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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54화 (54/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54화

“죄송합니다, 공자님. 못 볼 것을 또 보여드렸군요.”

“으음……. 워랜 경이, 좀 다혈질이긴 하세요. 그래도 오늘은 어디 부러뜨리진 않으셨나 보네요.”

“……어디 부러지면 좀 잠잠해질 것 같았는데, 소용이 없어서 말입니다.”

끈질기고 집요한 워랜 때문인지 웬만해선 제노폴 제국 귀족들과 사소한 다툼조차 일으키려 하지 않았던 그였지만, 워랜에겐 아니었다.

한 번은 손을 과하게 쓰는 바람에 워랜의 팔을 부러뜨려 버린 그였지만, 다행히 일행에는 신관들도 많아서 워랜은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워랜의 집착은 오히려 더 심해진 듯했다.

‘저러는 워랜 경은 처음이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니……. 정말 난감하네’

주안은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을 이끄는 사람으로서 워랜을 말려야 했지만, 한편으로는 워랜의 심정을 이해하기에 깊은 고민이 되었다.

스스로 동방의 검과 비슷한 형태로 검을 개척해 나가고 있던 워랜의 앞에, 그 동방의 무사 중에서도 엄청난 실력자가 나타났으니…….

적어도 그와 제대로 된 검을 맞대어 자신의 검이 어떤지, 그리고 동방의 검이 어떤 것인지 알아보고 싶을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풍신의 검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워랜이 자신의 검을 만들어 나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워랜 경은 풍신 경의 검을 배우고 싶어서 저러는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조금 가르쳐 주시면 안 되는 건가요……?”

순간 그렇게 말을 한 주안도 자신이 말을 잘못 꺼낸 것을 알아차리곤 풍신에게 급히 사과의 말을 꺼냈다.

“아, 죄송합니다. 워랜 경이 너무 안타까워서……. 동방에선 자신의 검을 누군가에게 함부로 가르쳐 주지 않는 걸 알면서도…….”

주안의 이런 행동에 풍신이 살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닙니다, 공자님. 재능이 있다면 동방에선 오히려 검을 가르치기 위해 그 부모에게 부탁하거나 큰돈을 주어서라도 배움을 내리려고 하는 일이 허다합니다.”

“아, 그런가요.”

“워랜 경은 확실히 재능이 남달라 보이고 이곳의 검과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풍신이 고개를 돌려 솔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는 워랜을 보며 말했다.

“그는 마음가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마음가짐이요?”

“검을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자신의 검을 위해서 타인에게 제멋대로 검을 휘두르는 그 행동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건, 풍신 경이 강하니까 자신의 검을 쉽게 받아낼 수 있다고 생각하고 그러는 게 아닐까요.”

“예, 그렇겠지요. 하지만 그렇다 해도 검을 꺼낼 때 조금은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언젠가 큰 화가 닥칠 것입니다.”

워랜의 버릇이야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이지만, 그게 고쳐질 것인지는 주안도 조금 회의적이었다.

마를렌의 공작성에서 토미에게 검을 휘두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그는 검을 검집에도 씌웠고, 토미에게 가르침을 내린다는 명목하에 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무척 큰일이었고 중죄가 될 수 있었다.

그나마 그가 가론 노밀 자작의 아들이라는 점, 주안이 크게 문제 삼지 않은 점, 벡브란 전대 공작의 용서가 있었다는 이유로 크게 번지진 않았지만,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확실히 워랜 경의 그런 점은 고쳐야만 해.’

자유로운 것은 좋지만, 해선 안 될 일이 있고, 법과 도덕적인 문제는 반드시 지켜야만 한다.

그것을 모르는 워랜의 검은 기사의 검이 아니라 무뢰배의 검이 될 것이 뻔했다.

“그 깨달음, 풍신 경이 좀 내려주실 수 없겠습니까.”

“……제가 말입니까?”

“예, 꼭 검을 가르치지 않아도 상관없습니다. 이곳,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 중 워랜 경에게 그런 가르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마땅찮습니다.”

워랜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마를렌에 있는 그의 아버지, 가론 노밀 자작이나 벡브란 전대 공작 그리고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 정도뿐일 것이다.

워랜은 확실히 길들지 않은 야생마 같은 존재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주안은 그가 통제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검이 아닌 그런 것을 그가 배우려 하겠습니까.”

“……배우게 할 것입니다.”

주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워랜이 이 기회를 놓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주안의 다짐과 그 눈을 바라보던 풍신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만약 그렇게 해주신다면, 그리고 그가 진정 그것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다면…… 저 역시 그에 대한 답으로 검을 가르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풍신 경…….”

“하지만 공짜는 아닙니다.”

“네?”

갸웃하는 주안에게 풍신이 조용히 말했다.

“한 가지, 부탁을 들어주셨으면 하는 게 있습니다, 주안 공자님.”

거래라는 것일까.

하지만 주안도 공짜로 받을 생각은 없었기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예,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이름을 걸고, 제국과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누가 되지 않는 선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겠습니다.”

“……공자님은 그를 많이 아끼시는군요.”

“언젠가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기둥이 되실 분이시니까요.”

당당하게 미소를 짓는 주안의 모습에 풍신은 미소를 지을 수가 없었다.

주안을 보면 참 이상한 사람이라고밖에 생각이 되지 않았다.

저렇게 제멋대로 날뛰는 가문의 사람이라면 동방에서는 금방 잘라 내버리거나 집 밖으로 나서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다.

하지만 이 서방은, 그리고 거대한 가문의 후계자는 그를 끝까지 믿고 품으며 키우려고 하였다.

확실히 워랜의 재능은 동방에서도 거의 없을 정도로 대단하였지만, 천방지축 날뛰는 이를 품을 사람은 몇 없다.

“무리한 부탁은 아닙니다. 일단 워랜 경에 대해 만족하셨을 때, 부탁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저 역시 워랜 경에게 단단히 주의를 주겠습니다. 워랜 경도 이 기회를 쉽게 놓치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니, 지금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워랜이 바라는 것은 결국 검이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으로부터 시달리며 느낀 자신의 검.

그리고 그 후 오랫동안 자신만의 검을 만든 워랜이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의 검이, 날카롭고 변화무쌍하다고 생각한 그 검이, 동방의 검에 밀리지 않는 자신만의 검이, 풍신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것에 매우 초조했을 것이다.

그는 이 자신만의 검으로 동부의 천재로 불렸고, 그 강함에 나름대로 자부심도 있었지만, 그것이 모조리 박살이 난 것이다.

‘동방의 검이라…….’

과거에도 워랜은 서방의 검을 쓰지 않았지만, 지금 보니 동방의 검도 아닌 듯했다.

그는 지금처럼 자신의 검으로 동방의 검의 정수를 제대로 이어받은 토미와 생사의 결투를 벌였는데…….

‘동방의 검을 배운 워랜 경은 어떤 모습일까.’

제대로 된 스승에게서 제대로 된 검을 배우는 워랜을 상상하자, 미래가 확실히 바뀌어도 엄청나게 뒤틀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토미는 어떻게 해야 할까…….’

피터에게 검을 배우는 만큼, 그런 피터의 우직함까지 닮아버린 것인지 토미는 동방의 검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였다.

오히려 지금의 서방의 검에 변화를 주어 자신만의 검을 만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다.

워랜이 처음부터 서방의 검을 버린 채 동방의 검을 따라 하는 것으로 자신의 검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토미는 워랜과는 전혀 다른 그런 방식으로 자신의 검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그냥 토미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게 하는 게 낫겠지.’

워랜은 자신이 바라기에 주안이 도와주었지만, 토미는 아니니 말이다.

‘그래도 아까워……. 나중에 피터 경에게 상담을 좀 받아야겠어.’

이러나저러나 토미의 스승은 피터였다.

풍신은 토미가 탐났지만, 동방의 사람답게 스승과 부모에 대한 예의를 중시하여 이미 스승이 있는 토미에게는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있는 듯했다.

만약 피터가 허락하고, 토미를 설득한다면, 주안은 풍신에게 다시 한번 부탁할 생각이었다.

지금의 토미도 훌륭하지만, 그 진짜 힘이 나오던 것은 바로 동방의 검을 배우고 유우나의 곁에 섰을 때였으니…….

“응? 잠깐. 그러고 보면 토미도 유우나 곁에 있었잖아.”

주안이 조용히 고개를 돌려 유우나의 곁을 지키고 있는 풍신을 바라보았다.

동방의 무사. 그리고 유우나 곁을 지키는 호위.

그리고 확실한 실력자…….

“……설마.”

……토미의 스승이었던 동방의 무사가, 풍신 경?

* * *

서방 대륙에서 동방의 사람을 만난다면, 대부분이 상계에 몸을 담고 있는 인물이거나, 국가 간의 일 때문에 온 귀족들과 그 호위 정도일 것이다.

단신으로, 그것도 동방의 무사가 서방 대륙을 찾는 일은 극히 드물다.

동방의 무사들은 자신들의 무술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고, 실제로 서방의 검을 그리 대단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저 강하고, 단단할 뿐 유연함과 변화가 없는 우직함을 동방 대륙은 크게 선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행의 목적으로도 서방 대륙은 매력적이지 않았기에, 실력 있는 무사들은 동방 대륙을 떠나는 일이 극히 드물다.

‘유우나와 풍신, 그리고 토미……. 왜 이 연결 고리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을까.’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토미가 풍신의 제자였을 가능성은 매우 높았다.

“왼손잡이…….”

토미는 현재 오른손잡이이지만, 검성이라 불리던 시절의 토미는 왼손으로 검을 썼었다.

그리고 풍신은…….

‘……오른손이 없어.’

주안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한숨을 내쉬었다.

‘일이 이렇게 꼬일 수 있는 거야?’

원래 풍신에게 검을 배워야 할 사람은 워랜이 아닌 토미였을 텐데.

‘아냐, 오히려 잘된 것일 수도 있어. 미래가 바뀐다면,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해. 정체되어 있던 워랜 경에게 토미와 마찬가지로 스승이 생길 수 있는 거니까.’

스승이 없던 시절에도 워랜은 자신의 재능 하나만으로 토미와 대등한 대결을 펼쳤다.

그런 워랜에게 스승이 생기는 것이고, 그가 바라던 전통 동방의 검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토미도…….’

주안은 한쪽에서 점심을 차리는 세라타와 그것을 돕고 있는 토미를 바라보았다.

피터에게 검을 배우다 보니, 기사도 정신에 대한 교육을 확실하게 받은 듯 좀 답답할 정도로 꽉 막힌 구석이 가끔 보였다.

‘그래도 피터 경만큼은 아니지.’

토미가 피터보다 유연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는 토미거 전통 서방의 검을 배움과 동시에 워랜의 변화된 검도 함께 익혀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두 가지의 검의 장점만 가지고 자신의 몸에 맞게끔 바꾸어 나가고 있는 듯했다.

그 때문에 피터가 이런 토미에 대한 검을 어떤 방향으로 잡아주어야 할지 도리안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주안은 보았었다.

‘두 가지 검의 장점…….’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서방의 강한 검과 동방의 유연한 검.

이 두 가지를 모두 배우는 게 정말 가능할까.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님은 그 두 가지의 검을 배우기 위해 떠나셨으니까.’

불가능했다면 애초에 도전하지 않았을 것이다.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였기에 동방의 검을 배우러 가신 것이니까.

그리고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동방의 검을 알려줄 사람이 없었기에 떠난 것이지만, 토미와 워랜은 아니다.

두 사람에게는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만큼이나 강한 동방의 무사가 함께하고 있는 것이다.

‘……이건 기회야. 어떻게든 이 기회를 붙잡아야 해.’

토미가 아무리 재능이 있다 해도, 그런 토미를 검성으로 인도해 준 검술을 가진 풍신이다.

그런 풍신에게서 검을 배울 워랜이 얼마나 성장할지, 상상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그리고…….

‘……토미, 너 역시 마찬가지야.’

지금은 동생인 세라타에게 실수를 한 것인지 혼나고 있는 안쓰러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주안은 워랜에게 거는 기대보다 토미에게 거는 기대가 더 컸다.

서방의 검뿐만이 아니라 동방의 검까지 다시 손에 쥘 토미.

주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그렇게 해줄 생각이었다.

풍신에게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피터를 이용하는 일이 있더라도, 토미를 설득해서 반드시 그렇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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