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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84화 (8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84화

“이게, 성흔…….”

“어머니의 증표다.”

메데아 대족장이 정정해 주었지만, 주안은 황급히 달려가 그것을 살펴보았다.

정말 성흔과 매우 흡사한 것이 상처처럼 나무에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보면 누가 일부러 새겨놓은 게 아닐까 싶을 만큼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주변을 포근하게 감싸는 이 신성력의 기운도, 호흡할 때마다 몸속으로 들어오는 따뜻한 기운도, 주변에 울리고 있는 아이들의 소리도…….

하지만 이 흔적에서는 그 무엇도 느껴지지 않았다.

“……진짜, 성흔이 맞나요?”

혹시나 해 주안은 자신의 왼손바닥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뽑아내 나무에 새겨진 성흔에 가져다 대어 보았지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모양은 비슷한데…….”

“똑같아 보인다만? 다른가?”

“예, 조금 달라요.”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확실히 비슷하긴 하지만 이 나무에 새겨진 성흔은 조금 달랐다.

“흠…….”

“애초에 무언가 일어나고, 알 것이라고 생각한 것도, 저 혼자 막연하게 가진 희망이었을 뿐이었나 보네요.”

작게 실망하긴 했지만, 막연하게 찾아와 자신이 살펴본다고 무언가 대단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 것부터가 잘못된 듯했다.

처음에는 이 성흔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고, 대밀림 원주민들을 치료한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에 성흔이 있다는 것에 막연한 기대감과 궁금증에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들, 원주민들이라면 무언가 알 수 있지 않을까.

그게 아니더라도 성흔을 가진 자신이 가면 무언가 일어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 말이다.

“제가 너무 쉽게 생각했나 보네요. 죄송해요, 메데아 대족장님.”

“겨우 하나만 보았잖느냐. 아직 두 개나 남았다.”

“이걸 봐도 잘 모르겠는데, 다른 걸 본다고 뭔가 달라질지…….”

“본 것과 안 본 것은 차이가 있고, 지레짐작으로 포기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다. 바깥 주민은 다들 그런가?”

“하하…….”

메데아 대족장의 질책에 주안이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파나르에게 물어봐도 된다. 그는 우리 부족 중 가장 오래 살았고, 가장 많이 아는 자다.”

“파나르라면…….”

분명 호수를 건너기 전 다가왔던 노인이었다는 것을 주안도 깨달았다.

“나중에 물어봐라. 파나르는 어머니의 손길도 쓸 수 있다.”

“신성력을요?!”

솔직히 그 부분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신성력이라는 것이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 역시 알고자 하는 게 많기에 너를 이곳에 데리고 온 것이다. 더 보고, 더 만져봐라. 그리고 알아낸 걸, 모두 내게 말해주었으면 한다.”

“……대족장님도 이게 뭔지 궁금하셨군요.”

“어머니의 나무, 어머니의 증표, 친구들의 표식……. 하지만 우린 아는 게 너무 없다. 그저 오랫동안 그렇게 불렀고, 그렇게 이해했고,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을 뿐이니까.”

그들 역시 자신들이 모시는 것이 무엇이고, 왜 모셔야 하며, 왜 지켜야 하고, 왜 기다려야 하는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오랜 세월을 그렇게 지내와 당연하다 생각을 했지만, 막연히 지키고 기다리는 것에 점차 지쳐가는 듯했다.

“나는 대족장으로서, 부족의 미래를 결정하는 자로 그게 무엇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메데아 대족장의 진지한 그 말에 주안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온 자신과는 달리, 메데아 대족장은 오히려 주안이 오는 것을 매우 기다리고 있었던 듯했다.

인정이다 뭐다 하였지만, 설령 인정을 못 받았다 해도 주안은 그에 상관이 없었을 터이니 문제가 될 것도 없었으니 말이다.

“다른 것도 좀 봐도 될까요? 그래도 하나는 여전히 빛나고, 이 신성력을 내고 있다니 그건 좀 다르겠죠.”

“쿠후후……. 그래, 그래야지.”

만족한 듯 메데아 대족장이 웃자, 주안 역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다가온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을 번쩍 안아 들고 다시 공주님 안기를 시전하자, 주안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저, 저기, 왜 저를 또 안으세요?”

“보러 가야지. 위에 있어서 걸어서는 못 간다.”

“서, 설마…… 올라간다고요?”

고개를 끄덕이는 메데아 대족장.

그리고 주안은 고개를 필사적으로 가로저었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이 싱긋 웃어주며 무릎을 굽혔다.

“자, 잠……!”

하지만 주안은 이번에는 비명조차 지르지도 못한 채, 그대로 제자리에서 뛰어오른 메데아 대족장으로 인해서 다시 한번 엄마의 품이 아닌 다른 여성의 품에 꼬옥 안기는 경험을 하였다.

* * *

높이 뛰어오른 메데아 대족장은 나무줄기와 나무기둥을 발로 차서 재차 뛰어오르거나 붙잡아 위치를 바꿨다.

거대한 나무라 그런지 나뭇가지도 남다르게 큰 그것을 밟고 걷기도 하며,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의 중간 부분까지 올라온 뒤에야 주안을 품에서 내려놓아 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바닥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던 주안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물었다.

“헉, 허억…… 대, 대체……. 어머니의 나무, 라면서요……. 신성한 나무, 아니에요? 왜, 발로 차고, 붙잡고 뛰고…… 그러시는 건데요.”

“어머니의 나무는 건강하고 튼튼하다. 이 정도로 아프지 않지. 강한 여성을 얕보지 마라.”

“아, 예…….”

어머니의 나무라 해서 그런지 세계수를 여성으로 빗대고 있는 메데아 대족장이 참으로 신기했다.

이런 생각을 그녀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부족 전체가 그런다 생각하니 참 아찔했다.

하지만 이런 주안의 모습을 보던 메데아 대족장이 오히려 불만 가득 주안에게 말했다.

“그보다 너무 허약하구나. 영감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것이냐?”

“몸 쓰는 건, 제 일이…… 아니, 아니니까요.”

“작은 손님, 그대와 함께 온 이들이 그대를 대하는 것을 보면 중요한 인물로 보였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허약한 것인가?”

“원래 높은 사람일수록 몸 쓰는 일과는 별로 친하지 않거든요.”

“이상하군……. 지도자란 항상 강해야 하고 가장 똑똑해야 할 것인데.”

“하하……. 여기랑 바깥이랑 많이 다르죠.”

어색하게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주안은 금세 다시 숨이 편안해져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메데아 대족장에게 말했다.

“위에 올라선 이들은 항상 강하고, 항상 똑똑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그들은 언제나 위에 올라서 있죠.”

“어째서?”

“고귀한 피를 타고 났다나 어쨌다나.”

“피가 고귀하다? 피는 피일 뿐이다.”

“예, 그렇죠. 피는 피일 뿐이죠. 하지만 바깥에선 그렇게 생각을 안 해요.”

주안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나무기둥 한쪽에 새겨진는 성흔이 아래의 것과는 달리 희미한 빛을 내는 것을 발견하고는, 그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바깥 주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어요. 이쪽으로 따지면, 이미 태어날 때부터 족장과 부족장, 그리고 대족장이 선택되어 있는 것이죠.”

“정말 이상하구나. 지도자는 항상 강하고 똑똑할 수 없을 것인데.”

대밀림의 족장은 항상 바뀐다.

언제나 가장 강한 이가 족장이 되었고, 가장 강하면서 똑똑한 이가 위에 올라서는 것이다.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다.

강하면 족장의 자리를 이어받고 그러지 못하면 부족민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맹수와 마수들의 위험에서 살아가는 대밀림의 부족에겐 자신들을 이끌어줄 강한 지도력과 강자가 항상 필요한 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대밀림 바깥의 주민들은 전혀 달랐다.

“그렇긴 하죠. 언제나 강한 아이와 똑똑한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그렇게 이어져 왔고, 그게 저희의 전통인걸요.”

“알 수 없는 전통이군. 그런데도 잘 살아가는 걸 보면 참으로 신기해.”

주안이 나무에 새겨진 빛나는 성흔을 살펴보다 뒤따라온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픽 하고 웃어주며 말했다.

“다행히 못난 지도자 아래에 똑같이 못난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래도 그중에서 가장 똑똑한 이를 내세우고, 많은 이가 보조를 해주니…… 좀 삐걱거리긴 해도 사회는 잘 굴러가더라고요.”

“그렇군.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일 뿐이라 생각을 한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사회 자체가 흔들릴 터…….”

“뭐, 가끔 혼란이 와서 큰일들이 벌어지긴 했지만.”

메데아 대족장의 걱정처럼 못난 지도자로 인해서 벌어진 일은, 작은 것에서부터 대륙을 전화에 휩싸이게 만든 거대한 사건들까지 참으로 많았다.

‘그중 하나가 나로 인해서 일어난 일이였다면, 메데아 대족장도 좀 놀라려나.’

보통의 큰 사건도 아니고, 거대한 가문과 최강국이 찢기고, 이 대륙 전체를 전쟁과 혼란으로 몰고 간 것이다.

그 스케일을 듣는다면 저 대단한 메데아 대족장의 표정도 조금은 변하지 않을까 싶었다.

물론 알려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매우 아쉬울 따름이다.

* * *

두 번째 성흔에는 내심 기대한 것이 컸지만, 별다른 것은 없었다.

주안의 성흔과 모양은 달라도 신성력의 빛은 매우 익숙했지만, 그것뿐이었다.

단지 이 거대한 나무와 호수 전체를 감싸는 것은 너무나 대단했지만, 그 비밀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아쉬움 속에 다시 메데아 대족장의 품에 안겨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흔의 흔적만 남아 있는 곳으로 올라간 주안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붙잡고 조심스레 그 흔적이 있는 곳으로 나아갔다.

가장 높은 곳에 가까운 장소라 그런지 바닥을 지탱하는 나뭇가지의 폭은 꽤 좁아졌고, 바람은 강했으며 바람에 흔들리는 잎사귀들이 주안의 몸을 감싸거나 하였다.

“이건…….”

그리고 그곳에 새겨져 있는 성흔에 주안의 눈이 크게 뜨였다.

아래의 것들보다 흔적은 옅었지만, 너무나 낯이 익은 모습이었기 때문이었다.

주안이 황급히 왼손바닥을 펼쳐 보았다.

희미하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이긴 하였지만, 확실히 세계수에 새겨져 있는 저 성흔은 주안의 것과 매우 비슷하였다.

단순히 모양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전체적인 크기와 형태마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왜 저기에 있던 성흔이 나한테 똑같이……?’

의문 속에 주안이 왼손을 뻗어 세계수에 새겨져 있는 성흔을 조심스레 만져보았다.

손바닥에서 전해져 오는 것은 그저 평범한 나무의 느낌이었을 뿐,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아래에 있던 유일하게 빛나고 있던 성흔이 좀 더 남다른 느낌이 났을 뿐이다.

“이것 역시 모르겠나?”

“그게…….”

무언가 기대를 한 듯했던 메데아 대족장이 조금 실망한 듯하였다.

하지만 주안 역시 그런 메데아 대족장을 위로할 수가 없는 것이, 주안 역시 별다른 것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그 노인에게 물어보는 게 훨씬 빨랐을까.’

작게 한숨을 내쉬던 주안이 주변에서 들려오는 꺄르륵거리는 소리에 작게 찌푸렸다.

새의 소리라고 하기엔 세계수에는 단 한 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달란트 부족의 땅에 들어섰을 때부터 울리던 소리였다.

‘대체 뭐야.’

주안이 잔뜩 찌푸린 채 손을 떼고 자리에서 일어나려 할 때였다.

-바보! 바보! 열쇠를 넣고 왜 안 돌리는 거야!

‘열쇠……?’

-앗?! 대답했다?! 멍청이! 드디어 대답했어!

-정말?! 귀머거리! 멍청이! 바보!

-후, 후에엣?!

‘……시끄러워.’

비난의 목소리가, 그것도 아이들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자 주안이 잔뜩 찌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보다 열쇠가 대체 뭐라는 거야.’

-열쇠도 몰라?

-반짝반짝 빛나는 거야. 예뻐! 엄청 예뻐!

-소, 손에 있어요.

갸웃하게 만드는 아이들의 목소리에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 반짝반짝 빛난다는 것에 무언가를 떠올린 듯했다.

“신성력…….”

그것을 떠올린 순간 주안은 그대로 손바닥을 성흔의 흔적에 댄 채 신성력을 끌어내었다.

주안의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신성력이 어째서인지 주변으로 퍼지지 않은 채 손바닥에만 머물렀고, 이러한 현상에 주안이 이상하게 생각하며 갸웃하였다.

하지만 이내, 주안이 손바닥을 조심스레 떼고 본 그것은…….

흔적만 남아 있던 성흔이, 아래에서 보았던 성흔처럼 빛을 머금고 반짝이는 모습이었다.

“설마…….”

나무에 새겨진 성흔에서 빛이 나자 더욱 또렷하게 보였고, 주안은 그제야 확신할 수 있었다.

세계수에 있었던 성흔은, 주안의 성흔과 똑같았다.

그리고 순간 세계수의 성흔에서 빛이 터져 나오며 주안의 시야를 가렸고, 그 몸을 감쌌으며 더 나아가 세계수 전체를, 호수를 감싸며 빛의 파동이 달란트 부족의 땅 전체에 퍼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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