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81화
아르베리아와 카사의 대결은 의외로 굉장히 오래갔다.
서로 비슷한 실력에 스타일도 비슷해서 그런지 쉽게 승부가 나지 않았다.
체력적으로 보면 확실히 이 대밀림에서 살아가는 카사가 우위에 있는 듯했지만, 무기를 다루는 실력은 아르베리아가 조금은 위에 있었다.
본능으로 도끼를 휘두르고 돌진을 하는 카사와는 달리 아르베리아는 그래도 힘과 힘을 맞대면서도 빈틈을 찾고, 그 짧은 순간에도 말란체 가문의 사람답게 전투의 흐름과 방향, 전략을 짜며 그것을 실행에 옮겼다.
서로 한 부분에 대해서 우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공략해 갔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오히려 대결은 끝이 보이지 않게 진행이 되었고, 서로의 체력이 거의 끝에 다다르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워랜도 그렇지만, 주안은 꽤나 초조했고 혹시 아르베리아가 잘못되지 않을까 불안해져 갔다.
하지만 그런 두 사람의 대결도, 잔뜩 긴장한 주안을 일깨우듯 메데아 대족장이 그런 두 사람에게 소리쳤다.
“그만!”
아르베리아와 카사가 서로에게 다시 달려들려다 메데아 대족장의 목소리에 우뚝 멈추어 서더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본다.
두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두의 시선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모였고,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도 메데아 대족장이 담담하게 말했다.
“더 가면 누구 하나는 실수로 죽겠군. 그쪽에게도 중요한 전사겠지만, 우리에게도 장래가 보이는 전사이다. 비긴 것으로 하지.”
메데아 대족장의 말에 아르베리아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검을 내렸고, 그에 맞춰 카사 역시 자신의 도끼를 늘어뜨렸다.
둘 모두 그 말을 인정하는 모습이었다. 아르베리아가 잠시 숨을 고른 후 카사를 보더니,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해 주었다.
솔직히 그도 원주민들을 조금 깔보고 있었지만, 워랜과 라쿰바와의 대결이나 자신과 검을 나눈 카사의 그 실력은 절대 거짓이 아니었다.
체계적인 훈련 없이 오로지 실전으로만 다져진 그 전투 실력과 타고난 몸이 만나니, 확실한 전사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아르베리아도 실감을 하게 되었다.
“크흠. 너 강하다, 외부인. 인정한다.”
“카사라고 하였지요? 당신 역시 대단한 실력이더군요.”
“내가 손의 세 번째 나이만 되었어도 충분히 이겼을 거다. 다음에는 이렇게 안 끝날 거다!”
“손의 세 번째?”
카사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아르베리아에게 메데아 대족장이 히죽 웃으며 친절하게 카사의 말을 해석해서 전해주었다.
“바깥쪽 이들의 나이로 따지면 열다섯이 되겠지.”
“…….”
“너와 싸운 이 아이는 올해 열세 살이다.”
그 말에 아르베리아의 안색이 창백해졌고, 카사는 우쭐하며 팔짱을 끼며 아르베리아를 본다.
그 시선에 아르베리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돌아섰다.
분명 비겼는데, 어째서인지 진 듯한 기분이다.
일행들 쪽으로 걸어가며, 복잡한 기분에 작게 한숨을 내쉬던 아르베리아였지만, 이내 워랜이 자신을 보며 눈웃음과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짓는 것을 보고는 흠칫 놀랐다.
“애한테 비긴 우리 대단한 아르베리아 경. 이거 소문나면 가문의 망신이라고 솔이 후계자가 되는 게 아닌가 모르겠네.”
“크윽!”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그것을 다 들은 것인지 워랜의 놀림에 아르베리아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어휴, 정말. 힘들게 대결하고 오신 분에게 그렇게 놀리고 싶으세요?”
“이것도 긴장을 풀어주기 위한 하나의 방법…….”
“그냥 재미있어서 하시는 거 다 알거든요?”
주안의 잔소리에 워랜이 투덜거리긴 했지만, 정말 워랜의 이런 행동을 보면 잔소리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아르베리아 경. 치료해 드리고 싶은데, 괜찮죠?”
“영광입니다, 공자님!”
어깨가 추욱 늘어졌던 아르베리아가 주안의 말에 금세 기운을 차리고 외쳤다.
정말 한결같다는 생각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아르베리아에게 신성력을 써서 치료해 주었다.
이런 주안의 행동에 워랜이 입술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나한테는 그런 거 안 해주더니……. 차별이잖아?”
“처음부터 말씀 안 해주셔서 커즈 신관님이 해주신 거잖아요.”
“그야 말을 할 수가 없었는걸.”
“……왜요?”
“그래야 더 멋지잖아.”
“…….”
아무리 봐도 워랜의 성격은 참 이상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는 주안이었다. 주안은 잔뜩 찌푸린 채 워랜을 빤히 바라보다 흥, 하고 고개를 돌려 버렸다.
다행히 아르베리아의 몸은 어디가 베여 크게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자잘한 자상과 함께 기습적으로 날려대는 카사의 주먹과 발길질에 여기저기 멍이 들었던 몸이 주안의 신성력에 금세 나아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원하다가 곧 몸이 따뜻해지더니 금세 편안해지는 게, 정말이지 신기한 신성력이 아닐 수가 없었다.
“자, 끝.”
“정말 대단하십니다, 공자님. 이렇게 금방…….”
주안이 손을 떼자 아르베리아가 짐짓 놀랍다는 투로 말했다.
아르베리아 역시 신성력에 의한 치료를 몇 번인가 받아 본 경험이 있었지만, 주안의 신성력 치료는 무언가 많이 달랐다.
근본적으로 치유 속도에서 엄청난 차이를 보였고, 치료가 되고 몸이 나아간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느낄 수도 있었으며 무엇보다…….
“……또 반짝반짝 해졌네요.”
“크윽, 머리카락이……!”
몸의 더러운 부분이 모두 깨끗하게 변하고, 가문의 자랑스러운 곱슬 머리카락이 다시 펴지며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렸다.
“호오, 역시 남자는 머리카락이 중요하다더니……. 인물이 훤하였구나.”
“으…….”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신기하다는 듯 아르베리아를 보며 칭찬까지 해주었지만, 칭찬으로 들리지 않는 말이었다.
“자, 그러면 이걸로 저희는 모두 손님으로 인정을 받은 건가요?”
주안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묻자, 메데아 대족장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래, 손님이다. 손님이긴 하나, 납득하지 않는 이가 보이는구나.”
“예? 그게 무슨…….”
갸웃하는 주안에게 메데아 대족장이 손을 들어 손가락으로 주안의 곁을 가리켰다.
그 방향으로 주안이 고개를 돌리자, 입을 굳게 다문 채 토미가 자신의 목검을 꽉 움켜쥐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토미?”
“저도 두 분처럼 인정을 받고 싶어요, 도련님.”
“뭐? 야, 넌 안 해도 된다니까.”
토미의 말에 주안이 화들짝 놀라 토미의 팔을 붙잡았다.
하지만 토미는 자신의 팔을 붙잡고 있는 주안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아르베리아 경과 대결한 카사는 열세 살이잖아요. 전 열여섯이고요. 절대 어리지 않아요.”
“그건 이곳 사람들이 다르니까…….”
“똑같아요, 도련님. 우리랑 같은 사람이고 똑같이 무기를 잡고 싸우는 그런 전사들이에요.”
“으음…….”
주안은 솔직히 조금 놀랐다.
어리숙하고 가끔 동생인 세라타에게 혼도 나며, 놀리면 깜짝깜짝 놀라 반응이 참 좋아서 그런지 자꾸 놀리고만 싶은 토미인데, 지금의 이 모습은 기백이 정말 남달랐다.
“호오…….”
그리고 이런 토미를 보며 관심을 보이는 메데아 대족장이었다.
“내버려 둬, 주안 공자. 토미도 슬슬 한 번쯤 이런 제대로 된 대결이 필요할 때도 되었잖아.”
“말리지는 못할망정 등을 떠미는 건 아니죠! 토미는 워랜 경이나 아르베리아 경이랑 전혀 다르다고요. 검을 잡은 지 이제 겨우 반년이 넘어가는데……!”
“반년이나 되었으니까 말해주는 거야.”
워랜의 말에 주안이 발끈했지만, 워랜은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주안과 토미에게 걸어오며 말했다.
“토미도 여기 놀러 온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야?”
“그건…….”
“난 토미를 데리고 온 것도 다 경험을 쌓게 해주고 싶은 주안 공자의 배려라 생각했는데, 내 착각이었나 보네.”
그 말에는 주안도 할 말이 없어졌다.
사실 토미의 고집에 못 이긴 것도 있지만, 워랜의 말대로 좋은 경험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다.
아니, 조급함이라고 해야 할까 기대라고 해야 할까.
점차 앞서 나가는 워랜과는 달리 토미는 그대로 멈추어 있는 듯했고, 그렇기에 무리를 해서라도 토미와 풍신을 이어주고, 토미를 그의 아래에서 이전의 삶처럼 자신에게 딱 맞는 검에 대해서 배웠으면 하였다.
아니, 그때의 그 시절보다 훨씬 더 뛰어난…… 동방의 검뿐만이 아니라 서방의 검에서도 남다른 재능을 보이는 토미가 더 높은 곳으로 올라섰으면 하였다.
이것은 토미에 대한 속죄이기도 하였고, 그렇기에 토미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들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주안 공자가 토미를 얼마나 아끼는지 나도 잘 알고는 있는데, 주안 공자가 토미에게 하는 걸 보면 마치 안젤라 님 같아 보일 때가 종종 있어.”
“예?! 제가요?”
워랜이 싱긋 웃으며 토미의 곁에 서서 토미에게 어깨동무를 해주며 주안에게 말했다.
그 말에 주안이 놀란 눈으로 워랜을 바라보았다.
“품에 안고 보호해 주면서, 그 품속에서만 훌륭하게 자랐으면 하는 것처럼 말이야.”
“그, 그거야…….”
다 토미가 잘되라고 하는 저의 배려거든요! 라는 말이 나올 뻔했다.
‘그렇게 말하면 진짜 엄마 같잖아?!’
워랜의 지적에 곰곰이 생각하다, 진짜 엄마처럼 행동한 듯해서 주안의 볼이 발갛게 물들었다.
“쯧쯧. 모전자전이라더니, 주안 공자가 딱 그 꼴인데.”
“으윽…….”
“그래도 그 마음 자체가 싫고 나쁘다고 생각은 안 해. 어쨌든 주안 공자가 그만큼 토미를 생각해 주는 마음은 나도 뭐, 좋다고 보니까. 그래도 가끔은 품에서 나오게 해줘야지. 숨 막혀 죽는다고.”
자신이 진짜 그랬나, 되짚어 보며 반성하게 되는 바람에 주안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토미를 위한답시고 메리다에 두고 온 것 때문에 가출까지 시도했던 것을 보면, 자신이 토미를 생각한다고 한 행동들이 오히려 상처가 된 것이 아닐까 싶었다.
“토미, 내가 널 위해서 한 행동이 전부…… 상처받을 그런 일이었던 거야?”
“어이구, 그걸 대놓고 물어보면 안 되지. 어쩜 이렇게 눈치가 없을까.”
“시, 시끄러워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주안 마르티네스의 이름으로, 노밀 자작가의 후계자 워랜 노밀에게 명령하는 거니까, 지금부터 입 좀 닫으세요!”
“예이, 예이.”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워랜은 히죽 웃으며 눈웃음까지 지으며 주안을 바라본다.
씨알도 먹히지 않는 명령이었나 보다.
하지만 토미는 이런 두 사람의 행동이 참 재미있는 듯 살포시 미소를 짓다 주안에게 말했다.
“도련님의 마음이야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하지만 언제까지 도련님의 도움으로 일어서서 부축받고 걸을 수는 없어요.”
토미가 싱긋 웃어주며 주안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가끔은 제가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는 걸 뒤에서 지켜봐 주세요, 도련님.”
“토미…….”
“반드시 인정받아 볼게요. 원주민들뿐만이 아니라, 워랜 경과 아르베리아 경에게도…… 그리고 도련님에게도 마냥 지켜줘야 할 아이가 아니라, 곁에 서서 함께 걸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보여드릴게요.”
토미의 굳은 다짐과 그 마음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바람에 주안은 이런 토미에게 뭐라 말할 수가 없었다.
혼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면 명령을 내려 하지 못하게 할 수도 있다.
토미가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면 그렇게 하는 게 맞고 옳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진짜, 고집불통 자식.”
그러면 토미는 분명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고, 주안은 그것을 알기에 말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을 했지만, 주안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너도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한 사람이야. 그 이름을 짊어지고 나서는 이상, 가문의 이름이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어떤 무게를 지니고 있는지 알 거야.”
주안의 말에 토미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오랜 세월을 지켜온 제국 최대의 가문이자 서방 대륙 제일의 가문이며 대륙 동부의 지배자나 마찬가지인 가문이었다.
많은 가문을 휘하에 두었고, 그들은 마르티네스를 아래에서 떠받쳤으며 마르티네스는 그들의 벽과 지붕이 되어 비바람을 막아주었다.
그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는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첫 번째가 되어야 할 항목이었고, 그 이름을 쓴다는 것은 마르티네스를 대표한다는 의미.
“토미.”
주안은 조용히 토미를 바라보며, 파란 눈동자에 그 모습을 모두 담아낸 뒤 말했다.
“가문의 이름을 걸고 나가는 이상, 이기고 지고의 문제가 아니라 명예를 실추시키는 승리와 패배를 용서하지 못 하는 거야. 이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나, 주안 마르티네스가 토미에게 명령하는 거야.”
“마르티네스의 이름을 걸고 명예를 가지고 대결에 임하겠습니다. 이긴다면 승리의 영광을, 지더라도 명예로운 패배를.”
토미가 한쪽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건 친구로서의 행동이 아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후계자인 주안에게 하는 주군으로서의 예의였다.
주안은 이런 관계를 바란 것은 아니지만, 토미의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지금은 이런 토미를 말리기보단, 조용히 응원해 주고 다치지 않길 바라는 게 최선이었다.
승리와 패배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사람은 언제나 승리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패배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답을 찾는 동물이었다.
“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으니, 절대 몸 상하는 짓은 하지 마. 알겠지?”
“처음부터 질 생각을 가지고 대결에 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저 자신을 잘 알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마르티네스의 기개와 도련님의 명예, 그리고 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그래, 그거면 된 거야.”
토미의 말에 주안은 어느 정도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미소를 지어주며 토미를 바라볼 수 있었고, 토미 역시 당당하게 자신의 붉은 눈동자에 주안을 새기며 마음을 다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