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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40화 (40/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40화

새해가 밝고 신년 행사가 끝나자 이제 본격적으로 아스란 왕국 외교와 문화 사절의 준비에 들어갔다.

매우 비효율적이지만, 대표가 되는 남부의 귀족들이 황도로 올라오기 시작했고 마찬가지로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도 황도로 사람을 보냈다.

황도에서 모여 이 외교와 문화 사절에 대한 축하를 기념하는 파티와 축제가 벌어질 것이며, 황제 폐하의 선언 후 함께 아스란 왕국으로 이동을 하는 것이다.

황실에서도 이것에 대한 정당성을 보여주려 많은 노력을 하는 듯했지만, 그런 사절을 이끄는 게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주안이라는 사실에 여론은 여전히 싸늘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런 여론보다 지금의 주안은 매우 곤란했다.

“……진짜 이거 하시게요?”

“응!”

주안의 떨떠름한 말에 엄마가 너무나 기쁜 표정과 들뜬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며 고개를 끄덕인다.

곁에 있는 소니아나 세라타 역시 비슷한 듯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신전을 찾아온 또 다른 일행들도 많았다.

함께 온 이들이야 엄마와 세라타, 그리고 소니아밖에 없었지만 무슨 일인가 해서 대신전에 방문했던 여러 귀족도 다수 섞여 있었다.

마치 주안의 이 대신관의 축복을 모두에게 보여주고, 소문을 내고 싶다는 듯 안젤라는 대신전에 막대한 행사 비용을 지불했다.

그 기대에 부응하고 대신전의 위용을 알리면서 많은 고객, 아니, 신도들을 모집하려는 계획인 듯 대신관도 열성적으로 준비를 하였다.

“너무 과해…….”

왠지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이 주안과 안젤라를 보며 자주 하던 말이, 주안의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중앙 홀을 가득 채운 사람들 하며, 웅장하기는 하나 화려함은 없던 대신전의 외형과는 달리 이곳 중앙 홀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아니, 일부러 화려하게 꾸몄나 보다.

‘이 무사 기원의 축복이라는 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주안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엄마나 대신관님의 입장은 그게 아닌 듯했다.

“하아…….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다.”

며칠 남지도 않은 아스란 왕국 외교 사절의 일 때문에라도 최대한 엄마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들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일 중 한 손에 꼽히는 일이 되지 않을까.

정말 엄마만 아니었어도 그대로 발걸음을 돌려 도망쳤을 것인데.

“힘내세요, 도련님!”

세라타의 응원은 기쁘기도 하고, 도움이 되는 듯했지만 그래도 좀 부끄럽다.

“파이팅이에요, 주안 도련님.”

하지만 웃음을 참는 소니아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렸다.

100% 놀리고 있는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뭐가 되었든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는 다짐만 굳게 한 주안이었다.

* * *

대신전에서 행하는 이런 축복의 행사는 사실 거창할 것은 전혀 없었다.

가장 중요한 대신관님이 성수를 이용해 대상자에게 축복을 내려주는 것이 메인 행사다.

하지만 그전에 어린 신관들의 성가대를 시작으로 젊은 신관들의 주기도문을 외운다거나, 대신관의 설교 비슷한 신에 대한 찬양 등등…… 메인 이벤트보다 확실히 곁가지 이벤트가 훨씬 많았다.

딱 사람들이 지겨워할 만한 그런 행사나 다름없었다.

‘우와, 완전 싫어. 진짜 싫어. 도망치고 싶어…….’

그리고 그런 홀의 중앙, 흐뭇해하는 대신관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있는 주안은, 그런 생각을 계속하며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감추듯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러한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기에, 주안은 너무나 부끄러웠다.

‘이것은 축복이 아니라 벌칙이나 다름없잖아.’

아무리 엄마가 좋아할 만한 일이라 억지로 참았지만, 정말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자꾸 샘솟는다.

그나마 이러한 행사는 생각보다 짧다는 것이 다행이었다.

“그럼 주안 공자의 무사 기원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우리의 아버지이자 어머니인 주신의 이름을 빌려 그분의 권능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딱 사람들이 지겨워할 때쯤 이것을 끝내 버리는 대신관의 노련함에 주안이 감탄사를 터뜨릴 뻔했다.

정말 신관이 아니라 몇십 년은 상계에 몸을 담은 사람 같다.

“주안 공자, 일어나시겠습니까.”

대신관의 말에 주안이 한쪽 무릎을 꿇고 있던 자세를 풀고 일어났다.

그리고 대신관이 곁에 있던 신관을 보며 눈짓을 하자, 신관이 조용히 뒤로 물러나 성수가 담긴 그릇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그릇에 담신 성수를 대신관이 한쪽 손가락 끝만 살짝 담근 후 빼내더니 이내 주안의 이마에 손을 대고 신성력을 부여했다.

밝은 빛이 주안의 몸을 감싸는 것도 모자라 빛무리가 주안의 몸 주변에 퍼져 나간다.

이 때문에 다들 놀랐지만, 주안만 덤덤하게 대신관에게 작게 속삭이듯 물었다.

“대신관님, 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니에요?”

“허허,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화려한 연출, 아니, 신성한 권능이니 말입니다.”

“……대신관님도 슬슬 헷갈리시죠?”

“흠흠,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이건 축복이 아니라 왠지 영업을 위한 사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몸이 매우 가벼워지고 머리도 맑아지는 기분이라, 이 신성력 자체는 거짓이 아닌 듯했다.

“자, 주안 공자. 성수에 손을 씻어 보시겠습니까?”

이 물도 신성력을 잔뜩 담아낸 물인지라, 성수라고 하면 성수라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주안이 조심스레 손을 뻗어 성수에 두 손을 담그자 순간 너무나 차가운 그 느낌에 손을 거둘 뻔했다.

‘이거, 너무 차갑잖아?!’

이곳으로 돌아온 후로는 겨울이라도 항상 따뜻한 물을 사용했던 주안이었다.

적응이 되지 않는 차가움에 손을 덜덜 떨면서 억지로 손을 씻은 후 꺼내었다.

손바닥이 시큰거리는 게 너무나 따가워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모아 입김을 불며 따뜻하게 만들었다.

성수라고 해도 신성력을 부여한 물이었을 뿐, 그렇다면 이렇게 차갑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는 주안이었다.

“조금 따뜻한 물로 해주시면 안 되는…….”

그런 불만에 대해 작게 중얼거리던 주안이 잠시 비틀거렸다.

“주, 주안 공자?”

“아, 괘,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워서.”

차가운 물을 갑자기 만져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 떨리며 어지러웠다.

그 때문에 주안이 잠시 비틀거렸지만, 금세 괜찮다는 듯 당황하는 대신관에게 미소를 지어주며 안심시켜 주었다.

주안이 굉장히 피곤해 보이자 대신관도 몇 가지 준비한 영업용 행사들을 싹 버려둔 채 잽싸게 말을 바꾸었다.

어쨌든 이 행사의 주인공, 최우수 고객의 편의를 봐주는 것이 대신관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이제 마무리하겠습니다, 주안 공자.”

“네.”

드디어 끝이다.

주안은 이 부끄러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윽…….”

머리도 아팠지만, 왼손에 느껴지는 찢어질 듯한 통증에 주안은 자신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손바닥을 부여잡았다.

“주, 주안 공자……?!”

당황한 대신관이 황급히 주안을 붙잡았고, 주안의 표정이 새하얗게 질려 있는 것에 대신관의 안색 역시 주안과 비슷해졌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렸지만, 대신관은 침착하게 주안의 왼손을 붙잡고 신성력을 쏟아부었다.

자신이 낼 수 있는 가장 강대한 신성력이었다.

그가 비록 세상의 때가 좀 묻은 신관이기는 하나, 대신관이라는 직책답게 그가 진심으로 쏟아내는 신성력에는 죽기 직전의 사람도 되살릴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신성력의 빛은 주안을 감싸는 것만이 아니라, 주안을 중심으로 중앙 홀을 환하게 밝게 만들었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이 이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바라봤다.

마치 대신관이 주안에게 신성력의 축복을 내리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고, 그 때문에 주안의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도 모두 가려지고 있었다.

“으윽……. 아…….”

“이, 이게 대체?!”

하지만 대신관이 신성력을 내면 낼수록 주안의 안색은 더 창백해졌다.

주안의 손바닥은 통증을 넘어서 얇게 찢어지며 피부가 떨어져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신관이 지속해서 신성력을 부여했지만, 주안의 상처는 나아지지 않았고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것도 모자라 주안이 마치 대신관이 부여하는 신성력을 잡아먹듯 계속해서 빨아들이고 있었다.

“대, 대체 왜……. 주안 공자, 정신을 차리십시오. 주안 공…… 응?”

만약 주안이 잘못된다면, 절대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대신관도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껏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한계에 가까운 신성력을 주안에게 계속해서 쏟아붇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자신의 신성력을 잡아먹고 있는 것도 모자라, 주안의 왼손에서 낯익지만 무언가 이질적인 힘이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주안의 왼손이 찢어지고, 피부가 떨어진 상처의 모습을 보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잔뜩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신관이 놀란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다가, 이내 환희에 찬 미소를 지었다.

“이, 이건 설마…… 성흐으으갸갸갸갹?!”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을 뿐이었다.

갑작스러운 비명에 희미해지던 의식이 확 깨면서 주안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눈을 뜨고 본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손을 붙잡고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는 빛나는 대신관이었다.

“대, 대신관님?”

성스럽게 빛나는 대신관이 왜 눈을 까뒤집고 침까지 흘리고 있는 것인지는 넘어가더라도, 주안 역시 상태가 좋지 않았다.

갑자기 밀려들어 오는 막대한 신성력에 주안의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갔다.

‘대, 대체 이게 뭐야……. 대신관님, 무슨 짓을 저지르는 거예요!’

주안이 원망스럽게 대신관을 바라보았지만, 대신관은 이미 하얗게 눈을 까뒤집고 기절한 듯했다.

그러면서도 주안의 손을 꼬옥 붙잡은 채, 주안에게 신성력을 흘려 넣고 있었다.

아니, 흘려 넣는 게 아니라…… 강제로 빼앗기고 있었다.

이런 두 사람의 모습은 대신관과 주안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하얀 광채로 인해서 사람들이 볼 수가 없었고…….

한참이 지난 뒤 빛이 사라지고 나타난 것은, 바닥에 기절하여 쓰러져 있는 대신관과 주안의 모습이었다.

* * *

“으…….”

주안이 힘겹게 눈을 떴지만, 몇 번이나 깜빡인 후에야 겨우 눈앞의 시야가 제대로 돌아온 듯 사물이 구분되기 시작했다.

“욱……?!”

주안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가 속이 울렁거리는 바람에 구토를 할 뻔했다.

다행히 옆에서 누군가 건네준 물컵을 보고는 냉큼 받아 들어 쭈욱 들이켰다.

“하아…….”

“좀 괜찮으세요, 주안 도련님?”

“도련님!”

“아, 소니아 누나……. 세라타?”

주안의 등을 토닥이며 소니아가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건네자, 잠시 숨을 몰아쉰 주안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와 반대로 세라타는 울먹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네, 일단은……. 그런데 대체 무슨 일이……. 응?”

작게 한숨을 내쉰 주안이 소니아를 보다가 그 너머의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엄마?!”

엄마인 안젤라 역시 주안과 마찬가지로 곁에 있는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자세히 보니 이곳은 대신전의 치료를 위한 방으로 보였다.

큰 방에 침대가 여러 개 놓여 있는 게 눈에 띈다.

주안이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침대에서 내려오자, 소니아가 그런 주안이 넘어지지 않게 도와주었다.

“어, 엄마가 여기 왜 있어요?! 게다가 이건…….”

“안젤라 님뿐만이 아니에요. 저기 좀 보시겠어요?”

“에?”

소니아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 뒤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대신관님?! 게다가 홀쭉해!”

대신관이 곁에 누워 있었던 것도 몰랐지만, 솔만큼이나 통통하던 대신관의 볼이 홀쭉하게 들어가 있었다.

이불을 덮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살도 많이 빠진 모습이었다.

특히 얼굴만 보면 미라가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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