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공작가의 마마보이-35화 (35/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35화

“어때? 말값은 적당하지?”

“뭐, 모자라진 않네.”

워랜이 짐 마차를 끌고 가기 위해 데리고 왔던 말은 마 시장에서 팔기보단 공작가에서 직접 구매하는 쪽으로 결정 났다.

노밀 자작가의 말은 짐 마차를 끄는 말이라도 명마에 속하였기에 그 가격은 상당했고, 값도 나쁘지 않게 쳐줘서 그런지 워랜도 별로 불만이 없었다.

단지 솔은 소니아 표 사채에 가까운 돈을 빌리는 바람에 매우 슬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워랜은 그런 솔에게 말값으로 받은 돈 중 대충 절반 정도를 덜어 솔의 가방에 집어넣어 주었다.

“도련님?”

“내 건 이자 없는 안심 이용 가능한 돈이야.”

그 말에 솔이 반색하며 소니아에게 받았던 돈주머니를 그대로 다시 소니아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빌린 돈 반납이요.”

“네, 네, 고객님. 원금 잘 받았습니다. 하지만 이자로 2할은 더해서 주셔야죠.”

“빌린 지 5분도 안 지났잖아요?!”

“선이자 안 뗀 것만 해도 다행으로 아세요, 고객님.”

“완전 사채업자야!”

티격태격 싸우는 솔과 소니아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쉰 워랜은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무시하고 정문을 빠져나갔다.

* * *

“짜잔~! 첫 번째 코스는 너희들을 차가운 도시 남자로 만들어줄 옷 가게!”

소니아가 지나치게 밝은 표정으로 방긋 웃으며, 과장된 몸짓으로 크고 화려한 외향의 건물 앞에 서서, 입구를 두 손으로 가리키며, 워랜과 솔에게 말했다.

5층짜리 건물로 황도에서 쇼핑으로 가장 유명한 장소였으며, 최신 유행의 선두주자로 평가를 받는 장소였다.

옷뿐만이 아니라 구두나 모자, 액세서리나 향수 같은 자신을 꾸밀 수 있는 다양한 물건들이 구비되어 있어 이 가게를 갔다 저 가게를 갔다 할 필요가 없는 매우 편의성이 높은 곳이었다.

단지…….

“더럽게 비싸 보이네.”

“드, 들어가는 사람들도 우리랑 완전 다른 세상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나름 자작가와 남작가의 자제들이지만, 그들의 옷차림은 황도에 사는 평민들보다 못해 보였다.

어쩔 수 없는 것이, 고향이 워낙 시골이기도 했고, 마를렌을 떠나기 전 옷을 몇 벌인가 사긴 했지만, 죄다 여행의 편의를 위해 맞춘 옷들이라 일상생활에서는 편하다 해도 화려함과 나를 꾸며서 보여준다는 것에서는 빵점짜리 옷들이었다.

“당연히 비싸지. 그래도 너희 돈으로는 충분히 구할 수 있어.”

“진짜? 몇 벌이나?”

“한…… 두 벌 정도?”

“더럽게 비싸잖아?! 여기서 안 사!”

지금 워랜과 솔에게 쥐어져 있는 돈도 결코 적은 금액이 아니었으며, 몇 달은 놀고먹어도 될 돈이었다.

그런데 그런 돈을 겨우 옷 두 벌을 사는 것으로 탕진하라는 소니아의 말에 워랜은 버럭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소니아는 이런 워랜의 행동에 입술을 삐죽였다.

“기껏 제일 좋은 곳으로 데리고 왔더니…….”

“네가 평소에 가는 곳 말고 우리가 갈 만한 곳을 데리고 가달라고. 저딴 옷 두 벌에 솔이 굶는 걸 보고 싶은 거냐?”

“어머? 저택에서 밥은 제대로 주는데?”

“그런 문제가 아니지. 간식 생각은 안 하냐? 하루 다섯 끼는 먹고 간식도 먹어줘야 하는 게 솔이라고.”

“저 그렇게까지 안 먹거든요?!”

“잘됐네. 그럼 살도 빼고 좋잖아.”

“안 좋아요!”

옷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솔, 자신에 대한 욕을 하는 것 같아 기분이 매우 좋지 않았다.

예전부터 그랬지만, 두 사람이 싸울 때 같이 있으면 이상하게 이야기가 자신에게로 향해 기분이 정말 나쁜 솔이었다.

하지만 워랜과 소니아, 두 사람은 그러거나 말거나 투덕거리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주머니 사정은 뻔하거든? 그냥 대충 적당히 입을 옷만 사면 되잖아. 여기 시장은 어디 있는 거야?”

“에이, 시장은 별론데…….”

“우리 입장에서는 여기가 별로니까, 빨리 안내나 해.”

“예이, 예이. 에효, 이래서 시골 청년들은 도시의 유행을 몰라요.”

“……유행이 아니라 돈 지랄이겠지.”

하지만 소니아는 워랜의 중얼거림은 무시하고,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살랑살랑 가로저은 후 앞서가 버린다.

“하여튼 돈을 아낄 줄 몰라. 원래 저러진 않았잖아.”

안젤라를 따라 다니며 눈이 매우 높아지고, 그만큼 유행에도 민감해졌으며 더욱이 돈도 충분히 벌어서 그런지, 씀씀이가 굉장히 커진 소니아였다.

3년의 세월은 이런 부분에서 큰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 * *

소니아는 결국 투덜거리면서도 워랜과 솔을 데리고 시장으로 향했다.

시장이기는 하나 황도에 자리를 잡고 있어서인지 전체적인 물가는 꽤나 높은 편이었다.

특히 물고기나 소금, 육류 제품 등등은 쉽게 구할 수 있는 동부가 더 싸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많았다.

“진짜 그런 것만 사도 되겠어?”

“우리가 어디 귀족가에 놀러 갈 것도 아닌데, 이 정도면 충분하지.”

“……전 완전 만족인데. 진짜로 저한테 맞는 옷을 팔고 있을 줄은 몰랐어요.”

“그야, 여기 의외로 솔 너 같은 몸매의 사람들이 많거든.”

“잘 먹고 잘사는 증거인가…….”

워랜도 그렇지만 솔은 완전 만족한 듯했다.

동부, 특히 노밀 자작가의 영지 내에서 솔만큼 통통한 사람은 찾기가 매우 어려웠다.

말이 시골이지 척박하고 외지고 가난한 그런 장소는 아니었으며, 영주민들 역시 다수가 목축업에 종사하여, 많이 움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솔과 같은 몸매는 나오기가 힘들었다.

통통한 사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게에서 그들을 위한 옷을 내걸고 판매할 만큼은 아니었다.

그래서 옷을 살 때는 맞춰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지만, 이곳은 마음에 꼭 드는 옷들도 자신의 사이즈로 팔고 있었고, 가격도 크게 부담스럽지 않아 몇 벌이나 사버린 솔이었다.

이렇게 만족하는 솔과 마찬가지로 워랜 역시 새 옷이나 새 신발이 생각보다 질도 좋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어서 큰 불만이 없었다.

“이게 대도시의 장점이지. 구할 수 있는 건 뭐든 다 구할 수 있다. 조금 비싸긴 해도 비싼 값도 한다.”

“뭐, 그건 마를렌을 보면 알지만…….”

마를렌 같은 경우는 비싸고 신기한 것들이 많다면 황도 같은 대도시는 비싸고 실용적인 것이 많았다.

물론 두 곳 다 비싸고 허세 가득한 것도 상당했지만 말이다.

옷에 대한 쇼핑을 끝낸 후 소니아는 간단히 요기라도 할 생각인지 시장 쪽에 위치한 작은 음식점으로 워랜과 솔을 데리고 갔다.

거침없이 가게에 들어서는 그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한두 번 방문한 장소가 아닌 듯했다.

게다가 자리를 잡고 주문하는 모습도 매우 익숙해서 워랜이 갸웃하며 물었다.

“여긴 차가운 도시 여자가 방문할 만한 그런 가게는 아니지 않아?”

식사 시간 때가 아니라 그런지 사람은 몇 없었고, 그마저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뿐인 그런 한적한 장소였다.

주변을 둘러보던 워랜은 이곳의 모습이나 분위기, 방문한 사람들의 모습과 소니아를 비교해 본다면, 소니아 같은 여성들이 오긴 조금 그런 곳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워랜의 말에 소니아가 무슨 말이냐는 듯 팔짱을 끼며 당당하게 말했다.

“어머, 모르는 말씀. 맛있는 곳에서 맛있는 음식을 원 없이 먹는 것에 남녀가 어디 있어.”

“입맛은 그대로인가 보네.”

어렸을 때부터 식탐이 남달랐던 솔과 함께 놀던 사이라 그런지, 워랜도 그렇고 소니아도 먹성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특히 소니아는 먹는 양은 적었지만, 맛있는 것은 그 어떤 음식이라도 가리지 않고 잘 먹었던 것이 떠올라, 워랜이 픽 하고 웃었다.

“그런데 소니아 누나. 그 책은 왜 사신 거예요?”

마법사가 공부를 위해 책을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도 아니지만, 소니아가 산 책은 연애 소설 비슷한 것이었다.

솔의 질문에 소니아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흐흥~ 사람은 밥만 먹고 살 수 있는 동물이 아니거든. 이런 감성도 먹고 살아야지. 누구처럼 게으른 그런 사람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 누구가 설마 나냐?”

“어머, 찔리시나 봐요?”

“쳇.”

소니아가 실실 웃으며 워랜을 흘겨보자, 답하기도 귀찮다는 듯 워랜이 작게 혀를 차며 물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잡담을 나누는 사이, 소니아가 주문한 음식이 잔뜩 나왔다.

“우와~ 꼬치?!”

고기와 채소 등으로 만들어진 잘 구워낸 꼬치가 접시에 가득 담겨 테이블 위에 놓이자 솔의 눈이 심하게 반짝였다.

그리고 뒤이어 각자의 앞에 시원한 맥주까지 놓이자 솔은 더 이상 못 참겠다는 듯 양손에 꼬치를 하나씩 집어 들고 잽싸게 먹기 시작했다.

워랜은 맥주로 간단히 목을 축인 뒤 꼬치를 집어 들었다.

“너 확실히 일부러 여기 데리고 온 거구나?”

“뭐, 그렇지. 고향 맛도 느낄 수 있으니까.”

“너희 집 맛보단 우리 집 맛인데?”

이런 황도에서 동부의 요리가 이런 작은 시장의 음식점에까지 전파되어 있었을 줄은 몰랐기에 솔직히 워랜도 조금 놀랐다.

황도는 처음이라 그럴 수도 있지만, 사실 여러 지역의 요리점들이 황도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동부를 대표하는 음식점으로는 물고기 요리점과 꼬치 요리점이 유명했고, 소니아는 그중에서도 꼬치 요리점에 데려온 것이었다.

처음 황도를 방문하는 워랜과 솔을 위한 배려였다.

“어때? 이 집 괜찮지?”

“나쁘진 않네. 고기의 질은 좀 떨어져도 맛은 있어.”

“고기야 어쩔 수 없지. 너희 집에서는 직접 잡아서 곧바로 만들어 먹었잖아. 아니, 대부분의 요리점이 당일 잡은 것으로 요리를 했으니까.”

노밀가문은 말뿐만이 아니라 양이나 소도 잔뜩 키웠다.

단지 노밀가뿐만이 아니라 근처 내륙 지방의 마르티네스 공작령 남부에는 이런 목축업에 종사하는 영지가 많았다.

이 때문에 동부에서는 이런 고기 요리는 매우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게다가 동부 항구들로 인해서 향신료를 구하기도 쉬운 편이라 각종 향신료를 이용해 맛을 내었기에 동부에 방문하면 반드시 꼬치 요리와 물고기 요리를 먹어봐야 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워랜이 먹고 있는 이 꼬치 요리는 간단한 소금 간과 소스로만 양념이 되어 있지만, 동부의 전통 꼬치 요리점은 다양한 향신료와 소스를 이용했었다.

하지만 이곳의 것도 썩 나쁘지 않다는 듯 워랜도 만족하며 꼬치를 먹고 맥주를 마셨다.

이런 워랜과 솔의 모습을 보던 소니아 역시 미소를 지으며 맥주와 꼬치를 집어 들었다.

“아앙~ 냠!”

“참 복스럽게도 먹네.”

“헤헷.”

꼬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고 우물거린 뒤 삼키고, 맥주도 벌컥벌컥 들이켜는 소니아.

예쁘장한 아가씨치고는 꽤나 터프한 먹성이긴 했지만, 워랜에겐 꽤나 익숙한 모습이었고,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기도 했다.

게다가 솔도 넉넉하게 주문한 꼬치를 입에 가득 베어 물고 있고, 서로 누가 많이 먹나 마치 내기라도 하는 듯 경쟁적으로 먹기 시작한다.

“잘들 먹는다, 잘들 먹어.”

먼 타향살이가 될 거라 생각을 했는데, 왠지 고향의 느낌이 나는 편안함에 워랜이 미소를 지었다.

* * *

“그런데 워랜.”

“응?”

“너 진짜 바스티아노 백작님 만나 볼 거야?”

“뭐, 그렇지. 마리우스 영감님한테 얼마나 배우셨나 궁금하기도 하고.”

워랜이 황도까지 따라온 진짜 이유는 모르지만, 바스티아노 백작과의 만남을 원한다는 것을 주안에게 들어 알고 있었다.

게으름뱅이로 유명하고, 소니아가 곁에서 오래 지켜본 워랜은 실제로 도 그 말이 정말 잘 어울리는 남자였다.

유일하게 즐겨 하는 것이라면 솔을 괴롭히는 것 정도?

그것은 소니아도 같이하던 행동들이었긴 했지만 말이다.

그 외에는 딱히 흥미를 가지고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이고 행동에 옮기는 것은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분 거람…….”

“뭐가?”

“아무것도 아냐. 그럼 그 후에는 뭐 하려고?”

“글쎄다. 뭘 하면 좋으려나……. 일단 토미 녀석 검이나 좀 가르치고 싶기는 하지만…….”

“……하루에 30분도 안 봐주면서 그게 가르치는 거였어?”

“나한테는 너무나 소중한 시간이란다.”

황도로 오면서 간간이 토미를 가르치고 있었던 것을 봐서 알고 있었지만, 그게 진짜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가 없었다.

확실히 워랜의 재능은 남다르고 그것을 주변에서 역시 다들 잘 알고는 있지만, 이 지나친 자신감이 독이 될 것만 같았다.

소니아가 그런 걱정하는 것을 아는 것인지, 모르는 것인지 워랜은 태평했고, 그런 워랜을 보며 솔이 갸웃하며 물었다.

“네? 집에 안 가시려고요?”

“여기까지 왔는데 바로 집에 가기도 좀 그렇지. 잔소리하는 어머니도 없고, 침대도 푹신하고 목욕탕도 크고…….”

“여기서도 게으름 피우시려고요?!”

“그러기에는 돈이 너무 없구나……. 돈 남은 거 내놔.”

“줬다 뺏는 게 어디 있어요?! 그보다 이 돈 없으면 저도 쫄쫄 굶는단 말이에요.”

“공작가에서 밥은 잘 주잖아. 굶는 일은 없어.”

“우와, 치사해…….”

간식 비용 어쩌고 할 때는 언제고, 다시 돈을 빼앗으려 하다니…….

일부러 놀리려고 그러는 것은 알지만 엄청나게 쪼잔하다.

“어휴, 완전 짐 덩이들만 데리고 왔네…….”

그래도 친한 소꿉친구들이 와서 좋았는데,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질려 버린 소니아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소니아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그럼 내가 조언 하나 해줄까?”

“……너한테 돈 안 빌려.”

“사채업자…….”

“그, 그런 거 아니거든?! 그리고 이자 안 받았잖아!”

워랜과 솔이 소니아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며 매우 경계하자, 소니아의 볼이 발그레 물들었다.

장난 좀 쳤다고, 자신을 그런 무지막지한 사람들과 똑같이 취급하는 게 정말 싫었다.

“놀 생각 말고 여기 왔으니까 할 일을 좀 찾아보면 되잖아?”

“난 그런 거 딱 질색이야. 그냥 토미, 그 아이 검술 선생님 하면 안 돼?”

“30분짜리 검술 선생님한테 누가 돈을 줘, 멍청아. 무엇보다 토미도 돈은 별로 없거든? 애한테 빌붙으려 하지 마.”

주안의 하인 일을 하면서 급여를 충분히 받아서 생활 자체에는 전혀 문제가 없는 토미이지만, 애초에 30분짜리 검술 스승을 구할 정도로 멍청한 아이도 아니었다.

게다가 그걸 검술 스승이라고 보기도 힘들고, 뜬금없이 나타나 토미를 괴롭히고 바람과 같이 사라지는 것은 그냥 심보 나쁜 아저씨의 주책일 뿐이었다.

“음……. 집에 연락해서 돈 좀 보내 달라고 할까.”

“에휴, 결국 아무것도 안 하고 놀 생각이구나.”

“아니면 솔이 저택 청소라도 하면 먹고 살 수는 있지 않으려나.”

“제가요?!”

뜬금없는 워랜의 말에 솔이 깜짝 놀라 소리쳤지만,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차라리 너도 안젤라 님 호위로 일해보는 게 어때? 너 정도면 급여도 상당할 텐데.”

“어디에 매여 있는 건 사양이야. 안젤라 님이라면 더더욱 싫고.”

“어휴, 정말…….”

주안에 대한 인식은 약간 바뀌긴 했어도 아직 안젤라는 아니라는 듯, 워랜은 단번에 소니아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럴 줄 알고 있었기에 소니아 역시 딱히 아쉬워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집에나 가자. 피곤하고, 졸리네.”

“뭐?!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집에 가?!”

“아, 아직 노점상 구역도 안 갔는데…….”

워랜의 말에 소니아가 발끈했고 솔이 침울해졌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워랜이 휘적휘적 앞서 나가며 말했다.

“살 거 사고, 먹을 거 먹었고, 볼 거 봤으니 이제 황도 구경은 끝. 낮잠 잘 시간이야.”

“우와, 완전 게을러. 알던 것보다 더 게을러졌어!”

“시끄러. 놀 거면 솔이랑 둘이서 놀던가.”

“나도 그건 싫거든?!”

“두 사람 다 너무한 거 아니에요? 사람이 옆에 있는데…….”

소니아가 황급히 워랜을 따라갔지만, 뒤에서 들려오는 솔의 불만 어린 소리를 싹 무시해 버렸다.

익숙하긴 해도, 이번에는 솔도 조금 불만이 큰 듯했다. 안 그래도 빵빵한 볼때기가 빨개져 버리니, 완전 토마토처럼 되어버렸다.

“내일은 주안 공자한테 부탁해서 황궁에라도 놀러 갈까…….”

“무슨 황궁이 너희 집 옆집처럼 놀러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곳으로 알아? 절차를 밟아도 오래 걸린다고.”

“안젤라 님 찬스 카드 발동하면 되지.”

“너 안젤라 님 싫어했잖아?!”

“싫어하는 것과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른 법이지.”

“……다 일러 버릴까 보다.”

담담히 말하는 워랜의 그 무책임한 말에 소니아도 다 포기했다는 듯 어깨를 추욱 늘어뜨린 채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조금은 놀고 싶었는데…….”

소니아는 워랜과 솔에게 황도의 이곳저곳을 소개시켜 주고, 마탑에도 들러 스승님과 만나게도 해주며 황도의 차가운 여자이자 능력 있는 여성이 되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워랜의 게으름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소니아는, 워랜이 변하지 않는 것은 좋지만, 이런 게으름은 좀 고쳤으면 하는 바람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