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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51화 (51/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51화

“계속해서 당신을 사줄 사람을 찾으실 생각이신가요?”

“가능하다면요.”

유우나가 담담하게 말했지만, 미소는 그다지 밝지 않았다.

“공자님을 보니, 제국에 좋은 귀족들도 있을 거 같지만…… 힘이 있고 좋은 귀족은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거듭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제안을 못 들은 것으로 할 생각입니다.”

“……아쉽네요.”

“하지만…….”

그녀가 맥도넬에게 가는 것은 안 되었다.

맥도넬 후작가로 가서, 무슨 짓을 저지를 것인지 잘 알기에 그것만큼은 막아야 했다.

그녀는 또 힘 있는 귀족을 찾을 것이며, 미래가 변하지 않고 이어지게 된다면 맥도넬 후작가의 후계자, 에반드리안 맥도넬과 맺어지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그녀의 바람대로 해줄 수 없으니, 주안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유우나가 자신을 팔지 않아도 될 방법을 제시하여, 그것을 통해 맥도넬과 맺어지지 않게 하는 것.

바로 이것이다.

“공주님이 바라시는 건 왕가를 바로 세우고 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시죠?”

“네? 네…….”

“그렇다면 그 필요한 힘,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빌려 드리도록 제가 힘을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고, 공자님!”

유우나도 놀란 눈으로 주안을 바라보았지만, 아르베리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비록 비공식적인 자리라고 해도 공작가의 후계자가 하는 약속의 무게는 매우 무겁다.

“물론 빌려드린다 해도, 제가 결정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습니다. 부모님이나 할아버지의 허락이 필요한 일.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자리를 마련해 드리는 것입니다.”

“자리……?”

“네, 자리입니다. 현 공작가의 가주이신 아버지와 만나실 수 있는 그 자리 말입니다.”

보통의 귀족도 아닌 공작가의 가주와의 만남이다.

그것을 바란다고 해서 되는 일은 절대 아니며, 다른 곳도 아닌 서방 대륙 최강국 제노폴 제국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귀족들의 정점인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가주였다.

주안의 말이 무엇인지 이해한 듯 유우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일단 오늘 아버지를 만날 자리를 마련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빨리…….”

“내일 사절단으로 출발해야 해서요. 오늘밖에 시간이 없습니다.”

“아…….”

바로 내일 떠나야 하는 사절단이다.

주안이 아버지와 유우나 공주의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은 오늘밖에 시간이 없었다.

“이곳은 어려울 터이니, 돌아갈 때 함께 저희 저택으로 가시지 않겠습니까? 그게 아버지나 유우나 공주님에게도 편하실 겁니다. 적어도 감시의 눈의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되니 말이죠.”

“……네.”

아무리 황성이라고 해도 지켜보는 눈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유우나도 그것을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버지에게 알려드려야 하니, 먼저 일어나도록 하겠습니다. 채비를 끝낸 후 연락주십시오. 아버지께서도 연회장에 계시니, 그곳으로…….”

주안의 말에 유우나가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것을 본 주안 역시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후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공주님.”

“……네, 살펴 가세요, 주안 공자님.”

주안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자, 아르베리아 역시 마지못해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방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런 주안과 아르베리아가 나간 방문을 유우나는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 * *

“풍신 님,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은…… 어떤 사람처럼 보이셨나요.”

주안이 방을 나선 후 곁에 있던 풍신에게 유우나가 조용히 물었다.

“정말로 저희를 도와주기 위해 저러시는 걸까요.”

그런 유우나의 말에 풍신이 곰곰이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공주님을 보는 눈이 조금 심상치 않더군요.”

“네? 정말요? 역시 제가 좀 예쁘긴 하죠?”

“호감 같은 것은 아니었으니, 괜한 생각은 하시지 않는 것이 좋으실 것입니다.”

“칫…….”

풍신의 말에 유우나가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렸지만, 그녀가 그러거나 말거나 풍신은 주안이 나간 방문을 보며 말했다.

“마치…….”

원한, 원통함, 비굴함 하지만……. 무언가 복잡함 가득한 눈이었다.

“전생의 사랑하던 원수를 보는 것 같더군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원수면 원수지, 사랑하는……? 거기다 전생?”

“생각나는 대로, 느낌 그대로의 말일 뿐입니다”

“하아……. 동방의 사람들은 뭔가 말을 참 심오하게 하는 것 같지만, 이해가 안 돼요.”

작게 한숨을 내쉰 유우나가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우리도 준비하고 나가죠.”

“벌써 말입니까?”

“빠르면 빠를수록 좋겠어요. 일단 황제 폐하에게 먼저 말씀을 드려야겠죠.”

“하지만 어떻게 말씀드릴 생각이십니까? 일부러 별궁까지 내어주셨는데.”

“우음…… 그건…….”

일부러 별궁을 내어주었는데 그것을 물리고 나간다는 것은 예의 이전에 건방짐이 하늘을 찌르는 것이다.

하지만 유우나는 이내 방긋 웃으며 말했다.

“파티에 참석했다, 주안 공자님과 눈이 맞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으로 가게 되었다고 한다면…… 되지 않을까요?”

“……될 것 같습니까?”

“어머, 이미 저를 판다고 황제 폐하에게 고했었는데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안 공자가 저를 샀다고 하면 이해하실 거예요.”

“…….”

아니, 일단 미성년자인 주안 공자가 사람을, 그것도 타국의 공주를 샀다는 말을 황제 폐하…….

주안 공자의 외할아버지에게 해서 어쩌시려고요, 라는 말이 풍신의 입에서 나오지 않았다.

아니, 못 했다.

이미 결정을 내린 유우나였고, 한 번 내린 결정을 물리는 일은 없었다.

때문에 반쯤 포기한 풍신이 유우나에게 주의를 주듯 말했다.

“주레인 공작은 벡브란 전대 공작보다 유하다고 하나, 제국의 재상에 오른 인물입니다. 쉽지 않으실 것입니다.”

“알고 있어요. 하지만 뜻하지 않게 얻어낸 결과고, 이것을 어떻게 쓰냐에 따라 왕국의 운명이 바뀔 거예요.”

아니, 왕국만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까지도 말이다.

유우나 아스란이 풍신을 보며 생긋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주안 마르티네스, 그 사람…… 참 좋은 사람 같아요.”

주안이 들었으면 사레가 들려 거친 기침을 토했을 말이었다.

* * *

파티가 끝날 무렵 찾아온 유우나 공주는 미리 아버지와 말을 맞춘 주안에 의해 함께 저택으로 향하게 되었고, 늦은 밤이지만 응접실에선 아버지와 유우나 공주의 독대가 이어졌다.

주안은 그 부분에 대해서 애초에 참견할 생각이 없었기에, 신경을 끄고 대신 유우나 공주 일행이 가족과 공작령에서 온 일행들이 섞이지 않도록 방을 배정해 주었다.

그게 그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 깐깐하고 충성심 가득한 아르베리아만 보아도 알 수 있었듯, 제국의 사람들…… 특히 마르티네스 공작가나 남부 귀족들에게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은 환대하기가 사실 좀 꺼려지는 부분이 있었다.

비록 사절단의 임무 때문이라 해도 진정 그들의 평화를 위해 가는 사람들보다 나라의 일이기 때문에 가는 이들이 다수일 것이다.

“풍신 경은 계속 여기서 기다리실 생각이신가요?”

“혹시 불편하시다면 자리를 비우도록 하겠습니다.”

응접실 앞에 자리를 잡고 있는 가문의 기사들과 함께 있는 풍신은 동방의 무사라 그런지 유독 눈에 띈다.

그가 좀 불편할 수 있었지만, 주레인 공작의 근거리 호위 기사인 에밀리 경이나 다른 기사들은 크게 개의치 않는 듯했다.

풍신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그런 게 아니라, 그래도 일단 손님이신데 조금은 쉬셔도 괜찮지 않으실까 해서요.”

“감사합니다, 공자님. 하지만 이런 몸이긴 해도 공주님의 호위인지라……. 아, 물론 공자님과 공작가를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풍신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이미 오기 전에도 몇 번인가 좋지 않은 일을 겪으셔서…….”

“네? 설마…….”

“사절단을 들이는 것에 강하게 주장을 하셨던 공주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이들이 꽤 있어서 말이죠.”

풍신의 그 말에 여타 기사들도 짐짓 놀란 듯 그를 바라본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대놓고 자국의 공주를 암습하는 무리가 있다는 말인데…….

제노폴 제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풍신은 싱긋 웃으며 자신의 남은 한쪽 팔을 들고 주안에게 말했다.

“뭐, 늙고 쓸모없는 몸이긴 하나, 공주님 하나 지킬 힘은 있어서 별일은 없었습니다.”

“아스란 왕국의 정세가 정말 심각한가 보군요.”

“……예. 저는 그 나라의 사람은 아니지만, 병든 나라로 인해서 그 아래의 수많은 민초가 고통을 받는 것은 참으로 안타깝더군요.”

동방의 사람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오니, 아스란 왕국의 혼란은 주안의 상상 그 이상인 듯했다.

‘유우나가 괜히 자신을 팔아가면서까지 왕국과 왕가를 지키려던 게 아니었구나…….’

어린 여자가 그런 결심을 하게 만든 아스란 왕국이 참 딱했다.

“그런데 풍신 경은 어떻게 이 먼 서방 대륙까지 오셔서 유우나 공주님의 호위가 되신 건가요.”

“하하……. 그냥 바람 따라 구름 따라 오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말해주기가 조금 힘든 티가 역력하였기에 주안도 더 이상은 묻지 않았다.

“도련님!”

“응? 토미……? 아직 안 자고 있었어?”

“도련님도, 세라타도 안 왔는데 제가 먼저 자기는 좀…….”

토미가 주안에게 달려와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뒤 말했지만, 주안은 그저 빤히 바라보다 말했다.

“……너도 공주님 보러 왔냐.”

“아, 아니, 그냥, 궁금해서…….”

뭐,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다.

유우나 공주의 등장으로 저택이 좀 소란스러워지긴 했었지만, 그렇다고 이 꼬맹이도 쫓아와 구경하려 할 줄은 몰랐다.

얘도 한 살 더 먹더니 좀 응큼해진 듯했다.

걱정하던 부분인 몸도 좀 커졌고, 많이 듬직해졌다고 할까.

그래도 주안의 말에 부끄러운 듯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을 보면 아직은 애 같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 공주님이 현재 응접실에서 아버지와 독대 중이라는 사실을 알면 금세 또 시무룩해질 토미라는 것을 알기에 주안은…… 진실을 꼭 알려주려 했다.

하지만…….

“저기, 풍신 경?”

응접실 앞을 지키는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꼿꼿하게 서 있던 풍신이 어느새 주안의 곁으로 다가와, 몸을 숙여 토미와 눈높이를 맞추더니 토미의 몸을 꼼꼼하게 살펴본다.

그 행동에 주안이 갸웃했고, 토미는 이 아저씨가 누군지 몰라 당황했다.

“허어, 이거 참…….”

“네? 왜 그러시는지…….”

“실례되는 말인 줄 알지만, 혹시 이 아이에게 스승이 있습니까?”

“예, 어머니의 호위 기사이신 피터 경이 이 아이의 스승님이세요.”

“서방의 기사이겠지요?”

풍신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풍신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아깝군요……. 참 탐나는 몸입니다만, 서방의 검을 배워야 한다니.”

“서방의 검도 훌륭합니다.”

“아, 서방의 검을 낮춰 말씀드린 게 아닙니다. 서방의 검은 강한 육체에서 나오는 힘의 검술은 확실히 대단하나, 이 아이의 체질에는 잘 어울리지 않아서 말입니다.”

주안이 조금 언짢아하자, 풍신이 급하게 사과를 하였다.

하지만 주안도 그 부분은 느끼고 있었기에 풍신의 말에 화를 낼 수는 없었다.

주안 역시 사람은 서로 다른 체질이을 가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거의 하나의 검술을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서방 대륙과는 달리 동방 대륙의 검술은 사람의 환경과 체질, 재능 등등을 세분화하여 나눈 뒤 그 대상에게 맞는 검술이나 창술 같은 무술을 가르치기로 유명했다.

그러다 문득, 주안은 눈앞의 이 사람이에게 관심이 갔다.

본인의 말로는 그저 그런 외팔의 호위라고 소개했지만, 토미를 보고 단번에 체질을 알아냈다.

또한 유우나를 지키며 습격자들을 처리했다는 말을 떠올렸다.

“저기, 풍신 경.”

“예, 공자님.”

“혹시 풍신 경이 토미에게 검을 가르친다면, 이 아이는 대성할 가능성이 있겠습니까?”

“이 아이에게 검을 말입니까?”

“도련님?”

주안이 토미의 등을 손으로 조심스레 밀며 풍신에게 소개하듯 앞으로 나서게 만들었다.

하지만 풍신은 한 손으로 까끌까끌한 수염이 난 턱을 매만지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본인의 의지에 달린 것이겠지요. 하나, 제가 검을 가르치기는 조금 곤란하지 않나 싶습니다.”

“예? 어째서…….”

“이미 스승이 있는 아이입니다. 아무리 욕심이 난다 해도 그것은 해선 안 되는 일이지요. 그 스승분에 대한 예의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하아…….”

동방의 사람들은 예의를 지나치게 중시한다지만, 이럴 때 보면 너무 답답했다.

“뭐, 그러면 어쩔 수 없지요.”

주안도 답답할 정도로 고지식해 보이는 풍신이 쉽게 설득을 당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기에 깔끔하게 포기했다.

아쉽긴 해도, 싫다는 사람에게 억지로 부탁하는 것은, 동방에서 중요시하는, 예의가 아닐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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