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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50화 (5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50화

왜…….

왜, 그녀가 여기에 있는 것일까.

‘유우나, 아스란……?’

맥도넬의, 남부의 사람이 아니라 아스란 왕국의…… 그것도 공주라고?

주안은 현재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남부는 같은 남부인 외에 부인을 들이는 일이 드물다.

더군다나 거의 반쯤 원수가 되어버린 아스란 왕국의, 그것도 그 왕국의 공주와 남부의 중심이 된 맥도넬 후작가와 맺어졌다고?

‘대체 어떻게…….’

게다가 그녀는 아스란 왕국을 스스로 지워 버렸다.

남부 귀족은 물론 아스란 왕국의 귀족들마저 청소해 버렸고, 스스로 신왕조의 여왕으로 등극했다.

냉혈하고, 냉정했고, 잔인했으며 용서란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녀가…….

“주안 공자님……?”

귀엽게 고개를 갸웃하며 주안을 보고 있었다.

“아,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크게 심호흡한 후, 주안은 복잡한 머릿속을 억지로 정리했다.

‘유우나 맥도넬이든, 유우나 아스란이든……. 지금은 그때의 그 유우나가 아니야. 토미도 마찬가지잖아.’

이상한 점은 많았지만, 지금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의연하게, 그녀를 대해야 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안 마르티네스가 아스란 왕국의 유우나 아스란 공주님을 뵙습니다.”

간단히 고개만 숙여 인사하여도 된다 하였지만, 주안은 그러지 않았다.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나, 고개를 깊이 숙여 그녀에게 예를 갖추자, 유우나와 곁에 있던 남자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아르베리아는 약간 불만스러워했지만, 주안이 하는 행동을 제지할 수는 없었다.

주안이 바라는 이상, 조언을 할 수 있을지언정 제지를 하는 것은, 기사도와 주군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주안이 고개를 들고 유우나 아스란을 다시 바라보았다.

‘확실히 그때의 그 무서운 여자는 아니야.’

서로 비슷한 또래의 중년인 시절 만나 노년이 될 때까지 인연을 이어갔던 유우나 맥도넬, 아니, 유우나 아스란.

그녀는 주안에 대한 다른 목적으로 행한 행동이었지만, 어쨌든 그녀로 인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어떻게 보면 목숨은 살려준, 은인이다.

‘진짜 목숨만 살려주긴 했지만…….’

그리고 그 질긴 목숨을 참 오래도록 붙잡고 살아갔다.

오히려 주안은 어디 아픈 곳 없이 살았지만, 유우나는 달랐다.

노년으로 접어들었을 땐, 그녀를 볼 때마다 그녀의 몸이 점차 나빠지고 있는 게 눈에 띌 정도였다.

주안이 이곳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는 거동할 수가 없어서 거의 1년 가까이 얼굴을 보지도 못했었다.

그런 그녀를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기보단 뭘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 하겠다.

토미와는 다르다…….

토미와는 다르게 정말 완벽하게 자신을 적대하던 그녀였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데 곁에 계신 분은 누구시죠.”

주안이 일단 마음을 다잡고 곁에 있던 남성으로 화제를 돌렸다.

이런 주안의 물음에 유우나가 옆을 보자, 남자가 먼저 나서서 주안에게 고개를 숙였다.

“유우나 님의 호위인 풍신이라고 합니다.”

“혹시 동방의 무사이신가요?”

“무사까지는 아닙니다. 팔이 이래서 말이죠.”

헐렁한 오른쪽 옷소매를 가리키며 미소를 짓는 풍신.

하지만 그 미소는 당당함이 서려 있었다.

‘……확실한 실력자야.’

그게 아니라면 저 멀고 혼란스러운 아스란 왕국에서 제국까지 오는 공주의 호위를 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유우나 역시 그런 풍신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

“이쪽의 저희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봉신 가문, 말란체 가문의 후계자이신 아르베리아 말란체 경이십니다.”

“아르베리아 말란체입니다.”

주안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한 탓인지 아르베리아 역시 주안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였다.

그 모습에 유우나가 조금 감동한 듯했고 풍신은 짙은 미소를 지었다.

이곳에 와서 제대로 된 대접은 이 별궁을 내정받은 것뿐, 그 외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만나는 귀족들은 자신들을 깔보는 것만이 아니라 유우나를 음흉하게 바라보고 더러운 수작을 부리려고까지 하였다.

그 때문에 이 파티에 참석할 수가 없었다.

이번 사절단의 가장 높은 곳에 있고 이끌어갈 인물이라 정해진 주안에게 인사라도 드리고 싶어 무례를 저지르긴 했지만, 주안은 다른 이들과는 달랐다.

주안만이 아니라 그를 따르는 기사도 달랐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쭈어봐도 괜찮겠습니까.”

주안이 조용히 묻자 유우나가 갸웃하였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고, 주안이 말했다.

“아스란에서 이곳 황도까지 오시는 길은 매우 멀었을 것입니다. 한데, 정말 무슨 이유로 이곳까지 방문하신 것입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공주님이 오시기엔 너무 멀고 힘든 일이 아니었나요.”

“…….”

주안의 말에 유우나가 조용히 주안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아스란 왕국의 사정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주안 공자님.”

“어렵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처참한 수준이랍니다.”

왕국의 공주 입에서 그런 단어가 나오자 주안만이 아니라 아르베리아도 조금 놀란 눈치였다.

“선대 국왕께서 승하하신 후, 귀족들은 저희 아버지를 억지로 그 자리에 앉혔지만, 허울 좋은 국왕일 뿐입니다.”

아스란 왕국의 선대 국왕도 비슷했다.

병으로 승하한 선대 왕에겐 어린 자식들이 있었지만, 너무 어렸다.

그 때문에 왕가의 정통성을 따져, 가장 가깝던 왕의 동생이 대신 아스란 왕국의 왕관을 쓰게 되었지만, 그것은 다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아무런 힘도 없는 그 자리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에도 비난을 받고, 귀족들에게 휘둘려 모든 이권이란 이권은 다 빼앗긴 채 빈껍데기만 남은 왕가……. 그리고 왕국입니다.”

유우나는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게 좋아서 짓는 미소가 아니었다.

“저희가, 아니, 제가 이곳으로 온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저희 왕국에 안정을 찾아줄 제노폴의 귀족을 찾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싱긋 미소를 지은 유우나가 주안을 보며 말했다.

“저를 좋은 값으로 사줄 수 있는 주인을 찾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 * *

너무 놀라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주안은 그저 유우나를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유우나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담담하게 했다.

그 도도하고 당돌한 모습에 주안이 침을 꼴깍 삼키며 말했다.

“혹시, 이 이야기를 황제 폐하께도 하셨나요?”

“황제 폐하께는 이미 고했습니다만, 보기 좋게 거절을 당했습니다. 황자님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무언가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는 유우나의 모습에, 주안은 이 당돌한 아가씨가 자신이 알던 그 마녀가 맞나 의심이 들었다.

“……이미 다 결혼을 하셨습니다.”

“첩이라도 상관이 없었거든요. 저, 이래 보여도 예쁘게 생겨서 인기 많은데…….”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는 그 모습에 주안은 딸꾹질을 할 뻔했다.

‘진짜 그 마녀가 맞는 거야?’

아무리 젊다고 어린 시절이라 해도, 나이를 먹었던 그때와는 접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성격이 쾌활해 보였다.

그런 유우나를 보다,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우나는 아쉽다는 듯 말했다.

“사실 맥도넬 후작가의 자제분을 만나고 싶었는데, 거절당했거든요. 내일 사절단으로 쫓아갈까 생각도 했는데, 다행히 주안 공자님은 허락해 주셨어요.”

생긋 웃고 있지만, 주안은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도 거절입니다. 사람을 그런 식으로 만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입니다.”

“귀족가의 자제답지 않으세요. 부모님이 정해준 짝과 결혼하는 것은 흔한 일이랍니다. 얼굴도 모르고 배우자가 되는 것도 태반이랍니다.”

“저희 부모님은 그렇게 짝을 정해주시지 않을 겁니다.”

“……좋은 부모님이시군요.”

좋은 부모님은 맞지만, 조금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

……엄마는 절대 주안의 짝을 만들어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이전에 결혼도 못 한 노총각을 넘어선 할아버지가 되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움을 그런 식으로 바라시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네? 어째서요?”

“……자신의 몸을 조금 더 소중히 하세요, 공주님.”

“후훗, 아무것도 없는 왕가에 유일하게 남은 것은 사람뿐이랍니다. 제가 아니라면 언젠가 제 동생이 해야 할 일. 언니로서,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것이랍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보시지 않은 공자님은 모르실 거예요. 마지막 하나 남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선,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마지막, 하나 남은…….”

……이해할 수 있어서 더 싫었다.

엄마도 그랬고, 소니아도 그랬으며, 피터와 가론 자작도 그랬다.

마지막 하나 남은 그것을 위해 모두가 목숨을 내던졌다.

덕분에 그 하나 남은 것은 살아남았지만, 그들을 원망만 했었을 뿐이다.

자신이 모든 것을 던진다고 그 사람이 이해하고, 감사하고, 행복해질 것이란 생각을 하면 안 된다.

주안은 유우나에게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대신 그녀에게 다른 말을 해주었다.

“……저희 가문을 많이 원망하셨을 것 같습니다.”

“네, 어렸을 땐, 마르티네스 가문이라면 이를 갈았었어요. 차라리 왕국을 그냥 제국에 편입시켜 주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행복했을 거라고 아버지께서 늘 말씀해 주셨거든요.”

“으음…….”

주안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은 아스란 왕국의 전쟁 범죄자만 처단하고 그대로 돌아가 버렸지만, 그 탓에 아스란 왕국은 심각한 혼란에 빠져 버렸다.

새로운 왕을 찾아야 했고, 고위 귀족들이 모조리 처단당하니, 수면 아래에 있던 뱀 같은 녀석들이 일어났다.

그들은 고위 귀족의 이권을 잡아먹는 것만이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많은 것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시작했다.

보다 못한 제국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와 남부군을 통해 어느 정도 민생 안정과 무상 원조를 해 최악의 상황은 면하게 하였지만, 그게 다였다.

“이런 관리하기 어렵고, 아무것도 없는 빈 땅과 같은 왕국을 차지하는 게 더 손해라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랬다면 적어도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런 장소는 되지 않았을까요.”

제국에 편입되길 바라는 이들은 아직도 있는 듯하지만, 제국은 아스란 왕국을 사실상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정말 자원이란 없는, 관리하기가 어려운 땅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제노폴 제국이 왕국 시절, 남부를 통일하면서 겪은 그 진통을 또다시 겪고 싶지 않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저 역시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의 사람입니다만…….”

“후훗, 어떻게 보면 원수이긴 하죠.”

“윽…….”

유우나는 즐겁게 웃었지만, 그 원수에게 어떻게 대했었는지 주안은 알고 있기에 웃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보랏빛 눈을 반짝이며 주안을 보며 당당하게 말했다.

“하지만 원수의 개가 된다 해도 왕국과 가족을 구할 수 있다면 저는 언제든지 그럴 거예요.”

“…….”

이제 스물은 되었을까.

이토록 젊은 유우나가, 그런 생각까지 할 정도로 아스란 왕국의 상태가 심각한 것일까.

주안은 그녀를 보면 항상 두려움과 원망을 함께 가졌었지만, 지금은 좀 안쓰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녀를 달리 볼 수는 없다.

과거는 과거이지만, 그녀로 인해서 소중한 것을 빼앗겼다는 것…….

그것은 주안의 가슴 속에 언제나 자리를 잡고 있는 상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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