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82화 (8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82화

주안의 우려와 걱정이 섞인 복잡한 시선을 뒤로한 채 앞으로 나선 토미는 자신과는 달리 함성과 응원을 받으며 걸어 나온 쿠단의 모습에 갸웃하며 물었다.

“왜 맨손이에요?”

“정정당당한 대결이다. 작은 외부인, 토미. 너는 약하다. 네 수준에 맞춰준다. 나 도끼, 네 나뭇가지 한 번에 부술 수 있다.”

“쿠단……!”

토미가 발끈했지만, 쿠단은 오히려 콧김을 뿜어대며 두 주먹을 치며 사납게 미소를 지었다.

“내 손이 곧 무기다. 내 몸이 곧 무기다. 작은 외부인, 토미. 안 봐준다.”

“…….”

사납게 으르렁거리는 쿠단의 모습은 마치 즐거운 미소를 짓는 듯했다.

그리고 쿠단이 자신을 비웃고 낮게 깔보고 있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정정당당하게 싸우려는 게 전해져 왔다.

가타부타 쓸데없는 말로 토미를 달래주기보다 확실한 실력을 보여주겠다는 듯, 맨손임에도 온몸이 무기라는 것을 보여주듯, 쿠단의 근육질 몸이 보는 것만으로도 압박이 느껴질 만큼 위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토미는 자신의 목검을 두 손으로 강하게 움켜쥐며 쿠단에게 겨누었다.

“후회하게 만들어 드릴게요.”

“그 말, 돌려준다! 크라아아앗!”

쿠단이 사납게 웃으며 그대로 토미에게 돌진했고, 토미는 그 모습을 눈에 똑똑히 새기며 한 걸음 나아갔다.

* * *

피터에게 배운 것인지 토미는 천천히, 하지만 쿠단의 저돌적인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 듯, 달려드는 쿠단과는 일정한 거리를 벌린 채 공격보다 방어, 방어보다 회피에 더 신경 썼다.

그런 토미의 행동은 안심이 되긴 하였지만, 저런 게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 주안은 작은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토미가 이길 수 있을까요?”

“뭘 당연한 소리를 해.”

이런 주안의 걱정 섞인 말에 워랜이 가볍게 답했다.

“당연히 못 이기지.”

“…….”

깔끔한 그 말에 주안이 살짝 찌푸렸지만, 워랜은 심드렁했고 곁에 있던 아르베리아와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한마디씩 해주었다.

“검을 맞대어보니, 토미로는 이길 방도가 딱히 없습니다.”

“쿠단이라면 맨손으로 황소도 때려잡을 녀석이다. 어리긴 해도 곰 같은 녀석이라고 봐도 괜찮겠지.”

“그걸 아시면서 왜 진작 안 말리셨어요?!”

아니, 맨주먹으로 황소를 때려잡을 정도면 좀 말려주었으면 어땠을까.

아무리 그래도 마누엘 전대 대신관과 쿠단은 나름 오래 지낸 것 같았고, 그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으면 뭔가 말이라도 해주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주안의 당황한 그 외침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턱을 쓰다듬으며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래도 걱정 말거라. 말했다시피,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신사적인 녀석들이라 아이들과 노인에게 험한 짓은 하지 않으니 말이다.”

“……마누엘 신관님에게 하는 걸 보니 굉장히 험했던 거 같은데요.”

“흠…….”

그 말에는 반박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헛기침을 하며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 모습에 주안도 작게 한숨을 내쉬며 토미와 쿠단을 보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물었다.

“쿠단의 실력은 어느 정도에요?”

“당장 본다면 랭크 3에서 4 정도 되겠다 싶구나.”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재능이 넘치네요.”

쿠단의 나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재능을 가졌다고 볼 수 있었다.

겨우 열두 살의 나이로 랭크 4라면 어느 나라든 영입하거나, 자국민이라면 그게 설령 평민이든 뭐든 상관없이 나라 자체에서 중요하게 키울 인재였다.

물론 원주민인 것을 고려해도 꽤 대단하다 볼 수 있었다.

주안은 몰랐지만, 카사 역시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이례적인 재능을 가진 실력자였다.

“원주민들의 나이로 열둘이면 성인이나 마찬가지이니 재능에 부러워하지 말고 시기하지도 말거라.”

“그건 알고 있지만…….”

원주민들의 평균 수명은 꽤나 적었다.

기본적으로 맹수들의 위협과 마수들의 위협이 컸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그것을 제외해도 원주민들은 매우 빨리 자랐고, 성장기가 빠른 만큼 전성기도 빠르게 다가오며, 노년기가 찾아오는 것도 그만큼 빠르다.

그렇기에 열 살도 되기 전에 당당한 한 사람의 전사로 인정을 받게 되고, 열 살이 넘으면 결혼도 가능한 나이로 인정받을 정도였다.

그렇기에 원주민들 사이에서 열두 살이면 이미 다 큰 어른이나 마찬가지다.

“전투적인 삶 속에서, 빠르게 자라고 빠르게 성장하고, 빠르게 전성기가 오는 만큼…… 세상과의 이별도 빠른 것이다. 오히려 그들을 이렇게 만든 신에게 가끔 원망이 들 때도 있더구나.”

“마누엘 신관님…….”

“어이해서 이들을 이곳에 자리 잡게 만들고, 이런 역할을 주며, 이런 운명을 내리신 것인지……. 후우…….”

대밀림 바깥의 주민들이야, 원주민들은 그저 야만인이고 대화가 통하지 않으며 언제나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을 하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아니었다.

그들과의 교류를 그 누구보다 오래 한 것인지, 그들의 정신과 숭고한 문화와 자긍심을 이해하고 인정했다.

그들의 삶이 겉으로는 흥겹고 즐거워 보여도, 치열한 삶 속에서 이러지 않는다면 미쳐도 단단히 미쳐 버릴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기에 동정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어도 결코, 드러내지 않았다.

“어쨌든 잘 지켜보거라. 저 토미라는 아이가 너의 가문, 마르티네스를 짊어진 만큼 쿠단 역시 부족의 이름을 짊어지고 있다. 이건 전투가 아닌, 가문의 이름을 짊어진 젊은 녀석들의 자긍심을 건 대결이니 말이다.”

“예…….”

앞서 메데아 대족장이 워랜과 아르베리아의 대결에 끼어든 것도, 서로의 목숨을 빼앗는 것이 아닌 이름을 걸고 한 대결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다면 서로가 위험해질 때, 언제든 메데아 대족장은 다시 두 사람을 말릴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아니, 그게 아니더라도 주안은 자신의 곁을 지키는 든든한 이 사람들을 믿었다.

워랜도, 아르베리아도…….

‘토미가 잘못되는 걸 절대 못 보실 거니까.’

느긋하고 장난스레 말했지만, 워랜의 눈은 진지했고 그 시선은 토미와 쿠단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아르베리아 역시 묵묵히 두 사람의 대결을 말없이 지켜보며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토미에게 이 대결이 어떤 의미인지, 이들도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지지 마라, 토미. 넌…… 이 대륙을 넘어, 동방 대륙에도 그 이름을 떨쳤던 대단한 녀석이니까.’

다른 두 사람처럼 토미를 위해 뛰쳐나가 구할 능력은 없지만, 적어도 어떤 일이 벌어져도 주안은 토미를 살릴 힘이 있었다.

그렇기에 토미를 믿고, 지금은 지켜봐 주는 게 최선이었다.

* * *

“크라아아아아앗!”

몇 번이나 공방이 이어졌고, 쿠단은 앞선 라쿰바나 카사와 마찬가지로 앞뒤 잴 것 없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토미는 이미 앞선 두 번의 대결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아니, 머릿속에서는 자신이 워랜이 되었고, 아르베리아가 되어 수없이 전투하며 생각을 하였고,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고 있었다.

‘빠르고 강하고 정확해. 하지만…… 정직해!’

워랜과 같은 그런 엄청난 움직임이 아직 토미에겐 없지만, 워랜마저 놀라게 만든 토미의 장점은 바로 학습능력, 그리고 동체시력이었다.

몇 번의 시뮬레이션, 그리고 똑똑히 새긴 앞선 대결의 움직임.

거기에 대조시킨 현재의 쿠단의 몸놀림과 자신이 해야 할 것을 이미 파악한 토미는 가벼운 발놀림으로 쿠단의 공격과 저돌적인 돌진을 피해내며 빈틈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이런 토미의 몸놀림을 보던 워랜이 놀란 눈을 하고 작게 중얼거렸다.

“저 자식, 내 움직임을…….”

워랜이 놀라서 말했지만, 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토미의 재능이야 이전부터 잘 알고 있었고, 그런 재능을 보자마자 알아차린 것은 주안을 제외하곤 그가 처음이었다.

보고, 배우고, 그것을 응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아직은 어설프게 따라 하는 수준일 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분명 다른 형태로 자신의 것으로 만들 것이다.

그것은 토미만이 아니라 워랜 역시 비슷한 성향이긴 하나, 워랜은 누군가를 따라 하며 발전하기보단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게 훨씬 많았다.

애초에 누군가를 보고 배울 만한 부분이 워랜에게는 없었다는 게 컸다.

서로 다른 재능을 통해, 타인의 재능을 잡아먹고 성장하는 괴물들이라 평가를 받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래도 어설퍼…….”

보고 배운 방식도 다르고 검을 잡고 휘두른 시간도 다르며, 살아온 세월도 달랐다.

아직 성장기인 토미의 움직임은 아무리 워랜의 것과 아르베리아의 것을 보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움직인다 해도, 아직은 자신의 것은커녕 흉내조차 제대로 내기 힘들었다.

안타깝긴 했지만, 저것이 최선이라면 최선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워랜은 토미가 다른 이들의 것을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보단, 자신의 것을 좀 더 발전시켜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갔으면 했었다.

* * *

쿠단의 움직임에 맞춰 상대하던 토미는 몇 번이나 쿠단에게 일격을 가하고 물러나며, 재차 빈틈을 찌르고 물러나는 것을 반복했지만, 크게 타격을 입힐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씩, 체력을 깎아내듯 하였지만, 그럼에도 단 한 번도 쿠단에게 손을 허락하지 않은 것은 실로 대단하다 할 수 있었다.

“으아아앗!”

그렇게 조금씩 체력을 깎아나가던 토미가 쿠단의 빈틈을 발견하고, 카운터를 치듯 달려오던 쿠단의 힘을 이용해 그대로 자신의 목검을 쿠단의 옆구리에 박아 넣었다.

아무리 서방 검술이 몸에 안 맞고 그에 맞는 몸이 되지 못했다 해도 토미가 가진 기본적인 체력과 힘은 다른 이들과는 확실히 달랐다.

게다가 쿠단의 힘까지 이용하였기에 제대로 들어간 일격은 제대로 숨조차 못 쉬게 만들고, 무릎을 꿇게 만들 것이란 확신이 있었다.

자신보다 훨씬 강한 이에게 확실한 타격을 주는 방법은 상대방의 힘을 역으로 이용하는 것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기에 한 걸음 빠르게 물러나며 쿠단과 거리를 벌렸다.

그러나 그게 더 큰 문제였던 것인지 오히려 쿠단이 더 빠르게 달려와 손을 뻗어 토미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너도 재빠르다! 하지만 이제 잡았다!”

“뭐?!”

멱살을 움켜잡은 쿠단이 그대로 토미의 발을 걸어버리고 바닥으로 패대기쳐 버렸다.

“커억?!”

등에서 전해져 오는 무시무시한 충격에 머리가 핑 돌며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라는 듯 쿠단은 쓰러져 있는 토미의 위로 올라타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너, 빠르다. 하지만 이제 못 움직인다.”

“크윽…….”

앞선 대결을 지켜보고 생각한 것은 토미 자신만이 아닌 듯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워랜을 잡지 못 해서 고전한 라쿰바를 똑똑히 지켜봤기에, 저 잽싼 바깥 주민을 잡는 방법을 생각하고 답을 낸 것은 매우 간단했다.

그냥 한 대 맞고, 한 대가 아니면 두 대도 맞고, 더 맞아야 하면 더 맞고…… 그러다 딱 한 번, 붙잡는다.

그러면 끝난다는 것을 쿠단은 알고 있었다.

상대가 워랜이었다면 통할 방법이 아니었지만, 상대는 토미였고, 토미를 알고 있는 쿠단이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내가 이겼다. 토미는 인정해라.”

주먹을 꽉 움켜쥔 쿠단이 깔고 앉아 있는 토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여차하면 그대로 주먹을 내질러 토미를 치려는 듯했다.

그것을 알기에 아직 가쁜 숨을 몰아쉬던 토미가 쿠단을 노려보며 이를 악물었다.

“아직 안 졌…… 컥?!”

토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쿠단이 토미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항복해라. 내가 이겼다.”

“아직…….”

하지만 재차 쿠단의 주먹이 토미의 얼굴을 가격했다.

한 번, 두 번, 몇 번이나 얼굴을 때렸지만 정말 진심으로, 죽일 생각으로 휘두르는 주먹은 아니었다.

약자에 대한 배려일 수도 있고, 토미에 대한 정일수도 있다.

그것을 알기 때문인지 워랜이나 아르베리아도 나서서 말리지 않았지만, 주안은 초조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토미를 지켜보았다.

차라리 이쯤에서 그냥 항복해도,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실력 차이가 심각하다는 것 정도는 다들 알고 있었고, 토미가 무슨 생각으로 이 대결을 하고자 한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안 졌어.”

“졌다. 더 하면 너 얼굴 망가진다. 나처럼 된다.”

“…….”

농담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쿠단의 그 말에 토미는 엉망이 된 얼굴로 웃을 뻔했다.

토미가 말없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에 쿠단이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부족의 이름을 걸고 하는 싸움이라는 것을 되새기며 마지막으로, 기절을 시킬 생각인 듯 힘을 잔뜩 준 주먹을 토미에게 내질렀다.

“아직 안 졌다고!”

하지만 토미는 마치 그것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쿠단의 주먹을 고개를 돌리며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마치 쿠단이 한 것처럼, 손을 뻗어 쿠단의 멱살을 붙잡고 그대로 잡아당겨 얼굴에 박치기를 날렸다.

“크억?!”

쿠단이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나자, 자신을 압박하던 게 사라진 것을 알아차린 토미가 손을 뻗어 땅바닥을 더듬었지만, 떨어뜨린 목검이 손에 닿지 않았다.

잠시 눈을 돌려 보니, 목검은 이미 저 멀리 날아가 있었다.

토미에게 반격을 당한 순간 발로 목검을 차버린 쿠단의 그 순발력에 놀랐지만, 이를 꽉 깨문 채 토미가 쿠단에게서 몸을 뺀 뒤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쿠단에게 달려가 주먹을 내질렀다.

“아프다, 작은 외부인!”

“외부인이 아니라 토미라고!”

“그래, 외부인! 토미!”

“아, 진짜!”

머리는 단련을 잘 못 한 것인지, 아니면 토미의 머리가 단단한 것인지, 박치기 때문에 여전히 어질어질한 쿠단이 소리쳤지만, 그럴수록 토미는 더욱 발끈했다.

얼굴 상처만 본다면 분명 여기저기 멍이 들고 코피까지 흘리는 토미가 이미 졌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토미는 그대로 쿠단에게 달려가 주먹을 내지르고, 쿠단은 그 주먹에 맞으면서도 다시 토미에게 주먹과 함께 발차기도 날린다.

그것만이 아니라 서로 껴안고 바닥을 구르고 그러면서도 치고받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앞선 두 대결이 남자의 승부였다면 지금은 마치…….

“완전 개싸움이네요.”

주안의 그 한마디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