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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49화 (49/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49화

‘그런데 에반드리안 맥도넬도 참석을 했을 텐데, 누굴까…….’

이번 축하 파티는 사실 사절단을 위한 것이다 보니,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귀족들만이 아니라 남부 귀족들도 대부분 참석하였다.

주안은 일부러 그들에 대해 신경을 쓰려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단 한 사람.

에반드리안 맥도넬이 어떤 인물인지는 좀 알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나, 한 번도 그 사람을 만나보진 못했구나.’

벽에 등을 기댄 채 아르베리아의 호위를 받으며 연회장을 살펴보던 주안이 픽 하고 미소를 지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 알려고도 안 했고.’

그 중요한 사람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은 자신의 멍청함이 이젠 정말 대단할 정도다.

그래도 최근 남부 귀족 인명부를 통해서 현재의 에반드리안 맥도넬의 나이라거나, 현재의 성취, 젊은 나이로 이룬 간단한 업적 등은 알아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그의 얼굴은 몰랐다.

“일단 머리카락이 긴 쪽이 남부 귀족들이라는 의미인데…….”

워랜은 일부러 머리카락을 기르고 다녔지만. 남부의 사람들은 결혼하기 전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는 전통으로 인해서 길게 기르고 다녔다.

연회장 내에서도 이렇게 머리카락을 길게 기른 남성 귀족들이 꽤 보였다.

듣긴 했지만 이번 남부 귀족들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참여한 귀족들보다 배 이상은 많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쩝……. 내일이라도 만날 수 있겠지. 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주안이 기지개를 쭈욱 켜며, 일행들이 있는 곳이나 갈까 그렇게 생각하며 곁의 아르베리아에게 말했다.

“우리도 그냥 공작가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요, 아르베리아 경.”

“곧 공작부인께서 오시지 않겠습니까? 조금 더 기다리시는 것이…….”

“음……. 그래도 좀 심심하지 않으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 몸이 이 자리에 굳어 돌이 된다 해도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위한 것이라면 웃으며 그렇게 될 것입니다.”

“……너무 진지하면 진짜 여자한테 인기 없어져요. 얼굴도 잘생겨지셨으면서.”

“기, 기사에게 여자란 불필요합니다. 충성을 맹세할 주군이 있는 이상, 저의 반려자는 그분 한 분뿐입니다.”

“우와, 완전 징그러. 그 충성 저한테는 절대 하지 마세요.”

“예?! 고, 공자님……!”

반은 농담이고, 반은 진짜 진심이라 주안의 표정이 요상해졌다.

아무리 그래도 남자의 반려가 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응? 그보다 아르베리아 경, 머리 안 감고 오셨어요?”

“저 그렇게 더러운 사람 아닙니다!”

“하지만 머리카락이…….”

주안의 말에 아르베리아가 갸웃하며 머리카락을 매만져 보았다.

일전에 주안이 걸어준 신성력 탓에 가문의 자랑이던 곱슬머리가 찰랑거리는 생머리가 된 아르베리아는 그날 꽤 우울해졌었다.

“응? 이건…….”

여전할 거라 생각하던 머리카락을 매만지던 아르베리아가 갸웃하다 이내 환해졌다.

“다, 다시 곱슬거린다……!”

“그게 그렇게 좋아할 일이에요? 아니, 어떻게 신성력을 그렇게 받고 날씨도 변화시킨 신성력으로 곱게 펴드린 머리카락인데, 며칠 사이에 다시 곱슬거려요?!”

“가문의 힘입니다!”

“……대단한 힘이네요. 정말 부럽지는 않아요.”

대신관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저택과 정원을 성지로 지정해야 한다면 떠들고 다닐 정도로 엄청난 신성력의 축복이 내려졌고, 그러한 힘을 아르베리아는 다른 사람과는 달리 집중적으로 받았었다.

며칠 잠잠하다 싶었는데, 머리카락의 끝이 조금씩 곱슬거리며 말려가는 모습에 주안은 어이가 없어졌지만, 아르베리아는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이다.

“보기 안 좋으니까, 제가 다시 펴드릴까요?”

“예?! 아, 안 됩니다. 이것은 선조 대대로 내려오는 가문의 자랑이란 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머리카락만큼은 다시 되돌려야 한단 말입니다.”

“그치만 지금 모습이 훨씬 좋으신데…….”

“좋고 싫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가문의 자랑을 버리면서까지 저의 사익을 추구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으음……. 뭔지는 잘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하신다면야…….”

주안이 성흔에서 신성력을 끌어올리다 그만두었다.

뭐, 본인이 저렇게 싫다는데 일부러 다시 해줄 필요는 없었다.

머리카락이 좀 곱슬거린다고 죽는 것도 아니니 말이다.

생각해 보면 솔의 머리카락은 전혀 펴질 생각을 안 하던데.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호하듯 아르베리아가 머리카락을 손으로 가리며 뒤로 한 걸음이나 물러났고, 그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십니까?”

“응?”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주안이 갸웃하며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왜소한 체구의 남성이 서 있었다.

‘이 사람은 분명…….’

토베라 백작에게 고개를 숙이고 비굴하게 굴던 아스란 왕국의 귀족이라는 것을 떠올리고는 주안이 갸웃했다.

“예, 맞습니다만. 무슨 일이시죠.”

“저는 아스란 왕국의 벤케이 후작가의 가주, 솔릭 벤케이라고 합니다. 공자님.”

“후, 후작님……?!”

고개까지 숙이고 인사를 하는 그가 내뱉은 말은 주안으로서는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행동에 잠시 놀란 주안이 자신 역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려 했지만, 그런 주안을 아르베리아가 조용히 막아 세웠다.

“아르베리아 경?”

“공자님. 아스란 왕국의 귀족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실 필요는 없으십니다.”

“하지만…….”

자신은 작위도 없고, 눈앞의 솔릭 벤케이 후작보다 나이도 훨씬 어리다.

하지만 아르베리아의 이런 말에도 솔릭 벤케이 후작은 그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 말씀이 맞습니다. 왕가에 대한 간단한 인사 정도만 해주신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게다가 왕가에 대한 인사도, 간단히만 하면 된다는 그 말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는 그게 당연하다는 듯했고 옆의 아르베리아 역시 같은 생각을 하는 듯했다.

‘대체…… 아스란 왕국은 어떻게 된 거야.’

아스란 왕국에 대해선 책을 통해 어느 정도 알아보았다 생각하였지만, 이건 책으로 보던 것 이상으로 심각해 보였다.

그래도 그렇지, 한 나라의 후작이 도움을 청하러 온 제국의 귀족, 그것도 어린 후계자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할 정도인지 싶었다.

‘정말, 나라가 이토록 비굴해질 수 있나…….’

하지만 주안 역시 이런 비굴함을 겪어보았기에, 그들에 대해 궁금증보다 측은함이 앞섰다.

“그런데 벤케이 후작님, 저에겐 무슨 볼일이신가요.”

“저희 공주마마께서 이번 사절단을 이끌어주실 공자님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어 뵙기를 청하셨습니다.”

“공주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직접 황도에 온 것이 단순한 귀족이 아니라 공주가 포함되었던가.

갸웃하는 주안 대신 아르베리아가 솔릭 벤케이 후작을 보며 말했다.

“보고 싶다면 그쪽에서 직접 오라고 하십시오. 제노폴의 귀족이, 그대들이 부르면 부르는 대로 따라가야 하는 그런 이들로 보이셨습니까?”

“아르베리아 경.”

중앙 귀족의 행태에 눈살을 찌푸리던 아르베리아라고 보기 힘든 냉정함이었지만,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말란체 가문은 아스란 왕국과의 전쟁에서 3군단의 수장이 되었던 가주, 덕트 말란체 장국과 함께 최전방에서 싸웠던 가문이다.

아스란 왕국의 사람이라면 좋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토베라 백작처럼 그들에게 비굴한 무언가를 요구하고, 자존심을 깔아뭉개거나 할 생각은 없어 보였다.

“죄, 죄송합니다. 사정이 있으셔서, 연회장에는 들어오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연회장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이번에는 주안만이 아니라 아르베리아도 갸웃했다.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이렇게 간청을 드립니다. 잠깐이지만, 공주마마의 인사만이라도 받아주십시오.”

재차 고개를 숙여 부탁하는 솔릭 벤케이 후작의 모습에 냉정함을 유지하려던 아르베리아도 조금 고민하는 듯했다.

그래도 후작의 작위를 가진 이인데, 너무나 왜소하고 비굴하며 처량한 모습은 보기가 썩 좋지 않았다.

“하아……. 알겠습니다. 안내 부탁드리겠습니다.”

“공자님!”

“그래도 타국의 공주님이세요. 사정이 있다면, 그 사정에 맞추어주는 것도 귀족이 갖추어야 할 예의잖아요.”

“하지만 그들이 혹시 다른 생각이라도 가지고 공자님에게 위해를 끼친다면…….”

“아스란 왕국이요? 제노폴의 황도에 있는 이 황성에서요?”

주안이 피식 웃자, 솔릭 벤케이 후작이 쓴웃음을 지었다.

완벽한 무시였지만, 그 무시를 당할 만큼 그들에겐 힘도 없고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주안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사절단의 파견을 위해 노력하던 아스란 왕국이에요. 왕국의 안정을 바라는 그들이 왕국 자체가 사라질 수 있는 그런 일을 벌일 리 없어요.”

목숨을 걸고 왕국의 안정을 위해 사절단 파견을 요청한 아스란 왕국임을 알기에 그들이 그것을 버리고 주안에 대한 해코지를 그리고 이 왕성에서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안내 부탁드릴게요, 벤케이 후작님.”

“예.”

다른 귀족들과는 달리 자신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해주는 주안의 행동이 조금 생소했다.

다행히 사절단을 이끄는 중요 인물의 성격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에 솔릭 벤케이 후작은 안심하였다.

* * *

주안과 아르베리아가 솔릭 벤케이 후작의 안내로 연회장을 벗어나 별궁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름대론 중요한 손님에 대한 배려인 듯했다.

“별궁에 계신가 보네요.”

“예, 황제 폐하께서 너무나 감사하게도 저희 공주마마에게 별궁을 내어주셨답니다.”

황성은 고사하고 직접 좋은 여관이라도 구하러 다녀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며 황도로 올라왔던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이었던 만큼 뜻밖의 환대에 눈물을 흘리는 이들이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한 황제 폐하의 배려와는 달리 중앙 귀족들은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을 야만인으로 취급했다.

심심찮게 아랫사람…… 그리고 하인 취급을 하니, 공주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연회장으로는 발을 들일 수가 없었다.

솔릭 벤케이 후작이 그런 사정을 주안에게 말해주니, 그제야 왜 연회장으로 못 들어온 것인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말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솔릭 벤케이 후작에게 말했다.

“……그 부분은, 정말 같은 귀족으로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모든 귀족이 그런 것은 아니니,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는 말아주세요.”

“아닙니다. 공자님.”

황도에서 만난 대부분의 제국 귀족은 아스란 왕국 귀족에 대한 행동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주안은 많이 달랐다. 자신들을 사람으로 대해주는 것이 너무나 고마웠다.

이런 솔릭 벤케이 후작의 모습에 아르베리아도 측은한 듯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별궁에 위치한 한 방의 앞으로 솔릭 벤케이 후작이 주안과 아르베리아를 안내한 후, 조용히 노크하였다.

“공주님,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을 모셔왔습니다.”

벤케이 후작의 말에 잠시 뒤 조용히 문이 열렸다.

방 밖을 지키는 기사조차 없을 정도로 일행은 많지 않은 듯했다.

“드시지요.”

솔릭 벤케이 후작이 한 걸음 물러나 고개를 숙였다.

아무래도 그는 안내의 역할만 할 뿐, 함께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는 듯했다.

그리고 주안이 아르베리아와 함께 안으로 들어가자, 문을 열어준 하녀가 두 사람에게 인사를 한 후 다시 문을 닫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남자……?’

방 안에는 면사를 쓴 여성과 한 남성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모습에 주안이 갸웃했다.

여성의, 그것도 공주가 잠시 묵게 된 방에 남자 호위라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옷차림도 이곳, 서방의 옷차림이 아닌 동방의 옷이었으며, 한쪽 팔이 없는 외팔이였다.

40대 정도로 보이는 그는, 한쪽 눈에 큰 상처가 있었으며, 까끌까끌한 수염은 제대로 다듬지 않은 듯 제멋대로 나 있다.

주안을 바라보는 눈은 날카로웠지만, 적의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주안이 아니라 아르베리아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공자님이십니까.”

주안이 의아해하며 그 남성에게 눈길을 주다가, 들려온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이 목소리…….’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가며, 식은땀이 흘렀다.

주안이 떨리는 눈으로 목소리의 주인공, 면사를 쓴 공주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의 무리한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르티네스 공자님.”

자리에서 일어난 공주는 조용히 면사를 걷었다.

아직 10대, 많이 쳐줘야 이제 막 20대가 된 듯한 그 얼굴은 앳된 티가 많이 나는 어린 여성이었다.

남부인이라고 믿기 힘든 하얗고 투명한 피부에서는 확실히 고생하지 않은 티가 많이 난다.

하지만 주안은 눈앞의 공주를 알고 있었다.

따뜻해 보이는 보랏빛 눈동자는 심장을 도려내듯 자신을 노려보던 그것이었고, 도톰한 입술은 살포시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주안을 보며 비웃고 저주의 말을 내뱉었던 입술이다.

주안이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며 신성력까지 끌어올리려 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아스란 왕국의 공주…….”

아니야, 너는 아스란 왕국의 공주가 아니야.

“유우나 아스란입니다.”

……유우나 맥도넬.

남부의 마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무너뜨린 악녀.

바로 그 유우나 맥도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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