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75화
“타르한의 아들, 쿠단……. 바깥 인간 데리고 왔다. 너는 배신자인가?”
“아니다. 손님이다. 영감의 손님이다.”
“영감의 손님……?”
팔짱을 낀 채 그들을 보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모습에,쿠단에게 창을 겨누던 남자가 창을 내리고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 인사를 하였다.
“쿤타의 아들 카마르, 영감에게 인사한다.”
“그래, 그래. 쿤타의 아들 카마르. 뒤의 아이들은 나의 손님이다. 그만 환영 인사는 거두거라.”
“진짜 영감의 손님 맞나?”
“그래, 맞다. 나와 같이 어머니의 손길을 쓰는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호위하는 녀석들이다.”
“어머니의 손길을……?”
그게 무엇인지 몰라 갸웃하는 주안에게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말했다.
“신성력을 보여주도록 하거라.”
“예? 아, 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주안과 커즈 신관이 신성력을 끌어올렸다.
새하얀 빛무리가 일자, 카마르와 다른 원주민들의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해했다. 영감과 같다. 영감의 손님이다,인정한다.”
“이해했으면 뒤에 있는 녀석들도 비키라고 하거라. 이거 원, 올 때마다 이러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흠칫 놀라 뒤를 돌아보자, 십여 명의 원주민이 나무와 수풀 사이에서 주안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나같이 창과 도끼, 활을 들고 겨누고 있는 모습에, 그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주안은 적잖이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주안만이 아니라 토미나 아르베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아르베리아의 놀람은 더욱 컸다.
워랜보다는 조금 모자란다고는 하지만, 아르베리아는 젊은 인재 중에서도 손꼽히는 기사였다.
전략과 전술에 능통한 말란체 가문에서도 독보적인 재능을 보이는 문무 양면에서 우수한 인재였다.
그런 그도 뒤를 막고 있는 이들에 대해선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했다.
‘원주민들이…… 이 정도였어?’
주안은 솔직히 원주민들을 조금 깔보고 있었다.
그들이 숫자가 많고 지리적인 이점을 가졌기에 정복당하지 않았다고만 생각을 했다.
그런데 숫자와 지리적인 이점만이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는 지능과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확실한 실력이 있었다.
‘쿠단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거야……?’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전사라는 그 말.
그게 진짜 사실이라면, 그들이 대밀림 밖으로 나오지 않는 게 어쩌면 다행일 수 있다고 생각을 하였다.
* * *
“쿠단!”
주안 일행은 경계를 지키는 원주민들의 안내를 받아 그들이 살고 있는 부락으로 이동했다.
부락에 들어서자마자 한 남자가 뛰어나와 쿠단에게 달려들었고, 쿠단 역시 그에게 달려가 소리쳤다.
“툰다르!”
쿠단이 말한 친구인 것인지 둘이 얼싸안고 즐거워했지만, 솔직히 보기에는 썩 좋지 않았다.
“거, 사내 놈들이 웃통 벗고 뭐 하는 짓인지…….”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불만 어린 소리에 주안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내들의 우정이 그가 보기엔 영 좋지 못한 듯했다.
“그보다 원주민의 마을이 생각보다 나쁘진 않네요? 그치, 토미?”
주안의 물음에 토미가 고개를 끄덕였고, 워랜이나 아르베리아 역시 신기하다는 듯 주변을 둘러본다.
커즈 신관만은 영 불안해 보이지만 말이다.
원주민들의 마을, 부락은 주안의 말대로 꽤 괜찮았다.
주변을 둘러싼 목책도 단정했고,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와서 본 마을의 내부 모습 역시 집들이 좀 작다뿐이지 대밀림 바깥의 마을과도 크게 차이는 없었다.
길이 있고, 길을 따라 집들이 있었으며, 아이들이 있었고, 어른들도 있었으며, 노인들도 보인다.
하나같이 비슷해 보여서 누가 누구인지는 솔직히 구분이 좀 힘들었지만, 사람 사는 곳은 다 똑같다는 듯 원주민들의 삶 역시 크게 달라 보이진 않았다.
단지 그들의 시선이 조금 사납다, 정도뿐이지만.
“마누엘 신관님은 이곳의 손님 아니셨어요? 어째 시선들이 좀…….”
“나야 손님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너희는 아직 아니니, 어쩔 수가 있나.”
“인정이요?”
주안이 갸웃하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빙긋 웃어 주었다.
“그래, 인정이다. 이것으로 말이지.”
그러고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크고 우람한 주먹을 들어 보였다.
“서, 설마 싸우셔서 인정받으셨다고요?!”
“처음에는 싸웠고, 싸우다 치료를 좀 해주고, 또 싸워대다 보니 애들이 알아서 고개를 숙여주더구나.”
“전염병 치료가 아니라?!”
어이없어하는 주안의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웃었고, 그것을 본 워랜이 넌지시 말했다.
“호오, 그거 괜찮은 방법입니다?”
“뭐가 괜찮아요?!”
워랜이 흥미가 있다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주안은 황당하기만 했다.
신관이 주먹다짐으로 원주민의 인정을 받는 것도 웃긴대, 그래도 일단은 기사도에 목숨을 거는 기사가 거기에 호응하며 즐거워하는 모습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긴 원래 그래. 강한 녀석이 많은 이들을 보살펴야 하니까. 약하다고 해도 쓸모 있게 만드는 게 바로 원주민들이다.”
“으음…….”
주안으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사고방식이었지만, 원주민들에겐 그들 나름의 방식이 있을 것이니, 이해되지 않는다 해도 인정해 주어야만 한다.
서로 사는 방식이 다른 만큼 생각의 차이도 분명하기에, 그것을 인정해 주지 않는 이상, 좋은 대화를 바란다는 것이 더 이상한 것이었다.
“걱정 마라. 적어도 너나 커즈, 저 녀석에게 주먹다짐을 하자고 할 것은 아니니까.”
“저희가 신성력을 써서 그런 건가요?”
“그런 것도 있지만, 애들과 노인은 안 때리는 신사적인 녀석들이라서 말이다.”
“…….”
참 대단히 신사적이네요, 라고 말을 할 뻔한 주안이었다.
서로 껴안고 등을 두들기며 반갑게 인사하던 쿠단과 툰다르가 어느새 서로 주먹을 오가며 투덕거리는 모습을 보니, 진짜 저게 반가워서 저러는 것인지, 아니면 돈 떼먹고 가출한 쿠단을 죽일 생각으로 싸우고 있는 것인지 전혀 모르겠다.
* * *
대밀림의 원주민은 하나의 부족이지만, 중심이 되는 대족장의 아래로 많은 수의 족장이 대밀림 곳곳에 자신들의 가족들과 함께 부락을 형성하여 살아가는 형태다.
그리고 바깥 경계에 위치한 이곳 마울 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규모는 300여 명 정도로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다.
이곳은 전대 대족장의 아들 중 하나가 나와서 세운 부락이었다.
그가 이끌고 온 이들과 함께 정착한 지 한 세대가 지났을 뿐임에도, 이 정도 규모가 된 것은 주안으로선 꽤나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애들을 많이 낳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너무하잖아.’
하지만 이 정도로 금세 수가 불어난 것은, 이곳은 대밀림 안쪽 경계가 아닌 바깥쪽 경계이기 때문임을 주안은 모르고 있었다.
마수와 대치하는 안쪽 경계 지역과는 달리 크게 위험하지 않기에 인원이 늘어나기에는 최적의 장소였다.
대신 숫자가 금방 불어나는 만큼, 차후 안쪽 경계로 전사들을 보내야 하기에 일정한 숫자 이상으로는 더 이상 늘어나지는 않는다.
“진짜 전부 싸움 잘하게들 생겼네요.”
족장의 집으로 안내되어 가며 주변을 둘러보던 주안은 쿠단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아이들도 작은 체구와는 달리 근육이 자리를 잘 잡고 있었고, 노인들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게다가 가슴만 다르지 않았다면, 여성들 역시 남자로 착각했을 정도다.
“다 왔다. 족장님 집. 여기다.”
안내를 해주는 툰다르가 걸음을 멈추고 다른 집들보단 조금 더 크고 화려한 천막과 장식이 달린 집을 가리켰다.
그리고 먼저 안으로 들어간 툰다르가 이내 밖으로 나와 일행들에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하였고, 그 행동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느긋하게 안으로 들어간다.
“후우…….”
주안이 조금 긴장한 듯 숨을 들이쉰 후 일행들과 함께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갔다.
* * *
천막으로 된 집이었지만, 규모는 보통의 집 그 이상이었고, 안은 넓었다. 위로는 매우 높았고 내부는 매우 밝았다.
그리고 나무와 동물의 뼈로 만든 의자에 앉아 있는 거구의 남자가 이런 일행들…… 아니,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고개만 까딱이며 말했다.
“차르의 자손 바루가 영감에게 인사한다. 오랜만이다, 영감.”
“네 녀석은 어른에게 좀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법이 없느냐.”
“선조의 이름을 말했다. 최고의 인사다, 영감.”
“쯧.”
담담하게 말해주는 바루의 행동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작게 혀를 찼다.
그리고 바루의 앞에 대충 엉덩이를 깔고 앉자, 머뭇거리던 주안이 그 곁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 역시 주안의 근처에 자리를 잡고 편하게 앉았다.
“영감, 대족장이 부르지 않았다. 초대 안 했다. 남의 집에 초대 없이 온 거, 무례하다.”
“난 초대 없이 찾아올 수 있는 허락을 대족장에게 받았다만?”
“그래도 무례하다. 외부인 데리고 온 것, 큰 죄다. 영감의 손님이라도 허락해 줄 수 없다.”
마울 부족의 족장, 바루가 낮게 으르렁거리며 주안 일행들을 내려다본다.
그런 그를 보며 마누엘 신관이 주안에게 말했다.
“네 성흔을 저 멍청한 녀석에게 보여주거라.”
“예? 성흔을요?”
“그래, 말로 이해시키는 것보다 그걸 보여주는 게 훨씬 빠를 거다.”
그 말에 주안이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여 준 후 왼손을 들었다.
그리고 서서히 신성력을 뽑아내자, 바루 족장이 눈을 조금 크게 뜨며 말했다.
“어머니의 손길을 가진 외부인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그래도 안 된다. 대족장의 허락, 필요하다.”
“자세히 봐라, 멍청한 녀석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퉁명스레 말하자, 갸웃하던 바루 족장이 주안의 손을 빤히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손바닥에 있는 성흔을 보고는 눈이 크게 뜨이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어머니의 증표!”
그 역시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를 지켜본바 있는 이였고, 그곳에 새겨진 흔적이 어떤 것인지는 지겹게 듣고 자란 이였다.
부족의 중심이자 부족의 근간.
이곳에 남아 친구들을 기다리며 어머니의 나무를 지키는 이유.
그 모든 게 세계수와 성흔에 근간을 두고 있었기에 부족민이라면 누구나 아는 이야기들이었다.
“어, 어머니의 자식인가, 외부인?”
그게 뭔지 모르기에 주안은 답을 해줄 수 없었지만, 바루 족장은 황급히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냅다 절을 하며 말했다.
“달란트의 후손이자 차르의 자손인 바루, 어머니의 자손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한다.”
“아니, 이놈의 자식은 나한테는 고개만 까딱하더니?!”
바루 족장이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절을 하자 그 모습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발끈했다.
“손님 맞다. 외부인 아니다. 대밀림 어디든, 안내해 준다. 어디를 가려는 것이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은 깔끔하게 무시한 바루가 주안에게 물었고, 그 행동에 붉으락푸르락해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얼굴에 주안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전, 그 어머니의 나무라는 것을 조금 보고 싶어서 이곳에 찾아왔어요. 혹시 가능한가요?”
“가능하다. 대족장, 거기 있다. 우리 부족들의 아버지 집이다. 바루가 직접 안내해 줄 거다.”
어눌한 말투이지만, 진심이 전해져 오는 그 말에 주안은 더더욱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이 성흔이라는 것은 사실 서대륙 내에서도 북부의 사람들과 신관들이 아니라면 모르는 이가 대다수일 정도로 알려진 바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어째서 가장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곳의 원주민들이 이토록 신성시하고, 그 성흔이 왜 이들이 어머니의 나무라 부르는 세계수에 있는 것인지 주안으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