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76화
바루 족장의 행동은 굉장히 빨랐다.
일단 결정하면 다른 부분을 생각하기보단 행동에 옮긴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부족원 중에서 따로 인원을 추리고, 짐을 싸 들더니 바로 출발해 버린 것이다.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다 다수의 원주민에 둘러싸인 채 그대로 부락을 나서 버린 일행들이었다.
사실 좀 쉬었으면 하는 바람도 없지는 않았지만, 말을 꺼낼 틈도 없었다.
“우와…….”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원주민들의 모습에 주안은 감탄사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일행의 근거리에서 주변을 경계하며 호위하는 원주민들의 모습은 제대로 된 장비라고는 없는, 게다가 무기들마저 제각각이지만 그 기백은 제국의 기사 못지않았다.
게다가 일정 거리를 두고 따로 떨어져 정찰하며 신호를 보내어 오는 그들은 잘 훈련된 병사, 그 이상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네요…….”
“예, 저도 이들이 이 정도일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말란체 가문의 후계자인 입장으로, 그들을 유심히 관찰하던 아르베리아도 꽤나 놀란 듯하였다.
“정찰과 후방의 퇴로 확보, 그리고 일정한 주기로 신호를 보내면서 안전을 확보하는 게 보통이 아닙니다.”
아르베리아의 말에 주안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베리아만큼 잘 아는 것은 아니나, 이들의 행동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주안도 잘 알 수가 있었다.
“인원은 적지만, 완전히 군대의 움직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바깥으로 눈을 돌리지 않은 게 정말 다행스러워요, 아르베리아 경.”
“확실히…….”
부족 전체의 정확한 숫자까진 모르겠지만, 마울 부족의 규모는 꽤나 작은 편이다.
하지만 직접 보여주고 있는 그 실력은 어디 제대로 된 정병 그 이상이었다.
“……마누엘 신관님이 마수를 상대하기 위해서 바깥으로 눈을 돌릴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대체 마수가 뭐기에 이런 실력을 갖춘 원주민들이 그러는 것인지 알 수가 없네요.”
“마수라…….”
“아르베리아 경은 마수가 무엇인지 아세요?”
주안의 물음에 아르베리아가 살며시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자세한 것은 모르지만, 한때 대륙 전역에 자리를 잡고 있던 몬스터와 매우 흡사한 외형을 지닌 생명체라고 들었습니다.”
“몬스터? 하지만 몬스터는 이미 멸종된 게 아닌가요?”
“몬스터라 명명된 생명체는 확실히 대륙에서 사라졌지요. 서방 대륙이든 동방 대륙이든……. 하지만, 다른 형태로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게 바로 서방 대륙의 마수와 동방 대륙의 요물이라고 합니다.”
“아…….”
대밀림 안쪽에서 나타나는 마수와는 달리 동방 대륙의 요물은 여러 형태로 대륙 곳곳에서 나타났다.
아직까지도 동방에서는 요물들이 나타나 많은 이에게 피해를 주고, 또 다수의 무사와 군에 의해 퇴치당하는 게 일상처럼 일어나고 있었다.
그나마 평화로운 서방 대륙이라 다행이지만, 마누엘 대신관의 말이나 원주민들의 이런 행동과 모습을 보면 마수라는 것은 주안이 그동안 생각했던 것처럼 조금 위험한 동물이 아닐 듯싶었다.
“저도 마수에 대해선 잘 모르지만, 요물에 빗대어 본다면, 한 개체만으로도 능히 동방의 무사 다섯은 상대할 정도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중간한 실력의 무사, 겠죠?”
주안의 물음에 아르베리아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알기에 주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단순한 실력으로 본다면 동방 무사들의 실력은 확실히 서방의 기사들을 웃돈다.
적당한 실력자의 기사들이 많은 서방과는 달리 동방의 무사들은 확실한 실력자가 우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실력자 다섯이 상대해야 한다는 요물이라는 것과, 그것에 필적할 수 있다는 마수들이라니.
꽤나 심란한 주안을 보며 아르베리아가 말했다.
“그래도 걱정 마십시오. 이 아르베리아 말란체, 목숨을 걸고 주안 공자님을 지킬 것이니 말입니다.”
“아, 예…….”
자신 있게 가슴을 탕탕 치며 호탕한 웃음소리를 터뜨리는 그 모습에 주안도 작게 미소를 지었다.
“큰 인간 말이 맞다. 걱정 안 해도 된다. 우리 부족, 전사들 강하다. 마수 따위, 우리들 먹이다.”
아르베리아와의 대화를 들은 것인지 쿠단 역시 자신 있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쿠단의 말에 반응하듯 함께 이동하는 원주민들이 후! 후! 후! 하는 소리를 내며 자신들의 무기를 두드리며 호응해 준다.
대밀림에 마울 부족의 소리가 울리자, 순간 풀과 나무가 흔들리며 그들의 소리에 공명하듯 울려 퍼졌다.
‘정말 신기하단 말이야…….’
원시적인 그들이라 그런지, 자연과 하나가 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해내고 있었다.
단순히 동화되어 기척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되어 함께하는 듯했다.
이것은 아무리 대단한 기사도, 무사도, 마법사도, 신관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런 이들이니까 마수들을 막아낼 수 있는 것일까…….’
만약 이전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한 말처럼, 이들이 사라지고 대신 바깥의 사람들이 마수들을 상대한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서로 피해를 덜 입기 위해서 약한 이들을 밀어 넣지만 않으면 다행이지.’
그리고 그 최전선은, 어째서인지 아스란 왕국이 되었을 것만 같았다.
어쨌든 지금은 이들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다행스러웠다.
* * *
마울 부족의 바루 족장과 그가 이끄는 부족민들은 상당히 빠른 속도로 멈춤 없이 길을 나아갔다.
몇 번인가 인근 다른 부족의 부족민들과 만나 그들의 부락에서 하루를 쉬기도 하였고, 그 외에는 별다른 쉼 없이 그대로 목적지인 세계수, 대족장이 기거한다는 달란트 부족이 있는 장소로 향했다.
그리고 이들의 부족들을 지나치면서, 주안이나 다른 일행 모두 원주민들에 대한 시선이 점차 변해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막연히 책으로, 글로, 그리고 이야기로 전해 들은 남부 대밀림 원주민들의 이야기가 너무나 많은 부분이 와전되어 있었다.
이미 마울 부족에게서 느꼈던 것이긴 했지만, 그들은 정말 이름만 다르지 같은 부족이고 가족이라는 듯 어디를 가든 환영을 받았다.
물론 주안 일행에 대해선 경계를 하는 이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들 역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잘 아는 듯했다.
더군다나 바루 족장에 의해 주안이 가진 성흔을 보고는 냅다 절을 하는 이들도 있었을 정도였다.
바깥에서 보기엔 그들은 야만인, 그 이상이 없었지만, 막상 안으로 들어와 그들과 함께 짧은 시간이나마 지내보니 이들만큼 단순하지만 순박한 이들이 없다는 생각밖에 들지는 않았다.
달란트 부족이 있는 곳까지 이제 반나절 거리까지 온 주안 일행은, 바로 인근에 위치한 소도 부족의 부락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 날 달란트 부족까지 한 번에 가기로 하였다.
소도 부족의 환영은 좋았고, 반기는 풍습은 새로웠다.
다들 모여서 큰 모닥불에 꼬치를 잔뜩 꿴 고기와 과일을 굽고, 담근 술을 꺼내어 마시며, 모닥불 주변을 돌며 함께 춤추고, 노래를 부르며 방문한 이들을 위해 축제를 벌이는 모습은 정말 생소했다.
그들의 문화는 높은 이들만을 위한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즐기는 가족의 문화였고 축제였다.
족장이든 전사든, 대장장이든, 사냥꾼이든, 어머니든 아버지든, 아이들이든, 노인이든…… 이방인이든 상관이 없었다.
손님인 이상 손님의 대우해 준다.
외모가 다르든 바깥의 주민이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그들은 자신들의 부족을 방문해 준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좋은 추억을 안겨주기 위해서, 그리고 자신들도 즐기기 위해서 행하는 순수한 행동들이었다.
그러한 축제는 늦은 밤이 되어서야 끝났고, 뒷정리가 끝나자 부락은 이내 금세 조용해졌다.
몇몇 인원이 경비를 섰지만 타오르는 횃불과 중앙의 거대 모닥불만이 활활 타올랐다.
“여기서 뭐 하세요, 도련님.”
“달 구경.”
숙소로 내어준 천막을 들추고 나온 토미가 입구 바로 옆에 앉아 있는 주안을 보고 갸웃했다.
그리고 주안은 그런 토미를 보며 말했다.
“넌 왜 나왔어?”
“아, 그게…….”
잠시 우물쭈물하는 토미의 모습을 보다 주안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소변은 저기, 나가서 싸라. 여기 화장실 없어.”
“으…….”
진짜 소변이었던 것인지 토미의 볼이 발갛게 변했다.
그리고 실실 웃는 주안의 눈웃음에 토미가 우물쭈물하다 이내 바깥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 금세 다시 달려온 토미의 모습은 매우 개운해 보였다.
“호잇.”
“앗?!”
그런 토미를 보다 주안이 손을 뻗어 신성력을 발휘해 토미를 순식간에 깨끗하게 만들어주었다.
“가, 갑자기 왜 신성력을 쓰세요?”
“그야 꼴을 보니 손도 안 씻고 왔을 거 같아서. 아냐?”
“…….”
실제로 그랬기에 토미가 주안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옆에 앉을래?”
“……네.”
주안이 슬쩍 자신의 옆을 손으로 톡톡 치며 앉으라는 신호를 보내자, 토미가 잠시 머뭇거리다 그 곁에 앉았다.
“따라온 거 후회는 안 해?”
“안 해요.”
“별로 재미없는 일정이지 않았어?”
주안이야 목적이 있어서 하는 행동이었지만, 솔직히 토미나 워랜, 아르베리아는 이런 주안 때문에 따라온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런 주안의 말에 토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지 않아요. 도련님의 곁을 지키는 게 저희 일이잖아요. 워랜 경도, 아르베리아 경도 그런 생각 안 하실 거예요.”
“그러면 다행이지만…….”
토미의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된 것인지 주안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그리고 멍하니 높이 떠오른 달을 보며 주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하아, 엄마 보고 싶다…….”
“풋……!”
“……웃지 마, 인마.”
“하, 하지만…….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엄마를 보고 싶다고 하시면…… 쿡쿡.”
“쳇.”
토미의 말에 주안이 투덜거렸지만, 그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벌써 엄마를 못 본 지 꽤나 오래되었다.
그나마 아스란 왕국 왕도에서 엄마와 오랜만에 직접 보고 말을 할 수가 있었지만, 그것뿐이었다.
말을 얼버무리는 것도, 말을 돌리는 것도, 엄마에게 거짓말을 하여 이곳의 통신 상태가 영 별로라며 한동안 통신이 안 된다는 말을 한 것도…… 주안은 마음에 걸렸다.
“집에 가면 분명 다 들키겠지?”
“예, 분명히 다 들킬 거예요. 소니아 누나가 다 말할걸요?”
“집에 가서도 근신을 명령해 놓을까.”
“안 들으실걸요.”
“으…….”
이건 뭐, 공작가의 후계자로서의 위엄이 전혀 없는 것인지 자신을 무서워하거나 거리를 두려는 이들은 전혀 없었다.
물론 주안이 먼저 그들과 가까워지기 위해서 한 행동이긴 했지만 말이다.
“안젤라 님, 도련님에게 처음으로 화를 내실 수도 있어요.”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저뿐만이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하아……. 엄마한테 혼난다, 라…….”
이전의 삶에서도, 이번의 삶에서도 주안은 단 한 번도 엄마에게 혼이 나본 일이 없었다.
엄마는 언제나 자신의 편이었고, 언제나 자신을 위해 주었고, 언제나 자신을 보듬어주는 그런 소중한 존재였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그런 엄마도 주안, 자신에게 화를 낼 것만 같았고 이런 것은 다른 이들도 예상하는 듯했다.
“내가 좀 심하긴 했지?”
“도련님께서 훌륭한 일을 하셨다는 건 알겠지만, 안젤라 님에겐 도련님의 몸이 무엇보다 소중하시잖아요.”
“그 부분을 강조해서 엄마에게 말하면 화가 좀 가라앉지 않을까?”
“1할 정도는 화가 줄어들지 않을까요?”
“……참 애매하구나.”
게다가 너무나 적다는 것에 주안이 다시 깊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에 토미가 소리 없이 쿡쿡거리며 웃어 주었다.
“하지만, 그래도 도련님은 많은 이를 구해주셨잖아요.”
“그래……. 그걸로 위안이라도 삼을게.”
빙긋 웃는 토미의 모습에 주안도 힘겹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엄마에게 혼나는 것이야 어쩔 수 없겠지만, 토미 말대로 많은 이들을 구했다는 것은 매우 뿌듯한 일이다.
‘……이전의 나는 오히려 반대의 일만 했으니까.’
지금은 이 신성력을 통해 많은 이들을 치료하고 웃음을 찾아주었다는 것은, 정말이지 기분 좋은 일이었고 어떻게 보면 속죄나 마찬가지인 일이었다.
주안으로 인해서 무너진 제국과 가문은, 죄 없는 많은 이들을 불행에 빠뜨렸고, 서대륙을 전화에 휩싸이게 만든 시발점이 되었다.
과연 얼마나 많은 이들이 다치고, 죽고, 불행해졌을까.
‘나는 그 속죄를 위해 이 신성력이, 성흔이 생긴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신이란 참 나쁜 존재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냥 처음부터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주안이라는 존재가 정신을 차리게 만들던가 아니면 세상에서 존재를 지워주었으면 더 나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주안이 벌렁 뒤로 드러누우며 말했다.
“앞으로는 이걸 쓰는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어, 토미.”
“네? 왜요?”
오히려 많이 써서 많은 이를 구하는 게 낫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하는 토미였기에 주안의 말에 갸웃했다.
하지만 주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걸 쓴다는 건, 그만큼 나쁜 일이 일어났다는 의미잖아. 차라리 이걸 사용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 그리고 불행한 일이 생기지 않는 게 낫지. 안 그래?”
“아…….”
주안의 말을 이해한 듯 토미가 벌렁 드러누워 있는 주안을 보았다.
“나는 적어도 내 소중한 사람들에게 이걸 쓸 일이 영원히 오지 않았으면 좋겠어.”
“도련님…….”
주안의 말은 분명 따뜻했지만, 토미는 어째서인지 많은 상처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분명 많은 이에게 사랑을 받고 자란 도련님인데 말이다.
“집에 빨리 가고 싶다.”
‘그리고 엄마도 보고 싶다…….’
이 일이 끝나며 얼른 집에 가서 당분간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엄마랑 같이 있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