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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62화 (6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62화

“주, 주안 공자님. 남부 대밀림이 어떤 곳인지 알고 계시는 것입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 물음에 주안이 간단히 대답하자 유우나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고 계시면서, 지금 그곳까지 치료를 위해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절대 안 됩니다. 그곳은 너무나 위험합니다.”

“공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대밀림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것을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입니다. 자칫 잘못하면 큰 화를 입을 수 있습니다.”

아스란 왕국에게 제국이 두려운 존재라면,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은 가시와도 같은 존재들이었다.

대륙으로 본다면 아스란 왕국은 자국의 영토로 남부 대밀림을 포함하고 있었지만, 아스란 왕국민들은 남부 대밀림을 자신들의 영토로 생각하지 않는다.

게다가 영토로 편입된 지역 역시 대밀림 전체로 보면 극히 일부분인 외곽의 지역일 뿐, 아직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게 바로 남부 대밀림이라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대밀림의 주인은 원주민들이었으며, 그들과의 분쟁 자체를 꺼리는 게 아스란 왕국이었다.

물론 오래전 그들을 정복하고자 했던 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같이 큰 실패를 겪고 나라가 휘청거릴 타격을 입다 보니 정복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남부 대밀림의 경계 바깥쪽으로는 원주민들 역시 나오지 않았기에, 한 지붕 아래에 두 가족이 공존하고 있는 이상한 형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사그레스가 남부에서 올라오는 병이라는 것을 아시지 않습니까? 여기서 모든 환자를 치료한다 해도 남부 대밀림의 원주민들이 그것을 계속 품고 있는 이상 언제든 다시 올라올 병마입니다. 무엇보다…….”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쉰 뒤 현실을 말해주었다.

“……저나 신관들은 이곳에 영원히 머무르지 못합니다. 게다가 신성력의 장소로 만들어 드릴 곳도 영원할 것이란 보장이 없습니다.”

지금이야 황도의 집에 한 달 이상 신성력이 깃들어 있긴 하지만, 그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아르베리아의 머리카락이 원래대로 돌아온 것만 봐도 신성력에는 시간적 한계가 명확하게 존재하는 듯했다.

“대밀림의 원주민들 역시 사그레스와 그 속에 숨어 있던 병마로 인해 난처한 상황일 것입니다. 그것을 해결해 놓지 않는 이상 언제든 디안의 병마는 다시 아스란을 덮칠 것입니다.”

“…….”

주안의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아는 슬렌더 백작과 유우나 공주는 뭐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보며 주안이 차분하게 설명했다.

“차후에는 왕가가 나서서 신관들을 받아들이셔야 할 것입니다. 다음 사그레스에서 또다시 병마가 숨어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 말입니다.”

지금은 이 병마가 무엇인지 몰라 속수무책으로 당했지만, 신성력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신관들을 받아들이지 않던 아스란 왕국은 나라의 생존을 위해서라도 많은 신관들을 받고, 그들을 위한 정책을 펼쳐야만 할 것이다.

이것에는 귀족들도 반대할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하는 부분이었다.

서로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 반드시 택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원주민들은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그들은 바깥의 인간에게 손을 내미는 일이 없어요.”

“그 어려운 일이라는 게 생존에 관한 일이라면 다르지 않겠습니까.”

“아무리 생존이라고 해도 그들은 바깥세상의 사람들을 자신들과 똑같은 인간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도움을 바라는 것을 굴욕도, 비굴도 아닌 정체성의 죽음으로 생각하니까요.”

수없이 대밀림의 개발을 꿈꾼 아스란이기에 그들과의 분쟁 속에서 원주민들을 굴복시킬 수도, 정복을 시킬 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치 서로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듯한 말이군요.”

“예, 실제로 대밀림의 안쪽 원주민들과 바깥의 대륙인들은 외모가 많이 달라요. 아니, 원주민들끼리도 서로 부족들이 다르면 외모도 판이하게 다를 정도예요. 문제는 그 외모가 아니라, 생각 자체가 이쪽 사람들과 전혀 다르다는 것이에요.”

“흠…….”

하지만 주안은 직접 보지 못하였기에 그들과의 차이점을 알 수는 없었다.

‘뭐, 그렇다고 눈이 세 개거나 하진 않겠지.’

달라 봐야 결국 인간은 인간이다.

그 외모가 다르고 생각의 차이가 있다 해서 생존 본능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주안은 모든 생명이 품은 원초적인 본능인 살고자 하는 것이 원주민들에게도 당연히 있다 생각을 하였다.

“어쨌든 저는 남부 대밀림까지 갈 생각이에요. 그들이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일단 부딪혀 봐야겠죠.”

“공자님…….”

“디안의 병마를 완전히 뿌리 뽑아야 합니다. 그러니 더 이상 반대는 하지 말아주세요.”

주안의 도움이 절실하긴 하지만, 그럴수록 유우나는 너무나 불안했다.

그리고 주안은 유우나의 이런 걱정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풍신 경도 있고, 황실 근위대도 함께입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알겠어요.”

작게 한숨을 내쉰 유우나는 정말 너무나 무모하지만, 사람들을 위해주는 다정한 주안이 싫지는 않았다.

그와 그의 사람들만은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을 같은 사람으로 대하지 않는 제국의 귀족들과는 많이 달랐다.

그렇기에 주안은 자신들을 대한 것처럼 원주민들을 같은 사람으로서 대하려고 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 * *

별관의 앞에 선 주안은 잠시 심호흡을 크게 한 후 손을 뻗어 건물의 외벽에 자신의 왼손을 가져다 대었다.

“흡!”

그리고 짧게 숨을 삼키며 왼손바닥의 성흔에서 신성력을 뽑아내었다.

“오오?!”

외벽을 타고 퍼져 나간 신성력의 빛은 희미했지만, 별관 전체를 감싸기 시작하자, 구경하던 이들이 감탄사를 터뜨리다 못해 몇몇 신관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성호를 긋기까지 한다.

‘좀 더 많이……. 깨끗하고 따뜻하고, 안전한 장소로!’

주안의 작은 다짐에 반응하듯 손바닥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이 점차 강렬해지더니 이내 포근하게 별관을 감싸던 것을 넘어 찬란한 빛을 뿜어내었다.

“이,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이었단 말인가…….”

들어도 믿지 못했고, 주안의 성흔을 보았어도 믿을 수 없었지만, 눈앞에 펼쳐진 것은 현실이었고, 커즈 신관의 두 눈에 똑똑히 새겨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성스러운 힘이 별관에 뭉치는 것도 모자라 주변에 퍼지며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줄 정도였으며, 이러한 신성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 바로 신관들이었다.

이제는 모두가 무릎을 꿇고 기도하기에 이르렀고, 커즈 신관 역시 무릎을 꿇은 채 성호를 그었다.

그리고 별관에 손을 대고 신성력을 내보내던 주안이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조심스레 손을 떼어냈다.

“휴우…… 완성.”

주안이 짧게 숨을 내쉰 뒤 뻐근해진 손을 풀었다.

“어때요? 황도의 집과 비슷해 보여요?”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들과 황도의 신관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이 없었다.

일부는 별관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을 잇지 못하였고, 일부는 신관들과 마찬가지로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리고 있다.

그것은 슬렌더 백작이나 풍신도 예외는 아니었다.

“……너무 과했나.”

반응들을 보니 조금 심하게 한 듯했다.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황도의 마르티네스 저택과 비슷하였고, 성스러운 빛을 머금고 그 빛무리가 흩날리는 모습은 신비로웠으며, 무언가 알 수 없는 기운이 몸에 흘러들어 왔지만, 오히려 매우 기분이 좋고 몸에 활력이 넘쳐갔다.

“이, 이런 걸 저희 왕국에…… 세 개나 더 만들어 주신다고요?”

“예, 공짜니까 부담은 가지지 마세요. 뭐, 어차피 건물은 그쪽에서 제공해야겠지만.”

“……농담이시죠?”

주안의 말에 유우나가 침을 꼴깍 삼키며 떨리는 눈으로 주안을 바라본다.

이건 신관도 아닌 신성력에 무지한 아스란 왕국 사람이 보아도 절대 보통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주안은 그런 유우나의 모습에도 작게 아무렇지도 않게 주의 사항을 말해주었다.

“말했다시피 이건 영구적인 게 아니에요. 그리고 다음 사그레스와 디안의 병마가 다시 찾아오더라도 제 힘이 아니라 아스란 왕국의 힘이 필요하니까…….”

“……이러한 건물을 이용해서 신관들을 모으고, 여러 혜택을 주어라, 이 말씀이시죠?”

“음, 역시 똑똑하신 분이시네요. 유우나 공주님.”

이번 일을 계기로 싫어도 아스란 왕국은 신관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힘이 없고 무언가를 해줄 수 없는 아스란 왕국에서 유우나 공주는 주안이 해놓은 이 신성력 가득한 건물을 통해 그들을 끌어들여야 할 것이다.

이건 훌륭한 미끼였다.

신관들이라면 그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너무나 달콤한 미끼였던 것이었다.

그들을 정착시키는 것은 결국 아스란 왕가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유우나 정도의 여성이라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주안은 믿고 있었다.

게다가 이런 기적을 평범한 시민들이 마주하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신을 믿는 신도들은 늘어나게 되어 있다.

아스란 왕국에 신전들과 신관들, 그리고 신도들이 매우 빠른 시간 내에 정착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괜히 남부의 마녀가 아니었으니까.’

그 수많은 남부 귀족들을 굴복시킨 경력은 어디 안 간다.

……물론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그 재능의 반의반만 있어도 신관들을 휘어잡고 왕국에 앉히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어차피 제국의 신관들 역시 아스란 왕국에 자신들의 교리와 신전들을 전파할 목적으로 사절단에 참여한 것이다.

유우나 공주가 그들을 끌어들인다면 쉽게 정착을 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대해서 주안은 아스란 왕국의 왕도 제다에는 단지 병자들을 위한 이런 장소만이 아니라, 신관들을 위한 진짜 신전 터나 건물에 대해서 알아보고 똑같이 해줄 생각이었다.

여기에 대한 부분은 유우나 공주나 그게 아니면 아스란 왕국의 왕에게 정식으로 요청할 용의도 있었다.

“일단 이 건물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느냐가 문제인데…….”

주안의 물음에 유우나 공주가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내일쯤이면 다른 영지의 병자들이 도착할 거예요. 그들을 통해 일단 일차적인 부분을 확인하면 되겠지요?”

“네, 그 외에도 다른 방법을 몇 개 생각해 본 것이 있어요.”

“생각해 본 것이요?”

그렇게 말을 하며 미소를 짓던 주안이 손수건을 꺼낸 뒤 손수건에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었다.

그리고 원래 깨끗하던 손수건이 금세 새것처럼 변하였다.

“만약 제가 신성력을 잔뜩 불어넣은 붕대로 디안의 전염병의 끝에 다다른 사람의 상처를 감싼다면 어떤 효과가 발생할까요? 거기에 약초에도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불어넣고, 마실 물 역시 똑같이 한다면?”

“……정말, 그런 게 가능한 건가요? 아스란 왕국이, 아니, 제가 아무리 신성력에 대해서 무지하다 해도 그런 일이 가능할 것으로는…….”

“저 건물도 가능하게 했는데, 겨우 이런 것도 못 할까 봐요?”

“…….”

사람으로서 당연한 의심이었지만, 주안이 가리킨 별관 건물의 반짝임을 본 유우나 공주는 침을 꼴깍 삼키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왠지, 이런 신성력에 관해서는 아무리 말도 안 되는 일이라도 주안이라면 가능할 듯싶었다.

“될지 안 될지는 내일 확인되겠죠. 하지만 만약 가능하다면, 좀 더 수월해지지 않겠어요?”

신성력을 머금은 물.

신성력을 머금은 약초.

신성력을 머금은 붕대.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말도 안 되게 엄청난 신성력을 가진 주안의 능력.

“……공자님은, 정말 신에게 선택되신 분이신가요.”

“설마요.”

자신이 그런 신에게 선택된 사람이었다면 이전 삶이 그토록 엉망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포른 신관이 한 말을 모두 다 믿지 않았던 유우나였지만, 지금은 그 말이 오히려 모자라 보였다.

주안이 태연하게 웃어주었지만, 유우나는 그러지 못했다.

제국의 공작가, 그것도 유일한 후계자이자 확정된 미래의 공작.

그 하나만으로도 아스란 왕국 정도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으로 무너뜨릴 수 있는 절대 권력자에게, 신의 축복까지…….

같은 사람이지만, 유우나에겐 주안이 종이 다른 그런 사람처럼 보였다.

이런 유우나의 시선을 전혀 모르는 듯 주안은 자신의 작품을 감상하는 예술가처럼 별관 건물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날씨까지 바꾸려고 하진 않았는데……. 뭐, 그래도 저택 전체를 다 바꾼 건 아니니 나름 선을 잘 지켰네요.”

“…….”

대체 어딜 어떻게 봐서 선을 지켰다는 것일까.

유우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어느새 별관 주변의 바닥을 뚫고 새싹들이 나타나고, 이내 쑥쑥 자라 꽃이 피었으며, 어디서 날아온 나비들이 그 꽃의 꽃잎에 유유히 앉았다.

새들이 별관 지붕에 앉아 지저귀기 시작하자 그것을 시작으로 향긋한 꽃향기와 함께 어우러진 신성력의 빛무리가 퍼져 나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포근하게 감쌌다.

주변 모든 사람의 몸이 순백의 빛을 머금고, 점차 깨끗하게 변해가자 유우나의 눈이 심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저런 걸, 우리 왕국에…….’

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사람들이 모두 미남과 미녀, 심지어 말까지 예쁘게 생긴 것인지 유우나도 이제 깨달을 수 있었다.

하지만…….

신비롭고 감사하기 이전에 이젠 무섭기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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