으로 나온 주안은 주변을 환하게 밝히고 있는 빛에 갸웃했다.

하늘을 올려다보자, 확실히 구름에 가려지지 않은 달이 높이 떠올라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보름달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변을 환하게 비출 정도의 빛이 날 리는 없었다.

“뭐야, 왜 이렇게 밝아? 저녁 아니었어?”

달이 떠오른 걸 보면 저녁이 분명할 텐데…….

주안의 의문에 뒤따라 나온 토미가 말했다.

“그게, 직접 보시는 게 빠르실 거예요.”

“직접 봐?”

토미가 갸웃하는 주안의 등을 살며시 밀어주며 어딘가로 안내하였다.

원주민들이 만든 마을치고는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길은, 관리가 잘 되진 않았지만, 반듯하게 구역이 나누어지듯 길이 이어져 있었다.

이런 길과 잘 어울리는 집이 있는가 하면 원주민들의 부락에서 보던 집들도 보이고…… 참 언밸런스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토미의 안내를 받으며 모퉁이를 돌자 멀지 않은 곳에 거대한 호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많은 원주민도 있었고, 호수의 수면 위에 나룻배들도 몇 척이나 있는 게 보였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호수에 수면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며 비치는 빛과 그 빛의 형태를 따라 호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그것은…….

“세계수…….”

달빛을 머금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세계수 자체에서, 잎사귀에서 희미한 빛을 끝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세계수가 빛난다는 것은 오면서 보았고, 보다 밝게 빛나는 것은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주안이 놀란 것은 세계수의 모습 때문이 아니었다.

가까운 곳, 호수의 수면 위.

반짝이는 빛무리들이 마치 반딧불처럼 보였다.

하지만 한 걸음, 두 걸음, 주안 역시 호숫가로 나아가 가까운 곳에서 살펴본 그것의 모습이 주안의 눈에 들어왔고…… 그 낯익은 모습에 걸음을 옮기다 우뚝 멈추어 서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요정…….”

꿈에서 보았던, 꿈이라 생각했던 그 요정들이 호숫가의 허공에 떠올라 날개에서 빛을 내며 즐겁게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리고 주안은 그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먼 장소에 자리를 잡은 거대한 세계수의 나무 주변에서 반짝거리며 빛을 내는 그 모든 것이, 요정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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