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작가의 마마보이 37화
“안 돼! 안 돼! 절대로 안 돼! 난 허락 못 해요!”
“우픕?!”
안젤라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며 주안을 꼬옥 끌어안았고, 그 기습적인 행동에 무방비로 노출된 주안은 엄마에게 안겨 숨이 턱 막혀 버렸다.
하지만 안젤라는 이런 주안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를 도리도리 가로저으며 소리쳤다.
“절대로 안 돼! 우리 주안이를 그딴 곳에 보내자고요? 당신 제정신이에요?!”
“아, 안젤라. 일단 주안이를 좀 놓아주는 게…….”
“시끄러워요!”
안젤라의 서슬 퍼런 시선과 그 차가운 목소리에 주레인 공작이 움찔 놀라 몸을 움츠렸다.
그래도 황성의 재상부의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다.
재상부 내에서도 얼음처럼 차갑고 칼날과 같은 분위기에, 일 처리도 날카로워 재상부 소속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황성 내에서도 주레인 공작을 대하는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작아지는 것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집안에서는 그저 화난 아내를 달래주기도 힘든 가장이었을 뿐이었다.
그런 안쓰러운 아빠를 대신해 주안이 겨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나 말했다.
“어, 엄마. 조금만 진정하세요.”
“주안이 너도 그래. 왜 싫다고 안 하는 거야. 엄마랑 떨어지는 게 그렇게 좋아?”
“그런 게 아니에요.”
“그럼 왜 그러는 거니. 거기가 얼마나 멀고, 얼마나 위험한 장소인지 알고나 있니?”
먼 곳이라는 사실은 알지만,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비록 오래되었다 해도, 이런 동부의 후계자나 그에 준하는 이들로 꾸려진 외교와 문화 사절단이 가서 잘못되었다면, 분명 큰일로 번졌을 것이지만 그런 소문은 들어보지 못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이런 사절단의 안전을 제국에서도 그리고 아스란 왕국에서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제국은 제국대로 제국민들의 고깝지 않은 시선에도 강행한 일이라 철저할 수밖에 없고, 아스란 왕국은 이 사절단이 잘못되면 왕국 자체가 휘청거릴 수 있다 보니 목숨을 걸고 안전을 지킬 것은 뻔했다.
그렇기에 주안은 위험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절대 위험하지는 않을 거예요. 아빠, 그렇죠?”
주안이 아빠에게 묻자, 주레인 공작이 안젤라의 눈치를 살피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 가문뿐만이 아니라 황실에서도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부인.”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주안아, 엄마는 주안이랑 떨어지고 싶지 않단 말이야. 꼭 네가 가지 않더라도…….”
“아뇨, 제가 가야만 해요.”
단번에 엄마인 안젤라의 말을 끊으며 주안이 그런 엄마의 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조용히, 엄마를 바라보며 주안이 말했다.
“이건 저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가문과 제국의 일이에요. 단지 싫다고 해서 회피하거나 거부한다면, 아빠나 엄마 그리고 할아버지와 가문을 지켜주고 있는 모든 분을 욕보이게 만드는 일이에요.”
“주안아…….”
주안이 자신의 품에서 떨어져, 조금 거리를 벌리는 것에 안젤라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리고 주안 역시 엄마가 어떤 심정인지 알고 있는 듯 조심스레 손을 뻗어 엄마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주며 말했다.
“조금 떨어져 있다 해도 저랑 엄마가 영원히 떨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엄마랑 저랑 같이 지낼 시간을 생각해보면 아주 잠깐일 뿐이에요.”
“하지만……. 그래도…….”
“엄마에게만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라, 모두에게 자랑스러운 주안 마르티네스가 되고 싶어요. 가까운 사람들에게 모자라지 않는, 그런 사람 말이에요.”
사실 주안도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 하는 것도 아니었고, 공작가를 떠나 어딘가로 가고 싶지는 않았다.
이대로 집에서, 이렇게 모두와 함께 있는 게 좋았다.
예전과는 달리 정신 나간 짓을 저지르지 않고, 현재 상황을 유지하면 모든 게 잘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주변의 모두는 변해가는데 자신은 그저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것이 너무 초라하게만 느껴졌다.
그렇기에 주안은 이번 일로 그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스스로의 힘으로 공작가의 품에서 벗어나 무언가를 해보지 못했던 자신에게, 하나의 과제를 내리는 셈이었다.
‘나도 과거에 매이지 않고, 앞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 봐야겠지.’
지금 이대로가 아닌,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
과거의 것은 과거의 것일 뿐, 그것을 무서워하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것이다.
원수라면 원수일 수 있는 반역자의 세력이었던 남부 귀족들과 그들에게 동조했던 아스란 왕국.
그들을 마주하는 것으로 과거를 떨쳐 버리고 싶었다.
무섭고도, 두려웠던 과거이자 미래의 일을 계속에서 마음에 두어선 안 되었다.
그것을 잊고 반성하지 않는 게 아닌, 그것에 붙잡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는 멍청이가 되어선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이미 없어진 과거의 일이고, 일어나지 않을 미래의 일이다. 그것을 붙잡고 불타오르는 어리석은 짓을 할 수는 없었다.
변화된 미래는, 그들과 척을 지는 것이 아닌 그들과의 공존 그리고 그들을 품에 안고 가는 미래가 되어야만 한다.
전쟁이 얼마나 비참하고 복수가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주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그 전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돼.’
수많은 이들이 전쟁에 희생되었고, 전쟁이 끝나도 수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고, 병들어 죽었다.
주안이 이 시대로 다시 오기 전까지, 전쟁 이전의 경제력의 반도 회복하지 못했었다.
신왕조가 들어섰지만, 제국의 많은 부분은 갈라졌다.
북부의 귀족 연합은 이미 죽어버린 2황자의 후계자를 앞세워 제국의 복권을 외치며 구 제국령에 대한 침공을 멈추지 않았으며, 서부는 여러 지역으로 쪼개어져 침공군의 좋은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그나마 남부와 동부를 차지한 신왕조는 북부와 서부를 견제하는 것에 군사력을 쏟았기에 민생의 삶은 도저히 나아지지 않았다.
동방 대륙은 동방 대륙대로 슌 제국의 황도를 불태우고 자살한 수호룡 파사로 인해서 어지러운 상태였으니,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대가 너무나 오래 지속되었다.
그리고 이런 서방 대륙 혼란의 중심은 주안이 마르티네스 공작이 되고, 안젤라가 곁에서 섭정을 하며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마르티네스 공작가가 무너지면서 시작된 일…….
그 혼란을 일으킨 속죄는 원흉이었던 주안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이번에는 저를 믿어주세요, 엄마.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믿고 가문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제가 되어 볼게요.”
“주안아…….”
안젤라는 그런 주안의 모습에 무슨 말을 해줘야 할지 몰랐다.
평소처럼 떼를 쓸 수도 있었지만, 지금 자신의 아들에게 그렇게 한다면 아들과의 사이가 조금 어긋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주안은 그저 담담하게, 엄마의 답을 바라는 듯 파란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나는…….”
“부인, 나도 부탁을 해도 되겠소?”
“당신…….”
주레인 공작마저 나서서 안젤라에게 부탁하자, 안젤라의 머뭇거림은 더욱 커졌다.
평소와는 다른 두 부자의 모습은 안젤라에게 너무나 낯설게만 보였고 왠지 자신만 한 걸음 벗어난 그런 사람으로 느껴졌다.
“아이가 하고자 하는 일을 뒤에서 지켜봐 주고 응원하는 일도 매우 즐거운 일이라 생각하오. 그 곁에서 돌봐주는 것보다, 당신도 주안과 조금 거리를 두고 지켜보면 어떻겠소.”
주레인 공작이 싱긋 웃으며 안젤라와 주안을 바라보며 말했다.
“곁에서 보던 것과는 달리, 주안이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오.”
“새로운 모습…….”
이미 몇 번이나 아들인 주안이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던 안젤라였다.
흐뭇하긴 하지만, 자꾸 품에서 떠나가려는 주안의 모습은 보기 괴로웠다.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 것인지 주안이 말했다.
“아주 잠깐일 뿐이에요. 저랑 엄마가 그리고 아빠가 같이 지낼 시간은 앞으로도 많아요. 그리고 전, 절대 엄마나 아빠를 두고, 가문을 두고 떠나는 일이 없을 거예요. 당연하잖아요.”
주안이 밝은 미소를 지어주며, 그리고 당당하게 말했다.
“여긴 제 집이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보금자리인걸요.”
그 말이 응접실을 잔잔하게 울렸고, 안젤라와 주레인 공작의 가슴에 와닿았다.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을 그 곁에서 지켜보는 것만큼 부모로서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안젤라는 그동안 제대로 느껴보지 못했던 그 감정을 오늘, 지금 이 순간 제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아이가 성장해 떠나갈 수 있다는 불안감이 느껴지기보다, 어째서인지 가슴이 따뜻해지고 미소가 지어진다.
“…….”
주안이 엄마의 손을 꼬옥 잡아주자, 흠칫 놀랐던 안젤라가 주안의 미소에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들이 자신을 떠나는 것은 여전히 싫다. 하지만 그럼에도 아들을 믿어주고 응원해 주어야 하는 것이 엄마였고 부모였다.
적어도 남편은 그것을 이미 깨닫고 있는 듯했다.
그저 자신만 몰랐을 뿐.
무엇보다 주안의 그 말, 자신의 집 그리고 보금자리라는 그 말이 안젤라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었다.
……적어도 돌아올 집과 가족. 그 보금자리가 있는 장소를 너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아들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안젤라는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주안에게 고개를 끄덕여 줄 수 있었던 것이었다.
* * *
“하아, 다행이다.”
쉽지 않다고 생각한 엄마의 설득이었으나, 아빠의 도움으로 생각보다 쉽게 허락을 얻었다는 게 주안은 내심 다행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뭐랄까, 두 부모님의 사이가 좋은 듯 나쁜 듯 애매한 관계이긴 하지만, 전보다는 확실히 좋아졌다는 것을 주안도 느끼고 있었다.
게다가 안젤라는 마를렌에 다녀온 뒤로 주안과 함께 자지 않고, 주레인 공작과 방을 같이 쓰는 일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주안의 부탁도 있었지만, 각방을 쓰던 때와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이러다 동생 생기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
나름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을 하였지만, 마르티네스 공작가에는 자손이 매우 귀하기에 그럴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는 않았다.
그래도 동생이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없지는 않았다.
토미와 세라타의 모습이나 워랜과 솔의 관계를 생각해 보면 자신도 그렇게 티격태격 싸우기도 하고, 서로를 이해해 주기도 하는 그런 동생이 있었으면 했다.
“하아…… 어쨌든, 남부라…….”
주안이 걸음을 우뚝 멈추어 서서 복도의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장소이지만, 마를렌의 공작성에서 보았던 마지막 바깥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남부의 역적들을 이끌고 온 마녀, 유우나 맥도넬과 토미로 인해서 파괴된 마를렌 시내의 모습이.
“황도도 그렇게 변했었을까.”
자신은 마를렌의 상황만 보았고, 이후 마를렌을 벗어나지도 못했다.
황도를 점령했던 남부와 유우나 맥도넬 그리고 토미.
지금은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만, 주안은 그들을 생각하면 원망과 분노가 일기보다 그들이 왜 그렇게까지 자신을 싫어했던 것인지가 궁금했다.
토미는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유우나 맥도넬……. 당신은 왜 우리 가문을 그토록 미워했던 거야.”
주안 자신을 살려준 것은 그녀의 배려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
마르티네스 공작가를 무너뜨렸음에도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마지막 후계자인 자신을 살려준 것은, 비굴하게 살아남은 주안이 마르티네스 공작가의 이름을 계속해서 더럽혀 주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런 자신을 지켜주며, 대신 비참해진 그 모습을 보러왔고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개처럼 짖는 주안을 차가운 눈으로 지켜보다 갔다.
“무섭긴 했지만…….”
유우나 맥도넬을 생각하면 아직도 오한이 일었다.
그녀는 정말 무서운 존재였고, 두려운 인물이었다.
신왕조의 여왕이 되어 가장 먼저 한 일은…… 함께 반역을 일으켰던 남부 귀족들과 구 아스란 왕국 귀족들의 청소였다.
그리고 그것에 가장 앞장섰던 것은 토미였고.
토미의 절대적인 힘 앞에서 남부와 아스란 왕국 귀족들의 힘은 무의미했다.
절대 왕정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이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고, 그 때문에 그녀는 남부의 마녀라고 불렸다.
그런 소문을 들었기에 주안도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몰라 두려움 속에서 지내야만 했었다.
“지금은 당신도 그런 마녀는 아니겠지? 나도 변한 만큼…… 토미의 미래도 변한 만큼, 당신도 변했으면 좋겠어.”
서로 미워하는 일 없이, 피를 보는 일 없이 그렇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주안은 남부로, 아스란 왕국으로 반드시 갈 생각이었다.
외교, 그리고 평화…….
아스란 왕국만이 아니라 남부와도 그게 반드시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