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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48화 (48/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48화

황성의 대연회장에 도착하였지만, 주안은 일행들과 함께하기 전에 안젤라와 함께 황제 폐하께 인사를 하는 게 먼저였다.

주안이 사절단으로 가는 것에 걱정하는 것은 할아버지인 황제 폐하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나름 의연하게 대처해서 그런지, 황제 폐하와 황후마마 두 분 모두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수가 있어 주안은 뿌듯했다.

그리고 오랜만에 두 분과 대화를 나누는 엄마에게 인사를 한 후 발걸음을 돌려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대표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나서기 좋아하는 것 같인지 아르베리아가 주안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반기며 물었다.

“공자님, 황제 폐하와의 이야기는 잘 나누셨습니까.”

주안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치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아버지를 대하듯, 모두의 눈이 반짝이며 주안을 우러러본다.

그들에게 황제 폐하는 언감생심 꿈도 못 꿀 하늘 높이 있는 존재였고, 그런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만나러 가는 주안이 너무나 대단해 보였다.

엄마의 선물로 인해 황도의 최신 유행에 맞는 옷과 액세서리로 무장한 그들은 겉모습만 보면 황도의 귀족들보다 더 화려했지만, 하는 행동은 너무나 순진했다.

“그런데 안젤라 공작부인께서 보이시지 않는데…….”

“어머니는 오랜만에 황제 폐하와 황후 마마와 담소를 나누고 계십니다.”

“오오~!”

생각해 보니 주안만이 아니라, 안젤라 공작부인 역시 전 황녀라는 사실을 깨달은 듯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귀족들이 감탄사까지 터뜨렸다.

그 순진무구한 행동에 주안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다들 파티를 즐기시지 않고 여기 모여서 뭐 하시는 건가요.”

“아, 그게 좀…….”

위체니아 소벡이나 아르베리아 말란체, 그리고 소니아 펜 정도만이 당당하게 서 있을 뿐, 다들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치만 살피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일행 중 가장 나이가 많은 베일 리 준남작마저 잔뜩 긴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소니아야 그동안 안젤라를 따라 수도 없이 화려한 곳을 다녀봐서 익숙했으니 이해할 만했다.

소벡 백작 가문은 마르티네스 공작령 북부의 대귀족이었고, 중심이 되는 영지라 이처럼 화려한 것은 아니나 많은 파티와 연회를 통해 귀족들과 연을 쌓아온 가문이었다.

그리고 말란체 가문 역시 그 특성상 자신들보다 작위가 높은 이들을 대하며, 군단을 지휘하던 강단 있는 가문이고, 그 후계자인 아르베리아가 주눅이 들 이유가 없었다.

단지 그 외의 가문들은 서로 교류가 있고, 파티를 한다 해도 이런 화려하고 백작이니, 후작이니 하는 이들이 잔뜩 있는 곳을 경험한 적은 없다 보니 주눅이 들 수밖에 없어 보였다.

그들과 함께 파티를 즐기던 이들은 대부분 남작이니 자작이니 하는, 가족 단위의 파티였을 뿐이었다.

그나마 아주 가끔 공작령의 3대 백작가에서 여는 파티에 초대되어 가는 게 다였지만, 이들 중 그런 파티에 참석한 인물은 몇 없었고, 그것도 매우 드물었다.

‘……나만 긴장한 건 아니었구나.’

사실 주안 자신도 이런 곳은 처음인지라 잔뜩 긴장해 있었지만, 이들을 보니 자신이 주눅이 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는 마를렌의 공작성에서도 파티를 가끔 열긴 했지만, 거기에 참석해도 주안은 언제나 엄마와 함께였기에 이렇게 다수의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익숙한 편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자신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대표 그리고 얼굴이다.

그때는 대표가 엄마였지만, 지금 이곳에선 자신이라는 의미였다.

이들 앞에서도 좀 더 당당하게, 그러한 것을 보여줄 필요가 있었기에 의연한 척 말했다.

“너무 긴장들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파티는 다 똑같은 파티에요. 그리고 이 파티의 주역은 저희잖아요.”

“아…….”

이 파티가 열린 이유도 전적으로 아스란 왕국과의 외교와 문화 사절을 가는 이들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주역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일행들과 남부 귀족들이다.

“다른 사람들은 다 즐기는데, 우리만 여기서 이러면 오히려 더 이상해지죠.”

그리고 그들을 보며 미소를 지은 주안이 말했다.

“당당해지세요. 우리가 황도의 귀족들보다 부족한 사람들은 아니잖아요.”

확실히 주안의 말이 맞았다.

자신들도 귀족이었고, 동부에서는 알아주는 이들이었다.

게다가…….

그들이 모시는 가문은 다름 아닌 마르티네스 공작 가문.

제국에서 가장 강대한 가문이었다.

황도의 귀족에게 주눅이 들고 부담스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생각들을 떠올리자, 다들 표정이 훨씬 나아졌다.

그리고 그들의 눈에는 이미 황도의 귀족들과 어울리고 있는 남부 귀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시다.”

휴이 훼스턴이 앞장서며 비장한 각오로 말하자, 다른 이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해 준다.

그리고 마치 적들에게 향하는 기사들처럼 척척 걸어가는 그 뒷모습을 보며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이지, 동부의 특색인지 모르겠지만, 사람들과 참 어울리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가자, 언니. 내가 전에 꼬셨던 남자 소개시켜 줄게~”

“에?!”

하지만 그런 동부의 특색 따윈 저 멀리 걷어찬 소니아가 위체니아의 팔을 붙잡더니 사뿐거리며 가버린다.

‘……언제 남자 꼬시고 다녔어요.’

좀 의문이긴 하지만, 남자들은 몰라도 소니아나 위체니아는 의외로 잘 섞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기에 안심이 되었다.

위체니아는 내향적이긴 해도 그 미모는 이곳, 황도의 그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었고, 주안은 모르겠지만 소니아 역시 젊은 미모의 마법사이자 펜 남작가의 막내딸이라는 이유로 그 인기가 상당했다.

그러한 두 여성을 보며, 주안도 발걸음을 옮기려다가 곁에서 묵묵히 서 있는 한 남자의 모습에 갸웃하며 말했다.

“응? 아르베리아 경은 안 가세요?”

“제가 할 일은 주안 공자님의 곁을 지키는 것입니다.”

“……조금은 즐기세요.”

“안 됩니다. 공작부인께서 공자님이 술을 드시나 안 드시나, 감시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

그놈의 술!

이러다 앞으로는 정말 술을 못 마시는 게 아닌가 모르겠다.

* * *

곁에 아르베리아가 눈을 부릅뜨고 있어서 그런지 주안에게 다가오는 젊은 인물은 거의 없었다.

그나마 작위를 가진 나이 지긋한 귀족들이 호기심에 찾아왔고, 간단히 인사를 주고받은 게 다였다.

게다가 여성들은 주안을 힐끗거리며 관심을 나타내는 듯했지만, 왠지 곁에 있던 이들이 말리며 귓속말을 하자 주안을 외면해 버렸다.

왠지, 이 파티에서 동떨어져 버린 상황이라 주안이 주스를 홀짝이다 곁의 아르베리아에게 말했다.

“그런데 아르베리아 경.”

“네, 공자님.”

지나칠 정도로 듬직하게 서 있는 아르베리아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주안이 물었다.

“진짜 파티 안 즐기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전 괜찮습니다.”

“그래도 이게 다 인맥을 쌓고, 나중에 큰 도움이 되실 건데…….”

위세가 대단한 마르티네스 공작가라고는 해도 많은 이들과의 인연은 큰 도움이 된다.

당연하게도 그 귀족 중에서도 황도에 위치한 중앙 귀족들은 더욱 그랬다.

사실 변방의 귀족들이라면 이런 파티에 와서 발이 닳도록 돌아다니며 작은 인연이라도 쌓으려 노력해야겠지만, 아르베리아는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어 보였다.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딱 봐도 시골 귀족 같은 어리숙함이 잘 드러나는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귀족들도 지금은 여러 귀족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그들도 역시 귀족은 귀족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제가 모셔야 할 가문은 마르티네스 공작가 단 하나뿐입니다. 인맥을 쌓는다 해도 마르티네스 봉신 가문이지, 이곳의 가문들이 아닙니다.”

“……아르베리아 경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 몇 명이나 있으세요?”

“예?!”

“깜짝 놀라시는 거 보니, 친구가 별로 없으시죠……?”

“그, 그런 이야기가 갑자기 왜 나오는 것입니까.”

당황한 아르베리아가 허둥거렸지만, 주안이 키득거리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사람 사귀는 것이 저랑 비슷하게 서툴러 보여서요.”

“으윽…….”

주안도 친구라고 해봐야 토미 정도뿐이지만, 이전에도 주안에겐 의지를 할 친구는 전혀 없었다.

“하지만 이곳의 중앙 귀족들과 사귀는 것은 좀…….”

아르베리아의 그 말에 주안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중앙 귀족들은 여타 지방 귀족들을 깔보는 경향이 심한 편이었다.

대부분이 관료 귀족들인 부분도 있었고, 제노폴 제국이 왕국이던 시절부터 이어온 전통 귀족이라는 자부심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동부의 마르티네스나 서부의 링베르가, 그리고 북부나 남부 등 지방에 터를 잡은 귀족들은 대부분 이런 전통 귀족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게다가 저 꼴을 보니, 이곳에서 그 친구라는 것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말입니다.”

“네? 저 꼴이라니요.”

아르베리아의 말에 주안이 갸웃하자, 아르베리아가 연회장 한쪽을 잔뜩 찌푸린 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안 역시 그곳을 보다, 인상을 썼다.

“참, 싫긴 하네요.”

중앙 귀족으로 보이는 중년의 곁에 비굴하게 아양을 떨고 있는 이들이 주안의 눈에 들어오자 자연스럽게 찌푸려졌다.

“저 사람은 누구죠.”

“토베라 백작입니다. 이번 사절단에 적극적으로 찬성했던 인물이라 들었습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 일행의 호위 책임자인 베일 리 준남작의 보좌라 그런지 이번 아스란 왕국 외교와 문화 사절에 대해서 조사를 한 듯한 아르베리아였다.

이번 아스란 왕국 외교와 문화 사절에 대해 적극적으로 찬성표를 던진 이들에 대해선 대충 파악이 다 끝난 듯했다.

“토베라 백작이라…….”

“그 곁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스란 왕국의 사람들 같습니다.”

딱히 기억 속에도 없는 그저 그런 귀족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하는 행동이나 모습을 보니 전형적인 부패 귀족이라고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번 사절단을 밀어주는 것에 얼마나 받아 처먹었을까.’

아스란 왕국이 혼란스러우면 혼란스러울수록 남부가 어지럽혀지진다.

맥도넬 후작가야 이번 사절단으로 아스란 왕국의 정세를 조금이나마 안정시킬 수 있다면 한 시름 덜 수 있었기에 어찌 보면 찬성하는 것이야 당연했다.

하지만 그와 전혀 관련이 없는 중앙 귀족이 찬성의 표를 내밀고, 아스란 왕국의 귀족이 떠는 아부를 받고 있다?

‘훌륭한 비리 귀족의 표본이야…….’

단순히 곁에서 이야기를 들으며 맞장구치고 웃어주는 것만이 아니다.

술을 직접 따라준다거나, 음식을 가져다준다거나, 얼굴 표정은 매우 힘들어 보였지만, 그럼에도 입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들이 힘겨워하든 말든 주변의 중앙 귀족이나, 명령을 내리는 토베라 백작은 전혀 거리낌이 없었다.

“이번 연회 전에 아스란 왕국 사람들이 황도에 올라왔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설마 참석할 줄은 몰랐습니다.”

“참석해도 눈치만 봐야 할 그들인데…….”

전쟁의 상처는 여전히 남아 있고, 기억되고 있다.

그 여파는 아스란 왕국이 절대적으로 심하였지만, 제국은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비록 그 전쟁을 일으킨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은 아스란 왕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타국의 귀족이, 감사의 뜻으로 인사를 하러 왔음에도 그들을 반기는 이는 몇 없을 것이고, 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온 것이 안타까웠다.

“아스란 왕국은 사정이 정말 안 좋나 보네요. 이번 사절도 다 거기서 부탁했다 들었어요.”

“최근에도 왕이 바뀌었을 정도로 정세가 상당히 나쁘다 들었습니다. 전쟁 후로 벌써 다섯 번의 왕이 바뀌었지요.”

“후우…….”

아르베리아의 말에 주안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이 벌인 일. 그들이 수습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주지 않는다 해도 제노폴이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절단 때문에 위상이 더 높아졌다.

그리고 아스란 왕국은 더욱 쪼그라들고 비웃음을 당할 것이다.

“이번 사절단이 간다 해서 정세가 정말 안정이 될지 모르겠네요.”

“조금은 되지 않겠습니까. 단지 외교와 문화 사절이 아니라, 이번 왕에 대한 제국의 인정이 뒤따르는 것이니……. 적어도 반란은 좀 잠잠해지겠지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그 반란군들이 이번 제국의 사절단을 습격한다거나 하는 걱정은 사실 하지 않고 있었고, 할 필요도 없었다.

결국 그 반란을 일으키는 이들도 정당한 아스란 왕국의 왕을 세운다며 일어난 것이지, 제국을 건드린다면 그냥 왕국 자체가 사라진다는 것을 그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겪어보았다.

그렇기에 아스란 왕국도 이번 사절단에 목숨을 걸었다.

사절단이 도착한다면 그 많은 반란과 혼란스러운 정세가 그 순간만큼은 잠잠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이렇게 무리를 하면서까지, 그리고 비굴해지면서까지 제국을 끌어들인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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