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73화
식사를 끝내고, 담소를 나누며 티타임까지 가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지만,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나름대로 파악할 수 있었던 유익한 시간이었다.
주안은 그런 그들과 헤어진 뒤 시종의 안내에 따라 자신의 방으로 가며 그 가족들, 특히 유우나 공주의 동생들을 떠올리며 괜히 미소를 지었다.
‘실리온 왕자야 너무 어리다 하지만, 에밀 공주는 유우나 공주님과 완전 반대라니…….’
주안은 유우나 공주를 보며 그 동생들도 비슷할 줄 알았지만, 오늘 보니 그게 전혀 아니었다.
다소곳하고 조용한 에밀 공주를 떠올리자, 주안은 괜히 미소가 지어졌다.
계산적이며 대범하고, 일단 결정하면 실행에 옮기는 직선적인 유우나 공주와 달리 에밀 공주는 전형적인 공주님, 그 자체였다.
취미마저 책을 읽고 글을 쓰며 꽃꽂이라는 소녀 감성이 다분한 것들이었을 정도였다.
‘뭐, 그래서 유우나 공주님이 그런 동생들을 지키기 위해 제국의 귀족에게 시집을 가려고 한 것이겠지만…….’
주안이 봐도 그녀의 동생들은 매우 사랑스럽고 보호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동생이 없어서 그런지, 주안이 느꼈던 세라타에 대한 감정이 그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나도 동생이 생기면 유우나 공주님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
괜히 그런 생각이 드는 주안이었다.
하지만 가문에서는, 그리고 이전의 삶 속에서도 주안에겐 동생이 없었기에 아마 영원히 느낄 수 없는 그런 감정이지 싶었다.
그렇기 때문인지 괜히 아쉬워지는 주안이었다.
후우 하고 작게 한숨을 내쉬는 왕궁에서 가장 중요한 손님의 모습에, 시종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간다는 것을 주안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 왔습니다, 공자님.”
“아, 예. 수고하셨어요.”
벌벌 떨며 주안을 방까지 안내한 시종이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주안에게 말했다.
주안 역시 적당히 답해주며 그가 문을 열어준 방 안으로 들어가려다, 이내 우뚝 멈추어 섰다.
이런 주안의 행동에 자신이 무언가 큰 실수를 한 것이 아닌지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시종이었지만, 주안은 그의 행동 때문에 걸음을 멈추어 선 게 아니었다.
“아직 안 불렀잖아, 토미. 그리고 너 근신이라는 거 잊었어?”
“…….”
왕성 복도의 기둥 뒤에 숨어 있었던 것인지, 토미의 모습을 보고는 주안이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주안의 모습에 시종은 안심하며 고개를 꾸벅 숙인 채 조용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주었다.
그 역시 토미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주안의 행동으로 보건대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금세 파악이 끝낸 뒤였다.
어쨌든 왕성의 베테랑 시종.
눈치가 없다면 살아남지 못하는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행동에 주안도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쨌든 토미에게 말했다.
“뭐, 들어와. 나도 할 말이 있어서 너 부르려던 참이었으니까. 그리고 다과 좀 준비해 주시겠어요? 차보다는 시원한 주스나 과일이 좋겠네요.”
“알겠습니다, 공자님.”
주안이 그렇게 말하며 방 안으로 들어가자, 토미도 조용히 주안의 뒤를 따라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안으로 들어간 후 남겨진 시종은 조용히 방문을 닫아 주었고, 주안의 명대로 다과를 준비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 * *
주안은 환기를 위해 테라스의 문을 활짝 열어둔 후 방 안에 마련된 푹신한 소파에 앉았지만, 토미는 주안의 시선 안에서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섰다.
그리고 잠시 뒤 노크 소리와 함께 방문을 열고 들어온 시종이 준비해 온 다과들을 주안의 앞, 테이블 위에 조심스레 놓아준 후 물러나 다시 방 밖으로 나섰다.
“헤에, 유우나 공주님한테 내 이야기를 다 들었나 보네. 덜 익은 사디안을 준비해 주시고 말이야.”
주안이 즐겁고 행복하게 먹었던 덜 익은 사디안 열매가 예쁘게 잘려 고급스러운 접시 위에 올려져 있자, 주안이 싱긋 웃으며 한 조각을 포크로 집어 한입에 쏙 집어넣었다.
새콤한 향과 맛이 온몸에 퍼져 나갔지만, 그게 바로 사디안의 매력이라는 듯 주안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한 조각을 더 집어 먹은 뒤에야 토미에게 시선을 주었다.
“토미, 너도 앉아서 좀 먹어.”
“도련님…….”
“애가 좀 떨어졌다고 그렇게 무게 잡는 거 아니야. 어서.”
“…….”
잠시 우물쭈물하던 토미였지만, 주안이 빤히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움찔 놀라 조심스레 그 말에 따라 주안의 맞은편에 앉으려 했다.
“여기 앉으라고, 여기. 내 옆에.”
“예, 예?! 그, 그건 좀…….”
“이것도 명령을 내려야 해?”
“으…….”
왠지 볼이 발갛게 물든 토미가 고민을 하는 듯했지만, 따르지 않으면 명령을 내린다는 것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안의 곁으로 가서 앉았다.
그런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사디안 열매의 조각을 포크로 집어 토미에게 건네주었다.
“먹어. 근신을 어긴 너한테 내리는 내 벌이야.”
“……차라리 매를 맞는 게 더 나을 거 같아요, 도련님.”
토미도 황도에서 주안의 권유로 이미 사디안 열매를 먹어본 경험이 있었기에, 이 지옥 같은 시큼한 맛에 머리털이 쭈뼛 서고 밤에 잠도 제대로 못 했던 일이 떠올라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흐흥~ 누구 마음대로? 나는 문화인이라 매를 든다는 야만인의 행동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거거든?”
“…….”
매로 벌을 내리는 것과 먹을 것으로 고통을 주는 것.
둘 다 문화인이 할 짓은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해줄 수 없는 입장인 토미였기에, 주안에게서 받아 든 사디안 열매를 심각한 눈으로 바라보다,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입을 크게 벌리며 한 번에 입속으로 쏙 집어넣었다.
“삼키는 거 금지다. 꼭꼭 열 번은 씹고 삼켜.”
“우읍?!”
삼키려던 토미가 목이 막힌 것인지, 기침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슴만 두들겼다.
그리고 이내 주안의 말대로 꼭꼭 씹는 것인지 표정이 이리저리 변하며 눈물을 머금는 그 모습에 주안이 키득거리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래, 이렇게 말을 잘 들으면 얼마나 좋아.”
“하지만……. 그, 그래도, 으윽……! 도련님이랑 같이, 이, 있고 싶…… 우으…….”
“자, 여기 물.”
“가, 감사합니다…….”
주안이 직접 물을 따라 컵을 건네자, 토미가 황급히 그것을 받아 들고는 한 번에 들이켠 후 입을 헹구었다.
그런 토미의 행동에 주안이 즐거운 미소를 지으며 빤히 바라보았다.
겨우 입과 속이 좀 달래진 것인지 토미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식은땀까지 흘릴 정도로 강렬한 맛이었던 것인지, 조금 안쓰러워진 주안이 손수건을 토미에게 건네었지만, 토미는 그것을 보고는 머뭇거린다.
“어휴, 정말. 주면 주는 대로 좀 받기도 하고 말을 하면 말도 좀 듣고……. 대체 누굴 닮은 건지…….”
“도, 도련님?!”
주안이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자, 토미가 허둥거리며 당황한다.
얼마나 당황한 것인지 허공에 어떤 손짓을 하고 있지만, 해석은 불가능했다.
“신분 그런 건 여기서는 내려놓고 너와 나. 주안과 토미. 친구로서의 둘로 좀 생각해, 멍청아.”
“하지만…….”
“물론 그런 게 너한테 어렵다는 건 알아. 그래도 사람이 없는 곳에서까지 너무 예의를 차릴 필요는 없어.”
토미의 얼굴에 맺힌 땀을 다 닦아준 후 주안이 손수건을 곱게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토미는 생각 같아선 그 손수건을 빼앗아 세탁해 주겠다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주안이 자신을 흘겨보며 씨익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보다, 이제 혼 좀 나야겠지?”
“윽…….”
움찔 놀라는 토미의 모습에 풋 하고 웃음을 터뜨린 주안이 토미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겨주었다.
“농담이야. 그냥 너한테 잔소리나 좀 해주고 싶어서 말이야.”
“……그게 혼내는 게 아니에요?”
“전혀. 이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우선…….”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던 주안이 가장 먼저 이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날 쫓아오고 싶었던 거야?”
주안의 말에 토미가 단번에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행동에 일체의 다른 생각이 없다는 듯, 순수한 마음을 담아 끄덕이자 주안도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순진해도 너무나 순진하고 올곧은 행동에는 정말이지 제대로 화를 낼 수도 없게 만든다.
“내가 널 왜 메리다의 그곳에 두고 온 것인지 진짜 몰라서 그랬던 거야? 그랬다면 난 정말 실망인데?”
“……알고, 있어요. 도련님이 저를 생각해 주시고, 세라타를 생각해 주시는 것도 다 저희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걸 모르진 않아요.”
“알면서도 그랬다는 거네?”
“…….”
그 정도는 이미 예상했던 것이긴 하였지만, 토미의 입으로 직접 확인이 필요했었다.
씁쓸함보다는 토미의 못 말리는 그 행동에 쓴 웃음만 지어진다.
“너한테는 아직 세상의 나쁜 모습도, 더러운 모습도, 위험한 일도 일어나게 해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거야. 내 행동이 잘못된 걸까?”
“아니에요. 도련님은 절대 잘못된 게 아니에요. 단지, 단지 저는…… 그저 도련님 곁에서, 도련님이 보여주신 은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갚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은 안 해도 괜찮은데…….”
주안의 말에 토미가 살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은 후 말했다.
“늘 다짐하고 생각을 했어요. 저도 언젠가 워랜 경처럼, 아르베리아 경처럼, 도련님의 곁에 서서 도련님이랑 함께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저도 알고 있어요. 전 아직 약하니까요…….”
약하다는 것을 스스로 늘 생각하고, 또 벗어나기 위해 매일 노력했지만, 그럴수록 초조해지고 조급해지기만 했다.
“그저 지금은 순수하게 도련님 곁에서, 워랜 경이나 아르베리아 경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공부하고 싶어요. 언젠가, 저도 당당하게 도련님 곁에 설 수 있을 때를 위해서 말이에요.”
“거, 자식…….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고 말이야.”
주안이 입술을 샐쭉 내민 채 툴툴거렸지만, 왠지 낯이 뜨거워졌다.
아니, 실제로 볼이 발갛게 물들었을 정도다.
토미의 마음은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직접 들으니 부끄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런 진실 된 순수한 마음이 좋았고, 그 마음이 가는 방향이 자신이라는 것이 조금 기쁘기도 했다.
이전 삶에서의 토미는 그러한 감정을 유우나 공주에게 보내주었던 것일까.
그런 토미의 순수한 충성심이 유우나 공주에게도 큰 도움이 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뭐, 네가 약하다는 건 이해하고 있다니까 다행히야.”
게다가 그저 무작정 따라오고 싶다는 것도 아닌, 주안의 곁에서 워랜이나 아르베리아를 보고 그들이 주안을 대하는 태도, 행동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사람으로서 보이는 모습들을 보고 살피며 자신 역시 그런 사람들처럼 되고 싶다는 그 결심이 나쁘지 않았다.
언젠가 자신도 그들처럼 주안을 모시고 싶다는 것과 보고 배우고자 하는 그 의지가 대견했다.
“난 며칠 되에 왕도를 잠시 떠나 대밀림으로 갈 거야. 알지?”
“예, 그곳의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가신다는 것을 저도 알고 있어요.”
“응, 겉으로는 그렇게 될 거야.”
“예? 겉으로……?”
토미가 갸웃하자 주안이 살며시 미소를 지어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공식적으로는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도 이 병에 걸렸기에, 치료하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다시 병이 올라올 수 있어서 치료해야 한다…… 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들의 병은 이미 치료가 다 끝났어.”
“그게 무슨…….”
더더욱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한 토미의 모습에, 주안이 조용히 동부의 일을 설명해 주었다.
특히 황도 대신전의 전대 대신관인 마누엘 대신관님에 대한 이야기나 주안의 성흔과 관련된 대밀림의 나무, 세계수의 일까지 토미에게는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해 주었다.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순수하게 마누엘 대신관 외에는 없었다.
아직 아무에게도 설명하지 않은 이야기였고, 대밀림으로 갈 때 동행할 몇 사람에게만 해줄 생각이었다.
“도련님, 그러면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가신다는 말씀이세요?”
“그래, 나한테는 중요한 일이거든. 이게 뭔지, 나는 도통 모르겠어.”
주안이 성흔을 들어 토미에게 보여주었다.
토미 역시 주안의 왼손에 생겨난 성흔을 몇 번이나 보았지만, 참 신기하고 대단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 이상의 의문은 전혀 들지 않았다.
“뭐가 더 남아 있고, 뭘 더 알 수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그곳을 가고 안 가고의 차이는 있겠지.”
이미 마누엘 전대 대신관은 그것을 보았고, 혼자 조사도 해보았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안은 그곳의 방문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남아 있는 하나의 성흔. 그리고 흔적만 남은 두 개의 성흔.
‘……내 손의 이 성흔과, 과연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이전의 삶에서는 없던 이것은 대체 왜 자신에게 생겨난 것이며, 그 이전에 자신이 다시 이런 삶을 살아가게 된 것에 대한 의문은 여전했다.
“그리고 그곳에…… 토미, 너도 데리고 갈 거야.”
“저, 정말이세요?!”
“그래, 인마. 또 가출하지 말라고 데리고 가는 거니까.”
“윽…….”
주안이 데리고 간다는 말에 기뻐하던 토미가, 이어진 말에 흠칫 놀라며 몸을 잔뜩 움츠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주안이 풋, 하고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뻗어 토미와 어깨동무를 해주었다.
“토미, 한 가지 내 부탁을 들어줄 수 있어?”
“부탁이요?”
“그래, 부탁. 이건 너를 친구로 생각하는, 그리고 너도 날 친구로 생각하기에 하는 부탁이야.”
친구라는 말은 좋지만, 그만큼 부담스러운 것도 없었다.
주안은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진지함이 느껴져 토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이든 말씀만 하세요, 도련님.”
토미의 말에 주안이 조용히 말했다.
“만약 피터 경이 허락을 한다면, 풍신 경에게 검을 배우는 것을 생각해 줘.”
“예……?!”
생각지 못했던 그 말에 토미가 깜짝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본다.
주안은 담담하게 말했다.
“피터 경에게 검을 배우지 말라는 게 아니야. 피터 경에게 검을 배우면서 풍신 경에게도 검을 배우라는 소리야.”
“하지만…….”
“확실히 말해서 실력 하나만 놓고 본다면, 풍신 경과 제대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우리 제국에서도 채 다섯도 안 될 거야.”
이미 황실 근위대 부단장인 실버론 하셀 자작과 호각으로 겨룬 실력자임이 드러난 이상, 그와 동급의 실력자가 아니라면 풍신의 검을 받아낼 이는 존재하지 않는다.
풍신은 그것을 워랜을 통해 이미 증명해 주었다.
“워랜 경과 비슷하지만, 워랜 경에게 없는 너만의 장점을 잘 키우면 돼. 동방의 검만이 아니라, 서방의 검도 배우면서…… 두 가지의 장점을 네 것으로 만들어. 넌 이미 그렇게 했잖아?”
동방의 검과 비슷한 형태로 발전했던 워랜의 변화된 검과 피터에게서 배운 서방의 직선적인 검을, 이미 두 가지의 장점만 이용해 자신의 검을 만들어 버린 토미였다.
그것은 매우 놀라운 변화였고, 그것을 본 모든 이들이 토미를 대단히 여기는 부분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주안은 토미가 풍신에게 배우는 동방의 검뿐만이 아니라 피터에게서 배우는 서방의 검을 통해 자신만의 진짜 검을 만들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는 것이다.
‘이미 동방의 검의 끝에 올랐었으니까…….’
주안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판단하였다.
“풍신 경이 널 정말 가르치고 싶어 하나 봐.”
“풍신 경이…….”
토미도 풍신이 얼마나 대단한 검사인지 알고 있기에, 그런 그가 자신을 가르치고 싶어 한다는 말이 기분이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안은 풍신의 심경이 변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이미 워랜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들은 후였고, 풍신이 조만간 부탁하러 올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주안으로선 그보다 기쁜 일이 없었기에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토미에게 풍신의 검을 배우게 해줄 생각이었다.
“쉬운 일은 절대 아닐 거야. 두 배로 힘들 거고, 두 배로 노력해야겠지. 그래도 난 네가 풍신 경에게도 검을 꼭 배웠으면 좋겠어.”
“…….”
주안의 말에 토미가 조용히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은 후 주안에게 말했다.
“저는 아직 주안 도련님의 친구로서 있기에는 너무나 부족해요.”
“토미…….”
“하지만 언젠가, 도련님의 말대로 풍신 경에게 검을 배우고, 그리고 제가 도련님의 친구로서 곁에 설 수 있는 자격이 생겼을 때, 그땐 정말 친구가 되어주세요.”
“이미 친구라니까.”
생긋 웃는 주안의 미소에 토미 역시 미소를 지어주었다.
이런 거리낌 없는 모습이기에 토미는 주안을 진심으로 따르고 싶었고, 그 곁에 서고 싶었으며…… 정말, 이런 멋진 도련님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피터 스승님이 허락해 주신다면, 풍신 경에게 검을 배우도록 할게요, 도련님.”
“그래, 나도 피터 경에게 잘 말해볼게.”
토미가 납득해 주자 주안의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하지만 풍신 경이 우리 제국으로 오지는 않을 텐데……. 그러면…….’
그러면 토미는 이곳에 남아 풍신의 곁에서 검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한두 해로 끝낼 일도 아니었기에, 그 부분이 내심 걱정이 되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토미가 좀 더 강해지고, 꿈을 이룰 수 있다면…….’
영원히 헤어지는 것이 아닌, 짧은 이별이 될 수 있겠지만, 그 시간은 토미만이 아닌 자신에게도 소중한 변화의 시간이 될 것이다.
적어도…….
토미가 자신의 곁에 당당히 서고 싶어 하는 바람만큼이나 주안 역시 토미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