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39화
“아이고, 안젤라 님. 어서 오십시오.”
대신전의 안으로 들어가자 정문에서 미리 연락을 받은 듯 대신관이 안젤라를 기쁘게 반겼지만, 주안의 눈에는 조금 다르게 비쳤다.
‘……아무리 봐도 대신관님이라기보단 그냥 돈 좋아하게 생긴 상계의 어르신이 우수 고객을 맞이하기 위해 뛰어나온 것 같단 말이지.’
뭐,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
공작가의 저택을 한 번 방문할 때마다 거금의 기부금을 받았고, 이렇게 신년 행사 전날 찾아온 안젤라는 그 이상의 금액을 기부하고 갔기 때문이었다.
대신전에서 받는 기부금의 3할 이상은 마르티네스 공작가에서 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한 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대신관이든, 그 아래의 신관들이든 안젤라와 주안을 극진히 모시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했다.
그리고 같이 온 주안을 보며 대신관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주안 공자도 함께시군요.”
“안녕하세요, 대신관님.”
주안이 고개까지 숙여 인사를 표하자 대신관의 표정은 더없이 밝아졌다.
나름대로 성세를 이루고 신을 모신다는 이유로 교권이 안정되어 있다지만, 아직 귀족들의 권위에 미치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인 귀족도 아닌, 귀족의 정점이라 할 수 있는 공작가의 후계자가 직접 고개를 숙여 인사할 정도로 권위가 높다고 할 수는 없었다.
“예, 주안 공자. 손은 좀 괜찮습니까?”
“요즘은 가끔 가려운 정도예요. 대신관님께서 치료해 준 덕도 있고, 만들어주신 약도 정말 효과가 좋던걸요.”
“허허……. 제가 뭐 한 것이 있다고.”
그런 대귀족의 후계자인 주안이 이토록 살갑게 대해주는 것을 보면 앞으로의 교권은 정말 대단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잠시 손을 봐드려도 괜찮겠습니까?”
이 부분은 주안이 아닌 안젤라에게 허락을 구하였고, 대신관의 말에 안젤라가 기꺼이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리고 주안 역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왼손의 장갑을 벗어 대신관에게 보여주었다.
붕대가 꼼꼼하게 감겨 있었지만, 손을 보는 것엔 큰 문제가 없었다.
“와아…….”
대신관이 주안의 손을 살며시 붙잡고 신성력을 불어넣자, 주안의 손뿐만이 아니라 몸 전체에 밝은 빛이 퍼졌다.
‘언제 봐도 신기하단 말이야. 이 신성력…… 정말 대단해.’
감기에 걸리면 감기가 감쪽같이 나아버리고, 멍이 들면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다.
적어도 며칠은 고생해야 할 것들이 단 한 순간에 나아버리는 이 힘은 정말 신의 힘이라고 해도 맞을 것이라고 주안도 그렇게 생각을 했다.
오기 전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서 괜찮긴 했지만, 대신관의 신성력을 한 번 더 받으니 몸이 매우 상쾌해졌다.
“어떻습니까. 좀 괜찮아졌나요.”
“정말 대단하세요. 몸이 엄청 가벼워졌어요.”
“요즘 공부도 열심히 한다 들었습니다. 멀리 나가실 분이 몸조리를 잘하셔야지요.”
“아……. 벌써 소문이 다 났나요.”
민생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신관들이기에 소문도 금세 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소문 중 아스란 왕국 외교 사절은 이미 유명해졌다.
대신관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사실 저희 신전에도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안전을 위해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신관들을 파견해 달라고 하더군요.”
“아…….”
간단한 감기에서부터 큰 상처까지 순식간에 낫게 해줄 수 있는 신관들은 정말 중요한 인물들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요청이었다.
게다가 신관들 입장에서는 제국 중부와 동부에 퍼진 교단을 남부를 넘어 아스란 왕국에까지 퍼뜨릴 기회이기도 하다 보니 흔쾌히 요청을 수락한 상태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많은 귀족과 연을 닿을 수 있다면, 그보다 큰 자산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대신관이었기 때문이다.
신관들도 직접 동행한다는 말에 안젤라도 묘하게 안심하는 듯했다.
“그보다 대신관님.”
“예?”
“……신성력, 너무 과한 거 아닌가요?”
“어이쿠, 이런. 저도 모르게 그만…….”
아니, 일부러 그런 듯 주안의 손을 잡고 부여하던 신성력은 어느새 주변의 모든 이목을 붙잡을 만큼 빛을 내고 있었다.
‘……애초에 일부러 그러신 거야.’
어떻게 보면 영업용이라고 할 수 있었기에, 주안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대신관이 주안의 손에서 신성력을 주입하던 것을 멈추고 떼자, 얼마나 신성력을 욱여넣고 있었던 것인지 주안의 몸은 한동안 계속해서 신성력을 뿜어냈다.
딱히 나쁜 것도 아닌지라 주안이나 안젤라는 뭐라 말을 하진 않았고, 대신 대신관이 두 사람을 보며 먼저 입을 열었다.
“곧 멀리 나가시지 않습니까. 해서 저희 교단에서 주안 공자에게 한 가지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만…… 괜찮겠습니까.”
“네? 선물이요?”
대신관의 말에 주안과 안젤라가 갸웃했다.
“예, 주안 공자의 안전을 위한 축복을 내려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떠신…….”
“당장 해주세요!”
“……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젤라가 대신관의 말에 단번에 답해주자 오히려 당황한 것은 대신관이었다.
안젤라의 반응이 너무 격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곁에 있던 소니아와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쉴 뿐이다.
“그, 다, 당장은 곤란합니다……. 준비할 것도 많고…….”
“최대한 빨리 부탁드릴게요. 가장 화려하고 멋지게! 비용은 걱정하지 마세요, 대신관님!”
“예, 알겠습니다. 주안 공자와 안젤라 님 그리고 마르티네스 공작가에 누가 되지 않게끔 멋지고 화려하게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어르신의 말에 주안이 파랗게 질렸다.
“그,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게다가 대신관님도 대신관님이지만, 엄마의 그 씀씀이가 어떤지 누구보다도 잘 아는 주안이기에 엄마가 여기에 얼마나 돈을 쏟아부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때문에 황급히 반대를 외치며 엄마를 말렸지만, 이미 엄마의 정신은 저 멀리 가버린 듯했다.
“우후후, 가장 화려하고 멋지게……. 우리 주안이를 가장 돋보이게끔, 부럽게끔! 아앙~ 우리 반짝반짝하는 주안이~!”
“…….”
안젤라의 머릿속은 이미 저 멀리, 미래의 축복을 받고 지금처럼, 아니, 지금 이상으로 반짝일 주안에 대한 상상으로 가득 차 있었다.
행복해하는 엄마의 모습에 주안의 어깨가 추욱 늘어졌다.
대신관과 안젤라의 눈이 빛나는 만큼 주안의 안색은 어두워졌고, 어째서인지 소니아뿐만이 아니라 세라타마저 주안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를 해주었다.
위로는 전혀 안 되지만 말이다.
* * *
“우왓?! 주안 공자?!”
대신전에서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주안은 잠시 저택의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최근 그곳에서 살다시피 하는 워랜과 토미가 주안을 보고 화들짝 놀란 듯했다.
“도, 도, 도련님?! 모, 몸이 왜…….”
“……아직도 빛나는 거야?”
“대체 어디서 뭘 하다 온 거야?”
반짝반짝 빛나는 주안의 몸이 매우 신기한 듯 워랜이 주안의 몸을 만져봤다.
토미마저 주안의 옷깃을 슬쩍 손가락을 가져다 댄다.
그런 토미의 행동에 주안의 곁에 있던 세라타가 찌릿 노려보자, 토미가 흠칫 놀라며 손을 거두어 버렸다.
참 안쓰러운 모습이다.
그런 두 사람의 행동에 주안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신전에 엄마랑 같이 갔다가, 대신관님이 신성력을 과하게 넣어주신 뒤로는 계속 이러네요. 뭐, 몸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니 걱정은 없지만요.”
주안의 몸은 대신전에 있을 때보다 확실히 그 빛이 약해졌기에 조만간 이 빛도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대신관 역시 금방 사라질 것이라 말해주었기에 안젤라나 주안도 크게 불안해하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안젤라는 아들이 빛난다면 좋아했으니까.
‘……나중에 이 빛나는 거 계속해 달라고 하시진 않으시겠지.’
왠지 불안했지만, 엄마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보다 피터 아저씨랑 쥬도 씨는 어디 가셨어요? 솔도 안 보이는데…….”
“아, 피터 기사님은 도리안 경이 쥬도 씨 데리고 야간 산행하러 가시는 것 따라가셨어요.”
“이젠 야간 산행까지 하시나…….”
도리안은 최근 피터의 허락하에 쥬도를 데리고 근처 산으로 올라가 케세니아에서 배우고 겪고 해보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려주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스란 왕국으로 가는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인물 중, 젊은이들만 추려서 가기에, 피터나 도리안은 가지 못했지만 쥬도는 아니었다.
주안의 호위라는 이유로 그도 포함이 된 것이다.
그래서 주안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쥬도를 위해 도리안이 직접 나서서 피터와 함께 쥬도를 가르치고 있었다.
특히 오늘은 야간 산행이 목적으로 내일쯤에나 집으로 올 듯했다.
게다가 피터는 그런 도리안과 자주 대련을 하고, 쥬도를 가르치는 것에 관해 의논도 하면서 조금 친해진 듯했다.
오늘은 함께 쥬도의 훈련 겸해서 따라간 듯했지만, 쥬도는 아마 기겁했을 것이다.
도리안과 쥬도 둘이었다면 그래도 쉴 땐 좀 쉬면서 했을 테니까 말이다.
“솔은 뭐, 어디서 말 타고 돌아다니고 있겠지.”
“정말 말을 좋아하시네요. 말란체 가문의 핏줄이 아니라, 노밀 가문의 핏줄이라고 해도 믿겠어요.”
“뭐, 그 녀석이 특이한 거고.”
주안의 말이 싫지는 않은 듯 워랜이 미소를 지었다.
사실 지금은 거의 노밀 가문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솔이었고, 형제나 다름없다고 느끼는 것이 워랜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두 사람 뭐 하고 계셨어요?”
“페널티 대련.”
“페널티 대련?”
주안이 갸웃하자 워랜이 왼손으로 연습용 검을 잡고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는다.
그것도 모자라 이미 하고 있던 일이라 그런지 워랜의 다리에는 무거운 모래주머니가 채워져 있었다.
“그거 토미나 워랜 경에게 도움이 되는 대련이에요?”
“나름 쓸 만은 해. 왼손으로만 검을 쓸 날이 오지 말라는 법도 없고, 익숙해지면 좋은 법이니까.”
게다가 토미는 오른손잡이 기사들과 대련을 하다가 이렇게 워랜이 왼손으로 상대를 해주니, 그것도 나름대로 경험이 되었다.
세상에 있는 모든 기사가 오른손만 쓰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음, 그러면 전 여기서 좀 구경하다 갈게요. 하던 것 계속해 주세요.”
“응? 안 들어가고?”
“지금은 저도 자유 시간이니까요.”
공부하는 시간, 그리고 엄마와 함께 있는 시간, 쉬는 시간…….
요즘 주안의 일과는 이렇게 딱 정해져 있었다.
작은 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의지이기도 했고, 이렇게 개인적인 시간, 자유 시간도 어기지는 않았다.
공부할 때는 하고, 엄마와 함께 있을 땐 어울려 주며, 쉴 때는 쉬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주안의 모습에 픽 하고 미소를 지은 워랜이 연습용 검을 다시 제대로 쥐자, 토미도 바짝 긴장하며 연습용 검을 들었다.
그리고 두 사람이 다시 대련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며 주안이 미소를 지었다.
“정말, 저 두 사람이 즐겁게 대련을 하는 날이 올 줄이야…….”
두 사람은 단 한 번 검을 섞었고, 그리고 그게 끝이었다.
생과 사를 가르는 워랜과 토미의 결투에서 승자는 토미가 되었지만, 지금의 저 두 사람에게 또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처럼 저렇게, 즐겁게 대련을 하고 검을 나누는 모습이 주안도 참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