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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가의 마마보이-32화 (32/281)

공작가의 마마보이 32화

벡브란 전대 공작의 생일 파티는 매우 성대하게 끝이 났다.

하루 일정의, 가족들과 함께 조촐하게 진행하려던 것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파티가 되고, 그것도 모자라 일주일이나 기간을 늘려 공작성만이 아닌 마를렌 시의 축제로 바뀌어 진행되었다.

그리고 처음에는 의아해하던 마를렌 시의 주민들도, 가신들도, 연락을 받은 영주들도, 이내 벡브란 전대 공작이 왜 그토록 싫어하던 파티를, 그것도 일주일이나 진행했던 것인지 알게 되었다.

주안 마르티네스.

사실상 이 파티의 진짜 주인공은 바로 이 어리고 소문이 좋지 못했던 후계자였다.

그의 변한 모습에 많은 이들이 다행스러워했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은 축제를 매우 즐겁게 즐길 수가 있었다.

그들이 올 때, 공작가 일행을 맞이했던 것은 순수하게 공작성에 있던 이들뿐이었지만, 그들이 떠나는 날, 공작성 앞에서 수많은 인파가 그들을 배웅했다.

“할아버지, 그럼 이만 가보도록 할게요.”

“그래, 그러려무나.”

허허 웃는 벡브란 전대 공작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공손하게 인사를 하는 주안.

그 모습에 아직도 저 아이가 작년에 할아버지 호통 한 번에 오줌을 싸던 그 아이인 것인지, 의심하는 이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파티 내내 주안은 여러 영주를 만났고, 여러 가신을 만났으며, 여러 기사도 만났으며, 대상인들도 만났다.

그리고 동방의 귀족과 대상인들도 안면을 틀 수 있었던 매우 귀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파티의 마지막 날의 주인공은 벡브란 전대 공작이 아닌 주안이었다.

벡브란 전대 공작은 주안을 제대로 소개시켜 주기 위해서 주안을 앞세웠다.

여타 가신들이나 영주들 그리고 대상인들이 이런 주안의 변화한 모습을 제대로 확인하기 위해 앞장서서 인사를 하러 오는 바람에 주안도 꽤나 고생하였다.

낯이 익은 이들에게는 억지로 기억을 짜내 인사를 하고, 기억나지 않는 이들은 할아버지의 소개로 답을 해주며, 대상인들에겐 나름 의연한 태도로 대했다.

단지, 자신을 원망하고 등을 돌렸던 이들과 마주할 때는 주안의 안색이 무척 좋지 않았지만 말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매우 피곤한 일정이긴 했지만, 이곳에 온 것이 절대 후회가 되지 않는 주안이었다.

“가론 자작님도 잘 계세요. 지금처럼 쭈욱, 할아버지 말동무도 해드리고 곁에 있어 주세요.”

“걱정 마십시오. 이 어르신을 모시는 거야 이제 일도 아니니까요.”

멋지게 기른 콧수염을 쓰다듬으며 가론 자작이 허허 웃어주었다.

하지만 그 곁에 계신 그 어르신이 잔뜩 얼굴을 찌푸린 채 흘겨보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는 듯, 아니,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듯했다.

어쨌거나 할아버지인 벡브란 전대 공작의 곁에서 말동무도 하고, 같이 어울려 주는 것은 가론 자작뿐이었기에 그가 없다면 할아버지가 매우 쓸쓸하다는 것을 주안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보다, 진짜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뭐가요?”

“……저 녀석들 말입니다.”

가론 자작이 미소를 짓다, 슬쩍 다른 곳을 흘겨보며 주안에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가론 자작의 시선을 따라 주안도 고개를 돌렸다,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곳에는 마치 전쟁터에 끌려가는 아들과 그런 아들을 보내며 울고 있는 부모처럼 보이는 이들이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조금은 후회되네요.”

주안이 작게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크흑……. 도련님, 꼭. 꼭 몸조심하시고, 건강히 지내십시오!”

“비록 저희는 여기 남지만, 마음만은 언제나 도련님과 함께입니다.”

“이, 이 자식들아…….”

쥬도가 자신의 전 호위들이 울먹이며 자신을 배웅하는 그 모습에 결국 작게 울음을 터뜨렸다.

다 큰 사내들이, 그것도 우락부락한 사내들이 어디 귀한 집 아들을 부둥켜안고 엉엉 우는 모습은 참 보기 좋지 않았다.

주안도 그런 쥬도와 전 호위들의 마음은 이해했지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쥬도는 그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주안의 호위 겸 피터의 정신 훈련을 받아야 하기에 주안을 따라 황도로 함께 올라가게 되었다.

그것을 로닐 상단주에게도 통보하였지만, 그는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더욱이 아들의 배웅도 마다하였으며, 스스로 이런 자리에 나와 배웅하는 것도 죄스럽게 생각하는 듯했다.

상인으로서 참 청렴한 인물이라 알고는 있었지만, 다르게 말하면 지나치게 깐깐한 인물이라고 주안은 생각했다.

“뭐, 저쪽은 그냥 내버려 두셔도 괜찮아요.”

“정말 보기 안 좋구나……. 내 집에서 저게 무슨 꼴인지. 에잉.”

“하하…….”

아직도 쥬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 벡브란 전대 공작은 쯧쯧 하고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주안의 부탁은 허락해 주었기에, 더 이상 뭐라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가론 자작님.”

“예?”

“토미에게 말을 선물해 주신 거 정말 감사해요.”

토미는 가론 자작 덕분에 그에게서 배운 마상술로 금세 말을 탈 수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축하인 것인지, 토미에게 말을 한 필 선물해 주었다.

그것을 받게 된 토미는 어쩔 줄 몰라 했지만, 가론 자작의 선물을 마다할 수가 없었다.

“겨우 말 한 필일 뿐이죠. 사실 저희 영지에서 가르쳤다면, 영지에서 키우던 말을 선물해 줬을 텐데. 그게 참 아쉽습니다.”

“……그러면 부담이 더 될걸요.”

가론 자작의 영지인 노밀 영지에서 키우는 말은 명마 중에서도 명마로 꼽히는 말들로, 대단한 가격을 자랑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노밀 자작가에서 직접 키우고 훈련시킨 그 말은 보통의 말들과는 달리 그 몸집도 크고 근육도 대단했다.

더욱이 그 몸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과 순발력 그리고 믿기 어려운 지구력을 갖추었고, 전쟁터에 당장 끌려나가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앞장서서 돌격했다.

모습을 보면 왜 제국 내에서 노밀 자작가의 말을 최고로 치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는 것들이었다.

웬만한 부자가 아닌 이상 그 말을 구하기는 매우 힘들었다.

“뭐, 다음에 저희 영지에 오면 가문에서 직접 키운 말을 선물해 주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그땐 주안 공자님에게도 말을 한 필 드리도록 하죠.”

“전 말은 좀…….”

말을 타는 게 사실 좀 무서운 주안이기에 거부하려 했지만, 싱글거리며 웃는 가론 자작의 말을 차마 거절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그게 마음에 든 것인지 가론 자작이 만족한 듯했다.

“아, 그보다 제 아들 녀석이나 잘 부탁드립니다.”

“진짜 워랜 경을 황도로 보내셔도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할 일도 없는 녀석인걸요. 무엇보다 그 녀석이 제게 먼저 부탁하였으니, 안 들어줄 이유도 없는 것이죠.”

“으음…….”

출발하기 직전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안은 조금 의아했지만, 그것을 말하러 온 워랜은 담담했고, 어째서인지 울상인 솔이 그런 워랜에게 붙잡혀 있는 모습은 매우 불쌍했다.

“그래도 후계자잖아요……. 노밀 영지는 어쩌시려고…….”

“어차피 그 녀석이 하던 일이라고는 놀고먹고, 자던 것밖에 없어서 그 녀석이 없어도 영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괜히 황도에까지 동부의 게으름뱅이로 소문이 난 것이 아니죠.”

“그거 자랑 아니잖아요…….”

웃으면서 말하는 가론 자작이었지만, 주안은 작게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뭐, 어떠냐. 네가 거둔 쓸모없는 놈팡이 녀석이나 아직 미숙한 토미라는 아이보단 훨씬 도움이 될 거다.”

“그야 뭐, 워랜 경의 검술이라면야…….”

할아버지의 말에 주안도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20대의 나이로 랭크 6에 접어든 인물은 몇 없었다.

비정상적인 천재성을 자랑하던 마리우스 파탈렌 후작 정도가 20대에 랭크 7에 들어섰지만, 워랜도 절대 그에 모자라지 않은 인물이었다.

단지, 노력을 하지 않아서 문제일 뿐이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가론 자작은 아들이 그 먼 황도로 간다는 것에 별달리 불만도 없어 보였다.

오히려 가서 뭐라도 좀 배워 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것을 알기에 주안도 별말을 하지 않았으며, 주레인 공작 역시 흔쾌히 허락해 주었다.

“무엇보다 그 녀석이 토미라는 아이에게 꽤 크게 관심을 가지는 듯합니다. 아들 녀석에게도 그렇지만, 토미 그 아이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가론 자작은 다른 그 무엇보다, 워랜이 토미라는 아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환영하는 입장이었다.

제대로 본 것은 아니지만, 워랜이 한 행동은 공작성 내에 파다하게 퍼졌고, 또 워랜이 왜 그렇게 한 것인지 가론 자작도 알게 되었다.

워랜이 주안 공자의 하인을 습격했다.

이것을 들었을 때 가론 자작은 오랫동안 내버려 둔 검을 집어 들었고, 그것을 뜯어말린 것은 다름 아닌 벡브란 전대 공작이었다.

아무리 게으르고 멍청한 아들이라도, 이곳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주안 공자의 하인을 습격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을 줄은 몰랐다.

아들에 대한 사죄로 아들을 죽이고, 자신도 죽겠다는 젊은 시절의 정신 나간 성격이 그대로 나타나자 평소와는 반대로 벡브란 전대 공작이 그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이성을 찾게 만든 후 찬찬히 알아보니 습격은 맞지만, 토미라는 아이를 간단히 지도해 주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아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그 게으른 워랜이 남을 가르쳤다는 것을 아버지인 가론 자작은 믿을 수가 없었다.

괜히 동부의 게으름뱅이로 제국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 인물이 아닌데 말이다.

그렇기에 가론 자작은 그런 아들이 무언가에 관심을 가진다는 것과 또 자신에게 일부러 부탁해서 황도로 주안 공자를 따라가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을 진심으로 반기며 허락해 주었다.

“아들 녀석을 잘 부탁드립니다. 뭐든 시키도록 하십시오. 제가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 주안 공자의 말이라면 웬만해선 다 들어줄 겁니다.”

“그런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그래도 워랜 경의 검이 저희 토미에게 너무나 잘 맞아서, 토미가 성장하는 것에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하하, 그 녀석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 날이 올 줄이야…….”

그 정도로 아들에 대한 믿음이 없었던 가론 자작이지만, 오랜만에 즐거운 미소를 지었다.

그런 가론 자작을 보던 벡브란 전대 공작이 곰방대를 꺼내 불을 붙인 후 입에 물고는 깊게 한 번 연기를 흡입한 후 내뱉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여기저기서 후계자 문제가 많구먼.”

“동부 지역의 특색인가 봅니다.”

“……반박할 수가 없네요.”

벡브란 전대 공작은 손자가, 가론 자작은 아들이 그리고 로닐 상단주 역시 아들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인지 벡브란 전대 공작이나 가론 자작 그리고 주안도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에는 또 어떤 후계자가 말썽을 부려서 동부를 빛낼지, 이젠 무섭기까지 하다.

“어쨌든, 이만 가볼게요. 편지랑 마법 통신도 자주 할게요, 할아버지.”

“그래, 그만 가보거라. ……네 어미가 노려보는 게 이젠 좀 거슬리는구나.”

“이 따끔거리는 게 살기가 아니라 안젤라 님의 시선이었군요. 아스란 왕국 녀석들이 절 죽이려고 할 때의 그 느낌 비슷했는데 말입니다.”

“……농담이 지나치세요.”

장난스레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어른의 행동에 주안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거리자, 기어이 작게 웃음을 터뜨린 벡브란 전대 공작과 가론 자작이었다.

주안이 두 어르신에게 다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 후, 주변에 있는 가신들과 영주들 그리고 기사들과 병사들을 둘러보았다.

아니, 그들뿐만이 아니다.

마를렌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이곳을 거점으로 거래를 하는 대상인들과 잠시 놀러 온 동방과 서방의 귀족들까지…….

인종도, 직책도, 성별도, 나이도 모두 다른 그들이지만 이전과는 달리 주안을 보는 눈은 모두 달라져 있었다.

그리고 그런 이들의 시선을 예전에도 많이 받았었다.

대부분이 원망 어린 시선이었으며, 질시와 질투, 멸시가 뒤섞인 좋지 않은 감정들도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자신을 호의적으로 바라봐 주고 있었다.

안도하고, 안심하고, 따뜻하게 바라봐 준다.

익숙하지 않은 그 시선에 몸이 간질거렸지만, 나쁘지 않았다.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이런 감정이 낯설어도 싫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너무나 좋았다.

멀지 않은 곳에서 소중한 가족인 아빠와 엄마가 주안을 기다리고 있었고, 가족과 마찬가지인 소니아와 피터도 있다.

그리고 언제나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토미도 자신이 다가가자 활짝 웃으며 반겨준다.

쥬도는 여전히 호위들과 울고불고 매달리며 주변에 민폐를 끼치고 있었지만, 이해해 주도록 하자.

도리안은 아내와 헤어지는 것이 조금 불안한 듯했지만, 로닐 상단주도 있었고, 주안이 할아버지에게 도리안 경의 아들에 대한 건강 문제를 부탁했다는 것에 크게 감사했다는 것은 별로 비밀도 아니었다.

솔은 싫다 싫다 하면서도 공작성까지 타고 온 짐 마차에 올라가 이미 출발 준비를 끝내, 작게 미소를 짓게 만들었고, 워랜도 이미 짐 마차에 올라타서 벌써 자고 있는 듯했다.

올 때와는 달리, 갈 때는 배웅을 해주는 사람들도 그리고 자신을 봐주는 그 시선과 생각도 많이 변해 있었다.

언제나 오기 싫었던 이곳, 마를렌이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이제 집으로 가요, 엄마. 아빠.”

주안이 미소를 짓고, 엄마와 아빠에게 향하며 말했다.

주안 자신과 가족들을 기다려 주는 할아버지나 가론 자작, 가신들과 영주들 그리고 영주민들까지.

‘이번에는 모두를 버리는 그런 멍청한 짓을 하지 않을 거야. 두 번 다시, 그러지 않겠어.’

작게 다짐을 하며 주안은 엄마와 아빠와 함께 마차에 올랐다.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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