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45화
주안에게서 터져나온 신성력의 빛이 거두어지고, 놀란 이들이 주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지만 누구도 주안에게 다가가지 않았으며, 그저 그 곁에 워랜만이 있어 주었다.
하지만…….
“워어래앤 겨어어어엉! 대체 이게 무슨 짓인가! 자네는 귀족로서의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것인가! 주군에 대해 대체 이 무슨 불경한 짓인가!”
아르베리아가 달라붙어 매달려 있는 솔을 질질 끌고 달려와 워랜에게 소리쳤다.
그에게는 주안이 신성력의 빛을 내든 말든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닌 것 같았고, 주안에 대한 워랜의 행동에 잔뜩 흥분한 듯했다.
눈을 부릅뜬 채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동자로 소리쳐 대는 아르베리아의 모습은 정말 다가가고 싶지 않게 만든다.
하지만 아르베리아 말란체가 이토록 흥분할 수밖에 없던 이유는 다름 아닌, 흐느적거리며 딸꾹질까지 하고 있는 주안 때문이었다.
그런 주안을 보다 아르베리아가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다시 소리쳤다.
“대체 주안 공자님에게 술을 먹여서 어쩌자는 것인가!”
“거참. 이때가 아니면 술을 언제 마셔봐. 다 경험이야, 경험. 그리고 긴장을 풀어주려는 내 배려이고.”
“그딴 게 어떻게 배려란 말인가! 아직 어린 주안 공자님에겐 술이 가당키나 하나! 기사도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주군에 대한 불충이다!”
“진짜 바른 생활 청년일세. 그리고 주안 공자 올해로 벌써 열여섯이거든?”
“아직 성년으로 인정받은 나이는 아니잖나! 술은 그때 가서 마셔도 전혀 이상하지 않단 말이다!”
“우리 집은 열 살만 넘기면 마셨는데…….”
“그건 더 문제잖나?!”
자유로운 가풍의 노밀 자작가에서도 그런 게 심한 워랜과 대대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군단의 장군을 역임해 온 기사도 충분한 말란체 가문은 그 성향이 상극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유한 성격의 솔이기에 워랜에 이리저리 휘둘리며 잘 지낼 뿐이었다.
“더 이상은 용납 못 하네! 지금 이시간부로 워랜 경은 주안 공자님에게서 당장……!”
“아웅, 헤헷……. 딸꾹!”
“물러나…… 응?”
소리치던 아르베리아가 행동을 멈춘 채, 자신의 품에 파고들어 꼬옥 안아주는 주안을 내려다본다.
“아웅……. 아르 경, 소리치지…… 딸꾹! 마세요……. 오래 사셔야죠…….”
“거봐. 당신, 그렇게 소리치고 흥분하다 먼저 가는 수가 있다니까.”
“으으윽……!”
뭐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아르베리아도 주안이 자신을 껴안고 소리치지 말라고 하니, 속으로만 삼킬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실실 웃으며 자신을 흘겨보는 워랜으로 인해서 목덜미에 핏줄이 도드라질 정도로 잔뜩 흥분한 듯했다.
“제가 있죠오~ 선물, 하나…… 딸꾹! 드릴게요오…….”
“선물이라니요. 그게 무슨…….”
“헤헷…….”
갸웃하는 아르베리아를 올려다보며 주안이 해맑게 미소를 지었다.
“반짝반짝해져라~ 얍!”
무슨 마법 주문처럼 그 말을 외친 주안.
이내 주안의 왼손에서 빛이 터져 나오더니 그대로 아르베리아를 덮쳤다.
“이, 이게 대체…… 커억?!”
연회용 홀을 비추던 그 빛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니 어느새 아르베리아의 몸은 사라진 채 새하얀 빛의 덩어리만 남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들이 당황하며 웅성거렸지만 워랜이나 솔, 그리고 소니아는 매우 여유로웠다.
아니, 오히려 저 빛의 덩어리에 대해서 소니아가 한 말을 들어버린 여성들은 왠지 기대에 찬 눈으로 빛의 덩어리 아르베리아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빛의 덩어리가 사라지더니, 그 속에서 아르베리아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
반짝반짝한다.
매끈매끈했다.
그리고…….
“……완전 탱탱해?!”
고된 훈련으로 푸석푸석하던 머리카락은 반짝거릴 정도로 윤기가 났고, 가문 특유의 곱슬머리는 사라진 채 찰랑거렸다.
게다가 피부가 남자의, 그것도 바깥에서 자주 활동하며 거친 일들을 일삼는 기사의 갈색의 상처투성이 피부가 아니었다.
엄청난 거금을 쏟아부어 매일 관리를 하는 것처럼 매끄러웠고, 뽀얗게 변한 것도 모자라 자잘한 상처나 점까지 모조리 사라진 뒤였다.
아니, 그 몸뿐만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마저 반짝반짝 빛나며 완전 새것으로 변해 있었다.
“진짜 특이한 신성력이라니까.”
“형님?!”
워랜과 솔도 적잖이 놀란 듯 아르베리아를 바라보았고, 정작 당사자인 아르베리아는 대체 무슨 일인지 몰라 당황할 뿐이었다.
“피부도…… 딸꾹! 조아지고오…… 상처도오, 다 나았고…… 헤헷. 병도, 안 걸렸으면…… 딸꾹. 조켔다아…….”
“주, 주안 공자님……?”
아르베리아의 품에서 배시시 웃던 주안이 이내 비틀거리며 그 품에서 벗어났다.
주안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변을 둘러보다, 흐느적거리며 테이블 쪽으로 걸어가더니 잔을 하나 집어 들고는 다시 홀짝거리며 술을 마셔댄다.
그 누구도 말리지 못했고, 다가갈 수도 없었다.
그저 지금은 주안의 모습보다 아르베리아의 모습이 사람들의 이목을 붙잡고 있었다.
단지 빛이 반짝였을 뿐인데 사람이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을 보던 한 사람이, 침을 꼴깍 삼키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르베리아 경에게 한 그거…… 주안 공자님이 하신 거야?”
그의 말에 답해주는 이들은 없었지만 아르베리아 말란체와 주안을 번갈아 가며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에 대한 답을 주안에게 물어볼 수도 있었지만, 술잔을 집어 들고 꼴깍꼴깍 마셔대는 주안의 모습에 선뜻 다가설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안주로 과일을 집어 들고 입에 넣은 주안이 우물거리며 반쯤 풀린 눈으로 주변을 보며 말했다.
“그럼, 딸꾹! 다음, 사아라암…….”
“……다음 사람?”
주안의 말에 갸웃했지만, 이내 그들의 시선이 아르베리아 말란체로 향한다.
여전히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있는 아르베리아 말란체.
윤기 나는 피부는 잡티 하나 없는 아기 피부 같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놀라는 듯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의 모습에 놀라움보다…… 부러움이 앞서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엄청난 일을 저지른, 어떻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렇게 만든 당사자인 주안에게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오늘은, 헤헷……. 기분이 너~무 좋아서, 아웅……. 선물로 똑같이…… 딸꾹. 해드릴게요오……. 주울, 서세요오…….”
아르베리아 말란체가 받은 저 엄청난 것이 단순한 피부 미용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어쨌든 그 힘의 한 부분임은 확실했다.
남자들보다 여성들의 반응이 빨랐다.
그리고 그런 여성 중에서도 발군의 반응 속도를 보인 한 여기사가 순식간에 주안의 앞으로 달려가, 한쪽 무릎을 꿇고 반짝이는 눈으로 주안을 올려다보며 소리쳤다.
“신 훼스턴 자작가를 모시는 기사 로첸 산타나! 주안 공자님의 명령에 따라 대령했나이다!”
“아?! 로첸 경?!”
그 훼스턴 자작가의 대표로 온 휴이 훼스턴이, 자신의 곁에 있다 순식간에 사라진 그녀를 보고 놀라 소리쳤지만, 주군이 그러든 말든 그녀에겐 1등의 영광이 자신에게 왔다는 것이 더 중요해 보였다.
그리고 그녀를 시작으로 여기사들과 여마법사들뿐만이 아니라 대표로 온 여성들까지 주안에게 몰려가기 시작했다.
남자들은 조금 고민하는 듯했지만, 용기 있는 한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하자, 뒤이어 눈치를 보던 다수의 남성도 여성들 틈으로 들어갔다.
아르베리아 말란체의 모습을 보니, 내심 부러운 듯했다.
“아우웅……. 귀차나……. 너무 마나…….”
반짝이는 눈으로 주안에게 온갖 충성스러운 말과 칭찬과 아양을 떠는 이들의 모습에,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게 귀찮은 듯 주안이 입술을 삐죽였다.
그런 주안의 모습에 가장 먼저 도착했던 로첸 산타나의 안색이 나빠졌지만, 이내 주안이 길게 하품을 하며 말했다.
“한 번에~ 딸꾹! 할게요오…….”
한 번에?
주안의 곁에 몰려 있던 이들이 갸웃했지,만 주안이 다시 술잔을 기울여 남은 술을 입에 다 털어 넣더니 왼손을 번쩍 들었다.
그리고 주안의 손바닥에 새겨졌던 성흔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오더니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사람들이 당황했지만, 이내 자신들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그 빛에 몸이 나른해지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그 강렬한 빛이 연회장 홀을 가득 채운 것도 모자라 점점 커지더니 방을 벗어나, 기어이 저택 전체를 감싸 버리기 시작했다.
“더, 더 크게, 더 많이……. 아프지 않고, 깨끗하게…… 피부 조아지게…….”
주안이 히죽 웃으며 눈을 감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하지만 빛이 너무 강하여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안이 쓰러졌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 했다.
한동안 그 빛이 홀뿐만이 아니라 저택을 감쌌다.
그 빛이 사라지고 눈을 떴을 때 주안이 쓰러진 것을 발견한 이들로 인해 큰 소란이 벌어졌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소란도, 다음 날 벌어진 후폭풍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 * *
저택으로 돌아오던 주레인 공작은 아직 저택에 도착하지 않았음에도 마차를 멈추어 세우고 도중에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눈을 몇 번이나 손으로 비빈 후 멀지 않은 저택의 모습을 바라보다 호위 기사 중 한 사람인 에밀리 경을 불렀다.
“이보게, 에밀리 경.”
“네, 공작님.”
“……우리 집이, 저택이 왜 저렇게 빛나고 있는 건가.”
“그게 잘…….”
빛나는 저택을 보던 주레인 공작의 근거리 호위 기사인 에밀리 펜버도 지금의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했다.
아니, 이해하고 있는 사람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고, 당황함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사람이 신기한 것이었다.
“한데 말이지, 저 빛이 왠지 익숙하지 않나?”
“…….”
기사치고는 유난히 매끄러운 피부를 자랑하는 에밀리도 저 빛이 굉장히 익숙했다.
익숙하였기에 주레인 공작의 말에 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주레인 공작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차에서 내려 심각할 정도로 눈에 띄게 빛나는 저택을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우리 애가 또 무슨 일을 저지른 듯하군.”
주레인 공작의 말에 에밀리와 다른 호위 기사과 마부마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모두의 피부가 매끄러웠고 머리카락은 지나치게 찰랑거렸다.
……남녀는 물론, 짐승인 말까지도 말이다.
* * *
“어우, 머리야…….”
주안이 눈을 떴을 때 심각한 갈증보다 깨질 듯 아파오는 두통이 더욱 고통스러웠다.
“끄응……. 워랜 경.”
그때, 그만두었어야 했는데.
워랜이 긴장을 풀라며 권하던 와인 한 잔에 이런 꼴이 될 줄은 몰랐다.
“……몇 년, 아니, 몇십 년 만에 마신 거였더라.”
주안은 다시 되돌아오기 전에도 사실 술은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게다가 가문이 망한 뒤로는 술을 전혀 입에 대지 못 했었다.
워랜이 긴장을 풀라며 권한 와인도 사실 매우 오랜만이기도 했고, 긴장을 푸는 것엔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마신 거였지만…….
“그런데 나 분명 한 잔 마시고 술 깨려고 신성력을 쓴 것 같은데…….”
그 한 잔 이후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설마하니, 신성력은 취한 것을 고쳐주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건 그렇고 몸이 어려져서 그런가, 이전과는 달리 술 한 잔에 이 꼴이 된 것도 모자라, 숙취도 굉장히 심했다.
속도 속이지만, 두통이 너무 심해서 주안은 하는 수 없이 잠시 심호흡 후 왼손을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그리자 이내 성흔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와 주안의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서서히 감싸기 시작했다.
“……신성력을 숙취 해소에 사용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야.”
이토록 신에 대한 믿음도 없고 그 힘을 사용하는 것도 죄다 사적인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신성력의 빛은 오히려 점점 강해져만 갔다.
“이거, 확실히 뭔가 잘못된 거긴 한데…….”
그럼에도 계속 사용하는 것은, 너무나 편리했기 때문이다.
찜찜하긴 해도 한번 맛을 들리니 뗄 수가 없었다.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쉰 후 주안이 침대에서 내려온 후 기지개를 쭈욱 켰다.
그래도 취한 것에는 소용이 없어도 숙취에는 괜찮은 듯 신성력을 한 번 쓰니 정신이 맑아졌다.
그리고 주안은 자신의 옷차림에 갸웃했다.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세라타가 아닌 다른 하인, 혹은 엄마가 갈아입혀 주신 게 아닌가 싶었다.
‘엄마가 갈아입혀 주신 건 아니겠지.’
술 마시고 뻗어버린 아들의 옷을 손수 갈아입혀 주셨을 것을 생각하면 오싹했다.
그리고 이런 사태를 만들어 버린 워랜이 엄마에게 어떤 눈총을 받고 있을지,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이내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을 하며 미안함을 철회한 후 테이블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건 그렇고 집이 왜 이렇게 반짝거려?”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컵을 들고 물을 따라 마신 뒤 조금 정신을 차린 주안은 방이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청소, 아니, 이건 청소 수준이 아니라 물건들을 모두 새로 사서 채워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깨끗했다.
하지만 모든 가구가 눈에 익은 것들이었고, 하룻밤 사이에 자신도 모르게 새 물건들로 채워놓을 시간도, 그럴 이유도 없었다.
“뭐지…….”
근데 왠지 익숙하다는 게 문제다.
가구들의 익숙함이 아니라, 이 이상하리만치 반짝이는 것이 말이다.
주안이 기지개를 쭈욱 켠 후 대충 따뜻한 겉옷만 걸치고는 테라스로 걸어가 환기를 시킬 겸 테라스 문을 활짝 열었다.
“……?”
새가 날아다닌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따뜻한 바람이 분다.
……아직 1월이고, 겨울인데?
주안의 방 테라스에서 볼 수 있는 넓은 정원은 마음의 평화를 찾아주는 좋은 역할을 한다.
봄에는 꽃이 만개하고, 여름에는 푸르름이 넓게 펼쳐지며, 가을에는 낙엽이 져서 운치가 있으며, 겨울이면 소복이 쌓인 눈은 마음의 정화를 가져다준다.
하지만 최근에 눈은 내리지 않아 조금 앙상해진 나무들만 보여 아쉬움을 가지게 만드는 정원이었다.
“……웬 꽃?”
새들의 지저귐과 푸르른 나무 그리고 나무에 맺힌 먹음직스러운 과일들과 색색들이 아름다운 꽃들이 화려하게 만개해 있다.
“이, 이게 대체……?!”
눈을 몇 번이나 비비고 보아도 정원의 생명이 넘치는 푸르름은 달라져 있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주안의 비명이 울렸지만, 나무 위에서 지저귀는 새들은 그저 평화로울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