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65화
“이런…….”
잠시 멈추어 서서 쉬는 시간을 가지는 사이, 아르베리아가 달려와 전해준 말에 주안이 이마를 감싼 채 한숨을 토해냈다.
그 모습에 곁을 지키고 있던 유우나가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조금, 곤란한 일이 생겨 버렸습니다.”
“예? 곤란한 일이라니요?”
“소니아 누나가 가출했답니다.”
“……네?”
무슨 말인지 몰라 잠시 갸웃하던 유우나 공주가 이내 상황을 이해한 듯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풋, 아하하! 가, 가출이라니요…….”
“웃을 일이 아닙니다. 정말,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토미에 세라타, 거기다 솔…… 은 강제로 끌려갔을 테니, 좀 불쌍하긴 하지만.”
안 봐도 뻔했기에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솔은 어쩔 수 없이 끌려갔을 것이 확실하지만, 토미나 세라타가 함께 따라갔다는 게 주안으로선 걱정이 앞섰다.
억지로 웃음을 참으려 하지만 유우나 공주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쿡쿡거린다.
그렇게 한참을 웃다, 눈물까지 흘린 듯 유우나가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아내며 말했다.
“대체 왜 가출까지 하신 건가요.”
“어제 따라오지 말라고 했던 것 때문이 아닐까 싶군요.”
“아…….”
손까지 번쩍 들고 소리치던 소니아의 모습이 떠오른 것인지 유우나가 다시 한번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도 소니아 님은 생각 없이 움직일 분은 아니라고 생각돼요.”
“……그렇긴 하죠. 좀 많이 엉뚱하긴 하지만.”
소니아가 하는 행동이 참 경박스러워 그렇지 기본적으로 매우 신중한 편이었다.
“다른 것보다 토미와 세라타가 좀 걱정이네요.”
“소니아 님 실력이면, 그래도 별문제는 없을 거예요. 토미라는 그 아이도 자세히 본 것은 아니지만, 그 나이치고는 상당한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긴 해도 아직 많이 모자랍니다. 좀 더 배우고 세상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이전 삶의 토미는 정말 일찍 세상에 내던져졌다.
그리고 그런 어려운 삶을 시작하게 된 것도 다른 누구도 아닌 주안 자신 때문에 말이다.
하지만 주안은 자신으로 인해 어긋났던 토미의 그 삶을 조금이라도 보상해 주고 싶었고, 가능하면 많은 시간을 세라타와 함께 안정적인 삶을 살아 주었으면 하였다.
검을 배우더라도 위험한 장소에서 생사를 넘나들며 급속도로 실력을 키우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보살핌을 받으며 실력자로서 성장하길 바랐다.
세상 밖으로 나가더라도 이런 형태가 아닌, 당당한 한 사람이 되었을 때였으면 하는데…….
“하아, 정말 누굴 닮은 건지……. 왜 고생을 사서 하려는 거람.”
“저는 누굴 닮았는지 알겠는데요?”
“……저라고 하지 마세요.”
“후훗, 글쎄요. 누굴까요?”
“흠…….”
생글생글 눈웃음을 보이는 유우나 공주의 모습에 주안이 슬쩍 시선을 피하였다.
“공자님은 토미라는 그 아이를 무척 소중하게 생각하시나 봐요.”
“네, 매우 소중한 아이입니다. 미래에 서방 대륙 제일 검이 될 아이니까요.”
“헤에, 서방 대륙 제일 검이라……. 그건 워랜 경이 가장 가깝지 않나요?”
나이 지긋한 진짜 실력자들에게도 인정을 받는 게 워랜이었고, 그것은 제국뿐만이 아니라 서방 대륙에서도 꽤나 유명한 이야기였다.
젊은 인재들을 한 손에 꼽는다면 워랜은 반드시 들어갔으며, 유우나 역시 이런 워랜을 보았기에 당연히 주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줄 알았다.
유우나의 그 말에 주안이 싱긋 미소를 지어주며 말했다.
“서로 좋은 경쟁 상대가 될 거예요. 지금이야 워랜 경이 훨씬 앞서 나가지만, 토미도 금방 따라잡을 거니까요. 그리고 서로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대륙 제일 검이 되는 것이죠.”
“후훗, 제일 검이 둘이나 있다면 정말 대단하긴 하겠어요.”
대륙 제일 검이 꼭 하나일 필요는 없다는 게 주안의 생각이었고, 둘 모두 그 가능성이 높다고 자신한다.
이미 토미는 당대의 제일 검인 검성이었고, 워랜은 그런 토미를 제일 검에 올려주었던 인물이었다.
‘이번에는 둘 모두가…… 좀 더 행복해진 삶 속에서 가장 높은 곳에 올라야 해.’
적어도 이번 삶에서는 자신이 그런 환경을 만들어줄 수 있었기에 기대하는 부분도 컸다.
“일단 휴이 경에게 속죄의 108배는 하지 말라고 해두고, 적당히 알아만 보라고 해야겠네요.”
“108배요?”
“……소니아 누나랑 애들을 가출시킨 죄를 고하고, 용서를 빌기 위해서 하루에 108배를 하고 싶다네요.”
“가끔 보면 공자님네 사람들은 좀 이상한 것 같기는 해요…….”
“그래도 다들 좋은 사람들이에요. ……좀 과해서 그렇지.”
나쁜 사람들은 아닌데 이상한 사람들이라는 것에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 * *
주안이 알고 있기로, 아스란 왕국 동부의 사정은 간단히 말하자면, 두 쪽으로 갈라진 상황이었다.
예전 아스란 왕국 동부의 지배자였던 맥시스 후작가의 후작령을 차지한 반란군과 독자 노선을 걷고 있는 저메인 백작가로 인해 일어난 상황이었다.
그 외에 왕가도, 그렇다고 귀족파도 아닌 중립 귀족들이나 저메인 백작과 마찬가지로 독자노선을 걷는 이들도 다수이긴 있었지만, 그것은 크게 의미가 없는 세력이었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서 동부는 매우 어지러운 상황이라고 주안은 알고 있었고, 그렇게 소문이 나 있었다.
“뭐, 그래도 건드리는 사람 없어서 편하긴 하네요.”
“이렇게 떡하니 제국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과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문장이 새겨진 깃발을 들고 가는데 건드릴 사람은 아스란 왕국에서는 없지요.”
숫자는 채 서른 명도 되지 않는 인원이었지만, 신관들과 주안, 그리고 유우나를 제외하면 살짝 과장해서 일당백은 가능한 인원들이라는 게 문제다.
그 때문인지 아스란 왕국 동부에 들어서서 기타 영지들을 지나칠 때마다 긴장하는 것은 주안 일행이 아닌 그 지역의 주인인 영주들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주안은 무언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병자들이 거의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군요.”
혼란은커녕, 사람 자체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디안의 전염병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초기 증세만 보이는 이들이었고, 혹시나 몰라 주안은 도시든 마을이든 들를 때마다 신관들과 함께 환자들을 치료해 준 뒤 신성력의 붕대를 나누어주고 떠났다.
처음에는 의식하지 못하였지만, 이런 일이 반복되자 주안은 결국 유우나 공주에게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원래 인구가 이렇게 적은 곳이었습니까?”
“이렇게까지 사람이 없는 곳은 아닌데…….”
하지만 유우나 공주도 무슨 이유인지 모르는 듯했다.
“혹시 전염병이 벌써 심하게 퍼져서…….”
“그런 거라면 오히려 사람들이 남아 있는 게 더 이상하지요. 그것도 대부분이 멀쩡하였으니 말입니다.”
메리다에서는 사람들이 직접 찾아오게 만들었기에 북부에서 이동할 때는 금세 내려올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아무래도 다음 도시나 마을에서 좀 알아봐야 할 듯…….”
하지만 갑작스레 마차가 멈추는 바람에 주안은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갸웃하는 사이, 마차의 문에다 대고 노크하는 소리가 들려 주안이 마차의 문을 열었다.
마차 문이 열리자 노크를 한 주인공, 아르베리아가 주안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 후 말했다.
“무슨 일인가요, 아르베리아 경.”
“앞에서 일단의 무리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공자님.”
“일단의 무리요?”
“예, 전원 무장을 한 기사와 병사들로 보입니다. 혹 위험할 수 있으니 마차 밖으로는…… 고, 공자님?!”
하지만 주안은 그 말에 그대로 마차에서 내렸다.
아르베리아가 당황하며 주안을 말리려 했지만, 뒤이어 유우나도 마차에서 내리자, 황급히 풍신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그리고 바로 근처에 있던 풍신이 유우나 공주의 곁에 섰고, 주안의 곁으로는 아르베리아와 워랜이 따라갔다.
그리고 선두로 걸어가 이곳으로 다가오는 무리를 보며 주안이 말했다.
“저들은 누구죠?”
“아무래도 반란군의 기사와 병사들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르베리아의 말에 주안도 고개를 끄덕였지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반란군이라……. 갑자기 등장한 것치고 뭔가 좀 묘하지 않나요?”
“애초에 싸우자고 온 것 같지는 않아.”
주안의 말에 워랜이 간단히 답해주었고, 주안도 그것을 느끼고 있었기에 의아한 것이었다.
숫자로 보면 백여 명은 될까.
확실히 지금 일행들보다 세 배는 많은 숫자이긴 하지만, 기사들은 몰라도 병사들이 다수인 이상 뭘 어떻게 할 수는 없는 숫자였다.
그리고 싸우자는 의미가 아니라면 답은 하나였다.
“우리를 맞이하러 온 거군요.”
아르베리아와 워랜도 같은 생각인 듯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셀리온 경이세요.”
“셀리온 경이요?”
“저기 가장 앞에 있는 분이에요. 커그 경의 최측근인 분이세요.”
풍신의 호위를 받으며 주안의 곁으로 다가온 유우나는 그를 본 적이 있는 듯했다.
하지만 유우나의 그 말에 주안이 갸웃했다.
“……저 거대한 분이요?”
거대하다는 주안의 표현이 이상해 보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말이 오히려 작아 보이는 남자에게는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기에 다들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였다.
그 말에 유우나가 작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벌써 놀라긴 일러요. 가까이서 보면 더 클 거예요.”
“호오…….”
주안이나 다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듯했지만, 그래도 긴장을 풀지는 않은 듯 그들을 경계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가온 그들은 주안 일행에게서 좀 떨어진 장소에서 하마한 뒤, 잠시 주안 일행을 살펴보았다.
이내 유우나가 언급한 거인, 아니, 셀리온 경과 그를 따르는 기사 및 병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허리에 매어진 검을 풀어 땅에 내려놓았다.
그들이 검에 손을 대자, 순식간에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사 모두가 검을 빼 들었지만, 상대방이 하나같이 검을 바닥에 내려놓는 모습에 머쓱해져 버렸다.
검을 다시 검집에 집어넣기는 했지만, 다가오는 그들에 대한 경계를 푼 것은 아니었다.
‘병사들만이 아니라 기사들까지 검을 내려놓다니…….’
동방의 무사도 그렇지만, 기사도를 섬기는 이곳의 기사들 역시 검은 곳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이라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검을 내려놓고 온다는 것은 매우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고 다가온 그들을 이끄는 셀리온 경의 모습은 유우나의 말 그대로였다.
점차 다가오는 그 모습은 마치 산이 걸어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거대했다.
그런 셀리온 경이 다가와 주안을 보며 마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시지요?”
“그대는 누구입니까.”
“베이더 커그 경을 모시는 막스 셀리온이라고 합니다.”
셀리온 경이 한쪽 무릎을 꿇고 절도 있게 인사하자, 뒤이어 모든 기사와 병사들도 일제히 한쪽 무릎을 꿇고 주안에게 인사하였다.
그 모습은 잘 훈련된 기사와 병사들이었지만, 주안은 그보다 이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인사는 이 나라의 공주인 유우나 아스란이 아닌, 주안 마르티네스를 향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이더 커그 경의 명에 따라, 여러분을 맞이하러 나왔습니다.”
“저희가 올 것을 알고 계셨나 보군요.”
“예, 그리고 저희를 구하기 위해 오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주안의 말에 셀리온이 간단히 답해주었다.
“그것도 소문이 났습니까?”
“아스란 왕국의 어디든 저희의 눈과 귀가 있습니다, 공자님.”
“호오, 그건 참 탐나는데요.”
웃으며 농담처럼 말했지만, 주안은 적잖이 놀랐다.
딱히 비밀로 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을 모조리 알아내고, 스스로 판단한 후 대담하게 맞이하러 온 일이 보통 배포가 아니었다.
그 이전에 이런 정보를 전해줄 인원을 메리다에까지 심어둔 것에 대해서는 대단하다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질문을 해도 괜찮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옆에 아스란 왕국의 공주님도 함께 계십니다. 어째서 인사를 올리지 않는 것인가요.”
“할 이유가 없으니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할 이유가 없다?”
그 말에 풍신의 하나뿐인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차갑게 노려보는 그 시선에 모두가 흠칫 놀랐지만, 막스 셀리온은 담담하게 그 눈을 받아들였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그대들이 반란군이라 듣긴 하였지만, 그래도 손님으로 함께 찾아온 일행분이십니다.”
“손님도 손님 나름입니다, 공자님. 왕가는 우리를 버렸고, 버림받은 저희 역시 왕가를 버렸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막스 셀리온은 풍신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유우나 공주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저희가 초대하고자 하는 손님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분들이지 아스란 왕국의 왕족이 아닙니다.”
버림받았다? 그 말이 주안으로선 이해가 안 되었지만, 유우나는 그저 조용히 셀리온에게 고개를 숙였다.
“지금은 저 역시 주안 공자님의 일행일 뿐입니다. 왕가의 사람이 아니라, 일행으로서 초대를 부탁드립니다.”
“…….”
유우나의 행동에 셀리온이 조금 놀란 듯했다.
워낙 험악한 인상이라 오히려 화가 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유우나의 그 행동에 셀리온도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차라리 소리를 지르고 화를 냈다면 다행일 듯싶었지만, 이렇게 고개를 숙이고 부탁하니, 쉽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커그 경에게 연락을 드린 후 정하도록 하겠습니다.”
막스 셀리온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안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뒤로 물러났다.
그가 병사들에게 향하자 그 속에서 마치 숨어 있었던 듯한 남자가 작은 가방에서 장거리 통신용 마법 장치를 꺼내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것을 보면 마법사가 확실했다.
‘……아스란 왕가에서도 쓰지 못 하는 걸 반란군이 가지고 있다고?’
그것을 작동시키는 마법사의 행동이나 병사들 속에 숨어서 마법사임을 숨기고 있던 것이나, 아스란 왕국 정규군 이상이라고밖에 생각되지 않았다.
‘반란군이 맞긴 한 건가.’
오히려 이쪽이 아스란 왕국 정규군이라고 하면 믿을 정도의 모습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