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41화
“대, 대, 대체 대신관님이 왜 저렇게 되신 거예요?! 엄마는 또 왜 여기 누워 계시고요!”
“안젤라 님은 주안 도련님이 쓰러진 것을 보고 기절하셨을 뿐이에요. 크게 문제는 없어요. 늘 있는 일이잖아요.”
“아…….”
소니아의 말에 주안의 표정이 조금 풀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아니, 안심하면 안 되잖아!’
너무 익숙해서 그런지 엄마의 기절쯤은 이제 별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에 깊이 새겨진 듯했다.
“그럼 대신관님은 대체…….”
“신관들 말로는 한계 이상으로 신성력을 쏟아부어서 탈진하신 것이라 하셨어요.”
“탈진……?”
세라타의 말에 잠시 갸웃한 주안이었지만 이내 왜 탈진한 것인지 기억나는 듯 주안이 대신관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적어도 주안은 바로 눈앞에서 대신관이 무척 안타까운 비명을 지르며 눈을 까뒤집던 것을 직접 보았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그 원인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미안함도 컸다.
“나 때문에…….”
“어휴, 대체 무슨 축복을 그렇게 내리는 것인지. 완전 난장판이 되었다니까요.”
생각하기도 싫다는 듯 소니아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녀의 말대로 축복을 내리는 행사는 주인공과 대신관 그리고 안젤라의 기절로 완전 난장판이 되었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대해서는 또 좋지 않은 소문이 돌 게 뻔했다.
축복을 내리는 대신관을 기절시킨 마마보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저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거예요?”
“얼마 되진 않았어요. 그래도 신관들이 엄청 열심히 신성력을 쏟아내고 다들 실려 갔거든요.”
“……실려 가요?”
“이상하게 주안 도련님에게 신성력을 사용하던 신관들이 모두 탈진해 버려서요. 뭐, 대신관님처럼 된 것은 아니지만.”
“우음…….”
무척 이상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엄마는 진짜 괜찮으신 거 맞죠?”
“그럼요. 주안 도련님도 도련님이지만, 정말 여기 신관들은 좀 특이하다니까요. 어쩜 대신관님보다 안젤라 님이랑 주안 도련님 건강을 먼저 생각하시는지…….”
“……아마 대신관님은 유언으로도 고객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말씀을 남기고 돌아가실 거예요.”
아픈 이가 아닌, 고객이라는 그 말에 소니아는 묘하게 공감이 가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그런데 왼손의 상처…… 흉터가 심하던데, 정말 큰일이네요.”
“네? 상처요?”
갸웃하던 주안이 소니아가 가리킨 손을 들어 손바닥을 펼쳤다.
“우왓?! 이, 이게 뭐야?!”
그리고 깜짝 놀라 소리치며 당황한다.
하지만 주안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집안일은커녕 힘든 일도, 무거운 것이라고는 책 정도밖에 들어본 일이 없는 주안의 뽀얗고 고운 손바닥에 상처가 잔뜩 나 있었다.
“이, 이거 왜 이래요?!”
“저도 잘……. 신관들도 주안 도련님 손바닥을 보고 치료하려 했는데, 안 됐나 봐요.”
“으……. 설마 엄마도 알고 있어요?”
“알았으면 더 큰일 났겠죠.”
그나마 다행히라고 해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엄마가 깨어나면 분명 알게 될 거고, 문제는 이 사실을 알고 나서 대신전에 미치게 될 영향이다.
아무리 주안이 말린다 해도 엄마는 엄청나게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다른 것도 아닌, 주안이 다친 것을 그냥 넘어갈 분은 아니셨다.
이전의 토미 때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었다.
“어, 어쩌지…….”
“일단 대신관님이 깨어나시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요? 그래도 다른 신관들보다야 훨씬 뛰어난 분이시니.”
“……상태가 저러신데요?”
“우음…….”
반쯤 미라가 돼버린 대신관의 모습에 소니아가 침음을 삼켰다.
주안 역시 대신관의 상태를 보니 제대로 깨어나실 수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서, 성흔……. 서엉흐은…….”
“으악?!”
대신관을 흘겨보던 주안과 소니아였지만, 갑자기 대신관이 몸을 일으키며 중얼거리는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마나 놀랐는지 소니아와 서로 부둥켜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눈을 뜨고 몸을 일으킨 대신관은 퀭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다 주안을 발견하고는 비틀거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주, 주안 공자……!”
뚱뚱한 사람이 살을 갑자기 뺀 후유증으로 피부가 죽죽 늘어나는 현상이 있다는데, 지금의 대신관의 모습이 마치 그것과 매우 비슷했다.
그런 상태로 비척거리며 걸어오며 대신관이 주안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소, 손……. 손을…….”
“대, 대, 대신관님, 좀 진정하, 하세요.”
바들바들 떨며 다가오는 대신관의 모습은 신을 모시는 성스러운 신관의 모습이라기보단 그냥 좀비와 같았다.
그 모습에 주안이 흠칫 놀랐고, 소니아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대신관에게 날릴 뻔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신관은 힘겹게 발을 움직여 주안과 소니아에게 다가왔다.
무섭긴 하지만 심각하게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는 대신관을 차마 무시할 수가 없었던 주안이었다.
대신 주안이 한 걸음 나아가 대신관을 부축하려고 발걸음을 옮긴다.
“도, 도련님……. 물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말이 너무 험하세요. 아무리 그래도 설마 대신관님이…….”
“지금 저 모습을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요.”
“으…….”
차마 아니라고는 할 수가 없었던 주안이 앓는 소리를 내며 대신관을 잔뜩 경계했다.
“저기, 대신관님. 좀 괜찮으세요?”
“소, 손……. 손을……. 주안 공자, 손…….”
“손이요?”
잠시 갸웃하던 주안이 상처가 난 왼손을 대신관에게 보여주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으로 주안의 손을 잡은 대신관.
그리고 주안은 대신관의 손이 매우 차갑고 거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분명 축복을 내린다는 그 행사 때 자신의 손을 잡았던 대신관의 손은 통통했고 보드랍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때와 완벽히 달랐다.
마치 뼈 위에 그냥 가죽만 씌워놓은 듯했다.
“오, 오오…….”
“대신관님?”
주안의 손바닥을 살펴보던 대신관이 퀭한 눈에 이채가 서리더니 이내 눈물이 그렁그렁 맺히기 시작했다.
“성흔, 성흔이야……. 진짜, 성흔이구나…….”
“예? 성흔이요? 대, 대신관님?!”
대신관이 무릎을 꿇더니 억지로 주안의 손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리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
“추, 축복을……. 제게 축복을 내려주소서.”
‘대체 이분이 왜 이러시는 거야?! 성흔은 또 뭔데요!’
그 행동에 주안이 적잖이 당황하며 황급히 대신관을 다시 일으켜 세우려 했다.
“어?!”
“도련님?!”
하지만 주안의 행동보다 앞서, 손에서 새하얀 빛이 터져 나오더니 대신관의 몸을 그리고 방 안을 가득 채워 나가기 시작했다.
“오오, 나의 아버지이시여……. 나의 어머니이시여……. 만물의 기원이시여…….”
피골이 상접하던 대신관의 몸이 주안의 손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빛에 둘러싸이자, 점차 살이 오르고 통통해지더니 푸석푸석하던 피부와 머리카락도 생기를 되찾는다.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는 주안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을 하였다.
마치 시간을 되돌리기라도 하는 듯 대신관의 몸이 몇 시간 전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이게 대체…….”
놀라움을 넘어서 황당하기까지 한 주안은, 그저 멍하니 그런 대신관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 *
무언가 이상했다.
모든 게 다 이상했지만 주안에게 가장 이상한 것은 다른 아닌…….
“……피부가 완전 탱탱해지셨네요, 대신관님.”
피골이 상접하던 모습과는 달리, 주안의 왼손에서 흘러나온 빛을 받은 대신관은 통통한 모습을 되찾은 것도 모자라 이전과는 달리 탱탱하고 윤기 나는 피부를 가지게 되었다.
“우와, 부러워! 피부 완전 좋아지셨잖아?!”
소니아가 엄청나게 부러워했고, 티는 안 내려고 하지만 세라타 역시 대신관의 너무나 좋아진 피부를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두 사람 다 여자는 여자인지라,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는 다른 일에 더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했다.
“허허허……. 이게 다 주안 공자 덕분입니다.”
“제가 좀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요……. 성흔은 뭐고, 방금 그건 또 뭔지…….”
자리를 옮길 수가 없어서 주안과 엄마 그리고 대신관이 누워 있던 이 방에서 대충 의자를 끌어와 앉고, 세라타나 소니아는 근처 침대에 앉았다.
주안의 말에 대신관이 성호를 그으며 말했다.
“성흔이란 바로 신이 선택한 아이. 신과 소통이 가능한 아이, 신과 가장 가깝다는 아이에게 신이 내려주는 신의 증표나 마찬가지입니다.”
“신의 증표……?”
차분하게 설명을 하는 대신관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긴 했지만, 그런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손바닥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이상한 상처 외에는 그런 신성함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신관이 언급한 신이라는 말이, 묘하게 가슴에 와닿았다.
‘신이란 진짜 있는 것일까.’
신성력을 보면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지만, 진짜 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오래도록 내려오는, 신앙을 위해 존재하는 이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내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 것은…….’
진짜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까.
미래의 인간을, 과거로 돌려보내 현재를 살게 한다니.
잘못 떠들었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주안도 가끔 착각할 때가 있었다.
그저 오랜 꿈을 꾸다 깨어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살았던 그 생생한 기억은 아직도 여전했다.
꿈이라면, 벌써 잊힐 그런 일들이…… 자신의 멍청함에 모든 이들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고 죽어가던 그 기억은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고 있었다.
신이 있나, 없나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한 신이 자신을 이곳으로 다시 되돌려놓은 것에 대해 고민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주안은 여기 이곳에 있다는 게 중요했다.
주안이 왼손의 상처, 성흔을 바라보다 살며시 주먹을 쥐었다.
“하지만 그런 게 왜 저한테…….”
이해가 안 된다는 주안을 보며 대신관은 그저 탱탱하고 윤기 나는 피부만큼이나 밝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야 신의 뜻을 저희 같은 무지한 아이들이 어떻게 알겠습니까. 단지…….”
그리고 전보다 더 빵빵해진 볼때기가 빨개질 정도로 흥분한 대신관이 주안을 보며 소리쳤다.
“저희 교단에도 드디어 성자가 탄생했다는 것이 중요하지요! 주안 공자! 지금 당장 저희 교단에 귀의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저의 축복에, 저의 신성력에 깨어난 신의 힘! 당연히 저희 교단에서, 차기 대신관의 후보로서……!”
“그, 그건 좀 곤란한데요……. 신의 힘이 어떻고, 성흔이 어떻고, 신성력이 뭐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전 신관은 될 수 없어요.”
“네? 어째서…….”
갸웃하는 대신관에게 주안이 담담하게 답해주었다.
“……저, 일단 공작가의 후계자인데요.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후계자요.”
“…….”
신관은 기본적으로 결혼을 하지 못 한다.
그런 신관을 공작가의 유일한 후계자인 주안에게 권한다는 것은,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끝난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절대 허락 안 할 거예요.”
“으윽…….”
공작가의 일에 대해선 시무룩해진 대신관이 주안의 엄마, 안젤라가 언급되자 새파랗게 질려 버린다.
공작가보다 안젤라가 더 무서운 듯했다.
“게다가 애초에 신성력 같은 걸 쓸 줄도 모른단 말이에요.”
시무룩해졌다 놀랐다 하던 대신관이 주안의 말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신성력은 그렇게 특별한 힘이 아닙니다. 그저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방금 저에게 내려주신 그 신성력을 사용하실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그냥…… 대신관님의 손이 너무 야위어서, 안쓰러웠거든요.”
“예. 상대방을 위해주는 마음, 그게 신성력의 근간이자 근본이 되는 것이랍니다.”
“위하는 마음…….”
대신관의 그 말에 주안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확실히 대신관의 머리 위에 손을 올렸을 때, 대신관이 너무 야위어서 가엽게 느껴졌고, 그가 건강해지길 바랐었다.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자, 주안의 왼손이 새하얗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대신관이 또다시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오오! 추, 축복을…… 저에게 다시 축복을…… 으억?!”
“대신관님은 이미 받으셨잖아요?! 이번에는 우리 차례예요! 탱탱한 피부! 윤기 나는 피부!”
“우와, 완전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못된 심보야! 그리고 이게 무슨 피부 미용에 좋은 그런 건 줄 아세요?!”
대신관도 그렇지만, 눈을 위험하게 빛내며 달려드는 소니아의 행동도 문제였다.
게다가 그 뒤에선 세라타마저 먹이를 노리는 야생동물처럼 주안을 지켜보고 있는 게 너무 무서웠다.
여기에 엄마만 없었으면 방을 뛰쳐나가 도망쳤을지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