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42화
서로 먼저 주안의 성흔에서 흘러나오는 신성력을 받으려는 듯, 대신관과 소니아가 나이와 성별과 직업과 신분을 넘어서 투덕거리는 모습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주안은 이 성흔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력을 살펴보다가 조심스레 엄마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엄마의 이마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우응…….”
아까와는 달리 방을 가득 채울 빛이 퍼져 나간 것은 아니지만, 희미한 빛이 주안의 손을 타고 엄마에게로 흘러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엄마…….’
엄마의 몸에서 퍼지는 따뜻한 기운이 대신관님의 말대로 신성력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해주는 힘이라면 손바닥의 상처 정도는 웃으면서 넘어갈 것이라 생각했다.
“주안아?”
그리고 눈을 뜬 안젤라는 자신의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느낌, 단지 이불이 아니라, 주안에게 안겨 있다는 그 느낌에 희미한 미소마저 지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주안도 미소를 지어주었다.
“일어나셨어요? 몸은 좀 괜찮아요?”
“……여긴.”
“아, 여긴…….”
멍하니 주안을 바라보던 안젤라가 이내 주변을 둘러보다 멀지 않은 곳에서 여전히 모든 것을 초월한 채 다투고 있는 대신관과 소니아의 모습에 잠시 갸웃한다.
그리고 이내 자신이 왜 여기 누워 있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떠오른 듯 안젤라가 주안이 말릴 새도 없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대신관을 노려보며 사납게 소리쳤다.
“대에시인과완……!”
마치 동방에서 목소리만으로 수만의 대군을 멈추어 세운 전설적인 무인의 사자후처럼 쩌렁쩌렁 울린 안젤라의 목소리에 대신관과 소니아, 세라타와 주안까지 너무 놀라 서로를 부둥켜안아 버렸다.
“당신! 대체 우리 주안이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 거야!”
그래도 공식 석상 같은 곳에서는 공작부인답게 품위를 유지했던 안젤라였지만, 지금은 그딴 것 멀리 걷어 차버린 듯 대신관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러자 그 곁에 있던 소니아마저 대신관과 엮이기 싫다며 대신관을 밀어내 버린다.
“절대로 용서 못……!”
“어, 엄마, 진정하세요! 이건 대신관님 잘못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냥 좀 좋은 일이에요.”
“대체 그게 어떻게 좋은 일이니! 우리 주안이의 손이, 내 아들의 손이……!”
“이건 그러니까…….”
주안이 잠시 머뭇거리다 어색하게 웃으며 엄마의 화난 마음을 진정시켜 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 마음에 반응하듯 왼손의 성흔에서 빛무리가 일더니 이내 주안의 왼손을 감쌌다.
“주, 주안아……?”
“짜잔~ 신성력이랍니다~”
주안이 나름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매우 어색했고, 그 성흔의 빛무리를 보며 대신관이 다시 성호를 그으며 평정심을 되찾으려 했다.
그리고 안젤라는 그런 주안의 손을 보며 놀란 듯했지만, 이내 다시 눈매가 좁혀지더니 손의 상처를 보다 대신관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신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예, 예.”
안젤라의 반말이 섞인 그 묘한 말에 몸을 떨며 황급히 안젤라에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참 안쓰러운 모습이기는 하나, 주안도 지금의 엄마는 너무나 무섭기에 도움을 줄 수가 없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었다.
* * *
“성흔?”
“예, 주안 공자의 왼손바닥에 새겨진 것은 틀림없는 성흔입니다.”
주안에게 해주었던 그 말을 그대로 안젤라에게도 다시 해준 대신관이었다.
그래도 나름대로 영업도 잘하는 만큼 눈치도 빠른 그이기에 주안의 교단 귀의에 대한 부분은 쏙 빼버렸다.
“우리 주안이가 그럼 대신관과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다, 이 말씀입니까?”
“저와는 비교가 불가능할 것입니다. 저나 다른 신관들은 그분을 믿음에 근간을 둔 신성력이지만, 주안 공자는 그분께서 직접 선택을 하여 내린 신성력……. 그분에게 보다 가까운 주안 공자의 신성력은 죽은 이도 되살릴 수 있다는 게 절대 빈말이 아닐 것입니다.”
죽은 사람은 몰라도 거의 죽어가던 비쩍 마른 대신관을 다시 뚱뚱한 것도 모자라 탱탱하고도 윤기 나는 피부로 만들어주기는 했다.
대신관이 주안을 띄우려 하는 소리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주안이 특별함을 가질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것은 엄마로서 기쁘게 다가온다.
하지만…….
“그럼 저 손바닥은 대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대단한 힘이라면, 저런 흉측한 흉터를 충분히 없앨 수 있는 것 아닌가요.”
주안의 곱디고운 손바닥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상처가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을 절대 두고 볼 수 없던 안젤라였다.
그 말에 대신관이 놀라며 소리쳤다.
“흉측하다니요! 그것은 신성한 신의 흔적입니다!”
“신성이든 뭐든 어쨌든 우리 애 몸에 상처가 났다는 소리잖아요!”
“그, 그건 그렇지만…….”
성흔이든 뭐든, 어쨌든 상처가 맞기에 대신관이 안젤라의 말에 잔뜩 몸을 움츠렸다.
아무리 그래도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이러니, 주안으로서도 엄마가 무섭다 해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처가 난 것은 아쉽지만, 그래도 이 상처 때문에 많은 사람을 도울 힘이 생겼어요, 엄마.”
“그런 힘이 없더라도 주안이 넌 충분히 많은 사람을 도울 힘이 있어. 넌 이 나라의, 제국의 공작가의 후계자란 말이야.”
확실히 안젤라의 말대로 주안은 가문의 힘만으로도 엄청난 일들을 해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주안은 조금 다르게 생각했다.
“공작가의 힘은 확실히 대단하죠. 하지만, 대신관님과 같은 이 힘이라면…… 사람의 힘 그 이상을 보여줄 수 있어요.”
“그 이상의……?”
갸웃하는 엄마의 모습에 주안이 싱긋 웃으며 성흔의 힘을 끌어내었다.
그러자 이내 찬란한 빛이 주안의 손바닥에 맺히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대신관과 소니아가 다시 축복을! 이라며 난동을 피울 뻔했지만, 안젤라의 앞에서 그 본능이 쏙 들어갔다.
대신 주안은 그런 두 사람을 내버려 둔 채 엄마의 손을 꼬옥 붙잡았다.
“어, 어머나?”
따뜻하고 포근한 그 빛이 자신의 몸을 감싸자, 순간 주안이 자신을 꼬옥 끌어안고 있다는 착각마저 들어서인지 안젤라가 볼을 발갛게 물들였다.
그리고 그 빛이 몸 주변을 밝게 빛내다 이내 몸에 흡수되듯 사라지자, 그 효과가 바로 드러났다.
“짜잔~ 미용에도 쓸 수 있답니다~”
주안이 장난스레 그렇게 말을 하며 손을 떼었다.
안젤라는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몰라 잠시 갸웃했다.
왠지 매우 부럽다는 듯 질투 가득한 눈으로 입술을 삐죽인 소니아가 자신의 손거울을 꺼내 안젤라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이게 대체……?”
나이를 먹고, 신경을 쓰지 않으려 해도 주름은 생길 수밖에 없었고 피부도 조금씩 나빠진다.
하지만 소니아가 비추어준 거울 너머 자신의 얼굴은…… 마치 스물의 꽃다운 그 나이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얼굴이었다.
그것은 얼굴만이 아닌, 머리카락이나 목, 손과 팔이나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모든 부분이 생기가 넘쳐났다.
“시, 신성력이란 신체의 생명력을 활성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픈 상처를 빠르게 회복시키는 것이나, 병마를 몰아내는 것만이 아니라 노화된 피부를 재생시키거나 노화 방지, 피부 재생 등등…… 이런 쪽으로도 충분히 효과적이지요.”
……특히나 주안의 신성력이 미용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듯했지만, 그것까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대신관의 말에 안젤라는 싸늘하게 눈매를 좁히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젊어지고 건강해진다 해도, 우리 애가 다친 것으로 얻었다면 그게 정말 기뻐할 일이라고 생각했나요, 대신관.”
“아, 안젤라 님…….”
“내 몸이 부서지고 망가진다 해도 내 아이만 무탈하다면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단 하나의 거짓도 없이 당당하게 말을 하는 엄마의 그 모습에 주안은 적잖이 감동했다.
예전부터, 다시 되돌아오기 이전부터 엄마는 늘 이랬다.
조금 과하긴 해도 주안을 생각하는 것만큼은 늘 진실되어 왔었다.
그렇기에 이전의 삶에서 정신을 차리지 못한 것이지만, 지금은 그 사랑을 감사하면서도 조심스럽게 행동을 하였다.
지나친 그 사랑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게끔 말이다.
“전 정말 괜찮아요. 이걸 상처로 보지 마시고, 대신관님 말씀대로 신의 표시다, 신에게 선택받았다, 그렇게 생각해 주세요. 그리고 잘 보시면, 흉하다기보단 예쁘기도 하잖아요. 이거 은근히 꽃 모양 같은데.”
“하나도 안 예뻐!”
성흔을 따라 빛이 나자, 주안의 말대로 순백의 꽃의 형태로도 보였지만, 엄마인 안젤라는 그 모든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그, 저기……. 안젤라 님. 제가 다시 한 말씀 드려도 괜찮을지…….”
“절대, 이대로 안 넘어갈 겁니다, 대신관.”
“……예. 어떻게 보면 저의 잘못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 꼭 주안 공자에게 나쁜 일은 아닙니다.”
“…….”
대신관이 숙이고 나오자 안젤라도 잠시 머뭇거렸다.
그래도 대신전의 대표 그리고 나이도 훨씬 많은 어르신에, 나름 좋은 인연을 쌓아 온 인물이었다.
그런 머뭇거림을 느낀 주안이 대신 엄마의 손을 꼬옥 잡아주는 것으로 달랬고 그것을 본 대신관이 주안에게 감사의 인사를 해준 후 말했다.
“주안 공자가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이어야 할 후계자라는 것을 알기에, 저희 교단에서 귀의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나…… 대신 성흔을 지닌 만큼 저희 교단 외에도 다른 이들과 매우 좋은 관계를 가질 수 있으실 겁니다.”
성흔을 지닌 이라면 한 교단의 대표가 되어도 전혀 문제가 없을 존재다.
신을 믿는 이들에겐 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인물이기에 대신관의 신전 외에도 같은 교리를 믿는 여타 다른 대신전들이 나서서 주안을 만나고 좋은 인연을 바랄 것은 분명했다.
대신관은 그 부분을, 주안과 마르티네스 공작가 모두에게 큰 이득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치적인 중립을 표방해야 할 교단들이 앞다투어 주안 공자와 작은 인연이라도 만들기 위해 올 것이며, 하나하나의 그 힘은 미약하지만 모인 그 힘은 주안 공자에게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대신관이 작게 헛기침을 하면 이게 본론이라는 듯 진지하게 말했다.
“신성력을 지닌 이들은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고 매우 오래 그리고 젊게 산답니다.”
“건강하게, 오래 그리고 젊게…….”
앞의 말은 흥미가 없었지만, 뒤의 그 말에는 안젤라의 눈빛이 변했다.
그런 엄마의 순식간에 변하는 표정에 주안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정말이지 감정에 지나치게 솔직한 엄마다.
“그러니 부디 이번 일을 너무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 주십시오. 주안 공자는 이 성흔으로 인해 오히려 신의 선택을 받았다는 좋은 소문이 퍼질 수 있을 것입니다.”
“흠…….”
내색은 하지 않으려 했지만, 주안이나 자신에게 좋지 않은 소문들이 도는 것은 알고 있다.
물론 지금껏 무시했지만, 점차 밖으로 나서려는 주안에겐 그 소문이 발목을 잡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한 안젤라였다.
대신관의 말을 모두 믿는 것은 아니지만, 주안의 손바닥에 난 상처, 그 성흔이라는 게 그런 소문을 줄여줄 수 있다면…… 아주 조금 마음에 드는 부분이라 생각을 했다.
엄마의 마음이 약간 풀렸다는 것을 알아챈 주안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게다가 저 의외로 인기인이 될 수 있을 거 같아요.”
“웬 인기인?”
갸웃하는 엄마에게 주안이 당당하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
“다른 건 몰라도, 이 힘. 정말 피부를 탱탱하게 만드는 힘은 대단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나중에 집에 가서 아빠한테도 해드리면 정말 좋아하실 것 같은데요.”
아빠뿐만이 아니다. 가깝게는 외할아버지나 멀게는 마를렌의 할아버지에게까지 효도하기에는 정말 안성맞춤인 힘이었다.
사실 다른 게 더 있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주안에겐 마음에 쏙 드는 힘이었다.
주안의 그 말에 소니아가 말없이 손을 들어 자신도 하고 싶다는 의사를 표했고, 세라타 역시 눈치를 살피며 소심하게 손을 들어 보였다.
그 귀여운 행동에 주안이 웃음을 터뜨렸고 안젤라는 쯧쯧 하고 작게 혀를 찼다.
“하여튼 여자애들이란…….”
“아?! 안젤라 님은 이미 주안 도련님의 피부 미용 받았다고 그러시는 거 아니에요! 이게 얼마나 중요한 건데!”
“피부 미용이라니! 신성한 힘에 그 무슨 불경한 말입니까!”
소니아의 그 말에 오히려 버럭 화를 낸 것은 대신관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소니아는 콧방귀를 뀌며 무시한다.
그 때문인지 다시 대신관의 설교가 이어졌고, 또다시 소니아와의 투덕거림이 시작되었다.
저 정도 나이 차이가 나면서도 잘 어울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매우 신기하긴 했지만, 주안은 그저 나잇값 못 하는 어르신들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조심스레 손바닥을 펼쳐서 보았다.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아서 그런지 그 어떤 신성함도 보이지 않는 상처투성이의 손바닥일 뿐이었다.
“성흔이라…….”
소니아 말대로 피부 미용 말고, 무언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해 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대신관님처럼 누군가를 치료의 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하지만 자신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자신의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사람들을 구해주러 다니는 그런 위대하고 훌륭한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주안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가까운 사람들이라면 모를까,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을 위해서 소중한 사람들을 뒤로하고 갈 정도로 자신은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가까운 사람 중에서 딱히 아픈 이들도 없었다.
“……뭐, 할 일이 없구나.”
소니아 말대로 그냥 집안의 여성들에게 피부 미용이나 해줘야 하나, 그런 이상한 생각도 잠깐 들었다.
어쨌든 뜻하지 않게 얻은 힘이긴 하나, 정작 사용할 곳이 없는 참 난감하고도 부담스러운 힘이었다.
* * *
주안은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성흔이라는 힘은 대신관님과 마찬가지로 신성력을 좀 더 잘 사용할 수 있는 그런 힘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사실 주안이 그날 집으로 돌아와 모두에게 밝혔어도, 신기하다는 반응 정도밖에 얻지는 못했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워랜이었고, 신기해하는 솔이었으며, 아프지 않았나 걱정하는 피터와 토미 그리고 자기 할 일이 바쁜 도리안과 쥬도였다.
그저 아빠인 주레인 공작만이 주안이 엄마에게 해준 것처럼 피부 미용 비슷한 효과에 매우 좋아했다는 것 정도뿐이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났을 때, 주안은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