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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83화 (8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83화

“참, 명예로운 싸움이었다. 이 녀석아.”

“……죄송합니다.”

주안이 토미의 상처를 치료해 주면서 한마디 쏘아붙이자, 토미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어쩔 줄 몰라 했다.

“피터 경이나 워랜 경이랑 대련할 땐 잘만 하던 녀석이, 정작 이런 대결에선 왜 그랬던 거야?”

“…….”

그 말에 부끄러운 것인지 토미가 고개를 푹 숙였지만, 곁에 있던 워랜이 말했다.

“대련과 실전은 다르지. 처음은 다 그런 거야. 싸우다 보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고 그동안 배운 것은 하나도 써먹지 못한 채 개싸움이 되게 마련이거든.”

“워랜 경도 그러셨어요?”

“나?”

주안의 물음에 워랜이 히죽 웃으며 답했다.

“당연히 아니지.”

“…….”

워랜의 말에 토미가 더욱 움츠러들며 부끄러워한다.

“워랜 경은 그냥 무시해. 어쨌든 처음치고는 잘 싸운 거니까, 다음에는 더 잘하면 되지.”

“……네.”

그래도 주안의 말에 조금은 힘이 난 듯 토미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하지만 주안은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토미의 실력으로는 쿠단을 상대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었고, 그것은 토미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대결에 임한 그 근성과 용기는 인정을 해줘야 했다.

엉망진창이긴 해도 끝까지 대결을 이끌어갔다는 것은 칭찬을 해도 모자라지 않았다.

그런 토미를 치료해 준 후 주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원주민 쪽, 메데아 대족장과 쿠단에게 걸어가 말했다.

“쿠단도 치료해 줄게요.”

“거절한다! 깨끗해지는 거 절대 싫다! 영감한테 치료받을 거다!”

“…….”

왜 이렇게 깨끗해지는 것을 싫어할까.

뭐, 본인이 저렇게 싫어하니 더 이상 주안도 권유하지 않은 채 메데아 대족장에게 말했다.

“이제 확실히 손님이 된 거죠?”

“정말 재미있는 외부인들, 아니, 손님들이로구나. 그래, 모두를 인정한다. 달란트 부족에 온 걸 환영한다.”

손님 한번 되기 참 어렵지만, 그들답다는 생각에 주안도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메데아 대족장님.”

“감사할 것 없다. 어차피 정해진 수순이었으니 말이다.”

“정해진 수순……?”

갸웃하는 주안에게 메데아 대족장이 히죽 웃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너희는 놀아라! 고기 많이 먹어도 되니까, 술 먹고 적당히 싸워라!”

보통 술 마시고 싸우지 말라고 해야 할 텐데, 그런 말을 하는 대족장도 대족장이었지만, 당연하게 받아들며 즐거워하는 원주민들도 참 대단했다.

“영감도 놀고 있어라. 어머니의 증표를 가진 이 아이는 내가 데리고 갔다 올 테니까.”

“예? 데리고 가다니, 대체 어딜…….”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의 뒷덜미를 잡더니 번쩍 들고는 자신의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그 행동에 주안이 깜짝 놀랐지만 워랜과 아르베리아, 토미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주안을 안고 있는 메데아 대족장에게 향하려 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리며 말했다.

“어머니의 나무로 바로 가려는 거요?”

“목적이 그곳이 아니었나?”

“맞소. 하지만 꽤나 급하구려.”

“쿠후후……. 어차피 그대들의 목적과 나의 궁금증은 일치한다. 그러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지 않나?”

딱히 틀린 말이 아니었다.

애초에 이곳에 온 목적, 주안이 그 세계수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고 이들은 모두 따라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전 괜찮으니 기다리고 계세요. 토미, 넌 술 마시지 말고.”

“수, 술은 도련님이 드시면 안 되는 거죠!”

“……반항이냐.”

그래도 걱정해서 해준 말인데, 카운터 펀치를 맞은 것 같아 주안이 살짝 찌푸렸다.

주안을 품에 안은 메데아 대족장이 돌아서서 원주민들 사이를 빠져나가자, 조심스레 뒤따라오던 한 원주민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물었다.

“가시는 겁니까.”

늙은 원주민이 조용히 묻자 메데아 대족장이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파나르, 그대도 궁금하겠지만 지금은 참아라. 갔다 와서 말해주마.”

“예, 대족장.”

파나르라 불린 늙은 원주민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솔직히 주안은 이 늙은 원주민, 파나르에게 묻고 싶은 게 조금 있었다.

성호를 긋는 것 하며 성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듯 보였으며, 무엇보다 이 성흔에 대해, 친구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주안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메데아 대족장의 말대로, 일단 주안 역시 세계수를 눈으로 직접 보고, 그 흔적을 눈에 담고 싶었다.

“저기, 그런데 꼭 이렇게 저를 안고 가셔야 하나요.”

“이게 빠르지. 어린 손님도 이게 편하지 않나?”

“그야, 편하긴 한데 이건 좀…….”

열여섯이나 먹고 공주님 안기를 당한다는 게 여간 창피한 일이 아니었다.

이게 사교계에 퍼지만, 마마보이보다 더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수도 있었다.

“해가 지기 전에 갔다 와야 하니까 어쩔 수 없다. 참아라.”

“네…….”

메데아 대족장이 이렇게 말하니, 주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꽉 잡아라, 어린 손님!”

“예? 꽉 잡으라니…… 대체 어딜…….”

솔직히 제대로 잡을 만한 곳이 없었고, 잡으면 절대 안 되는 부분만 보였다.

지금도 참 아슬아슬한데 말이다.

주안이 멋쩍어하며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메데아 대족장이 오히려 주안을 더욱 품에 꼬옥 안아주었다.

“간다!”

“으히익?!”

너무 꽈악 안아주는 바람에 가슴 사이에 얼굴이 파묻혔지만, 이내 중력을 거스르는 힘의 압박에 주안에 작게 비명을 질렀다.

“이, 이, 이게 대, 대, 대체……?!”

땅을 박차고 뛰어오른 메데아 대족장이었지만, 땅을 달리는 게 아니라…….

“날아?!”

허공에 높이, 그리고 멀리 뛰어 날아가더니 이내 다시 바닥에 착지하는 게 아니라,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똑같이 다시 허공에 떠올라 앞으로 빠르게 나아간다.

그 행동에 주안이 새파랗게 질렸지만, 곧 땅이 아닌 호수의 수면 위를 똑같이 뛰어 날아가는 그 행동에 기절할 뻔했다.

* * *

눈을 뜰 수도 없을 만큼 빠르고 강한 바람에 주안은 어쩔 수 없이 눈을 꼬옥 감은 채 메데아 대족장의 품에 파고들어 꼬옥 안긴 채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를 마음속으로 빌었을 정도였다.

게다가 이전까지, 이전의 삶까지 포함해서 처음으로 깨달은 게 있으니, 자신은 높은 곳을 매우 무서워한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오늘 처음으로 고소공포증이 생겼을 게 확실했다.

그렇게 수면 위를 달리고 날아서 도착한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의 뿌리에 도착한 메데아 대족장은 조심스레 품에 안겨 있던 주안을 바닥에 내려주었다.

하지만 주안은 품에서 벗어나자마자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억, 허억…… 하아, 후웁…….”

“그러다 진짜 숨넘어가겠구나. 좀 괜찮나?”

“저, 전혀…… 괜찮지가…….”

“흠…….”

식은땀까지 흘리는 주안의 모습이 꽤나 안쓰러운 것인지 메데아 대족장이 손을 뻗어 주안의 등을 토닥여주기까지 한다.

그렇게 잠시 숨을 몰아쉬고, 토닥토닥도 받은 뒤 겨우 좀 괜찮아진 것인지 주안이 깊이 숨을 한 번 들이쉰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쯧쯧. 어찌 어머니의 손길을 쓰는 이들은 하나같이 이리도 체력이 모자란 것인지.”

“……마누엘 신관님은 튼튼하신 걸요.”

“그 영감은 변종이다. 같은 사람으로 놓지 않는 게 좋다.”

“…….”

‘대체 마누엘 신관님은 원주민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르셨기에 이런 취급을 당하시는 것이람.’

무식한 체력과 힘이라면 뒤지지 않을 원주민들에게 돌연변이 취급을 당하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은 정말 신기하고 참 대단하다고까지 생각을 하였다.

일단 주안은 재차 숨을 들이쉬었다 내뱉은 후, 정신을 가다듬은 뒤 또렷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세계수?”

메데아 대족장의 품에 안겨 오느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멀리서 보았던 그 거대한 나무는, 바로 앞에서 보니 아무리 올려다보아도 그 높이가 가늠되지 않았다.

나무의 넓이는 너무나 넓었으며 지금 서 있는 이 뿌리 자체가 수백 년은 산 나무와도 같아 보였다.

게다가 이 세계수뿐만이 아니라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호수는 마치 바다와도 같아 보였다.

이 호수 너머, 작은 점으로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는 달란트 부족의 집들의 모습을 보니, 이곳은 마치 멀리 떨어진 섬처럼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았는데, 이렇게 멀리…….”

예상은 했지만, 이전 삶 속에서도 토미는 사람의 능력이라고 볼 수 없는 소문들을 정말 많이 만들어 냈었다.

수십 개의 칼을 만들어 고랭크 기사 수십을 한 번에 도륙해 버린 일이나 제국의 철옹성 헤타야의 성벽을 잘라 버려 무너뜨리거나, 단신으로 북부 반란군 진영으로 잠입해 총사령관 빈센트 백작을 사로잡는 등…… 말도 안 되는 일들을 벌였다.

그것을 실제로 보고 겪은 것은 아니지만, 소문은 소문이고, 소문에는 언제나 살이 붙어 부풀려진다고 생각을 하였기에, 확실히 대단하지만, 조금 부풀려졌다고 생각했던 주안이었다.

그 실력은 인정하나, 그것은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동급이라 생각이 되는 메데아 대족장의 능력을 보니, 토미는 오히려 괴물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능력을 축소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저 큰 호수를 쉬지도 않고, 그것도 빠르게 달려오다니…….’

게다가 지치지도 않은 듯 여유로운 메데아 대족장의 모습을 보니 기가 질릴 수밖에 없었다.

왜 사람들이 랭크 7과 8의 차이가 그토록 심하고, 랭크 8의 단계가 인간이 아니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겨우 한 단계의 차이이지만, 그 간극이 너무나 심했다.

“일단 이곳에 왔다만, 너는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가.”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주안이 상념에서 벗어나 조심스레 자신의 왼손의 성흔을 바라보다 말했다.

“이곳에는 성흔이, 어머니의 증표가 세 개나 있다고 들었어요. 맞나요?”

“맞다. 세 개지……. 아니, 였었지.”

메데아 대족장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사라진 건가요? 아니면…….”

“애초에 우리의 것이 아니었다. 친구들을 위해 어머니께서 내려주셨던 것, 친구들의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들이 떠난 후 사라졌다고 들었다.”

마누엘 전대 대신관 역시 이들도 자세한 부분은 잘 모른다고 하였고, 메데아 대족장의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그 말대로 이들 역시 많은 것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준히 언급되는 친구들이라는 것에 주안이 의문을 느꼈다.

“저쪽에 어머니의 증표의 흔적이 하나 남아 있다. 따라와라.”

“아, 예…….”

여기까지 안고 달려와 준 것이 끝이라는 듯 메데아 대족장이 앞서 나가자 주안이 황급히 그 뒤를 따라갔다.

그 뒤를 따라가며 주안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물었다.

“혹시 말이에요, 그 친구들이 혹시 같은 부족의 분들이신가요?”

“아니, 우리 부족은 아니다. 함께 살던 다른 부족의 친구들이었지.”

최초의 부족, 달란트에서 자란 원주민들이 나와 대밀림 곳곳에 퍼져 자신들만의 가족을 꾸리고 한 것이 현재의 대밀림 원주민들의 부족이긴 하였지만, 이들이 칭하는 친구와는 연관이 없어 보였다.

“하아, 뭔가 자료라도 남아 있으면 좋았을 텐데.”

원주민들에게 그런 자료는 없는 듯했고, 바깥 주민들 역시 이런 것을 책으로 남기지 않는 이상 한 세대만 지나도 이야기가 완벽히 달라지거나 혹은 잊히게 된다.

“우리 친구들이 왜 그렇게 궁금한지 모르겠구나.”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할까요. 이 성흔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마치 이곳의 원주민들은 이것을 누가 주었다는 듯이 모시고 있다는 게 이상하잖아요.”

세계수라는 이 어머니의 나무와 그곳에 새겨진 세 개의 성흔도 그렇지만 마치 두 부족이 떠남과 동시에 사라졌다는 두 개의 성흔까지.

마치, 그들이 가지고 떠난 게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까지 하게 만든다.

이런 주안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앞서 걸어 나가던 메데아 대족장이 조용히 주안에게 물었다.

“영감에게 들었다만, 바깥의 주민들은 그 어머니의 증표를 가진 이가 또 있다 하였다. 맞나?”

“예, 맞아요. 제가 이것을 가지기 이전에, 오랫동안 쭈욱 이어져 오던 게 있었어요.”

“어머니의 손길을 쓰는 집단이라고 들었다. 그들인가 보군.”

“이쪽에선 신성력이라 부르죠.”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메데아 대족장이 콧김을 뿜어내며 말했다.

“그런데 너는 왜 그걸 가지고 있나, 작은 손님.”

“그걸 알고 싶어서 여기 온 거예요. 저도 이게 왜 저에게 있는지, 그걸 모르겠거든요.”

“흠…….”

뭐, 주안 역시 자세한 것을 모르기에 이렇게 무리를 해서 이곳까지 온 것이라 메데아 대족장에게 해줄 말이 별로 없었다.

‘이렇게 보면 우리 역시 이게 뭔지, 아는 게 별로 없구나.’

북부의 성도 다예프라면 성흔이 뭔지 자세히 알고 있을까.

아무리 같은 신을 믿고 같은 교리를 익혀 나가는 집단이라고는 하나, 다예프의 폐쇄성은 좀 심한 편이라 대신관들조차 다예프의 신관들과 그다지 친하지 않을 정도였다.

애초에 대신전들이 독립된 단체라고는 하나, 데면데면한 게 좀 심하다고 주안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데 힘들지는 않나? 아까보다 훨씬 좋아 보이는구나.”

“높은 곳을 뛰어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괜찮네요. 여기 오는 방법이 메데아 대족장님께서 안고 오는 방법밖에 없으신 거예요?”

“아니, 배를 타고 오면 된다.”

“……근데 왜 저는 안고 달려오셨어요?”

“그야 그게 더 빠르지 않나. 그리고 그게 더 편하다.”

“아, 예…….”

빠른 거야 인정은 하지만, 애초에 배라는 선택지가 하나 더 있음에도, 배를 타는 부분에 대해 전혀 언급해 주지 않았다는 것에 주안이 살짝 불만을 가지긴 했지만…….

‘뭐, 배를 타고 오면 한참 걸렸겠지만.’

그래도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하게 해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그렇게 메데아 대족장과는 별다른 할 이야기가 없어져 버린 탓에, 조용히 뒤를 따라 한참을 걸어 도착한 곳은, 뿌리의 끝에 마치 절벽처럼 앞을 가로막고 있는 나무기둥이었다.

얼기설기 나무줄기들이 기둥을 감싸고 있었지만, 메데아 대족장이 그 굵고 질겨 보이는 나무줄기들을 들추어 그 속을 주안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그 속, 고고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흔적이 주안의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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