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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33화 (33/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33화

마르티네스 공작령의 공작성이 있는 마를렌에서 황도로 다시 가는 시간은 올 때보다 많이 단축되었다.

갈 때와는 달리 가신들의 영지에 인사차 들릴 필요가 없었기에 크게 시간을 잡아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황도를 떠나 마르티네스 공작령으로 갔다 다시 황도로 복귀했을 때는 계절이 바뀌어 있었다.

완연한 여름의 날씨에서 가을로 접어든 날씨라 그런지 저녁쯤이 되면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갑갑한 마차에만 있는 것이 조금 지겨워서 그런지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인 솔과 워랜이 타고 있는 마차의 마부석 옆자리에 주안도 가끔 앉아 갔다.

솔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았고, 말 타는 것에 매우 익숙해진 토미는 더 이상 달리지 않아도 되어서 그런지 이런 주안의 곁으로 다가와 가끔 잡담도 했다.

피터는 여전히 안젤라와 주레인 공작이 타고 있는 마차에서 전혀 떨어질 생각은 없어 보였지만, 소니아는 또 그게 아니었다.

마치, 솔과 워랜이 가져온 마차가 모임의 장소라도 되는 듯 이곳에 모여 잡담도 나누고, 가끔 짐 마차에 올라타 카드 게임도 하는 등 나름 알찬 시간을 보내었다.

그저, 지겹도록 잠만 자는 워랜과 피터 때문에 미친 듯이 걷고 달리고 있는 쥬도와 그런 쥬도 곁을 떠나지 못하는 도리안만 빼고 말이다.

“흐응……. 이제 곧 황도구나.”

“응? 워랜 경, 일어났어요?”

마부석에 앉아 솔과 잡담을 나누던 주안이 짐칸 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주안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길게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켜는 워랜의 모습에 쓴 웃음을 지었다.

‘왜 동부의 게으름뱅이인지, 진짜 제대로 알겠어.’

어쩜 사람이 저렇게 잠을 많이 잘 수 있는 것인지, 첫날에는 그러려니 하였고 둘째 날에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했으며, 셋째 날로 접어들었을 땐 무척 걱정되었다.

때문에 소니아가 이런 워랜의 엉덩이를 걷어차서 억지로 깨우기도 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다 소용이 없다는 듯, 워랜은 정말 밥 먹는 시간, 가끔 쉬는 시간, 토미를 습격하는 시간을 빼고는 잠만 잤다.

게다가 토미를 괴롭히는 시간도 길지 않았으며, 하다가 재미없으면 그만두고 하기 싫을 땐 하지도 않았다.

이제는 그러려니 할 정도로 익숙해져 버렸지만 말이다.

“그런데 용케 황도 근처까지 온 건 아셨네요?”

“대충 시간을 계산해 보니 그럴 것 같아서 말이지.”

“……잠만 잔 거 아니셨어요?”

“자면서도 생각은 끝없이 할 수 있거든. 일종의 명상이라고 할까.”

그거참 신기한 능력인데 별로 부럽지는 않았다.

“그보다 황도는 뭐든 다 크다고 하던데, 진짜야?”

“식당도 엄청 크고, 노점상 구역도 따로 있을 정도로 되게 크다고 그러던데…… 진짜예요? 주안 공자님.”

“넌 어쩜 아직도 먹을 거 타령이냐…….”

“아, 아파요, 워랜 도련님…….”

짐칸에서 손을 뻗어 솔의 뱃살을 잡고 죽죽 잡아당기는 워랜의 행동에 주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주안은 한편으론 자신도 워랜처럼 솔의 뱃살이나 볼때기를 한번 죽죽 잡아당겨 보고 싶다는 이상한 생각을 했다.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며 워랜에게 주안이 말했다.

“음, 확실히 마를렌과 비교해도 황도는 뭐든 다 크긴 하죠. 하지만 계획 없이 계속 확장하다 보니 좀 난잡하기도 해요.”

“헤에, 그래?”

“그리고 맛있는 식당이라거나, 노점도 엄청 많아요. 나중에 저랑 같이 가실래요? 제가 황도에 오신 기념으로 대접해 드릴게요.”

“지, 진짜요?!”

눈을 반짝이며 좋아하는 솔의 모습에 이번에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전의 그 무시무시하던 솔의 모습은 다 거짓말이라는 듯, 너무나 순수해 보였다.

한편으로는 토미나 솔, 느긋한 워랜까지…… 그 모습이 돌아오기 전 자신을 경멸하고 분노하며 노려보던 그 모습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라 ‘이전의 자신이 정말 문제가 많긴 했구나’라고 새삼 느낄 수밖에 없었다.

“뭐, 난 그런 것보다 마리우스 영감님한테 검을 배웠다는 바스티아노 백작님이나 좀 봤으면 좋겠는데.”

“네? 바스티아노 백작님을요?”

뜬금없는 그 말에 주안과 솔이 놀란 눈으로 워랜을 바라본다.

그가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이 굉장히 생소하기 때문이었다.

“바스티아노 백작님은 왜…….”

“별건 없어. 그 영감님이 가끔 가르쳤다고 들었고 그래도 제국, 아니, 서방 대륙 제일 검에 가깝잖아. ……그 영감님이 없는 한은 말이야.”

“헤에…….”

확실히 현재 황실 근위대를 이끌고 그 단장직을 맡은 바스티아노 백작은 제국만이 아닌, 서방 대륙 제일 검이라 평가해도 다들 납득할 것이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다시 서방 대륙으로 돌아온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런 바스티아노 백작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워랜의 모습에 주안도 그렇지만, 솔은 굉장히 놀란 듯했다.

“설마, 바스티아노 백작님한테도 토미에게 한 것처럼 냅다 검을 휘두르려고 그러시는 건 아니죠?”

“내가 미쳤냐. 그 영감님도 어쩌지 못했는데, 그 영감님보다 더 무식하다고 알려진 바스티아노 백작님한테 검을 휘두르게?”

“무식…….”

딱히 틀린 말은 아닌지만, 주안은 뭐라 말을 못 했다.

바스티아노 백작의 검을 본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는 말이었고, 공공연히 그를 평할 때 나오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서방 검술이 단순하다 해도, 바스티아노 백작처럼 단순할 수 없었다.

동방 대륙에서 무식하게 몸만 키운 놈들이라고 서방 대륙 기사와 검사들을 칭할 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바스티아노 백작 때문이었다.

그는 정말, 서방 검술을 단순하고 무식하게 배운 인물로 유명했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잖아. 어떤 인간이 검을 맨몸으로 받아 튕겨내고, 다시 휘두른 검을 그냥 붙잡아 상대를 박치기로 날려 버리냐고.”

그리고 바스티아노 백작이 유명한 이유는, 워랜의 말처럼 황실 근위대 입단 당시 테스트를 보던 황실 근위대 기사와의 대련에서 검을 손으로 무식하게 쳐 내고 상대를 박치기로 날려 버렸던 것 때문이었다.

그 무식함에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박장대소를 하였고, 그를 직접 데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재의 바스티아노 백작이 탄생할 수 있었고, 그를 황실 근위대 단장에 올려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서방의 검을 배운 사람들의 몸이 랭크가 오르면 오를수록 무식하게 단단해진다고 해도, 같은 단계에 이른 사람의 검을 맨몸으로 받아내는 인간은 그 사람밖에 없을 거야.”

랭크가 3에 이르면 육체가 눈에 띄게 강화된다.

랭크 4이상으로 오르면 단순히 근력이 오르는 게 아니라 육체가 단단해지고, 한계 이상의 힘을 낼 때 육체의 부담이 현저하게 줄어든다.

게다가 워랜의 말처럼, 이 서방의 검술을 배우고 랭크가 4 이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맨몸으로 검을 튕겨내는 미친 인간들이 가끔 등장하게 된다.

하지만 최대한 충격을 흡수하면서 검을 빗겨나게 하는 것이지, 일부러 몸을 들이밀 정도로 멍청한 인간들은 없다.

찌르든 휘두르든 몸부터 들이미는 인간은 바스티아노 백작이 유일했다.

그래서 그는 황실 근위대에 지급되는 마법 처리가 된 갑옷은 필요도 없었고, 지급받지도 않았다.

몸에 거슬린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마리우스 영감님이 그러시더라고. 우리 서방의 검술은, 아니, 육체 강화는 동방의 사람들이 외공이라고 한다고 말이야.”

“외공이라…….”

처음 들어보는 단어라 갸웃하는 주안과 솔에게 워랜이 말했다.

“그 영감님도 사실 그 부분은 잘 모른다나……. 단지, 동방도 우리 검술처럼 몸이 무식하게 단련되는 기술이 있다고만 했으니까. 뭐, 주류는 내공이라는 것이지만.”

내공이라는 것은 주안도 조금은 들어서 알고 있었다.

이것을 극한으로 단련한 존재가 바로 토미였으니까, 모를 수가 없었다.

서방의 검과는 정말 상반된 성향을 가진 동방의 검은 자연의 기를 몸에 쌓아 그것을 사용한다고 하였으며, 그것은 속도와 파괴력 그리고 의외성을 동시에 나타내는 힘이라고 한다.

검이 갑자기 수십 개로 변화한다거나, 한 걸음 움직였을 뿐이지만 열 걸음 밖으로 이동을 한다거나, 물 위를 뛰어다니거나 단단한 쇠를 잘라 버린다거나…….

서방의 검은 그런 것까지 할 수는 없었다.

수십 개의 검을 만들기보단 하나의 검으로 수십 개의 검과 같은 파괴력을 내고, 열 걸음 밖의 적은 손에 잡히는 것을 이용해 무식한 힘으로 던져 저격해 버리거나, 물 위를 뛰어다니기보단 물을 가르고 달려갔고, 단단한 쇠가 있으면 손으로 잡아 찢어버린다.

왜 서방의 검을 단순하다고, 그리고 그 정점에 서 있는 바스티아노 백작을 짐승 같은 놈이라 칭하는 것인지 이해할 만도 했다.

실제로 어중간한 내공을 쌓은 동방의 검사는 서방의 무식한 몸을 가진 검사를 이기기 매우 힘들었다.

최정점에 위치한 기사와 검사들의 숫자와 실력에서 확실히 밀려도 그 아래에 다수의 무식한 이들이 버티고 있는 서방을 동방 대륙의 존재들이 넘보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공이든 외공이든 몸에 맞는 사람이 입어야 잘 어울리는 거지. 바스티아노 백작은 서방의 검이 매우 잘 어울리는 옷이고, 마리우스 그 영감님에겐 어색한 옷이고 말이야.”

“그리고 워랜 경도 마찬가지죠?”

“뭐, 그렇지. 그리고 토미 녀석도 그렇고.”

모두가 똑같을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동방에서도 내공이라는 것과 외공이라는 것이 분류되어 있는 것일 테니까.

안타깝게도 이곳 서방 대륙은 동방 대륙처럼 다양함이 부족했다.

모두가 똑같이 배울 수 있는 범용성 높은 검술이 마냥 좋은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주안도 깨달았고, 워랜은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게다가 이러한 범용성 높은 서방의 검은 랭크 6이 한계였으며,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선 매우 특별한 재능이 필요했다.

그 때문에 검을 배운다는 이들은 이 부분을 고려해야만 했다.

서방 대륙에서 강자들의 숫자가 부족한 것은 바로 이 재능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럼 바스티아노 백작님을 만나려는 이유가…….”

“일단은 마리우스 그 영감님에게 뭘 얼마나 배웠는지 좀 알고 싶어서. 그땐 영 귀찮고 괴롭히기만 해서 대충했지만…… 토미 녀석을 상대하다 보니 나도 부족한 게 많다 싶었거든.”

“헤에, 그렇군요.”

사실 워랜 역시 토미만큼이나 검을 제대로 배운 사람은 아니었다.

서방의 검과 훈련은 몸에 맞지 않았기에 자신만의 방법 그리고 마음이 가는 대로 본능에 따라 검을 휘두르는 게 다였다.

그럼에도 그는 충분히 강화된 육체와 검에 자신만의 힘을 씌울 수 있는 랭크 6의 검사였다.

거기에 더불어 자신만의 직감과 동체 시력, 유연한 몸은 워랜의 무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육체의 능력만 대단할 뿐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검이다.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은 그 부분을 고려해서 워랜을 상대할 때 철저하게 기본적인, 아주 기초적인 검술로 상대했으며 집중적으로 그 부분을 알려주고 고쳐주려 했었다.

문제는 워랜이 그것을 귀담아듣지 않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쓸 만하다고 생각하는 부분만 빼내어 썼다는 것이다.

그리고 최근 토미를 상대해 주다 보니 그 스스로도 이 부분이 조금 부실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그렇기에 워랜은 바스티아노 백작에게서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이 어떤 방식으로 그에게 도움을 주고 배움을 내렸는지 그게 궁금했다.

만약 배울 수 있는 게 있다면, 이번에는 조금 진지하게 배워볼까 하는 생각도 할 정도였다.

“황성으로 갈 일이 있으면 함께 가도록 해요. 아마 엄마에게 부탁하면 가능할 거예요.”

“역시 전 황녀님의 힘이면 그 어려운 황성 입성도 쉽구만.”

“화, 황성……. 저는 무리예요. 안 갈 거니까 빼주세요.”

새파랗게 질린 채 마차를 모는 솔의 모습에 주안과 워랜이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워랜이 억지로 솔을 끌고 가려 해도, 이번에는 주안이 꼭 말려주겠다고 작게 다짐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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