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77화
“여기가 달란트 부족의 땅……?”
밀림을 벗어났다고 생각했지만, 주안은 생각지도 못한 광경을 보고는 놀라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주안만이 아닌, 다른 일행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저 원주민들과 어째서인지 마누엘 대신관이 팔짱을 낀 채 자랑스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대체 이건…….”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대밀림이라고 생각할 수 없는 훤히 드러난 넓은 땅이었다.
큰 호수를 중심으로 빙 둘러 자리를 잡은 부락의 모습과 함께 호수의 중앙, 거대한 나무가 자리를 잡은 채 푸르름을 빛내고 있었다.
게다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눈앞의 저 대지는 마치 분지처럼 되어 있다는 점이다.
그로 인해 더 넓게, 그리고 많은 부분이 눈에 담겼다.
더 확실하게 눈에 들어오는 저 나무는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것보다 크게 보였고, 생명력이 넘쳤으며, 바람이 잎이 흔들릴 때마다 신비로운 빛이 흩날렸다.
그 거대한 나무를 보며 주안이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세계수라는 게, 진짜 존재했던 거예요?”
“음? 안 믿었던 것이냐?”
“그야, 좀 큰 나무 정도로 생각을 했죠.”
설마 누가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거대하다고 생각했겠나.
이런 주안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턱을 매만지며 미소를 지었다.
“아직 더 놀랄 일이 많은데, 벌써 그러면 안 되지.”
“예? 더 놀랄 게 있어요?”
“너의 상식, 아니, 우리의…… 바깥 주민의 상식으로 보면 큰코다칠 것이다. 미리 마음의 준비들을 단단히 해놓거라.”
“대체 뭐가 더 있기에…….”
저것만 해도 이미 다 놀란 듯했는데, 무언가 더 남았다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침을 꼴깍 삼켰다.
꽤나 넓은 땅이긴 하나, 눈앞의 저 큰 호수 너머로 다시 대밀림이 이어지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이 대밀림의 끝은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대체 이 대밀림은 얼마나 넓은 거야?’
그 크기는 여전히 알려진 바가 없었지만, 이런 장소까지 있다는 것을 보면, 대밀림에는 바깥 주민들이 모르는 비밀이 꽤나 많아 보였다.
아니, 당장 저 거대 나무, 세계수만 해도 바깥 주민 중 아는 사람이 과연 있기나 할지 의문이었다.
일단 호수가 있는 곳까진 여전히 거리가 있었지만, 그래도 넓은 땅과 탁 트인 시야라는 것의 효과는 굉장했다.
그동안 보아온 대밀림의 좁은 시야와 햇빛이 별로 들지 않는 어두컴컴하고 때론 축축한 그 음습한 분위기는, 사람들의 기분을 좋지 못하게 하였지만, 밝은 곳으로 나오니 주안뿐만이 아니라 토미나 커즈 신관의 표정도 매우 좋아졌다.
* * *
넓고 탁 트인 그 지역은 사실 길이라는 게 없었다.
그저 가고자 하는 방향인 호수 쪽으로 무작정 걸으면 그게 곧 길이라는 듯 바루 족장은 주안 일행들을 이끌고 그렇게 무작정 앞으로 나아갔다.
하지만 딱히 불만이 없던 것은 대밀림에서의 이동보다는 확실히 나았기 때문이다.
마치 초원처럼 이루어진 이 대지는 걷기에 매우 편안했고, 습한 대밀림과는 달리 청아한 풀의 냄새가 나고, 햇볕을 가리는 나무들도 없어, 일광욕하는 것 같아서 그런지 기분이 매우 좋았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 가지 않아 갑자기 바루 족장이 멈추어 섰다.
무슨 일인지 몰라 갸웃하던 주안의 시야 속에서도 먼 곳에서 점처럼 무언가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경계병이다. 놀랄 필요 없다. 가족이다.”
바루 족장 곁에 있던 쿠단이 주안을 걱정하는 듯, 안심시켜 주었다.
투박하지만 따뜻한 그 말 한마디가 참 좋았기에, 주안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점으로 보이던 그들이 점차 커지더니 어느 정도 식별이 가능한 거리까지 왔을 때, 그들을 본 주안이 갸웃했다.
“말?”
네발짐승을 타고 오는 그 모습에 주안은 이곳에서도 말이 있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아무래도 대밀림은 말을 타고 이동하기는 너무나 힘겨운 곳이라, 거쳐 오면서 보았던 부락에는 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주안의 착각이었던 듯, 이곳으로 오는 그들이 확실하게 식별이 된 순간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 소리쳤다.
“다이어 울프?!”
거대한 늑대의 등에 요령 좋게 올라타고 한 손에는 무기를, 다른 한 손은 고삐를 쥐고 있는 원주민의 모습에, 주안만이 아니라 다른 일행들도 꽤나 놀란 듯했고, 워랜은 순간 검을 반쯤 뽑아냈을 정도였다.
“큭큭……. 말하지 않았느냐. 놀랄 게 더 있다고.”
“이런 건 좀 미리 말씀해 주세요, 마누엘 신관님!”
혼자 웃고 있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모습에 주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워랜이 슬쩍 노려보긴 했지만, 그런 시선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웃으신다.
“그보다 다이어 울프라니……. 아니, 확실히 남부 대밀림이 다이어 울프의 서식지이긴 하지만, 원주민이 그것을 타고 다닌다고요?”
“길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워낙 사나운 놈들이라, 제대로 교육이 되지 않는다더구나.”
“교육이라니…….”
저 포악한 생명체를 교육시켜 말처럼 타고 다니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더 이상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한 주안에게 더 큰 충격들을 가져다주고 있었다.
‘문명은 지나치게 떨어지는데, 오히려 다른 부분은 훨씬 뛰어나잖아…….’
아니, 오히려 자신들의 장점을 키우느라 문명을 천천히 발전시킨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대밀림이라는 한정된 장소는 문명을 발전시키기에는 너무나 고된 장소였기에,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문화로 다른 형태로의 발전을 선택한 듯했다.
“도련님, 다이어 울프가 뭐기에 그렇게 놀라세요?”
“네발짐승 중, 가장 포악한 생명체로는 한 손에 꼽히는 동물이야.”
“포, 포악……?”
단순히 사납다는 표현이 아니라 포악하다는 표현을 썼지만, 주안은 그게 절대 낮게 잡은 것이 아니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다이어 울프는 포악함 그 자체인 생명체였다.
주 서식지는 확실히 남부 대밀림과 북부의 산맥으로 알려져 있었다.
다행히 다이어 울프의 다른 서식지는 그 두 곳 외에는 없어서 중부의 사람들이 다이어 울프를 만날 기회는 없다 봐도 좋았다.
가끔 무리를 떠나 배회하던 다이어 울프 때문에 난리가 나는 일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마치 천재지변이나 마찬가지라는 듯 일상이 아닌 점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게다가 무리에서 벗어난 다이어 울프는 늙고 병들거나 한 녀석들이라 그나마 피해가 덜하긴 하지만 말이다.
“거기다 한두 마리가 아니네요.”
토미의 말에 주안이 묵묵히 달려오는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여러 마리의 다이어 울프를 타고 온 원주민들은 바루 족장의 앞에 멈추어 서더니, 그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보고는 다이어 울프에서 내렸다.
“영감, 오랜만이다.”
“이놈이나 저놈이다, 대체 이것들은 웃어른에 대한 공경과 존댓말은 어디다 팔아먹은 것인지…….”
“공경? 아……. 라쿰바의 아들 카사다. 인사한다.”
“…….”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갸웃하던 카사가 이내 고개만 까딱이며 공경이 잔뜩 담긴 인사를 해주었지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이를 부득 갈며 억지웃음을 보여주었다.
매우 살벌한 미소였지만, 뒤에 있던 주안이나 토미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보며 다른 의미의 웃음을 억지로 참아내었다.
“바루 족장도 오랜만이다.”
카사가 손을 내밀자 바루 족장도 손을 내밀어 악수가 아닌, 서로의 팔을 잡아주며 인사를 한다.
매우 친한 친우라면 껴안는 것으로 친밀감을 표현하고, 같은 부족의 알고 지내는 이들이라면 손을 잡지만, 이처럼 따로 떨어져 있는 이들이 만난다면 서로의 팔을 잡아주는 게 그들의 인사 방식이었다.
“뒤의 이방인들, 어머니의 증표 가지고 있다 들었다. 맞나?”
“맞다. 어머니의 손길을 쓰는 노인도 함께다.”
미리 연락해 놓은 것인지 바루 족장의 말에 카사가 주안을 보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저 울음은 위협으로 들릴 때가 있지만 지금은 호기심으로 느껴졌다.
“대족장이 기다린다. 가자.”
가타부타 따로 묻고 따지는 일 없이, 할 일만 한다는 듯 카사가 자신의 다이어 울프에 올라타자 그와 함께 온 야만인들 역시 다이어 울프에 올라탄다.
이럴 때 보면 야만인들의 이런 행동 방식이 의외로 마음에 드는 주안이었다.
‘바깥이었으면, 환영 행사다, 뭐다 치장도 잔뜩 하고, 주민들도 끌고 나와서 꽃도 뿌려댔을 텐데…….’
자발적인 것은 거의 없고, 대부분 강제로 끌려 나오는 것이기에, 그들의 표정도 썩 밝지 못했고, 그렇기에 즐겁기보단 빨리 끝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적어도 제국에서 남부로 내려올 때 대부분이 그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원주민들은 뭔가, 깔끔하다고 해야 할까.
다른 이들이 오면 오나보다, 외지인이면 외지인인가 보다, 손님이면 손님인가 보다…….
뭔가, 늘 중요한 이로 주목받던 그때와는 달라서 그런지 생소했지만, 주안은 오히려 이런 게 더 좋았다.
주안이 나름 이런 원주민들, 카사의 행동이 마음에 들어 미소를 짓자, 카사가 자신을 보는 주안의 시선을 느낀 듯 주안을 흘겨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뭘 그렇게 보나? 안 태워준다. 걸어와라.”
“아, 예…….”
애초에 탈 생각도 없었거든요! 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 * *
대밀림보다는 낫다지만, 호수까지의 거리는 꽤나 먼 듯 한참을 걸어가야만 하였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체력이 좋은 이들만 있다 보니, 주안이나 커즈 신관이 이들의 발걸음을 쫓기는 매우 어려웠다.
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기준에 맞춘 이동 속도라 그런지, 이것은 당연하다는 생각하는 듯했다.
하지만 기진맥진한 커즈 신관과는 달리 주안은 의외로 생생했다.
오히려 걸으면 걸을수록, 그리고 호수와 세계수가 있는 곳으로 다가갈수록, 주안은 어째서인지 기운이 더 나고 있었다.
‘이건 대체 뭘까…….’
깊이 숨을 들이쉬니 달콤한 향기가 몸 구석구석에 퍼졌고, 따뜻한 바람이 주안의 곁에 머물고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포근한 손길이 주안을 감싸는 듯했다.
“주안 공자?”
“도련님……?!”
주안이 우뚝 멈추어 서서 멍하니 멀리 떨어져 있는 거대한 나무를 바라보자, 워랜과 토미 그리고 아르베리아가 그런 주안의 행동에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귓속으로 무언가가 작게 속삭이는 소리에 주안이 갸웃하며 왼손을 앞으로 조심스레 뻗었다.
“아…….”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워랜이 주안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주며 묻자, 멍하니 있던 주안이 정신을 차린 것인지, 손을 거두고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대체 뭐였지…….’
주안은 자신의 왼손을 만지작거리며 갸웃했다.
분명 허공에 손을 뻗었지만, 확실한 감촉이 있었다.
주변에서 들려오던 작은 목소리는 이미 사라진 뒤였지만, 주안은 그것을 똑똑히 듣고 기억했다.
‘아이들의 목소리였는데…….’
꺄르륵거리는 아이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여전히 귓속을 맴도는 것 같았다.
* * *
카사의 안내에 따라 도착한 호수가에 세워진 부락은 부락이라기보단 하나의 마을처럼 보였다.
도시라고 하기에는 높은 건물은 없었고, 부락이라고 하기엔 천막이 아닌 정상적인 집들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크고 화려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자신들의 개성에 맞춘 집들이라 죄다 다르게 보였다.
오히려 서로 모두가 다르기 때문인지 묘하게 잘 어울렸다.
게다가 계획되어 만들어졌다는 듯 길이 일자로 반듯하게 잘 뻗어 있다는 것도 매우 놀라웠다.
그러한 길을 따라 카사의 안내로 도착한 곳은 넓은 공터였고, 그곳에서 주안과 일행들을 반기는 것은 수십, 수백은 될 법한 기백이 대단한 원주민들이었다.
그리고 그들과는 달리 차양 아래 의자에 앉아 있는 이들이 이곳의 원주민들을 이끄는 지도자로 보였다.
별 특색이 없는 매우 늙은 원주민과 화려한 문신이 전신에 새겨진 원주민 그리고 다른 그 누구보다 크고 사나운 눈매를 가진, 사자 갈기처럼 길게 머리카락을 기른 원주민이었다.
그들을 보며 바루 족장과 쿠단 그리고 함께 온 원주민들이 무릎을 꿇고 절을 하며 소리쳤다.
“차르의 자손 바루가 메데아 대족장에게 인사를 한다!”
“타르한의 아들 쿠단이 메데아 대족장에게 인사를 한다!”
그들의 인사를 당연하다는 듯 받아들이며 고개만 까딱인 장대한 체구와 특이하게도 길게 기른 머리카락의 원주민, 메데아 대족장이 주안 일행들을 보며 말했다.
“오랜만이다, 영감.”
메데아 대족장의 그런 행동에, 웃어른으로의 존대는 이제 포기한 것인지, 마누엘 전대 대신관도 그저 살짝 찌푸릴 뿐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깔끔하게 무시한 메데아 대족장은 다른 일행들, 아니, 주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외부인……. 네가 어머니의 증표를 가지고 있다는 그 외부인인가.”
메데아 대족장과 눈이 마주친 주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진짜야?’
주안은 이런 섬뜩한 기백을 가진 이를 딱 한 번 접해본 일이 있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잊으면 안 되는…… 그리고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바스티아노 백작도 아니었고, 실버론 하셀 자작도 아니었으며, 풍신 경도 아니었다.
바로…….
검성 시절의 토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