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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68화 (6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68화

신전과 신전 터는 작았지만, 주변에는 새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몇 개나 자리를 잡고 있었다.

겨우 2층짜리 집들로 보였지만 외관은 깨끗했다.

그리고 그러한 건물과도 좀 멀리 떨어져 어울리지 못하는 건물도 눈에 보였지만, 주안은 그 건물이 무엇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저 동떨어진 건물이 격리된 환자들이 거주하는 곳입니까?”

“예, 임시로 세워진 곳이긴 하지만, 지내는 것에는 불편함 없이 만들어놓았습니다. 단지, 신관분들 외에는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말이죠.”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기에 주안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마 지금쯤 노신관님도 격리된 건물에 있는 환자들을 돌보고 계실 것입니다.”

“그런가요? 오히려 잘 되었군요.”

잘 되었다?

무슨 말인지 몰라 갸웃하는 글라리스에게 주안이 말했다.

“가서 바로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편하잖습니까.”

“예? 바로, 말입니까?”

주안의 말에 글라리스가 처음으로 표정이 변하며 눈을 크게 뜨고는 주안을 본다.

글라리스는 주안이 조금 생소하게 보였다.

오자마자 마땅한 환영해 준 것도 아니고 편의를 봐준 것도 아님에도 주안이나 주안을 따르는 이들은 불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껄끄러운 일을 하려고 하니, 귀족이라면 지긋지긋한 그에겐 매우 생소한 일이었다.

주안은 그러거나 말거나 좀 멀찍이 떨어진 건물로 향했다.

신전 터와는 길이 이어져 있지만, 꽤나 걸어가야 했으며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지만, 그들은 주안과 함께 오는 이들을 보고는 오히려 당황했다.

뒤따라온 글라리스가 그들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며 주안과 함께 건물 쪽으로 향했다.

도착 후 건물 정문 앞에 선 주안이 건물을 올려다보자 글라리스가 조용히 물었다.

“일단 사람들을 물리도록 할까요?”

“그러지 않아도 괜찮으니 잠시만 물러나 계세요.”

주안이 싱긋 웃으며 손을 풀더니 건물 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대었다.

‘굳이 사람들을 나오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게 사람을 다치게 하는 그런 힘도 아니고, 오히려 안에 병자들이 모여 있다면 오히려 일석이조다.

‘자, 간다!’

오면서 딱히 신성력을 사용할 일이 없어서 오랜만이긴 했지만, 길게 숨을 들이마신 후 있는 힘껏 왼손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건물을 덮어버린 신성력의 빛은 낮임에도 주변을 더 환하고 밝게 만들어내었다.

함께 온 일행들이야 이미 몇 번이나 겪은 일이라 놀라지 않았지만, 글라리스느 그 과묵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이건 정보에 없었습니까?”

“정보 그 이상이라서…….”

이 사람을 놀라게 만드니, 왠지 좀 뿌듯했다.

생각해 보면 미래의 대단한 인물 모두를 다 놀라게 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한참을 신성력을 주입하자 황도와 메리다의 건물처럼 이 건물 역시 외관이 반짝반짝해지며 성스러운 빛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제야 주안이 손을 떼었다.

몇 번을 보았지만, 그래도 감탄사가 나오는 일행들이었고, 처음 본 광경에 글라리스의 벌어진 입은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주안이 심호흡하는 사이, 갑자기 정문이 벌컥 열리며 한 노인과 다부진 체구의 사내가 달려 나왔다.

“어떤 고얀 녀석이 안에 사람이 있는데 이런 망할 신성력을 뿌려대는 게야?!”

“영감, 놀랐다. 쿠단도 놀랐다. 놀라게 한 놈, 혼내준다!”

나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얼굴에 한해서였다.

‘무, 무슨 노인의 몸이……?!’

주안이 지금껏 보았던 세상에서 가장 큰 인물은 이곳에서 본 셀리온 경이었고, 가장 완벽한 근육을 가진 사람은 황도의 바스티아노 백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 저 노인을 보고 주안의 그 생각이 바뀌었다.

셀리온 경만큼 크고, 바스티아노 백작만큼 완벽한 근육질의 몸은 신관복을 입고 있음에도 찢어질 듯 부풀어 올라 근육이 그대로 다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키는 좀 작지만, 우락부락한 근육질의 남성이 어눌한 말로 소리치며, 노인과 마찬가지로 화를 내고 있었다.

비정상적으로 자란 뭉툭한 어금니가 남자의 인상을 꽤나 험악하게 만들었지만, 이미 오면서 만났던 막스 셀리온보단 인상이 순했기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리고 주변을 둘러보던 노인이 신성력의 흔적을 뒤쫓은 듯 주안을 보며 말했다.

“오호라, 네 녀석이더냐? 네 녀석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 이것이더냐?”

주먹을 움켜쥐고 우두둑 하며 불길한 소리를 내며 히죽 웃는 노신관, 아니, 괴노인…….

“그, 그게 그러니까, 이건 사정이 있어서……!”

“사정이고 뭐고, 안에 사람이 있으면 놀라지 않게 먼저 말을 하고 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게냐.”

“……죄송합니다.”

오히려 한 번에 해결하려던 게 역효과였던 듯, 노신관은 적잖이 놀란 듯했고, 곁에 있는 남성은 굉장히 화가 난 듯했다.

“쿠단, 목 뽑는다. 안 참는다!”

“참아, 멍청한 녀석아.”

“쿠단 놀랬다! 쿠단, 깨끗해졌다! 깨끗해진 쿠단, 부족의 수치! 장가 못 간다! 놀라게 한 놈, 팔 뽑는다! 깨끗하게 한 놈, 목 뽑는다!”

“어차피 장가 못 가서 따라 나온 것 아니더냐. 그리고 여기가 무슨 대밀림인 줄 아느냐. 목을 뽑으면 사람은 죽어.”

“다시 붙이면 안 되나? 영감, 쿠단 팔 잘렸다. 다시 붙여줬다.”

“팔이랑 목은 다르지. 네 목을 뽑고 다시 붙여보거라. 붙여지나.”

노신관이 쿠단이라 불린 남자의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툭툭 치며 말했지만, 쿠단의 머리는 이리저리 돌아가며 엄청난 소리를 낸다.

그럼에도 쿠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친 콧김을 뿜으며 화를 억눌렀다.

‘아니, 그보다 사람 팔이든 목이든 그걸 왜 뽑으려고 하는 거야?!’

저 우락부락한 팔뚝 근육을 보면 충분히 가능해 보였지만, 다행히 노신관의 잔소리에 그것을 실행에 옮기지는 않는 듯했다.

“쯧……. 꼴을 보니 네가 오기로 한 마르티네스의 그 꼬마로구나. 벡브란 그놈은 손주 교육을 어떻게 시킨 겐지…….”

“예?! 저희 할아버지를 아세요?”

작게 혀를 차며 투덜거리는 노신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주안이 적잖이 놀라 당황했다.

대체 할아버지를 어떻게 아는 것인지, 물어보려 할 때 포른 신관이 놀라 소리쳤다.

“대신관님?!”

“웬 대신관?”

포른 신관의 외침에 주안이 주변을 둘러보며 황도의 대신관님을 찾았다.

노신관이 눈썹을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포른 신관을 보고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허허, 너는 포른이 아니냐. 많이 컸구나. 너도 같이 온 것이냐.”

노인이 포른 신관을 보며 허허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였지만, 주안은 그 모습과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다.

“……대신관님이라는 게 대체 무슨 말인가요, 포른 신관님.”

“그게, 그러니까…….”

포른 신관 역시 지금 이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몰라 매우 당황스러워하는 것 같았지만, 이내 주안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황도 대신전의 전대 대신관이셨던 마누엘 대신관님이십니다.”

“전대 대신관?!”

주안이 놀라 소리치며 전대 대신관이라는 마누엘 전대 대신관을 바라보았다.

현재 황도에 계시는 대신관님도 경건함과는 거리가 좀 있었지만, 그래도 나름 사람답게 생기긴 하였는데, 눈앞의 이 전대 대신관은…… 일단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얼굴은 나이 지긋한 노인, 몸은 젊다 못해 괴물같이 크고 근육질이다.

‘……이게 어딜 봐서 같은 사람이야?!’

“불만 있느냐?”

“아, 아니요.”

마치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을 노려보자, 움찔 놀란 주안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워랜의 뒤로 숨었다.

다들 그런 주안의 행동을 이해하는 한편, 워랜이 나지막이 말했다.

“주안 공자, 나 하나 고백해도 될까?”

“갑자기 웬 고백이요?”

“……내 뒤에 숨어도 소용없어. 솔직히 말해서, 저 노인이랑 싸우면 질 자신밖에 안 들거든.”

“질 자신?! 아니, 자신감 넘치는 워랜 경이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요?!”

그 무시무시한 풍신 경에게 냅다 검을 휘두른 양반이 이러니 주안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은 워랜만이 아닌 듯, 근육질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좌중을 한 번 훑어본 것만으로도 모두가 몸을 움츠렸다.

그것은 황실 근위대 조장인 알튼 경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슨 신관이 저래?!’

신관이 아니라 백전노장, 백전백승의 기사라고 해도 믿을 기백이었다.

* * *

“그래, 네가 벡브란 녀석의 손자라지?”

“예, 예.”

신관들은 주안이 아닌, 전대 대신관인 마누엘 신관의 호통에 혼비백산하여 병자들을 돌보러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신전으로 자리를 옮긴 것은 그런 신관들을 제외하고 남은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누엘 신관과 응접실로 와서 마주 앉아 있는 것은 오로지 주안 한 사람뿐이었다.

“그런데 저희 할아버지를 아세요?”

“잘 알지. 그놈에게 싸움 가르친 게 나다.”

“……예?”

“네 증조부 부탁으로 그놈에게 싸움 기술을 가르친 게 나란 말이다.”

“즈, 증조할아버지의 부탁이라고요?!”

아니, 그냥 할아버지도 아니고 증조할아버지까지 나오자 주안은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조심스레 그런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물었다.

“혹시 연세가?”

“어디 보자, 올해 아흔여덟이군. 허허, 이젠 나이 세는 것도 좀 귀찮군.”

“너무 많잖아요?! 진짜 그 나이가 맞으세요?!”

아무리 신성력을 사용하는 신관들이 오래 산다고는 하지만, 이건 정도가 너무 지나치지 않나 싶었다.

“운동을 좀 열심히 하면 건강하게 오래 산단다.”

“조금이 아니신데요…….”

그의 몸을 보면 조금 정도가 아니라 아주 심각할 정도로 운동 중독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는다.

그것도 근육만 미친 듯이 키우는, 마치 황실 근위대의 그런 훈련을 받은 사람으로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것도 정도가 있지, 연세가 아흔이 넘은 분이 이토록 멀쩡한 모습으로 지내는 모습은 특이함을 넘어 이상할 정도다.

‘이것도 설마 신성력의 힘인가?’

주안도 신성력을 가진 신관이 매우 오래, 그리고 건강하게 산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황도의 대신관 역시 운동을 전혀 하지 않고도, 단지 신성력을 지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흔 살이 넘도록 살았고, 편안하게 삶을 마감했으니까.

“할아버지에게 싸움 기술이라니……. 그땐 신관이 아니셨어요?”

“신관이었다만?”

“아니, 무슨 신관이 싸움 기술을 가르쳐요?!”

“신전에 귀의하기 전에는 나름 잘나가는 기사였으니까. 신전에 기부를 많이 해준다고 해서 한 1년 정도 가르쳤지. 뭐, 그 덕분에 동부 여러 가문의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황도에 대신전을 세운 것이니까.”

“우와……. 대신관님의 그 돈 밝히는 게 어디서 나왔는지, 이제 알겠네요.”

페트롤 대신관만큼의 수완은 아니긴 해도, 돈 버는 방법에 눈을 뜨게 해준 게 바로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아닐지 싶었다.

어이없어하는 주안을 보며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큭큭거리며 웃었다.

“한데, 어째 벡브란 그 녀석의 아들도 그렇고, 손자도 그렇고, 몸 쓰는 것엔 영 아닌 것 같구나.”

주안의 아버지인 주레인 공작도 사실 기사의 체질이 아니었고, 그것은 주안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기사의 가문인 것도 아니기에 검을 배우고자 한다면 가르치겠지만, 뜻이 없다면 굳이 가르치지 않는 게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이었다.

“몸 쓰는 것은 별로이지만, 참 신기한 걸 가지고 있다는 소문은 들었다만…… 맞느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물음과 그 눈빛에 주안이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 조심스레 왼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쳐 마누엘 전대 대신관에게 보여주었다.

“호오…….”

그것을 살펴보던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의 자그마한 손을 살며시 붙잡았다.

매우 거칠고 큰 그의 손에 주안이 움찔 놀라긴 하였지만, 부드럽게 매만지는 그 행동은 겉모습과는 완벽히 달랐다.

“아?”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조심스레 신성력을 써서 주안의 손을 감싸는 행동은 무척이나 신중했고 세심하였다.

그 신성력에 반응하듯 주안의 성흔 역시 빛나기 시작한다.

“확실하군. 대밀림에서 본 그 성흔과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그 느낌 그대로야.”

“대밀림…….”

마누엘 전대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물었다.

“마누엘 신관님은 대밀림에 다녀오셨다 들었어요. 그리고 그곳에서, 병을 치료하셨다는 말도 들었고요.”

“그래, 그랬지.”

“혹시…… 그곳에도 저와 같은, 이 성흔을 가진 사람이 있었던 건가요?”

주안의 물음에 마누엘 전대 대신관이 주안의 손을 살며시 내려놓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람이 아니다.”

“예?”

“성흔은 맞았지만, 그것을 가진 이는 사람이 아니란다.”

“사람이 아니라면 대체…….”

마누엘 대신관이 주안의 왼손에 시선을 주며 말했다.

“내가 본 성흔은, 대밀림의 원주민들이 신성시하는 나무에 새겨져 있었다. 그들은 그것을 이렇게 부르더구나.”

그리고 고개를 들어 주안에게 말했다.

“어머니의 나무, 세계수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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