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66화
“버렸다는 게 무슨 의미입니까?”
조금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저들은 반역자들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무뢰배가 아니었고, 유우나 공주의 태도 역시 저들을 역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었다.
주안이 유우나에게 넌지시 묻자, 유우나가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말 그대로, 저희는 동부를……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동부의 백성들을 버린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예? 그게 무슨…….”
아스란 왕국의 반란이 일어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국의 정보부라면 모를까, 그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주안이 알아보는 것에는 그 한계가 명확하였다.
책으로도 따로 설명된 부분이 없었기에 주안이 아는 것은 그저 동부가 두 조각이 나버렸고, 그 한쪽을 차지한 것이 구 맥시스 후작가의 일등 기사였던 베이더 커그였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단순히 일등 기사가 아닌, 아스란 왕국의 제일 기사이자 검사였다.
그리고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반란도 반란이지만, 주군의 등에 칼을 꽂고 그 일족을 몰살시켰음에도, 그를 따르던 기사들뿐만이 아니라 후작령 대부분의 기사, 병사, 더해서 백성들까지 그의 절대적인 지지자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왕가는 백성을 구하지 못하였고, 귀족은 제 잇속을 챙기며 백성들을 수탈하니, 결국 그분이 나설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 그래도 반역인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왕가가 나서지 못해도 지방 귀족들은 충분히…….”
“서로 견제하기 바쁜 뱀과 같은 귀족들은 이미 계산을 끝낸 뒤였어요. 동부를 먹어치우기에는 희생이 크고, 나서는 귀족은 분명 타격을 입을 것이다.”
“……상처 입은 귀족은 또 다른 귀족에게는 좋은 먹잇감이겠군요.”
“그것을 제지해야 할 왕가가 힘이 없으니까요.”
이곳은 완전 약육강식의 현장이나 다름없어 보였다.
중심이 될 왕가가 힘이 없으니, 제멋대로 행동하는 이들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
“……제국의,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힘이 필요한 이유를 알겠군요.”
“예, 하지만 외세를 끌어들이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부분뿐. 군사를 끌어들여 그 힘을 빌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입니다.”
“이 정도면 그렇게 하셔도 될 듯합니다만?”
유우나의 말에 주안이 물었다.
하지만 유우나는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결국 그 외세의 세력이 또 어떤 새로운 뱀으로 돌변할지 모르니까요.”
“…….”
주안은 ‘절대 그럴 리 없다’라는 말을 해줄 수가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그리고 정치와 나라의 일은 언제 어디서든 변수가 발생할 수 있다.
자국에 이득이 되는 일이 일어날 땐 상대방을 고려하지 않고 단번에 목을 물어뜯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주안도 그렇지만, 만약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새로운 공작이 된다 해도 유우나 공주에게 확실한 약속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공작가의 입장을 자신 혼자만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왕가를 위하는 사람들이 아닌, 적어도 현재의 뱀 같은 귀족들과는 다르게 백성들을 위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해요. 그리고 언젠가…….”
유우나 공주가 담담하게, 하지만 조용하고 싸늘한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 뱀 같은 것들을 모두 치워야겠지요.”
“……무섭네요, 유우나 공주님.”
유우나의 서슬 퍼런 눈빛에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움찔 놀랐지만, 주안은 식은땀까지 흘리며 몸을 떨었다.
지금이야 그런 생각만을 가지고 있는 유우나 공주이지만, 실제로 그 일을 이루고, 그 뱀 같은 귀족들을 모조리 형상의 이슬로 만들어 버린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괜히 목이 서늘해지는 기분에 주안이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목을 매만졌다.
‘하지만, 이런 공주님이니까…….’
힘없는 왕가를 위해 스스로 몸을 버렸지만, 결국 돌아왔던 것은 이미 회생 불가능해진 고국과 썩어버린 귀족들.
실망을 넘어 분노하였을 것이고, 이런 유우나와 마찬가지로 엄마 품에나 싸여 있던 귀족가의 후계자에게 내쫓겨 동생을 잃은 토미까지 가세해서 새로운 왕가.
새로운 왕국을 열었다.
‘생각해 보면 신왕조의 평은 나쁘지 않았지.’
세금도 적었고, 이동의 자유도 보장이 되었으며, 여전히 귀족은 존재하나, 이전만큼의 절대적인 권력을 지니고 있지도 않았다.
영지의 주민들이 영주의 잘못, 귀족의 잘못에 대해 그 영지에 상주하고 있는 감찰관 등에게 탄원서를 내면 바로 조사에 들어가게 된다.
귀족들은 함부로 백성을 대하지 못했고, 백성들 역시 귀족들을 높은 이로 대우하지만, 자신들을 그 귀족의 소유물로 생각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한 사람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뭐, 이런 공주님이시니까.’
사람들을 모으고, 사람들을 이끌고, 사람들이 살 세상을 만든 강단 있는 여성 지도자.
좀 살벌하긴 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재주가 남달랐기에 주안도 앞으로의 아스란 왕국에 대해선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 * *
이야기가 끝난 것인지 셀리온 경이 다가와서 말했다.
“커그 경께서 왕가의 대우를 해드릴 수는 없다고 하십니다. 그래도 괜찮으시다면…….”
“상관없어요. 말했다시피 저는 아스란 왕국의 공주가 아닌, 주안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으로서 함께하는 것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후 셀리온 경이 주안에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얀셀루프로 안내해 드리고 싶습니다. 허락을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지요.”
호위가 아닌 안내라고 말하는 것과 허락을 구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이쪽의 무력이 오히려 저들을 훨씬 상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허락하자 셀리온 경이 주안에게 인사하며, 발걸음을 옮기려 하였지만, 그에 앞서 주안이 그에게 말했다.
“아, 그전에 한 가지 물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예, 공자님.”
“오면서 보니, 마을이든, 도시든 사람들이 생각보다 매우 적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새로운 전염병 때문에 전염되었던 이들을 급히 옮겼습니다. 치료와 구호 시설을 얀셀루프 인근에 마련해 두어서 말입니다.”
“그럼 그것 역시 메리다에서의 그 보는 눈과 듣는 귀로 알게 되신 것입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예, 함께하시는 신관 분들께서 병중을 보고 새로운 전염병일 가능성이 있다 하여 그렇게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하…….”
주안은 헛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아스란 왕국의 대응과는 정말 차이가 심했다.
게다가 그 몇 없다는 신관이 마치 다수라도 되는 듯, 거기다 그들이 한 방법은 매우 적절하였고, 신속하기까지 했다.
‘괜히 먼저 왔나…….’
이곳의 대응을 보니 가장 마지막에 와도 상관없어 보였다.
‘하지만 10년 후에는 그토록 허무하게 무너졌는데…….’
10년의 간극이 이토록 큰 차이를 내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그런 주안의 생각은 모르는 듯 셀리온 경이 주안에게 말했다.
“하지만 대응은 대응일 뿐, 해결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메리다에서 주안 공자께서 어떤 일을 행한 것인지 알고 있기에, 어서 빨리 모시고자 이렇게 나온 것이니까요.”
“소문 참 빠르네요. 이건 뭐, 어디든 이곳 사람들이 다 지켜보고 있으신 게 아닐까 합니다.”
“가시지요, 공자님.”
주안의 말에 셀리온 경이 미소를 지었지만, 여전히 험악한 그 얼굴로 웃는 것은 위협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그 외모와 다르게 예의가 매우 바른 이였다.
* * *
아스란 왕국의 동부 최대 도시인 얀셀루프는 맥시스 후작령의 근거지였던 도시였다.
현재의 주인은 가문의 일등 기사였던 베이더 커그 경이었으며, 그와 함께하는 다수의 기사와 병사들이었다.
“뭔가, 정말 이상한데…….”
얀셀루프에 도착 후 도시로 들어서며 주안은 마차의 창을 열어 바깥을 보며 갸웃했다.
“유우나 공주님이 이곳에 온 일은 예전이겠죠?”
“예, 어렸을 때…….”
“그럼 그때와 지금이랑 비교하면 어떻습니까.”
주안의 이런 물음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했다.
이곳은 반란군이 점령한 도시다.
질서를 지킨다고 하지만, 정규군도 아니고 반역자라는 이름도 있기에 꽤나 살벌하거나 혹은 허술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이곳에서 지내는 이들 역시 그런 살얼음을 걷는 기분일 터인데…….
“……왜 다들 저렇게, 즐거워 보이는 겁니까?”
반란군에 점령당했다는 것도, 전염병의 공포도 커 보이지 않는다.
신기한 사람들이 왔다는 것에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반짝이는 눈으로 나와서 살펴보고, 안내를 하는 반란군의 기사와 병사들에게 인사를 하거나 오가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예전에도 이렇게 공주님을 반겼습니까?”
“아니요…….”
유우나 공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애초에 저런 표정은 이곳 아스란 왕국에선 보기 힘든 미소들이에요.”
“흠…….”
아니, 이건 아스란 왕국만이 아니라 제국에서도 본 일이 없었다.
주안이 가본 곳이야 한정되긴 하였지만, 이들처럼 스스로 나와서 기사와 병사들에게 다가가는 이들은 그 가족들이 아니고서야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반란군이 일부러 보여주기 위한 연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없었으며, 저런 밝은 모습은 억지로 내게 한다고 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반란군이 점령한 곳이 맞기는 한 건가.”
의문은 더더욱 증폭되고 있었다.
* * *
반란군의 수장이라는 베이더 커그가 머문다는 저택은 그가 반란을 일으켰던 이유, 주군이었던 후작의 저택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주안의 착각이라는 듯 도시 외곽으로 향한 마차는 웬 주택가 앞에서 멈추어 섰다.
“여기가 베이더 커그 경이 있는, 저택……?”
주안이 마차에서 내린 후 눈앞의 집을 올려다보았지만, 아무리 봐도 특별할 것 없는 일반 주택이었다.
주변에도 이와 비슷한 집들이 늘어서 있는 주택가인지라, 집 안에서 창문을 열고 일행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는 이들이 다수 있을 정도였고, 뒤따라 온 구경꾼들도 많았다.
그리고 이 주택의 앞은 큭 길도 아닌 일반 도로인지라 폭이 좁았고, 많은 이가 한 번에 올 수 있는 장소도 아니었다.
“죄송합니다, 공자님. 커그 경이 집무실로 쓰는 곳이…… 평소 살던 집인지라.”
“후작가의 저택을 쓰는 게 아니었습니까?”
“그곳은 현재 비어 있습니다.”
“아니, 대체 왜…….”
반란에 성공했다면 당연히 모든 것을 취했을 것이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만 일어나는지라 주안만이 아니라, 공작가의 일행 모두가 혼란스러워했다.
그리고 그 집의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이들은 잘 차려입고 입은 듯했지만, 비싸고 고급스러운 옷이라고는 볼 수가 없었다.
그냥 평소 입던 옷 중에서 가장 좋은 옷인 듯했다.
오히려 먼 길을 달려온 주안과 일행들의 옷이 더 좋아 보인다.
주안이 워랜과 아르베리아의 호위를 받으며, 셀리온 경의 안내를 받아 앞서 나갔고, 뒤이어 황실 근위대와 유우나 공주, 풍신과 신관들이 뒤따랐다.
“저분이 커그 경이신가요?”
“예, 공자님.”
고개를 끄덕인 셀리온이 커그 경의 앞까지 주안을 안내한 뒤 옆으로 물러났다.
그리고 주안은 베이더 커그 경을 가까운 곳에서 바라볼 수가 있었다.
젊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는 정말 젊은 지도자인 듯 30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사내였다.
게다가 셀리온 경과는 달리 그 체구나, 모습이나 평범함 그 자체였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중년의 사내이자, 옆집에 사는 아저씨 같은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의 곁에 있는 이들이 더 지도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를 보좌하는 이들도 다 이 집에서 사는 것인지, 아니면 이 일 때문에 모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주안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앞에 서서 맞이하는, 평범한 인상의 중년이 베이더 커그 경이라는 듯 그가 주안과 일행들을 보며 대표로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 여러분. 얀셀루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셀리온 경과는 달리 무릎을 꿇지는 않은 채 고개를 숙여 인사하는 그의 모습은 오히려 더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뒤이어 모든 이들이 고개를 숙여 주안과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에게 인사하였다.
반란군의 수괴들이라 생각되는 그들뿐만이 아니라, 주변에서 구경하던 평범한 시민들도 다 같이 고개를 숙였다.
‘이건 대체…….’
그리고 고개를 든 그는 주안의 눈을 당당하게 마주 보며 말했다.
“대역죄인, 베이더 커그라고 합니다.”
스스로 대역죄인이라는 말을 꺼냈지만, 그에겐 부끄러움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굴에 철판을 깐 안하무인의 남자거나 혹은…….
……자신의 죄에 대해서 떳떳한 인물이라는 의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