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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72화 (7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72화

“고생하셨어요, 위체니아 양.”

“고생이라고 할 것도 없었습니다. 단지…….”

주안은 정식으로 아스란 왕국의 왕을 알현하고 정해진 숙소로 발걸음을 옮기며, 곁을 지키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하지만 위체니아는 무언가 조금 걸리는 부분이 있는 듯, 잠시 머뭇거리다 주안에게 물었다.

“소니아와 그 아이들은 어쩌실 생각이신가요?”

그 아이들이 누구인지 알게 주안이 작게 미소를 지어주었다.

“일단 근신입니다. 적어도 집에 돌아갈 때까진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근신…… 입니까?”

“처벌이 약한가요?”

주안이 멈추어 서서 위체니아를 바라보자, 잠시 고민하던 위체니아가 주안을 똑바로 마주 보며 말했다.

“약합니다.”

“어째서인가요?”

당당한 그 모습에 주안은 의외라는 듯했지만, 그녀는 그게 마치 당연하다는 듯, 너무나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소니아보다 크게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연상의 여성이지만, 위체니아 소벡, 그녀는 소니아나 워랜, 아르베리아와는 정말 다른 사람이었다.

귀족.

주안이 그동안 보아온 젊은 세대 중, 이 말이 위체니아 소벡만큼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소니아나 워랜은 워낙 자유분방한 사람들이라 옆집 누나와 형 같다면, 아르베리아는 잔소리 많은 선배 같은 인물이었다.

하지만 위체니아는 그 모든 것이 해당되지 않았다.

어디에나 있는 이름뿐인 귀족들이 아닌, 하는 행동마저 기품이 느껴지는 진짜 귀족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주안은 마치, 점잖을 때의 엄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지금 역시 당당하게 서서 주안을 바라보며 말하는 그 모습은, 주안이라는 높은 곳의 인물, 그리고 모셔야 할 주인의 가문의 후계자에게 저자세라 나오는 게 아니라 할 말을 해주는 조언자의 모습이었다.

그렇기에 주안은 그런 위체니아를 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공자님이 그 아이들을 아끼시는 것은 알지만, 그 아이들은 어기지 말아야 할 규율을 어겼습니다. 적절한 처분이 없다면, 그 아이들이든, 다른 이들이든, 누구든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을 우습게 보며 또다시 그런 일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을 공자님은 이해하셔야 합니다.”

“확실히 그렇긴 하죠. 하지만 단 한 번의 실수로 엄한 처벌을 내리기에는 소니아 누나나 다른 아이들은 너무 어립니다. 관용이라는 것을 베풀어도 되지 않을까요?”

“관용이라……. 확실히 좋은 말이긴 하지요. 하지만…….”

위체니아가 주안의 그 상냥함이 마음에 드는 것인지 미소를 지었지만, 이내 다시 귀족으로서의 위체니아로 돌아와 냉정함을 보이며 주안에게 말했다.

“그것은 주안 공자님의 개인적인 일일 때 행할 수 있는 관용입니다. 개인적인 친분과 상대방의 나이라는 것을 고려하지 마시고, 마르티네스라는 단체를 인지하셔서 결정하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게 주안의 개인적인 일이었다면야 크게 문제삼을 필요는 없는 일이었지만, 이들은 모두 마르티네스라는 이름과 제국이라는 이름을 짊어지고 온 이들이었다.

누군가 정해진 규율을 어기고 그 단체에 큰 피해를 줄 수 있는 일이 발생했다면, 엄히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 위체니아의 생각이었다.

그러한 단체 중 하나인 삼대 백작가의 입장을 대변하는 소벡 백작 가문의 여식이 해야 할 일이기도 했다.

“확실히 마르티네스라는 이름에 포함된 채 그러한 일을 벌였다면, 위체니아 양의 말대로 엄히 다스려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할지도 모른다면, 하지 않겠다는 의미도 있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예, 제 뜻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내려질 처분은 근신입니다. 그 이상의 처벌은 없으며, 제 허락이 떨어질 때 근신 처분은 풀릴 것입니다.”

“공자님…….”

“위체니아 양이 걱정하시는 부분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저를 위해서 온 사람들입니다. 규율을 어겼다고는 하나, 저 하나만을 바라보고 이곳까지 달려온 저의 사람을…… 단지 그런 규율을 어겼다고 엄히 다스린다면…….”

주안이 담담이 위체니아를 보며 말을 이었다.

“다음, 이런 일이 아닌 제가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군가 움직일 수 있겠습니까? 규율대로 처리하는, 그런 냉정한 공작가의 후계자를 위해서 불이익을 또 감수하고?”

“가정이실 뿐입니다.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지만, 설령 일어난다 해도 모두 공자님을 위해서라면…….”

위체니아의 말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올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한 번쯤은 망설이게 되겠지요. 그리고 그 망설임에 제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 잘못될 수도 있을 것이고 말입니다.”

“궤변입니다, 공자님. 그렇다면 규율을 어김으로 공자님이,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위체니아의 말에 오히려 기분 좋다는 듯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런 위험이라면 얼마든지 감수하도록 하죠.”

“……예?”

“저를 위해 뛰쳐나오고, 가문을 위해 규율을 깬 이들이라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공자님…….”

어이없어하는 위체니아였지만, 주안은 진심이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그리고 당당하게 그녀를 똑바로 보며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정도로 무너질 가문이 아닐뿐더러 그런 분들을 보호해 주지 못하는 가문이었다면, 저희는 이 자리에까지 오지 못 했을 것입니다.”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은 혼자가 아니다.

사람으로 따지면 심장의 역할을 할 뿐, 손과 발, 머리…….

그리고 더 많은 몸의 모든 기관 하나하나가 가문을 따르는 가신들인 것이다.

“마르티네스 가문은 오로지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 하나의 힘만으로 지금껏 달려온 가문이 아닙니다. 모두와 함께 발을 맞추어온 것이지요. 그렇지요?”

“……예”

주안의 말에 위체니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주안이 조용히 그녀에게 말해주었다.

“부족한 이들을 채워주고, 느리게 걷는 이들을 부축해 주며, 다친 이들을 보살피는……. 저희 마르티네스 가문은, 공작령 내의 많은 가문, 가신들과 함께, 그렇게 온 것입니다.”

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또 이들이 있기에 마르티네스 가문이 얼마나 강성한 것인지, 주안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규율이 어떻고 질서가 어떻고, 그 이전에 이것 하나만 생각하면 됩니다.”

그렇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린 하나라는 것을 말이지요.”

주안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하자, 위체니아는 멍하니 그런 주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무어라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고로, 소니아 누나를 포함해서 토미와 세라타는 근신이고, 솔은 배부르게 먹여주는 것으로 벌을 종료합니다.”

“예? 솔은 왜…….”

“……분명 소니아 누나에게 협박당해서 끌려 왔을 거니까요. 불쌍한 솔은 근신이 아니라 만찬의 포상입니다.”

“풋…….”

진지하게 그런 말을 하니, 그 냉랭한 표정을 짓고 있던 위체니아도 작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 * *

상황이 상황인지라 연회는 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왕가의 가족들과 함께 조촐하게 식사 자리를 가지는 것을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자리에 초청된 것은 오롯이 주안 혼자뿐이었다.

왕가의 참석자 역시 아스란 왕국의 국왕, 펠레시스 국왕과 네비아 왕비 그리고 유우나 공주와 여동생인 에밀 공주, 막내이자 유일한 왕자인 실리온뿐이었다.

주안이 초대된 식당에 들어서자 이미 기다리고 있던 왕가의 가족들이 일어나 직접 주안을 맞이해 주었다.

“어서 오시게, 주안 공자.”

굉장히 부담스러운 펠레시스 국왕의 태도에 주안이 쓴웃음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기에 주안이 정중히 고개를 숙여 그들에게 인사하였다.

“이렇게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국왕 전하.”

“나야말로 정말 고맙다네. 피곤할 텐데, 이렇게 초대하여 오히려 미안할 따름이라네.”

“아닙니다. 오히려 번잡한 자리가 아닌 이런 배려가 감사할 따름입니다.”

유우나 공주에게서 들은 것인지, 확실히 주안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달라붙는 왕성의 귀족들이 조금 부담스러웠다.

주안의 유한 태도가 오히려 그들에게 만만하게 보인 것인지, 아니면 고마워서 그러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힘이 든 것은 사실이었다.

사실 왕가의 초대만 아니었으면, 주안은 모든 초대를 거절해 달라고 이미 아르베리아에게 부탁해 놓았을 정도였다.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공자님.”

“예, 그러도록 하지요.”

국왕 전하뿐만이 아니라 왕비 마마에게도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주안이 유우나 공주의 안내에 따라 자리로 가서 앉자 왕과 왕비의 눈이 조금 변했다.

아무렇지도 않게 주안을 안내해 주는 유우나 공주나, 그런 안내에 불만 없이 따라주는 주안.

게다가 유우나 공주의 곁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은 그들로서는 매우 흐뭇한 광경이었고, 한편으로는 작은 오해가 싹트기 충분한 모습이었다.

“오는 길이 힘들지는 않으셨습니까?”

식사가 내어오는 사이, 펠레시스 국왕이 조용히 주안에게 물었다.

그를 처음 봤을 때의 주안의 평은 딱 하나였다.

젊은 시골 이장님.

왕의 의복과 왕관 없이 길에서 만났다면, 정말 그렇게 느껴도 이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결혼을 일찍 하신 것인지 이제 막 마흔 줄에 오른 펠레시스 국왕은 왕으로선 매우 젊은 편이었다.

대신 금슬은 좋은 것인지 막내이자 유일한 왕자인 실리온 왕자의 나이는 이제 겨우 여섯 살이었다.

펠레시스 국왕의 물음에 주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크게 힘든 길은 아니었습니다. 다행히 다들 잘 대해주셔서 말이지요.”

“사절단으로 초대를 하였음에도, 제대로 된 환영도 해주지 못해 정말 죄송하구려……. 오히려 도움만 받으니, 정말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소.”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전염병을 잘 견뎌내고 있는 아스란 왕국의 백성들을 보니, 과연 남부의 강국이었던 그 기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싶었습니다.”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흘리던 펠레시스 국왕이 주안을 보며 말했다.

“주안 공자, 이건 아스란 왕국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나 역시 백성의 한 사람으로서 공자에게 정말 큰 감사를 느낀다오.”

그리고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주안을 향해 조용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이 나라를 위해 힘을 써줘서 정말 고맙소. 우리 왕국의 백성들을 구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오.”

“저, 전하.”

펠레시스 국왕만이 아니라 네비아 왕비와 에밀 공주에 실리온 왕자, 거기다 유우나 공주까지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자, 주안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이런…….’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난 주안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저는 이런 감사를 받기 위해 한 행동이 아닙니다.”

“그렇다 하여도 많은 이들이 공자에게 감사를 느낄 것이오. 사양치 마시구려.”

고개를 든 펠레시스 국왕이 잔잔한 미소를 짓자, 주안이 머쓱해졌다.

정말이지, 펠레시스 국왕은 국왕에 정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렇게 쉽게 고개를 숙인다는 것은 왕으로서 실격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가 왕으로서의 자질은 없다 해도,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문제는 이런 혼란한 나라의 왕이라는 점이지.’

분명 평화로운 시대에서의 왕이었다면 그는 평범하거나, 혹은 백성들을 위하는 성군이 되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아스란 왕국은 이런 인자한 성군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귀족들을 휘어잡을 군왕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기에 주안은 그가 현재의 왕이라는 것이 매우 안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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