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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56화 (56/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56화

낡은 도로를 막듯 다수의 병사와 기사들이 서 있었지만, 그들은 하나같이 두려움 가득한 눈을 한 채 사절단을 맞이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사절단을 맞이하는 것은 맞는 듯, 표정에는 두려움이 가득하다 해도 예를 갖추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이상했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에반드리안 맥도넬과 남부 귀족들의 모습이 보였고, 실버론 하셀 자작도 함께였다.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후란 자작님.”

“고, 공주님.”

유우나가 초로의 남성을 보며 묻자, 황급히 고개를 숙여 유우나에게 인사를 하였다.

“시, 신 차드 후란 자작이 공주마마를 뵙습니다.”

“인사는 되었고,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나 설명해 주세요. 왜 후란 자작님이 사절단을 막고 도시로 못 들어가게 하시는 건가요.”

후란 자작은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에 식은땀을 흘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다, 다른 게 아니오라, 이틀 전부터 도시에 유행병이 돌고 있는지라……. 혹시 사절단에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스러워서 부탁을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유행병?”

“예, 사그레스가 돌고 있습니다, 공주님.”

사그레스라는 말에 남부 귀족들은 어이가 없는 듯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안 역시 사그레스가 무엇인지 알기에 후란 자작의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그레스라면 금방 치료할 수 있는 병이잖아요?”

사그레스가 나타났던 초창기에는 마땅한 치료 방법이 없어 봄이면 봄마다 유행처럼 퍼져 나가, 많은 이를 고생시켰다.

전염성은 강하나, 치사율이 그렇게 높지 않아 백에 아흔아홉은 며칠 쉬다 금방 일어날 수 있는 감기와도 같은 특이한 병이었다.

지금은 그 치료 방법도 나와서 봄이면 이 병에 대비해 미리 각 가정마다 치료제를 구비해 놓기에, 현재는 걸렸다 해도 치료제를 먹고 사흘 정도 푹 쉬면 낫는 것이었다.

이 유행병은 아스란 왕국과 제국 남부에선 봄이면 자주 나타나는 일이기에 매우 익숙하다 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유우나 공주도 어이없다는 듯, 후란 자작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겨우 사그레스 때문에……!”

“누, 누가 되지 않을까 너무 걱정되어…….”

“하아, 후란 자작님……. 너무 심하셨어요.”

“죄,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습니다.”

유우나의 한숨에 후란 자작이 사절단에게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자, 뒤이어 그와 함께 있던 기사들과 병사들도 똑같이 행동하였다.

‘정말이지, 이 나라의 제국에 대한 두려움은 병적이로군.’

작은 일이라도 혹시 제국의 사람에게 나쁜 일이 생길까, 그리고 그것을 이유로 꼬투리를 잡지나 않을까 하는 그의 마음은 알겠지만, 너무 과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스란 왕국의 제국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 정도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제야 이 일이 해프닝이라는 것을 깨달은 듯 모두가 작게 혀를 차거나 후란 자작을 잔뜩 찌푸린 눈으로 노려봤다.

하지만 이내 그를 무시하고, 다시 각자 맡은 임무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후란 자작이 황급히 말했다.

“마, 마, 만찬을 준비하라 이르겠습니다. 누추하나 저택으로 안내를…….”

“되었습니다. 어차피 이곳은 그냥 통과할 곳일 뿐입니다.”

실버론 하셀 자작의 말에 후란 자작이 고개를 푹 숙이며 재차 사과하였지만, 실버론 하셀 자작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한숨뿐이었다.

정말이지 정이 안 가는 나라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역시 자신의 말이 있는 곳으로 가버린다.

“죄송합니다, 공주님…….”

“아니에요. 후란 자작님도 걱정 때문에 그러신 것이니, 신경 쓰지 마세요.”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유우나 공주의 다독임에도 후란 자작은 무릎을 꿇은 채 거듭 사과의 말을 내뱉었다.

그 모습은 주안도, 아르베리아도 보기 딱하게 여길 정도였다.

유우나 공주가 그런 후란 자작을 일으켜 세워준 후 말했다.

“그보다 사그레스가 이번 해에는 조금 일찍 퍼진 것 같은데, 괜찮은 건가요?”

“예, 시기만 빠르지, 병세는 매해 있던 그것과 같사옵니다. 병에 걸린 이들은 다들 알아서 약을 먹고 집 밖으로 걸음을 하지 않고 있사옵니다.”

사그레스의 병세는 매우 약하나, 가장 큰 문제는 그 엄청난 전염성에 있었다.

그 때문에 한번 유행하기 시작하면 봄철의 노동력에 매우 큰 공백이 생겨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일단 사절단에 대해선 전혀 걱정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제국에서 많은 신관을 보내주셔서 건강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요.”

“시, 신관님들을 말입니까?”

아스란 왕국에서는 신관이 매우 귀하다.

겨우 왕도나 대귀족의 영지에 작은 신전이 있을 뿐, 이런 국경 도시나 외진 곳에서는 신관을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귀한 신관을 다수 사절단에 포함시킬 정도의 저력에 후란 자작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스러웠다.

“일단 기사와 병사들을 물리도록 하세요. 사절단은 도시를 지나쳐 갈 것입니다.”

“예…….”

목적지는 이곳이 아닌, 이다음 도시였고, 쉴 장소도 바로 그곳이었다.

실버론 하셀 자작의 말대로 이곳은 그저 지나쳐 가는 도시였을 뿐이었다.

* * *

마차에 오를 때까지 유우나 공주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주안의 뒤를 따랐고, 그녀를 보는 주변의 눈 역시 썩 좋지는 않았다.

괜한 일로 소란만 일으킨 아스란 왕국의 귀족의 못난 모습을 이 나라의 공주인 유우나에게 따지는 듯했다.

“……죄송해요, 주안 공자님.”

그나마 소니아나 세라타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지만, 마차에 오르자마자 유우나 공주는 주안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사과하였다.

“괜찮습니다. 후란 자작이 우리를 걱정해서 한 행동이니, 지금은 다들 좀 언짢아하지만, 곧 별일 없다는 듯 행동할 겁니다.”

비록 사절단이라고는 하나, 아스란 왕국에는 결국 일 때문에 가는 입장이었고, 대부분 좋은 감정은 그리 없는 이들이기에, 이처럼 작은 일로 귀찮게 한 후란 자작만이 아니라 아스란 왕국에 대한 호감도까지도 더욱 떨어진 듯했다.

‘뭐, 우리 동부 사람들이라면 사그레스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남부 사람들은 아니니까.’

특히 남부 귀족들의 비웃음을 주안도 보았기에,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아스란 왕국을 더욱 깔보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되었다.

어쨌든 일은 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게 사절단의 목적이다 보니, 괜한 트러블은 좋지 않았다.

“한데, 국경 인근까지 사그레스가 퍼졌다면 치안에는 문제가 좀 생기겠군요.”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지만, 한 사람만 사그레스에 걸려도 금세 퍼져서 문제에요.”

“약은 있지만, 병이 퍼지는 것은 못 막는다니……. 참 아이러니하네요.”

“매해 봄 파종 때쯤 되면 이러니, 다들 고생이 많아요.”

약을 먹어도 금세 털고 일어나는 게 아니라 3일 정도는 집 밖으로 나서질 못한다.

안 그래도 농토가 적은 아스란 왕국인데, 파종 시기 때마다 이러니, 왕국의 공주인 유우나의 입장에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듯했다.

‘사그레스는 미래에도 그 예방법이 나온 게 없었으니까.’

그나마 덥고 습한 아스란 왕국과 제국령 남부의 일부 지역에서만 발생하고, 북부로 올라갈수록 이 질병은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는 게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 * *

도시에 사그레스가 돌고 있다는 소리를 사절단이 모두 들었지만, 걱정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신관도 다수 있었고, 설령 병에 걸려도 이때쯤 되면 미리 대비해서 다수의 약을 구비해 놓는 아스란 왕국이기에 약을 구하는 것도 어렵지 않기 때문이었다.

“도시가 꽤나 조용하군요.”

“원래 그리 크지 않은 도시거든요. 특히 사그레스가 돌기 시작하면 외출을 최대한 삼가는 편이에요.”

“하긴…….”

고칠 수 있는 병이라 해도 병은 병이다.

나을 때까지는 꽤 고생해야 하기에 일부러 병에 노출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도시를 통과하면서 본 아스란 왕국의 국경 도시 모르가는 작은 규모 이전에 국경 도시의 활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단순히 사그레스 때문에 조용하다 싶은 것이 아니라, 도시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의 제국을 보는 눈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두려움.

‘후란 자작이 왜 그렇게 한 것인지 이해가 되지만…….’

보통 사절단이 오면 시장부터 시작해서 영주가 직접 맞이하러 나오는 것도 모자라 비록 강제로 모은 티가 많이 나더라도 사람들도 모아 환영해 주었다.

뭐, 조금 귀찮은 티가 나긴 했지만 그래도 호기심과 기사들을 보고 아이들이 따라다니며 좋아하던 모습이 가득했는데…….

‘겨우 국경 하나 통과했다고, 이런 차이라니.’

이토록 활기가 없는 사람들을 보니 주안도 썩 마음이 편치 않아 마차의 창을 닫고 푹신한 의자의 쿠션에 몸을 기대었다.

파르잔의 모습과는 완전 반대되어서 그런지 소니아나 세라타 역시 첫 외국의 도시임에도 작게 실망한 듯 마찬가지로 마차의 창을 닫아버렸다.

그렇게 마차는 금세 도시를 지나쳐 빠져나갔고, 모르가의 일 때문인지 예정된 도시가 아님에도 실버론 하셀 자작은 길목에 있는 도시와 마을에 미리 사람을 보내어 사절단이 지나갈 거라는 통보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빠르게 3일 정도를 이동했을 때, 뜻하지 않은 일이 사절단을 덮쳐왔다.

* * *

“사그레스라고요?”

“예, 남부 귀족 중 한 사람의 상태가 이상하여 살펴보던 신관의 말로는 사그레스와 흡사하다고 합니다.”

다음 예정 도시가 아님에도 마차가 멈추어 서서 또 후란 자작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게 아닌가 싶었는데, 그건 아닌 듯했다.

“으음……. 그건 좀 큰일이네요.”

“그래도 하셀 자작님이 미리 이전 도시에서 약을 구매해 두셔서 정말 다행이지 싶습니다, 공자님.”

모르가뿐만이 아니라 요 3일 동안 오면서 거친 큰 마을과 도시들은 모두 이 사그레스가 돌아 큰 곤욕을 치르고 있었다.

때문에 사절단을 맞이하는 영주나 시장들은 많은 사람을 모으지 못해, 사절단에게 마치 큰 죄라도 지은 양 죄송스러워하는 모습이 역력했었다.

“그럼 그 사그레스가 의심되는 분은 어떻게 한다던가요.”

“일단 마차를 하나 비워 그곳에 신관님과 함께 동승을 시킨다 합니다. 그 병이 크게 위험하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높아 그렇게 결정한 모양입니다.”

“하긴,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긴 하네요.”

“그래도 혹시 모른다고 생각해 하셀 자작님께서 신관님에게 부탁하신 모양입니다.”

실버론 하셀 자작의 빠른 조치가 마음에 드는 것인지, 주안도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신관도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 신성력을 가진 신관들은 병에 대한 내성이 매우 뛰어나다.

때문에 대륙 평균 이상의 삶을 살면서도 별다른 병마 없이 건강하게 오래 살았다.

“그럼 이후에 어떻게 한답니까.”

“일단 조금 일정을 당겨 다음 영지의 도시로 빠르게 이동을 한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이미 한 사람이 걸렸다면, 조금 위험한데…….”

“예, 그래서 하셀 자작님이 이동 장소에 들러 며칠 정도 쉬면서 사절단의 건강을 살필 생각이신 듯합니다.”

약만 먹고 푹 쉬면 낫는 병이지만 시간이 좀 걸리고 그사이 전염이 될 수 있기에 사절단과 함께 간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다.

특히 남부 사람들도 이 사그레스의 전염성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이런 결정에 불만과 거부를 드러내진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황실은 이 사절단 귀족들의 안전에 대해 실버론 하셀 자작에게 단단히 새겨준 듯했다.

비록 일정이 밀리더라도, 그 일정보다 사절단이 더 중요한 듯했다.

“알겠어요, 아르베리아 경.”

“예, 공자님.”

아르베리아가 주안에게 인사를 한 후 실버론 하셀 자작에게로 향하자, 그 뒷모습을 보며 주안이 작게 중얼거렸다.

“다음에 갈 영지의 도시라면…….”

“슬렌더 백작 영지의 중심 도시인 메리다예요.”

“아, 그런가요.”

그렇게 말을 한 것은 유우나였지만, 표정은 썩 좋지 않았다.

그 모습에 주안이 갸웃하며 물었다.

“왕가와는 썩 친한 곳은 아닌 듯합니다?”

“네……. 현재는 그렇죠.”

“현재는……?”

주안의 갸웃거림에 유우나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한때는 아스란 왕국 제일의 명가였고, 왕가의 가장 믿음직한 기사의 가문이었어요. 단지…….”

작게 한숨을 내쉰 유우나가 말했다.

“전쟁 후, 왕가와는 완전히 등을 지긴 했지만.”

“음…….”

“어쩔 수 없었어요. 슬렌더 가문은 전쟁을 끝까지 반대한 이유로, 한때 후작가였던 성세와 영지를 잃고, 백작가로 강등이 되었으니까요.”

한마디로 충신이었다는 의미였고, 그런 충신을 버린 결과가 현재의 왕가로 돌아오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도 그 이유 때문에 고위 귀족 중 몇 안 되게 살아남은 가문이긴 했지만, 현재는 왕가와 완전히 척을 지고 있어요. 그나마 귀족파에 가지 않은 게 다행스럽죠.”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신가 보군요.”

“염치가 없으니까요. 저주스럽긴 하지만, 슬렌더 가문을 그렇게 만든 왕가의 피가 흐르는 게 저희인 걸요.”

참, 복잡한 아스란 왕국의 사정에 주안도 한숨이 나온다.

전 왕가의 잘못을 후손에게 이렇게 저주처럼 계속 옭아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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