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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79화 (7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79화

‘검기라니…….’

주안은 이전 삶 속에서 검기를 한번 본 일이 있었다.

두려움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던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강렬함이 되어 마음속 깊이 새겨졌다.

주안에게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게 만든 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검성 시절의 토미였다.

지금의 워랜의 검기는 토미 때와는 전혀 다른,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약하였지만, 그럼에도 저것이 확실한 검기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워랜 경, 대체 언제…….”

풍신에게 검을 배우고 있기에 그가 언젠가는 동방의 무사들처럼 검기를 쓸 날이 올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단순한 기대가 아닌, 토미와 비등하던 실력과 잠재력을 지닌 그였고, 토미를 가르친 스승이었던 풍신이었기에, 그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풍신에게 검을 사사한 것도 채 두 달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검기를 깨우치고 있는 워랜을 보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풍신 경이 거절한 것도, 워랜 경이면 충분하다는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구나. 풍신 경은 이미 알고 있었어…….’

사실 주안은 대밀림에 풍신을 데리고 오고 싶었다.

실버론 하셀 자작이 없는 이상 최고의 실력자는 황실 근위대 조장 알튼 경이 아닌 바로 풍신 경이었기 때문이었다.

대신 유우나 공주의 확실한 안전을 보장해 주기 위해 알튼 경과 위체니아, 그리고 소니아에게 부탁하여 유우나 공주의 호위를 대신하게 할 생각이었다.

풍신 경에게 거절당하는 바람에 함께 오지 못 하였지만, 그의 말대로 정말 워랜 경만으로도 충분한 듯했다.

“정말이지, 일부러 말 안 하고 말이야…….”

워랜의 성격상 떠들고 다닐 인물은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이러한 엄청난 부분을 숨긴 것은 일부러 그랬다고밖에 생각이 안 들었다.

가장 중요한 순간, 모두를 놀라게 해줄 생각이었던 것일까.

그랬다면 완벽한 대성공이었다.

주안만이 아니라 토미나, 같이 검을 쓰던 아르베리아의 충격은 엄청났다.

비록 아르베리아가 서방 대륙의 검을 배우는 기사이긴 하나, 동방의 검을 전혀 모르는 인물은 아니었다.

기사인 이상, 그리고 전략가의 가문인 말란체 가문인 이상, 양 대륙의 검술과 전술에 능통해야만 하고, 그것을 제대로 배운 아르베리아는 검기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도련님, 검기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요?”

“대단하지. 이곳으로 따지면 랭크 7에 해당되는 기사가 된다는 소리니까.”

“래, 랭크 7……?!”

랭크 7이 어떤 의미인지는 토미도 알기에 화들짝 놀랐고, 그 엄청난 단계에 워랜이 발을 디뎠다는 것에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그럼, 실버론 하셀 자작님도 저렇게 검기를 사용하실 수 있으셨던 거예요? 풍신 경도?”

“풍신 경은 가능하지만 실버론 하셀 자작님은 아니야. 서방의 검은 그게 불가능해.”

“네? 실버론 하셀 자작님도 랭크 7이 아니셨어요?”

“편의상 같은 선상에 놓고 있지만, 검을 다루는 방법은 전혀 다르니까. 너도 검을 배웠다면 알잖아? 우리 서방의 검과 동방의 검이 얼마나 다른지 말이야.”

“아……. 확실히…….”

토미도 피터 경에게 충분히 듣고 공부한 것인지 그 차이점이 떠오른 듯했다.

동방의 검은 자연 속의 기를 몸에 쌓고, 그것을 통해 육체의 힘을 끌어 올리며, 쌓아둔 기를 무기에 실어 그 파괴력, 특히 절삭력을 최대한 키운 검이었다.

서방의 검은 그와는 좀 많이 달랐다.

자연의 기를 명상과 호흡을 통해 단전이라는 곳에 쌓아 내공을 기르는 동방과는 달리, 서방의 검은 말 그대로 육체를 극한까지 단련하여 억지로 기, 마나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 깨달은 마나를 다루는 것은 매우 미숙하고 단순하나, 그 단순함을 최대한 활용한 검이었다.

마나를 깨닫고 육체가 진화하면서 단단해지고, 단단해진 만큼 파괴력은 늘어나며, 그것이 단계를 거듭할수록 점점 더 무식한 몸으로 바뀌어 나가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서방의 검에 동방의 검, 특히 저 검기를 상대할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워랜처럼 기를 드러낼 수는 없지만, 무기에 마나를 실을 수 있는 것은 비슷했고, 그것은 역시나 랭크 7이 된 이들만 가능하였다.

그게 아니라면 검으로 바위를 박살 내는 무식한 행동 따윈 하지도 못 하니 말이다.

물론 박살 내는 건 검이나 다른 무기보다 그냥 맨주먹이 더 낫다는 이들도 있지만.

하지만 이런 것이 가능한 것은 동급의 기사들뿐이다.

그 아래 단계의 기사와 검사들이 검기를 다룰 수 있는 무사와 겨룬다면, 단 한 번에 검과 함께 무식하게 단련한 몸도 두 동강이 나버린다.

바로 이 부분 때문에 서방의 기사와 검사들이 검기를 다룰 수 있는 무사들에겐 꽤나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이다.

“그럼 저 원주민분은 워랜 경의 상대가 못 되겠네요.”

“…….”

하지만 주안은 토미의 그 말에 뭐라 답해줄 수가 없었다.

물론 주안이 검을 다루는 기사도, 검사도 아니었고, 이전 삶이나 현재의 삶이나 검은 만져본 일조차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주안은 내심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근데 있잖아, 토미.”

“네?”

“왠지 말이야, 원주민들의 저 단단한 근육질의 몸…… 어디서 많이 보던 것 아니야?”

“예? 대체 어디서 보았다는…….”

갸웃하던 토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주변을 둘러보다 흠칫 놀랐다.

많은 원주민이 있었고, 그들은 워랜과 라쿰바를 지켜보며 발로 땅을 울리고, 손으로 가슴을 치며 한껏 흥을 돋우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몸은 하나같이 우람했고, 근육이 대단했으며, 매우 단단해 보이는 몸들이었다.

그들의 행동 그 자체는 생소하지만, 그런 움직임 속에서 꿈틀거리는 자랑스러운 이두박근이나 다른 근육들의 움직임은 어째서인지 토미의 눈에도 매우 익숙한 광경이었다.

“아, 아하하, 설마요…….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저희, 바깥의 기사님들이 어떤 분들인데…….”

“무식하게 훈련하고 무식하게 몸을 키우는 건 비슷한데 뭐…….”

“…….”

주안의 중얼거림에 토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그 말에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무식한 훈련을 토미도 받았으니까.

* * *

사실 워랜이 검기를 쓰는 것은 살짝 무리한 감이 있었다.

내공이라는 것을 쌓는 일 자체를 행한 지 오래되지도 않았고, 검기라는 것을 깨달은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대결에 스스로 나서며, 오히려 도발하는 것은 간단했다.

주안은 몰라도 자신이나 아르베리아는 손님이 아니었다.

노인과 아이들에게 위협을 가하지 않는다는 그 말을 믿는다면, 확실한 인정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적어도 저 문신 돼지 정도는 되어야…….’

솔직히 메데아 대족장을 보았을 때, 스승인 풍신보다 거대하게 느껴졌고, 까마득한 하늘 높은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런 아찔한 기분을 느꼈던 워랜이었다.

랭크 7? 절정? 아니다.

메데아 대족장은 그 둘 모두에 해당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스승인 풍신이 보았다면 어땠을까, 아주 살짝 비슷한 단계에 이른 자신이 보아도 이 정도인데 말이다.

“후웁, 하아…….”

워랜이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이 근육 돼지도 보통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충분해.’

메데아 대족장의 곁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원주민들, 이 부족의 구성원 중에서는 꽤나 의미가 있는 인물일 것이다.

솔직히 다른 노인은 정체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라쿰바는 한눈에 봐도 알 수가 있었다.

다른 원주민들도 호전적이고 싸움꾼으로 보이지만, 라쿰바는 그냥 대놓고 ‘나는 싸움을 아주 좋아하고 전투적이다!’라고 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몸은 마치 대밀림 바깥의 기사들과도 비슷했다.

외모는 달라도 근육은 굉장히 익숙하다.

그냥 몸만 본다면 서방 대륙의 기사들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

‘이건 뭐, 서방 대륙의 특색인가.’

몸을 쓰는 이들은 모두 이런 근육질이라는 게 워랜으로선 참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크라아아아아앗!”

그리고 이런 상념을 깨우듯, 라쿰바가 워랜에게 달려들며 거대한 검을 휘둘렀다.

무언가를 생각하긴 했어도 딱히 방심하던 것이 아닌지라, 워랜의 몸은 정확하게 반응하며 회피와 동시에 자신의 검을 휘둘렀다.

그리고 그대로 라쿰바의 검과 워랜의 검기가 실린 검이 부딪혔다.

* * *

워랜의 검과 라쿰바의 검이 부딪히자, 거친 쇳소리와 함께 워랜의 검기가 흩어지며 푸른빛이 흩날렸다.

하지만 밀려난 것은 워랜이었고, 인상을 잔뜩 찌푸린 것은 라쿰바였다.

“호오…….”

그것을 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감탄사를 터뜨렸다.

그리고 그 반응을 보니, 주안이나 아르베리아, 토미와는 달리 무언가를 아는 눈치였다.

“검기인데 대체 어떻게…….”

주안이 알고 있는 검기란 뭐든지 잘라내는 명검과도 같았다.

그리고 부가적으로 검을 허공에 띄워 날린다거나, 검을 여러 개 만들어 버린다거나, 검기를 날려대거나 하겠지만, 워랜은 그 정도 급은 아닌 듯했다.

물론 그러한 여러 가지 일들을 해내는 것을 주안이 직접 본 일은 없지만…….

신비로운 동방의 무사라는 책에서는 그들의 정말 놀랍고도 대단하고 믿을 수 없는 활약상들이 가득 적혀 있었다.

이런 주안의 의문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거야 라쿰바 저 녀석도 같이 기를, 아니, 이쪽의 표현으로는 마나를 다루니 그렇겠지.”

“예? 그럼 설마, 진짜 저 라쿰바라는 원주민도 랭크 7이라는 말씀이세요?”

“저 녀석들에겐 그딴 구분은 딱히 필요가 없다. 그저 좀 많이 강한 전사일 뿐이니.”

하지만 그 좀 많이 강한 전사가 두꺼운 성문도 잘라 버리는 저 검기를, 무식하게 크다 하여도 검으로 막는 것도 모자라, 튕겨내는 행동은 직접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광경이었다.

“그래도 서로 상쇄된 것이니 비긴 것 아니겠느냐.”

“상쇄라면……. 그 힘이 비슷하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라쿰바는 마나가 뭔지도 모르겠지만, 그것을 본능적으로 다루어 검을 강화한 것이겠고, 노밀가의 꼬마는 방식만 다른 똑같은 힘으로 맞상대했으니……. 비등한 힘과 힘이 부딪혀서 일어난 현상 아니겠느냐.”

이걸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워랜도 워랜이지만 본능으로 다루는 힘이 워랜과 똑같은 능력을 낸다는 건 보통이 아니었다.

사실 이전의 워랜도 라쿰바와 비슷하다면 비슷했을 것이다.

본능적인 몸의 움직임과 신에게 축복을 받은 듯한 엄청난 육체 능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젠 자신의 몸에 딱 맞는 검을 가르쳐 줄 스승까지 생긴 워랜은 그 재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그런 워랜이 자신의 재능을 폭발시키고 있는 지금, 그런 그와 비등하게 싸움을 이끌고 나가고 있는 라쿰바에 대한 순수한 감탄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라쿰바나 워랜 경, 서로 놀랐겠군요.”

“아마도 그렇겠지. 그리고 서로 적잖은 충격도 받았을 것이다.”

“충격이라…….”

확실히 주안이 보아도 두 사람 모두 얼굴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다.

“라쿰바는 내적으로, 노밀가의 꼬마는 외적으로 충격을 받았겠지.”

한마디로 라쿰바는 내상을 입었고, 워랜은 외상을 입었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들은 주안은 라쿰바와 워랜의 재차 일어난 공방을 보며 정확히 이해할 수가 있었다.

분명 검과 검이 부딪히면 워랜이 몇 걸음이나 밀려났지만,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는 것은 라쿰바였다.

하지만 힘 자체는 워랜이 라쿰바보다 확실히 떨어지는 듯 몸에 가해지는 충격이 매우 심해 보였다.

‘워랜 경…….’

몇 번 검을 섞고 워랜도 깨달은 듯 라쿰바의 검과 맞대는 것을 피하며 빈틈을 노려가기 시작했다.

애초에 동방의 검을 제대로 배우기 전에도 워랜의 검은 이런 변화무쌍하고 빈틈을 노리는 동방의 검과 매우 흡사했었다.

하지만 이젠 조금 더 날카롭고, 조금 더 여유가 있었으며, 조금 더 자리를 잡고 있는 그것은 토미를 상대할 당시보다 훨씬 발전해 있었다.

“반드시 이기세요, 워랜 경.”

그런 워랜을 보며 주안이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믿고 응원하는 것밖에 없었다.

‘당신은 절대 져서는 안 돼요.’

이 싸움은 단순히 라쿰바와 워랜의 싸움이 아니었다.

마르티네스라는 이름과 노밀이라는 이름을 짊어진 정당한 대결이었다.

그리고 워랜 노밀이, 이전의 삶과는 달리 가족과 고향을 지키기 위함이 아닌 자신을 포함한 가문의 이름을 걸고 하는 첫 번째 싸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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